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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 딸이 생겼다 (5) >
아빠, 축구 한다
6화 딸이 생겼다 (5)
1월.
마인구의 절친한 친구 석구는 식탁 테이블 앞에 앉아 두 눈을 끔뻑였다.
‘저 새끼 뭔...’
눈앞, 널찍한 부엌 한편에서 마인구는 어느 때보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그는 수돗물에 손을 박박 씻어댔다.
촤악, 촤압!
석구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의사야 뭐야?’
박박 씻어댐을 넘어 팔꿈치 높이까지 물을 묻혀댔으니까.
싱크대 위 수납장 위에는 타이머가 흘러가고 있었다.
19, 20, 21초가 막 지났을 때.
“후우!”
인구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손 씻기를 끝냈다. 그의 입가엔 미약하지만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손에는 세균과 화학 물질, 먼지가 쌓여. 그러니까 최소한 20초 이상은 박박 손 세척을 할 필요가 있지.”
“....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석구가 손끝으로 자신을 가리켜 물었다. 하지만 인구는 대답 대신 알 수 없는 미소로 화답하더니 위생 장갑을 꺼내 들었다.
스윽, 스윽!
두 손에 착용한 뒤, 위생 마스크, 이어선 머리에 위생 모자까지 썼다.
“...급식 아주머니세요?”
어린이집에서 만든 엉성한 딸기가 새겨진 앞치마는 필수.
“...”
석구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이게 뭔 일이야?’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 인구는 저녁 요리를 하겠다고 손수 나섰다. 그 순간부터 석구는 놀랐다.
‘1년 만에 집들이에 초대한 것도 놀라운데...’
홍석구가 알고 있는 마인구는 청결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
음식 조리를 하는 데 앞서 손을 씻는 것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냥 인스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던 녀석이잖아’
1년 365일 그의 주식은 인스턴트 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탁, 탁, 탁, 탁!
마인구는 그 귀찮다는 도마까지 자외선 살균 소독기에서 꺼내 통밀빵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냈다.
“이건 목장에서 직접 공수해온 원유로 만든 수제 치즈야. 그것도 저염 치즈.”
“...어?”
피식.
석구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반문했다. 인구는 콧잔등을 찡긋하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재수가 없었다.
‘웃지 마, 새끼야.’
맞은편엔 양갈레 머리를 한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조카, 세나가 있었기에 대놓고 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세나는 양손에 포크와 숟가락을 쥐고서 아빠만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중이었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음식이 완성되었다.
“다 됐다아.”
“와아아~! 내가 조아하는 참치다아!”
살짝 구워낸 통밀빵 위에 얇게 펴버린 치즈와 참치가 올려져 있었다.
인구는 세나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세나야. 먹어. 이거 참치도 면실유 기름을 첨가하지 않은 거라 다른 일반 거랑 다르게 칼로리가 절반 밖에 안 돼.”
“와아아!”
고작 4살 아이가 칼로리에 대해 이해할 리가 없었다.
석구는 충격에 충격을 받은 얼굴로 생각했다.
‘이 사회가 그렇게 매정하진 않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평소에는 보인 적 없던 부드러운 미소를 연속해서 띠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세나. 참치는 체내에 수은이나 중금속 농도가 높은 거 알아?”
도리도리!
“몰라아.”
“참치는 그렇대. 그런데 아빠가 찾고 찾고 또 찾아서 우리 딸이 좋아하는 이 건강한 참치를 찾아낸 거야. 수은이랑 중금속 농도가 절반 가량 낮은!”
“와아아!”
“여기 보이는 이 피자는 뭐어게?”
“글쎄에에, 모야아?”
세나가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순간 석구는 인구의 입꼬리가 째질 듯 끌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양배추 피자야. 아빠가 양배추를 채쓸 듯이 썰어낸 뒤에 무항셍제계란으로 후추만 조금 넣어서 버무려 냈지. 소금은 아예 넣지도 않았어.”
“우움! 진짜아?”
이미 세나는 포크로 음식을 찍어 맛보기 시작했다. 인구는 그 모습도 마냥 사랑스러운지 꿀 떨어지는 눈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그럼! 거기에 알지? 아빠 거래처. 저기 저 이름 없는 산에서 공수해오는 버섯이랑 토마토, 소시지, 감자로 토핑했지. 오븐에 데우지도 않았고 프라이팬으로 지진 거야. 부침개처럼.”
인구는 테이블 위 차려진 음식들 모두 언급할 기세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 치킨은...!”
“이 오리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서...!”
저 모습을 빤히 보던 석구는 입을 벙긋대다 말고 유추해냈다.
‘설마..., 딸이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냐고. 어?’
* * *
“마시써!”
“...!”
한창 설명에 설명을 덧대던 인구는 돌연 입을 꾸욱 닫았다.
세나는 입가에 수제 케첩을 묻히고서 이쪽을 돌아보더니 세상 환하게 웃어주었다.
순간 따사로운 태양과 선선한 바람이 열띤 조리로 인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는 것 같았다.
‘세상에나...!’
그의 두 눈에선 꿀이 다발로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저 귀여운 볼에 입을 맞추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치카치카하고 볼뽀뽀 해야지.’
자칫 병균 옳을라.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너 이 새끼.”
세나가 잠시 응가하러 간 사이에 석구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인구는 빈 접시들을 곧장 세척하며 그런 석구를 힐끗 바라봤다.
“우리 세나. 응가도 스스로 해낸다?”
답 대신 빙구 미소를 짓는 친우에 석구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너. 괜찮냐?”
“뭐가?”
“1년 뒤에 세나 다시 전처한테 보내주기로 한 거 아니야?”
“그렇지.”
“그래서 마음 다 안 줄 거라며. 선 그을 거라며. 그게 너나 딸한테도 좋다고.”
분명 그랬다.
몇 달 전에도 인구는 이런 말을 하였다.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거야.]
[솔직히 말해서 돈도 좋고, 세나도 좋아. 세나는 내 딸이고, 지금 양육비는 내 생활을 이롭게 해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딱 약속한 시기만큼은 나름 아빠로서의 도리를 다할 거고, 이후에는 협의해서 1년에 몇 번 보는 정도로 마무리 지어야지. 그게 나나 딸한테 최선이야.]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현실적이지면서도 매정한 아빠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집들이에서 보여준 인구의 모습은 평범함을 훨씬 뛰어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무슨 집들이 전에 거실에 살균 소독기를 쏴대...?’
딸을 바라보는 시선도..., 1년 뒤에 결단코 쿨하게 보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주 꿀이 떨어지다 못해 폭포수처럼 쏟아지더만...!’
괜스레 녀석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반면 인구는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고 있잖아?”
“...이게?”
“쉿!”
다음 말은 끝맺지 못했다.
그새 세나가 응가를 끝낸 뒤 나와 다다다다! 소파로 뛰어갔다.
“우어어어어!”
퍼억!
멀리 뛰기하듯 온몸 던져 소파에 앉더니 곧 tv를 틀었다.
채널은 211번.
전날 유럽 경기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갑니다. 갑니다아! 페데리코 배르나르데스키이!]
툭, 탓!
타앙!
[배르나르데스키의 얼리 크로스으~!]
투욱!
철렁!
[고오오오오오오오올! 마리우 만주키치이!]
[수비수 사이로 파고들어 강렬한 다이빙 헤더를 성공시킵니다아아아!]
[선취 골을 작렬하는 유벤투스으으!]
유벤투스 vs 맨체스터 시티의 챔스 조별 경기였건만 세나는 두 팔 벌려 소리쳤다.
“코이뜨으으으! 우어어어!”
전염된 것마냥 설거지에 한창이던 인구도 두 팔 벌려 우렁차게 외쳤다.
“코이뜨으으! 예에에에!”
“...허.”
석구는 그만 헛바람을 흘렸다.
바로 그때였다.
“아빠아!”
“응, 세나야.”
득점 한 방에 두 뺨이 발그랗게 물든 세나는 별을 품은 것 같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아빠는 언제 축구해에?”
* * *
이틀 뒤 점심.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
“부상? 참나.”
운전석에 자리한 석구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말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해서 당분간은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이틀 전, 세나의 물음에 대한 인구의 뻔뻔한 답이었다.
조수석에서 담배를 불은 붙이지 않고 꼬나물기만 한 인구는 창밖 풍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라고 해? 아니라고 해도 우리 딸이 나보고 축구선수라는데. 사실 그 변명만 벌써 30번째다.”
“너도 참. 암만 그래도...!”
“울어. 아니라고 하면. 처음엔 너무 크게 울어서 맞다고 했지, 그런데...,”
말끝을 늘어뜨린 인구는 잘근, 담배 필터를 씹었다.
“나중 돼서는 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마음 아파서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고.”
“...”
뜻밖의 대답에 석구는 힐끗 인구를 쳐다봤다.
어느덧 그 얼굴엔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려 있었다.
“이, 이 새끼. 비련의 아빠인 척하기는.”
오랜 친구인 석구는 밀려드는 울적함을 욕지거리로 털어냈다.
그래도, 확실히 의외였다.
‘이놈도 아빠긴 아빠구나.’
아이가 생기면 사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던데, 인구가 딱 그 케이스의 표본이 아닌가 싶었다.
‘담배도 끊었고, 술도 거의 끊었지.’
지금 불을 붙이지 않고 필터를 잘근 물고 있는 정도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골초도 이런 골초가 없었는데.’
밥 먹듯 술을 마시던 것 역시 주에 1회로 확 줄었다.
그것도 한 번 마실 때 맥주 한 캔 정도가 전부.
자연스레 붓다시피 한 몸뚱이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옛날 청대 시절만은 못하긴 해도...’
여기서 좀만 더 열심히 자기 자신을 가꾸고 살을 빼면 과거의 포스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외관적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왜인지 석구는 그런 요상한 상상과 함께 기대가 일었다.
“그런데 왜 난 왜 오늘 운전기사야?”
석구는 경기나 훈련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 집에서 종일 휴식을 취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자식이 대뜸 불러냈네.’
인구는 불만을 품은 석구를 슬쩍 보고는 예의 입가에 미끈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네가 우리 세나 대부잖냐.”
오늘 오후는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함께 참여하에 쿠킹 클래스가 있는 날이었다.
이미 세나는 오전에 어린이집에 등원한 상태. 그렇듯 인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크흠! 큼!”
목도 가다듬었다.
사이드미러 속 거울을 통해 삐져나온 콧수염이 없는지도 확인.
‘오케이. 이상 무.’
어린이집에 방문한 부모들은 상당수가 어머니들이었다.
원장과 선생님들은 다가오는 어머니들을 입구 앞에서 환희 반겼다.
“어머~ 희선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철수 어머님이시구나!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철수가 이쁘고 멋진 게 어머님을 많이 닮아서인 거 같아요!”
“어머! 어머! 유리 아버님! 어머님은 오늘 안 오셨네요?”
나름 멀끔한 검정 코트에, 하얀 셔츠,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검정 바지 차림새의 인구도 막 그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씰룩, 씰룩.
거울을 보며 쉼 없이 연습한 친절한 미소를 띠어 보이며.
석구는 예정에도 없던 그 옆을 나란히 걸었고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걸음은 채 다섯 걸음 정도에서 멈춰섰다.
“마인구?”
웬 왱왱 되는 모기 목소리가 인구의 미간을 절로 구겨뜨렸다.
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멀지 않은 거리.
한 남자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내민 검지 끝을 연신 흔들어대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거 진짜야? 응? 마인구 맞아?”
인구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뱀눈...’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인구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그건 저 짝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신라고 1학년 마인구! 맞지?”
이내 녀석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아는 그..., 꼴통 마인구!”
< 006. 딸이 생겼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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