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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3. 아빠의 도전 (2) >
13화 아빠의 도전 (2)
한강 FC는 양천구 목동을 연고지로 두고 있었다.
스타디움은 목동 FC와 함께 공동으로 사용 중.
오전, 계약 일정이 오후로 잡혔던 만큼 인구는 간만에 세나를 데리고 이곳 구장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날씨 한 번 좋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유독 덜 추운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날 말이다.
스타디움 주변으론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산책하는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죄다 나뭇잎을 벗었지만 그마저 인구의 눈엔 아름다워보였다. 딸과 함께여서 모든 날이.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꽈악.
목마를 탄 세나가 인구의 양 머리를 잡아당겼다. 인구는 오래된 양식의 스타디움 앞에 멈추며 씨익 웃었다.
“응, 세나야.”
“우와~ 이거 왜 이렇게 커어?”
세나의 자그마한 검지 끝이 바로 옆의 건물을 가리켰다. 인구는 해당 건물을 보고 섰다.
“축구경기장이니까 크겠지?”
“아빠도 여기서 뛰어어?”
“조만간 뛸 거야.”
“왜에? 왜에? 지금이 아니라아?”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왜 조만간이냐는.
인구로서도 당장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스스로 잘 알았다.
“아빠가 부상이 다 낫긴 했는데. 다친 곳이 다 나았다고 해서 바로 경기에 투입되고 그러진 않거든.”
“왜에?”
“부상 회복 후엔 이젠 경기력 회복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 기간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도 갈 수 있어.”
“흐움...”
딸이 시무룩해졌다. 머리카락을 꼬옥 쥐던 손의 감촉이 약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섣부른 발언을 할 수가 없었다.
‘호언장담했다가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모습 보면..., 울지도 몰라.’
냉정히 보건대, 자신은 훨씬 더 많이 녹슨 때를 벗겨내야 했다. 필시 박동일 감독도 자신을 곧장 기용하기보다는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드는 데 우선시할 것이다.
‘살은 무조건 빼야 하는 거고.’
이미 각오는 되어 있었다. 감독이 박동일이라면..., 한 번 또는 두 번 이상 뛸 기회가 오리라.
그리고 인구는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었다.
인구는 비장한 얼굴로 마음을 다졌다.
‘암, 모든 걸 던져야지!’
지금도 봐라. 당장 경기에 뛸 수 없다는 말만으로 세나가 금세 울적해지지 않았는가.
‘크흡...! 아빠로서 마음이 너무 아파...!’
맑았던 날씨마저 한순간 먹구름이 낀 것 같았...!
“아빠아, 얘는 몇 살이야?”
“...몇 살?”
뜻밖의 질문에 인구는 두 눈을 끔뻑였다.
언제 울적했냐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운 세나는 그새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빛냈다.
“웅, 이거!”
콕! 찍어 스타디움을 가리켰다.
“이게 몇 살이냐면...”
인구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다. 모르겠는데? 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싫었다.
딸에게 있어선 늘 척척박사가 되고 싶었으니까.
‘일단 낡았어. 그것도 겁나게!’
건물 외벽부터가 녹이 잔뜩 꼈다.
전체적으로 누렇게 바랜 벽을 보자니 대충 10년은 거뜬히 넘어 보였다.
‘저 새겨진 이름도 봐. 스타디움이나 경기장이 아니라 목동종합운동장이라고 되어 있잖아.’
글꼴도 올드하기 그지없었다.
인구는 눈썹을 좁히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얘는 한...,”
정답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목동 종합운동장은 1989년 11월 14일에 개장했어요. 좌석수는 약 15,511석. 2005년도에 한 번 리모델링을 했고요.”
청아하고도 뚜렷한 음성.
‘누가 감히...!’
똑똑한 아빠를 넘어 딸에게서 동경의 눈빛까지 끌어내고자 했던 인구는 사납게 뜬 눈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홱 돌아봤다.
‘어메?’
순간 사납게 뜬 표정 그대로 굳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화사한 미녀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지나가다 보니 들려서요. 제가 실례한 건 아니겠죠?”
큰 눈매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여자가 미끈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당신 지금 엄청나게 실수했어,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인구는 그러지 못했다.
“와아~ 언니 이뿌다!”
“어머, 공주님이 더 이쁜데요?”
“헤에~”
“귀여워...! 딸이 너무너무 예뻐요.”
“흐, 흐헝.”
딸의 관심을 순식간에 앗아간 여인에 순간 질투를 느꼈던 인구의 입가에도 예의 빙구 미소가 흘렀다.
딸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 사람, 참된 사람이네.’
그러던 순간이었다.
척!
그녀가 대뜸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
인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손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세상 착해 보이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이렇게 우연히라도 뵙게 돼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마인구 선수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예?”
“아, 제 소개가 늦었죠? 마케팅 담당관 강이나라고 해요. 오늘 계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한강 FC의 승격을 위해 힘 써주시길...! 헤헷.”
딸은 코이뚜 대신 두 팔 벌려 외쳤다.
“승겨어어억!”
이어 꼬옥 양 머리를 전보다 억세게 쥐었다.
“마인구우우, 파이띠이잉!”
순간 인구는 생소하고도 기분 좋은 감정이 밀려듦을 느꼈다.
* * *
오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선수 영입이 발표됐다.
[한강 FC! 28세 마인구 영입!]
영입 주명은 <자유 선발>.
신인이긴 하나 어린 선수도 아니었고, 아마추어에서 대뜸 프로로 전향한 케이스였기에 해당 주명이 붙었다.
최근 개설한 한강 너튜브 채널에도 인구의 영입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일부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돈들어손내놔> : 헐 내가 아는 그 마인구 맞음?
- <갓루니> : 얼마 전에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너튜브에서 봤어. 문방구 게임기 앞에서 꼬마들 상대로 양학하던데 ;;;
ㄴ <로날두는팍이부러워> : 와. 마인구? 얘 걔 아니야? 옛날 U17세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서 뛰던 반 다이크 상태로 개 탈탈 털어버린 애?
ㄴ <칼있으마> : 지금 반 다이크는 리버풀로 이적했고, 인구는..., 크흠 ㅎ;;
당연하게도 상당수는 우려와 의문을 표했다.
- <답답하면니들이뛰던지> : 대체 얘를 왜 영입한 건데?
- <꾸레꺼져> : 허어. 그냥 아주 막장이구나, 막장이야. 구단 운영을 왜 이 모양으로 하는 건지...?
- <조기 축구인생 20년차> : 나 이제 한강 FC 팬 안해. 답답해서 탈퇴하련다!
- <망경동매시> : 이웃집 목동FC는 스페인 3부 리그 베스트 11에 든 선수 영입했던데. 우린 한물가다 못해 일반인 된 마인구씨를 영입했네요?
ㄴ <의정부뚝배기> : 일반인도 아님...;; 저 몸뚱이 봐라. 유니폼이 꽉 끼네.
팬들의 강한 부정은 그간 한강 FC의 소극적인 이적 정책의 영향이 한몫했다.
한강 FC는 주전급을 내보내고 다시금 주전급으로 채우는 데 있어 늘 어려움을 겪어왔으니까.
무엇보다 구단주가 돈을 쓰지 않으니만큼 팬들로선 응어리가 지다 못해 질린 것이다.
* * *
다음 날.
K리그는 기타 유럽리그와 달리 선수단 규모가 매우 큰 편에 속했다.
“유럽이야 평균 25인으로 구성된다지만. 여긴 아니지.”
“압니다, 알아요.”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한강 FC의 테크니컬 센터.
낡은 센터엔 두 사람만이 자리해 있었다.
인구는 한강 FC 트레이닝복 차림새로 플랭크에 한창이었다.
소싯적엔 1시간도 어렵지 않게 버텨냈는데 몸이 무거워선지 10분도 버거웠다.
‘그땐 힘든 것보단 귀찮아서 그만하는 수준이었는데...,’
바로 앞 매트엔 박동일 감독이 걸터앉아 말을 이어나갔다.
“당장 우리 한강 FC만 해도 선수만 60명이다, 이놈아. 이것도 작은 거야.”
“압니다, 안다고요.”
“저기 저 목동 FC는 선수만 99명이라고 하더라고. 미친놈들. 돈 지랄을 아주 그냥..., 후! 오지게 부럽네.”
인구도 K리그에 유독 선수 인원이 많은 이유를 잘 알았다.
이 리그엔 R리그란 게 존재했으니까.
즉, 2군 리그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치를 증명하긴 커녕 술만 퍼마셨던 인구도 원래라면 그곳으로 향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는 쓴 것을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R리그에서 뛰는 것만으로 기적인 거지.’
하지만 동일은 직접 그를 1군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뚝, 뚝!
이마를 타고 굵직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인구는 두 동공을 희번득하게 들어 한가롭기 그지없는 동일을 바라봤다.
“아니, 후우! 근데 언제까지 합니까, 이거?”
“쓰러질 때까지 인마. 그러니까, 버텨.”
“아, 예.”
계약 직후 다음날부터라도 곧장 선수단에 합류할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동일이 우선 1대1 훈련을 진행케 했으니까.
이유야 뻔했다.
‘지금 나 쪽팔리지 말라고 이러는 거지?’
인구는 속으로 푸흣 하니 웃었다.
박동일은 겉으론 사나워 보여도 은근 무심한 척 챙겨주는 나름, 따스함이 뭔지 아는 남자였다.
그의 직접 지도를 받은 건 오래 전, 고작 한 달 남짓이었느나 인구는 그전부터 동일과 가까이 지냈었고 말이다.
‘중딩때부터 날 오지게도 꼬드겼잖아.’
허구한 날 찾아와서는 떡볶이도 사주고 순대도 사줬다.
제육 덮밥도 사주고 같이 사우나도 가고 말이다.
'그렇게 설득해놓곤 막상 향하니 한 달쯤 돼서 좋은 제안이 왔다며 슝 하고 가버렸지. 이 인간...!'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까진 아니어도 그 당시 인구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인구는 현재 동일의 결정을 존중했다. 오히려 감사했다.
‘지금 상태로 관중들에게 모습을 보였다간..., 백이면 백 욕먹을 게 뻔해. 배불러서 밥도 안 넘어갈 만큼.’
그로선 잘 먹을 자신이 있었지만 욕먹는 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양 눈썹이 미간으로 팍 모였다.
'우리 딸이 울걸.'
딸이 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쓰라렸다.
그러니 최대한 뛸 수 있는 신체를 만든 뒤 그라운드를 밟는 게 최선이었다.
‘차선도 차악도 안 된다.’
동일이 굳이 선수단 규모를 강조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당장 뛸 수 없는 거 때문에 상심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잖아? 나 참, 이 양반 나이 먹더니 쓸데없이 더 너그러워지셨네.’
인구는 팔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픽하니 미소지었다.
‘염병, 그만큼 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도 있을 테고.’
자그마치 10년. 10년 동안 술 퍼마시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몸을 망가뜨렸다.
그렇게 엉망이 된 모습으로 이 남자에게 부탁했고 말이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솔직한 말로 자신이 박동일의 입장이었다면 한치 고민도 없이 쫒아냈을 거였다.
그런 만큼, 선뜻 내민 손을 잡아준 동일이 너무나 고마웠다.
‘거부했으면 미친 척하고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괴롭히려고 했더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서 참 다행이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현재보다 더 나아진 몸뚱이가 됐을 때, K리그2에서도 자신이 진정 먹힐지 안 먹힐지에 관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플랭크에 이어 기타 무산소로 온몸을 조져버린 인구는 땀으로 절어진 채 센터 가운데 떡하니 뻗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센터 문을 열고 발을 들였다.
또각, 또각, 또각.
인구는 초점 없는 눈으로 발자국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끼이익, 고개만 돌렸다.
“...”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오피스룩에, 로우테일로 내려 묶은 머리 끝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볍게 찰랑거리는 게 보였다.
어느덧 두 걸음 앞에 멈춰선 그녀는 예의 미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1시간 뒤에 입단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요. 기자님은 단 두 분만 취재 구역에 오시니까 너무 부담은 안 가지셔도 될 것 같아요.”
전날 보았던 강이나 마케팅 담당관이었다.
새삼, 전날 느꼈던 생소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나, 정말 축구 선수 됐네...?’
< 013. 아빠의 도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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