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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 딸이 생겼다 (4) >
아빠, 축구 한다
5화 딸이 생겼다 (4)
유아식은 보통 12개월 때 시작하며 늦어도 15개월을 넘지 않는 편이었다.
아기에 대해 무지한 인구는 이 사실을 가은이를 통해 알게 됐다.
[우리 가은이는 계란말이를 제일 좋아해.]
[이유식이 아니라?]
[어머, 이유식도 알아?]
[크흠. 검색해봤지. 아니, 아니지. 너 나 무시해?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고?]
[이유식은 한참 전에 땠어. 아! 우리 딸, 견과류랑 콩나물 무침도 좋아해. 아무쪼록 어릴 때부터 골고루 먹여야 건강하게 자라지.]
다행히 인구는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띠, 띠리릭-!
아침 기상과 동시에 현관문을 열자 문 앞에 배송 가방이 도착해 있었다.
‘이게 유아 식단인가?’
배송가방을 챙겨 들고 식탁 위에 내려놓은 인구는 그 안에서 잘 포장된 동그란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게 배가 불러?”
인구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오늘의 메뉴는 계란말이 세 개, 견과류 볶음, 콩나물무침, 그리고 쌀밥.
한 입, 두 입 정도 크게 먹으면 금세 비워질 양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코, 자고 있네.”
목재 식으로 된 바닥형 아기 침대 속, 세나가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쌔액, 쌔액 고른 숨소리는 귓가를 간질였다.
입가엔 자그마한 호선이 그려졌다.
“으샤.”
깨우려고 했지만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 깨울 수가 없었다. 대신 침대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턱 너머로 얼굴을 슬쩍 내밀었다.
포동포동하고도 새하얀 얼굴에 인구는 작게 중얼거렸다.
“모공 하나 안 보이네.”
조막만한 얼굴에 눈, 코, 입, 눈썹까지 조화롭게 들어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속눈썹은 뭐 이리 길어?”
이건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딸기가 그려진 잠옷 차림새에 뒤척이는 포동포동한 두 팔, 다리도 마냥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 작은 몸이 움직이는 것까지 신기하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괜스레 흐뭇함이 감도는 기이한 순간이었다.
흠칫.
일순 인구는 몸을 떨었다. 꿈틀하니 눈썹을 찡그린 그는 황당한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인구는 홱 홱 고개를 저었다.
암만 친자식이라 할지라도 그는 처음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선 긋자, 선 그어.’
어차피 2년 후면 가은이가 다시 데려갈 아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일찍이 끝난 상태였으며 인구 역시 이 제안에 응한 건 돈 때문인 게 컸다.
‘나랑 있어 봐야 좋을 거 하나 없고.’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금 자신은 가난하기 그지없다는 걸.
그러니 세나에게 있어 자신 따위는..., 멀리 할수록 좋은 존재였다.
‘후에, 가은이랑 협의하에 연에 한, 두 번 보는 정도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가은이와의 계약에 충실할 뿐이었다.
* * *
세나가 깨어난 건 30분이 지나서였다.
딸은 일어나자마자 애교 섞인 목소리로 딱 이 말을 먼저 꺼냈다.
“아빠아~”
듣기가 좋았다.
“어어. 그래, 세나 일어났어?”
인구는 식탁 앞에서 막 도시락 비닐을 뜯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두 팔을 벌렸다.
우다다다다-
뒤뚱뒤뚱 달려온 딸이 폴짝 뛰어올라 인구의 품에 쏙 안겼다.
“아구~ 우리 딸. 밥 먹자아!”
인구는 세나를 번쩍 안아 들어 허공에서 붕붕~ 비행시킨 뒤 의자에 조심스레 앉혔다.
“꺄아아! 재미쪄!”
세나는 한 번 더 해달라는 듯 두 팔을 재차 뻗었다.
“쓰읍, 아침밥 다 먹기 전까진 안 돼.”
“치이!”
“다 먹으면 또 해줄게.”
“진짜아?”
“그럼!”
“조아!”
세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순간 꽃이 피는 줄 알았다.
떠먹여 줘야 싶었는데 숟가락까지 스스로 집어 들었다.
“그렇다고 급하게 먹으면 안 돼.”
“아라! 엄마가 꼭꼭 씹어 머그래쪄!”
“옳지~”
인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수월한데?’
유아식도 배달이고 음식도 스스로 먹을 줄 안다.
밤 중엔 대소변도 혼자서 해결했다.
‘원래 세 살쯤 되면 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건가?’
어릴 적 기억이 너무 오래된지라 인구는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원래 이런 건가도 싶었다.
냠냠 뇸뇸 먹는 중에 밥풀이 입 주변에 묻고 서툰 숟가락질에 음식이 우수수 떨어지긴 했지만...,
‘나도 밥이나 먹어야지.’
닦으면 그만이었다.
1분 뒤.
“....”
인구의 젓가락이 한 차례 스팸 구이를 공략했다. 하지만 이후는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귀, 엽다. 진짜 귀여워.’
인구는 입을 헤 벌린 채 꼭꼭 음식을 씹어먹는 세나를 바라봤다.
도저히 마주 보고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저 자그마한 입안에 음식을 골고루 넣어 오물오물, 냠냠 씹는 모습부터가 사랑스러웠으니까.
‘아니, 저게 다 들어가는 거야?’
언제는 양이 작아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딸의 밥 먹는 모습부터가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스윽.
자기도 모르게 뻗어진 왼손은 세나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냈다.
흠칫.
뒤늦게 멋대로 움직인 팔에 인구는 잘게 몸을 떨었다.
‘누가 내 몸을 조종하나?’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여태 누구 밥 먹는 모습에 심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건만.
‘가은이 밥 먹을 때도 이러진 않았었는데.’
문득, 코를 킁킁! 대니 어디선가 달달구리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인구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생각했다.
‘설마, 내 눈...?’
그랬다.
지금, 인구는 꿀 떨어지는 눈으로 딸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느닷없이, 머릿속엔 또 다른 의문과 함께 불신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 음식. 진짜 신선한 거 맞아? 아기가 먹어도 괜찮은 거 맞냐고.’
사실 처음부터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었다. 저 유아식 도시락엔 원산지 표기조차 없었다.
그러다 말고 인구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평소에나 옛날에나 인구는 원산지 표기 따위 일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맛만 있으면 몽땅 먹어치우는 성향.
그건 다른 사람이 대상이어도 다르지 않았다.
맛 좋고 배만 부르면 됐지! 라는 마인드였으니까.
허나, 딸을 향해선 달랐다.
순간, 인구는 폭포수처럼 치솟아 오르는 낯선 감각에 벌어진 입을 덜덜 떨었다.
‘설마 나..., 선천적 딸바보였어?’
이건 진짜 위험하다.
* * *
일주일 뒤.
대형마트.
중년의 여직원은 빈 진열대를 채워 넣는 중에 힐끗, 힐끗 옆을 살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아까부터 한 손에 바구니를 쥔 채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음.”
냉동고에서 치킨텐더를 집었다가도 뒤쪽 표시란을 보고는 맥 빠진 한숨과 함께 내려놓는다.
탁!
“으음.”
이번엔 냉동 돈가스를 집었다가 말고 한참 동안 표시란을 보더니 눈살을 구기며 내려놓았다.
탁!
“크흐흠...!”
남자의 입에선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대체 뭐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던 여직원으로선 답답할 지경이었다.
세, 네 번이면 그냥 지나칠 법했지만 벌써 저 자리에서 30분이 넘게 음식을 빼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했으니까.
“저기요, 아저씨. 뭐 찾으세요?”
참다못한 여직원은 손을 탁탁 털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곳 대형마트의 오랜 해결사인 그녀는 오늘도 한 건을 퍼뜩 처리하고자 했다.
움찔!
허나 자신있게 다가갔던 그녀는 그만 주춤하니 한 걸음 물러섰다.
‘뭐, 뭔 눈빛이...!’
남자는 심각하고도 고뇌에 잠긴 눈으로 이쪽을 느릿하게 돌아봤다.
‘대, 대체 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고뇌 속에서 여직원마저 이내 심각해졌다.
“뭐, 뭘 찾으시는데요?”
짐짓 엄숙하게 물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남자는 곧 검지 끝으로 냉동고 속 냉동 음식들을 가리키며 답했다.
“딸이 치킨텐더랑 돈가스가 먹고 싶대요. 그런데 저거, 냉동이잖아요. 세 살 아기한테 냉동식 먹여도 됩니까? 먹여도 된다면..., 국산은 없습니까? 저거 중국산이던데. 간은 어떤가요? 그건 안 쓰여 있어서. 우리 딸 매운 건 또 잘 못 먹어서요.”
“...예?”
“그런데 진짜 세 살짜리한테 먹여도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밀가루에 튀김가루라. 검색해 보니까 소화불량이랑 위장장애라는 부작용이 있던데요.”
“또 검색해보니까 밀가루엔 불용성 단백질의 혼합물이라는 글루텐이란 게 있더라고요. 복부가스에 통증, 알레르기, 피로, 면역계 질환을 일으키는...!”
스윽!
말을 하다 말고 남자는 세상 간절한 얼굴로 두 눈에 힘을 팍 주어 직원을 내려다보았다.
“진짜, 먹여도 되는 겁니까? 예? 딸이 무지 먹고 싶어하긴 해서요. 급합니다.”
“...”
직원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 * *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인구는 깨달았고, 또 깨달았으며 이윽고 확신에 치달았다.
‘나는..., 진득하고도 강인한 딸바보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딸을 향한 이 마음은 납득될 수 없었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우며 또 사랑스럽다!’
보면 볼수록 또 보고 싶었다.
보지 않으면 더 보고싶었다.
‘지금도, 보고 싶다!’
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그 작은 아이가 움직이는 게 신기했으며 신비롭기까지.
좋은 것만 보게 해주고 싶었고 몸에 좋은 것들만 먹이고 싶었다.
실제로 인구는 유아식 도시락마저 과감히 해지해버렸다.
‘염병, 그건..., 원산지 표기가 안 되어 있어서...!’
또 당일 조리 후 배송이라지만 이동 간에 딜레이란 게 있었다.
‘여름엔 상할지도 몰라!’
이런 불안한 걱정을 할 바에야 차라리 직접 음식을 조리해 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귀엽지...!’
어쩜 그리도 귀엽게 태어난 건지...!
꾸욱, 꾸욱, 꾸욱!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인구는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새로 온 힘을 다해 산을 오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모든 건 찹살떡 볼이 내 무릎에 촵 달라붙을 때 시작된 거다.’
어쩌면 그때부터, 막혔던 딸바보의 피가 뻥 뚫린 건지도 몰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헤벌쭉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는 자신을 수없이 발견하곤 했으니까.
‘그래. 그때부터가 분명해.’
생활 패턴과 삶의 기준점은 180도 달라졌다.
일단 매달 450만 원이 입금되면서 더는 일용직을 전전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후욱, 후욱! 후우욱-!”
세나가 어린이집에 등원한 사이, 그는 산을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다.
등산?
‘이건 등산이 아니야.’
처음엔 450만 원이라는 돈을 온전히 제게 쓸 계획을 세웠다.
‘세나 밥이나 옷은 다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부성애가 갑자기 생길 리가 없다! 라고 자부했던 그때 그 마인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파도가 범람하듯 밀려들었어...!’
피할 새는 없었다.
몇 차례 부정하긴 했으나 이내 받아들였다.
인구가 딸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건 맞았다.
‘받아들인 직후엔 한순간이었고.’
물론 여전히 선은 지키자! 라는 다짐은 그대로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잖아. 난 준비도 안 됐는걸.’
여전히 세나에게 있어 자신은 썩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듯 최선을 다해 선을 지키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정말 지키고 있는 건가?’
가끔은 의문이 들었다.
딸만 보면 한순간에 무장해제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딸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1년 후 이별을 생각하면 금세 울적해기를 한참.
길이 없는 수풀을 헤치고 헤친 끝에 큼직한 비닐하우스 하나가 나타났다.
인구의 두 눈이 번뜩였다.
‘드디어 찾았다...!’
“누, 누구쇼?”
<나는 자연 속 인간이다!> 에 출연해 영지버섯을 그리도 자랑한 한 중년 자연인은 놀라 물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남자는 대뜸 등에 멘 가방을 발 앞에 내려놓고는 거친 숨을 크게 토해냈다.
“후우-!”
이어 남자, 인구는 땀에 눌어붙은 앞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면역력에 좋다는 영지버섯 좀 얻으러 왔습니다, 어르신. 여기가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한다고 정평이 났던데요. 얼마면 됩니까?”
“...여, 여긴 어떻게...?”
“자세한 위치를 몰라서 산을 넘고 산을 넘어왔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요. 우리 딸 어린이집 하원까지 기껏해야 1시간밖에 안 남아서요. 마중 나가야 합니다.”
“....”
“아! 그리고 혹 나는 자연 속 인간이다! 369화에 출연한 콩나물 재배의 달인! 아십니까? 수소문해보니 그분도 이 근처 산에 거주 중인 걸로 아는데. TV로 보니까 거기 콩나물이 참 튼실하더라고요.”
이 모든 건 딸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한 아빠의 따스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은 1년간이라도 말이다.
< 005. 딸이 생겼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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