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4화 (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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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4. 아빠의 도전 (3) >

아빠, 축구 한다

14화 아빠의 도전 (3)

k리그2의 인기도는 크게 떨어지는 편이었다.

관중이라고 해봤자 평균 700명 이상을 넘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입단 인터뷰엔 많은 기자 역시 참석하지 않는다.

하물며 나이 먹은 신인이라면 더욱이.

그럼에도 기자 두 명이 공동취재구역에 발을 들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한강 fc가 세미프로 경력도 없는 선수를 영입했다라..., 확실히 시선 끌기용으로는 제격이네요.”

MB 매체에서 나온 기자, 김기범은 금연 껌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암만 한강 FC가 몇 시즌째 2부 리그에서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할지라도 프로 리그.

“그런 팀이 프로 선수도 아닌 검증 안 된 늦깎이 새내기를 영입한다라...”

또 다른 이유는 그자가 다름 아닌 마인구라는 것이다.

“복학생도 안 되는 경력이네.”

옆 기자석에 삐딱하니 앉아있던 30대 후반의 이창현 기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덧붙였다.

“그래도 호기심이 동하긴 하네요. 한때엔 한국에서 제일 기대되는 유망주였잖아요.”

기범의 설렘이 묻은 발언에 창현은 씨익 웃으며 거들었다.

“확실히 그래. 나도 그 세대거든. 청대 시절에 마인구는..., 그냥 우리나라를 빛낼 훌륭한 미래로 보였으니까.”

“전 마인구가 성인이 되기 전에 유럽 무대 진출한다고 친구들이랑 내기하고 다녔었어요. 그렇게 5만 원 꼴았죠.”

하지만 막상 회견장에 발을 들인 인구를 본 두 사람은 실망한 기색을 비쳤다.

‘몸뚱이가...’

‘썩혔네, 썩혔어...!’

*       *       *

인구는 텅텅 빈 기자회견장에 자리했다.

언제 실망한 기색을 비쳤냐는 듯 두 기자들은 표정을 굳히곤 질문을 이어갔다.

“환영합니다, 마인구 선수. 한강 FC에 입단하게 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설레고, 기쁩니다. 한강 FC라는 위대한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고요.”

형식적인 질의응답 시간은 약 5분가량 이어졌다.

그러다 말고 이창현 기자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마인구 선수. 10년 전 이후로 축구를 관두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 뒤로는 무얼 하고 지내셨나요?”

“일용직을 전전했습니다.”

“아, 하...?”

뜻밖의 대답에 이창현은 입을 벙긋거렸다. 곧장 김기범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럼..., 10년 동안은 축구를 멀리한 겁니까? 아니면 조기 축구나 뭐..., 아마추어 리그에서나 뛰고 있었다던지요.”

은근 두 기자는 그랬으리라 추론하고 있었다.

그러한 행적마저 없다면 한강 FC가 영입할 리 만무하니까.

허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인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10년간은 아예 축구를 멀리하디시피 살았습니다.”

창현은 이제 황당하니 물었다.

“그럼..., 마인구 선수. 구단이 무얼 보고 선수 본인을 영입했다고 보십니까?”

입단 기자회견이 청문회로 변질된 순간이었다. 인구가 본 기자들은 표정을 감추지도 못했다.

당혹, 혼란함에 자신을 김기범이라 소개한 기자는 한 손으로 얼굴을 더듬더듬 문대기까지.

하지만 인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뭐긴 뭐겠습니까. 제 가치죠.”

“가치요?”

“네. 구단은 저의 비전을 보고 영입한 겁니다.”

“이 인터뷰 내용이 팬들에게 전해지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괜찮으십니까?”

“상관없습니다. 실력으로 증명하면 그만이니까요.”

실력이 검증됐다면 당돌한 발언이라 여기겠으나, 지금 발언은 거만함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터였다.

‘눈살 찡그리는 것 봐라.’

이창현을 힐끗거린 인구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욕 퍼레이드는 영입 소식이 전해진 순간부터 시작됐다.

다행이라면 딸이 아직 너튜브나 기타 인터넷을 활용할 줄 모른다는 거다.

‘또 2부 리그 소식을 굳이 찾아보지 않는 한은..., 뭐.’

그런 만큼 인구는 한결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문득, 이창현 기자는 으음, 짧게 신음을 터뜨린 후 이런 질문을 건넸다.

“마인구 선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구단이 비전을 보고 영입했다고 한 만큼..., K리그2에서 본인의 기량이 먹히리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대목도 잊지 않았다.

“10년간이나 쉬셨다면서요.”

낡다 못해 녹슨 몸뚱이로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인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넌지시 폭탄을 던졌다.

“아마도, 두 가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가지요?”

“예, 팬들이랑 제가 서로 주먹 감자를 들먹이며 설전을 벌이거나. 혹은 팬들이 나를 찬양하거나.”

인터뷰 소식은 곧장 구단 홈페이지 및 너튜브 채널을 통해 업로드되었다.

팬들의 축약된 반응은 아주 단순했다.

- <한강 서포터즈 일동> :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       *       *

입단 인터뷰 후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물론 선수단 훈련이 아닌 개인 훈련이었다.

“자자, 계획한 훈련 플랜에 대해 말해줄게.”

동일이 1군 선수단을 지휘하는 사이, 인구 전담으론 수석코치인 동룡이 붙었다.

인구는 필드에 양반다리를 한 채 짐짓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지구력 능력 향상을 위해 무산소, 유산소 혼합 훈련을 당장 오늘부터 실시할 예정이야.”

동룡은 설명을 덧댔다.

시작은 가벼운 러닝, 이어 10초 간격 12번의 스프린트.

‘뒈지겠는데?’

초장부터 인구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스프린트를 한 게 언제적이더라...’

이젠 기억에도 없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우리 마 인구 선수의 현 저질스러운 체력을 고려해 총 30분간의 러닝 중 스프린트가 진행되는 시간은 3분 30초가 다니까. 나머지 26분 30초는 러닝을 통한 체력 회복이고.”

“... 놀리는 겁니까?”

“아아, 내가 근력 훈련도 병행한다고 말했나? 근력 훈련 방식도 두 가지로 채택했어. 간헐적, 그리고 연속적. 설정한 서킷은 앞으로 우리 마 선수의 녹슬어버린 대퇴근과 굳어버린 골반, 허벅지처럼 부풀어 오른 종아리를 다듬어줄 거야.”

“...잠깐만 동 코치.”

갑자기 마인구가 손을 들었다. 도중에 말을 끊어버린 인구에 동룡은 미간을 좁혔다.

“왜? 질문 있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거, 어쨌거나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따라갈게요.”

“...?”

그새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인구가 커다랗고도 투박한 손을 내밀었다.

동룡은 흠칫했다가 말고 인구의 성나 보이는 얼굴과 손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오네.’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일었다.

‘진짜, 2부 리그에서 먹힐만한 재능일까?’

당장 몸뚱이만 본다면 결단코 불가능해 보였다.

나이도 무시할 수가 없다.

‘28살이잖아.’

선수라면 한창 전성기 나이이나, 인구는 그렇지 않았다.

‘암만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건 과거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의 결정에 동룡은 처음으로 이런 불편한 의구심을 품었었다.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닌지도...’

그래도 성격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괴팍한 것 같으면서도 호탕하네.’

곧, 동룡은 느릿하게 그 손을 맞잡았다.

“쉽진 않을 거야.”

마음 같아선 빡센 훈련에 그가 지쳐 스스로 나가떨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       *

훈련장에서의 첫 시작은 간단했다.

센터에서 동룡과 함께 유산소, 무산소 운동으로 온몸을 조졌으니까.

처음엔 얼마 못 가 주저앉았다.

“헤엑! 헤엑! 동 코치. 당신 나한테 원한 있는 거 아니죠?”

“어찌 알았어? 오늘 반쯤 죽일 생각인데. 얼른 안 일어나? 고작 스프린트로 주저않게?”

“염병하네.”

셋 째 날부터는 서킷 훈련에 집중했다.

센터 내 일정 구역을 스프린트 코스로 지정.

“저기는 속보 후에 스프린트, 그리고 슈팅이야. 마인구. 알아들었지?”

“후욱, 후욱!”

“어서! 어서! 뛰어! 멈추지 말고!”

타앙-!

체력이 떨어진 만큼 발등으로 힘껏 찬 공 역시 정확성이 떨어져 골문을 크게 비켜나갔다.

“뭐하나~ 마 선수우! 멈칫거리지 말고 계속 움직이라니까!”

동룡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점프대를 가리켰다.

인구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갔다.

2주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동룡은 약 일주일 전부터 R리그에서 뛰는 선수 몇몇을 훈련에 참여시켰다.

시작은 20M 러닝 후 슈팅.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우측 코너플래그로 복귀한다.

이어 앞에 둔 공을 활용해 개인기 및 리프팅을 구사.

직후엔 곧장 반대편 골대까지 질주였다.

바로 다음은 참여한 R리그 선수들과 패스 플레이를 짧게 주고받으며 다시 스프린트.

반대편으로 이동해서는 콘 2개를 골대 삼아 1대1 미니 게임을 실시.

그리고 2주 사이, 동룡은 자주 놀라는 버릇이 생겼다.

쓰윽-!

인구가 R리그 수비수를 앞에 두고 천천히 공을 몰고 접근했다가 말고 돌연 오른발 인사이드 스텝으로 끌었다.

접근한 상대 수비수는 그런 동작이 페이크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다가가는 찰나 인구가 뒷공간으로 볼을 흘려보내리라는 것을 안 거다.

그렇듯 수비수는 자리에서 벽이 되기를 택했다.

하지만 그다음.

쓰윽!

“으헝?”

수비수에게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안으로 끌었던 공을 재차 인구가 오른발 끝으로 공의 옆면을 쓸듯 지나쳐 아웃스탭으로 방향을 급히 전환한 것이다.

순간 수비수는 길게 바깥으로 차는 건가 싶어 뒷발을 뒤로 쑥 빼버렸다.

컷트로 걷어낼 심산으로.

하지만 이는 실책이었다.

툭!

인구의 오른발이 아웃스탭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동시에 좌측으로 디딘 왼발이 갑자기 튀어나와 발굽으로 공을 툭! 차버렸다.

쏙!

순식간에 공이 수비수의 열린 가랑이 사이를 통과했다.

넛메그였다.

“...!”

동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을 통과시켰다고 해도 선수가 수비수의 배후를 파고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늘.

슈욱, 슈욱-!

인구의 왼쪽 어깨가 좌측으로 크게 기울었다가 말고 갑자기 우측 어깨가 아래로 쑥! 떨어졌다. 왼쪽 어깨에 따라 상체를 기울였던 수비수는 느닷없는 페인트에 휘청거렸다.

“휘루륵!”

동룡은 그만 너무 놀라 입에 문 호루라기를 잘못 불었다.

채 기겁한 수비수가 깨진 밸런스를 바로잡기도 전, 인구가 어깨 페인팅으로 밸런스를 한 차례 더 깨뜨렸으니까.

슈융!

직후 배후 공간으로 불시에 빠져나가기까지...!

타앙!

인구는 콘 사이의 골대로 어렵지 않게 인프런트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예에에!”

득점에 성공한 인구는 2주 전보다 눈에 띄게 굴곡져진 한 팔을 휘두르며 짧게 포효했다.

“...”

동룡은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뭔...’

첫날 훈련장에서 보여준 인구의 플레이는 실망 그 자체였다.

굼떠도 너무 굼떴으니까.

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놀라움이 갈수록 잦아졌다.

하루, 아니 몇 시간 단위로 녀석은 성장하는 것 같았으니까.

'스펀지도 아니고...'

가르쳐주는 족족 받아들인다. 기타 질문도 없었다.

‘일주일 전엔 R리그 수비수들 상대로도 무지 버거워했는데···.’

물론 여전히 몸뚱이가 무겁긴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갑자기 급발진하는 모션이란 게 있었다.

‘마치..., 삐꺽, 삐꺽거리는 기계가 돌연 정상작동하는 느낌이랄까.’

조금 전에도 그랬다. 넛메그의 동작 전까지 삐걱거렸다가 순간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 것마냥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 거다.

상대 수비수는 그대로 얼을 타버렸고.

이러한 모션 횟수는 훈련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자주 연출했다.

동룡은 벙찐 얼굴로 생각했다.

‘이건 이것대로...,’

상대 선수들에게 있어 위험을 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원래 인구는 개막전 경기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이는 박동일의 지침이었다.

최우선은 체력 증진을 비롯해 적정선의 개인 기량을 끌어올리는 거였으니까.

바로 다음은 선수단에 본격적으로 합류해 호흡을 맞추는 일.

허나,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랬다.

“개막 경기에 얼굴 좀 비추게 합시다. 한 20분 정도? 교체로라도 말이에요.”

“잘못 들었습니다?”

“팬들이 원하는 걸 내놓자고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구.”

동일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지금 강경민 구단주는 마인구를 개막전 경기에 곧바로 투입시키자고 말하고 있었다.

감독의 권한을 손쉽게 넘어서는 그 행위에 욱했으나 그보단 마인구가 염려됐다.

“마인구, 그놈은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여태 개별 훈련만 해온지라.”

“누가 몰라요?”

“예?”

“아이~ 압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마인구 선수한테도 실전 경험 쌓게 하면서 더 빨리 적응케 하자는 거지. 그게 더 좋지 않아요?”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이는 선수단 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동일이 마인구의 투입을 조심스레 여기는 것 중 두 번째는 바로 선수단이었다.

이 축구판은 약육강식의 세계였으며 경쟁 사회의 연속이었다.

또 집단사회.

팀 동료 입장에선 갑자기 굴러온 일반인을 반길 리가 만무했다.

이는 자칫 실력을 떠나 노골적인 배척으로 이어질 수가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수단이 마인구를 받아들일 시간이요.”

그렇게 시간을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을 터였다.

이건 마인구 스스로 해결할 문제였고 말이다.

허나 강경민은 들어먹기는커녕 돌연 꽉 쥔 주먹을 테이블 위에 내리쳤다.

쿵!

“아 참! 우리 박 감독님. 잘 아시면서 그래?”

“뭘 말입니까?”

“고작 20분이에요. 내가 뭐 더 바라나? 선발로 투입도 아니고 교체잖아. 그게 어때서 그래요? 왜? 투입했다가 경기 지면 내가 감독님 탓이라도 할까 봐? 안 그래요~ 알잖아? 나 큰 거 안 바래. 강등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승경쟁? 승격 경쟁? 퍽이나 하겠다.”

“...”

“상금도 쥐꼬리만 하잖아요. 그러니 즐기면서 해요~ 즐기면서.”

언제 목청을 높였냐는 듯 경민은 입가에 재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팬들이 광대를 원하잖아. 그럼 내보내 줘야지. 안 그래요? 처음에 우리 박 감독도 동의한 부분이잖아?”

< 014. 아빠의 도전 (3)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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