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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7. 아빠의 클라스 (1) >
아빠, 축구 한다
17화 아빠의 클라스 (1)
4-3-3 포메이션 내 중앙 미드필더에서 뛰고 있는 올해 23살의 석현기는 당혹스러웠다.
‘아니, 조금 전에 그 사람 맞아?’
툭, 툭!
볼을 툭툭 치고 가면서도 전방에 수비수를 등지고 있는 남자를 주시했다.
사납게 생긴 마인구는 아랫배께에 붙인 검지 끝으로 본인의 오른발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반전 20분 전만 해도 마인구는 패스와 동시에 턴 오버를 남발했었다.
정확히, 20분 전만 하더라도 말이다.
툭!
현기는 곧장 그를 향해 땅볼 패스를 찔렀다.
툭!
인구가 어렵지 않게 발바닥 트래핑으로 공을 멈춰 세웠다.
퍼억, 퍼억!
뒤쪽에서 광분한 것마냥 수비수가 압박에 또 압박을 가했다.
경기 초반엔 저 압박 한 방에 인구는 볼품없게 나가떨어졌다.
허나 지금은,
툭, 툭, 툭!
엉덩이를 뒤로 쏙 뺀 채 앞으로 휘청거리면서도 버텨냈다. 잔발 터치로 볼을 끝까지 소유해냈고 말이다.
툭!
이어 버티는 동안 좌측 깊숙이 올라온 레프트백이자 올해 24살인 정기태에게 오른발 아웃사이드 패스를 연결.
스윽!
동시에 인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 뛰었다.
직전, 뒤쪽에 서 있던 현기는 똑똑히 보았다.
뒤늦게 반응한 수비수가 마저 쫓고자 필드를 박차는 순간, 인구가 돌연 몸을 뒤로 홱 내뺀 게.
퍽!
“으윽!”
격한 부딪침에 수비수가 쫓기는커녕 뒤로 휘청이며 밀려났다.
반대로 인구는 수비수를 발판 삼아 더욱 빠르게 에어리어로 쇄도해 들었다.
타앙!
레프트백, 기태가 재차 왼발 러닝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투웅!
박스 안에 발을 들인 인구는 골키퍼가 튀어나오기도 전 강력한 스탠딩 헤더를 구사했다.
굴절된 공이 파 포스트 아래 구석으로 쏙 들어갔다.
철렁!
인구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짝, 짝...!
석현기는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청대 시절, 인구의 재능을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바로 스피드였다.
그다음은 사이클.
이는 축구전문가들도 높게 평하는 능력 중 하나였다.
단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말 그대로 천재의 영역이었으니까.
혹자는 말했다.
[마인구 선수는..., 마치 필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플레이를 펼칩니다. 더 나아가서..., 상황을 분석하고 보다 나은 해결법을 도출해버리죠. 그것도 필드 안에서 말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세월이 지나 다소 녹슬긴 했어도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경기를 소화하면 소화할수록 점점 더 시야가 넓혀지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 비해선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그렇듯 어느덧 인구는 최전방의 마에스트로가 되어 있었다.
“석! 왼쪽으로 올라와!”
“야, 꺽다리! 넌 올라오지 말고 그 위치에서 대기!”
“자자! 여러분! 라인 간격 조정 좀 합시다! 지금 많이 벌어졌어요! 가랑이 벌리고 다니면 민폐에요, 민폐!”
미드필더 석현기는 인구의 말에 따라 올라왔다가 말고 센터서클 아래로 빠르게 물러섰다.
그 외침엔 이상하게 따라야 할 것 같은 응집력이란 게 느껴졌다.
경기 초반엔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에 못 이겨 따르는 게 대부분이었다.
염동규의 지시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그 이유가 명확히 달라졌다.
‘진짜..., 필드를 다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그도 그럴 게 인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때면 더욱 쉽게 공을 연결받고 빌드업 전개가 가능해졌다.
‘우리 수비수랑 간격이 떨어질락 하면 즉시 포착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 같기도...!’
즉, 지시대로 움직이면 확실히 수월해지니 자연스레 따르는 것이다.
그건 지금에서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처음엔 우연인가도 싶었다. 스트라이커가 뒤쪽 간격까지 신경 쓰기는 어려운 법 아니던가. 더 나아가선 상대 공격에 맞는 대응법까지 내세우는 건 말이 안 됐다.
허나 아니었다.
“야, 꺽다리. 간격 유지! 공간 좁혀서 저 쥐처럼 생긴 애 침투로 막아! 저놈 왼발 조심하고! 먼저 달려들지 말고 간격 유지해서 지역 방어로 압박만 해!”
쥐처럼 생긴 애는 A팀의 ‘한돌’이었다.
올해 25세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그는 팀 내에서 가장 빠른 발을 지녔다.
볼 간수 능력도 좋아 측면에 치우쳐서 중앙으로 볼을 몰고 가는 걸 좋아라하는.
직후엔 스리슬쩍 옆으로 빠진 타겟터, 염동규에게 키패스를 제공하였고 말이다.
‘지난 시즌에도 두 사람 간의 콤비는 최고였어...!’
그러나 그는 어느 시점부터 갈피를 잃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툭, 탓!
툭, 탓!
볼이 연결돼도 곧장 백패스로 물리기 일쑤였던 거다.
문득 석현기는 뒷목 털이 쭈뼛 섰다.
가만 보니..., 저 멀리 있는 인구의 조율에 의해 염동규와 한돌의 연결고리가 아예 끊어진 것 같았으니까.
* * *
인구의 두 동공은 연신 좌우 사방을 훑었다.
저 먼 뒤쪽 골라인까지도.
‘A팀 공격의 키는 한돌이라는 놈과 염동규다.’
이는 전반 초반부터 파악한 부분이었다.
한돌은 볼만 잡으면 측면에서 인플레이를 펼쳤다.
‘볼이 없을 땐 중앙에 머무르다가, 3선에서 2선으로 빌드업 되는 과정이 오면 즉시 측면으로 빠진다.’
인구는 그 지점부터 컷트를 쳐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수 간의 간격을 한층 더 좁히는 지시를 내렸다.
소위 위, 아래에서 쌈 싸 먹는 식으로 공간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염동규 옆에는 맨 투 맨 수비수 한 명을 붙여두고.’
그것만으로 두 사람은 더는 원 투 패스를 주고받을 수 없었다.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에 동규는 한돌이 있는 근처까지 내려오는 플레이를 펼쳤고 말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인구의 실시간 지령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이는 본인의 몸뚱이가 이전만 못한 이유가 가장 컸다.
‘광범위 커버는 고사하고, 박스 안팎에서 움직이는 게 최대야.’
그건 압박 강도가 강한 팀을 상대로는 더할 터였다.
‘염병, 체력은 갈려나갈 테고.’
그렇듯 인구는 팀원인 손, 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속도로 상대를 제칠 수 없다면 옆 동료를 위쪽으로 올려 그 공간으로 패스하면 그만이었다.
‘시선이 잠깐 쏠린 사이에 나는 배후를 파고들면 또 그만.’
그러다 또 막히면 반대편 녀석을 올리면 된다.
‘통하지 않으면 백들을 아래위로 들썩이게 만들어서 시선 혼동을 주고 말이야.’
다행히 좌우측 윙백들은 질 좋은 러닝 크로스를 보유했다.
고로 상대는 신경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말고 인구는 히죽였다.
“흐헝.”
자기도 모르게 빙구 미소도 흘렸다.
찰나였지만 시선은 벤치 쪽에 둔 카메라에 향했다.
경기 시작 전 인구가 직접 전망 좋은 곳에다 설치한 거였다.
오직, 세나에게 자랑하고자.
‘하이라이트만 편집해서 보여줘야지, 흐흐흥’
웅장한 BGM도 넣을 생각이었다.
* * *
경기가 종료되었다.
멀찍이 서서 구경하던 박동일의 입가엔 이내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녀석...”
진정 감격스러웠다.
청대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플레이였다.
어린 시절 인구가 필드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면 성년이 된 인구는 박스 부근에서만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한순간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동료를 적극적으로도 활용하고 말이야.’
그 모습은, 장신 타켓터의 느낌이었다.
직접 선봉장이 되어 공격하기보다는 동료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로 난제를 해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론 두 골을 몰아치기까지...’
문득 동일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너 인마, 몸뚱아리가 이전만 못하니 샛길로 빠지는 걸 택했냐?'
그리 생각해도 천재인 건 분명했다.
'아니, 천재니까 저렇게라도 할 수 있는 건가?'
* * *
경기가 끝나고 10분이란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니 형!”
“놔!”
“아니 잠깐만 형! 말로...!”
“놔라고!”
후배의 만류에도 염동규는 씩씩대며 팔을 휘둘러 그 손길을 뿌리쳤다.
그로선 도저히 지금 상황이 납득되지가 않았다.
[네가 말하는 일반인인 나랑 너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경기가 끝난 직후 인구가 피식 웃으며 가벼이 던진 말이었다.
염동규는 노골적인 비아냥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은 동규의 자존심을 건들기에 충분했다.
‘일반인 따위...!’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으나 더는 이어갈 수가 없었다.
양 팀의 경기 스코어는 2 : 2.
동규가 1골을 겨우 성공시킨 반면에 인구는 멀티 골을 작렬해냈다.
그것도 이제 막 합류한 선수가 말이다.
이건, 자신이 명백하게 진 거였다.
‘말도 안 돼...!’
머릿속은 복잡스러웠다.
경기 초반만 해도 마인구의 플레이는 굼벵이처럼 굼떴다.
‘수비수 한 명조차 젖히지 못했잖아···!’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녀석은 일변했다.
진심,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녀석은 뒤쪽 디펜시브 라인에 까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지시를 뻗쳤다.
[염동규 막아아!]
[걔 왼발 사용 못 해. 그러니까 오른발만 마크해! 드리블 돌파도 안 되니까 그냥 밀어붙여!]
으득!
이를 악물었다.
반박하고 싶었으나 사실이었다.
염동규는 이제는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추세인 전형적인 타켓터였다.
그것도 드리블 수준이 낮고 오른발에 완전히 치우친.
실제로 그 발언 직후 동규는 손쉽게 봉쇄당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더는 녀석을 일반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일반인은..., 아니야.’
오늘 보여준 인구의 플레이만 본다면..., 충분히 2부에서도 통할 것 같았다.
‘거짓말한 건가?’
10년 동안이나 축구를 멀리했다고 들었다. 허나 그 폼은 절대 10년 동안 축구를 하지 않은 자의 폼이 아니었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진짜 천재인 거다.
‘겨우 한 달 훈련에서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거잖아...!’
생각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이 말만큼은 하고 싶었다.
‘너네 팀에서 뛰던 선수들 거의 다 1군이었어! 반면에 내 팀에 속한 애들 중 7할은 2군이었고!’
그러니 그깟 한 경기 좀 잘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해지지 말라고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찌질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콰앙-!
결국 동규는 샤워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외쳤다.
“야, 마인구우우우~! 어어억...?! 컥!”
외침과 동시에 그는 누군가 당수로 목젖을 내리친 것 같은 통증을 받았다.
두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들썩였다.
“어, 어억...!?”
이 순간, 그는 그만 충격적인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말하는 것조차 까마득히 잊어먹었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머리를 감고 있던 인구는 한쪽 눈만 슬쩍 떠 몸을 돌렸다.
“응, 왜? 뭐 아직 할 말이 남았어?”
“....!?”
동규는 뚜렷이 보고야 말았다.
버젓이 드러난 어두운 빛을 사방에 뿌려대는 어마어마한 흑염룡을...! 곧 그 입에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오오오오오옭....!?”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혼란함에 혼란함이 더해져 두 손은 휙휙! 허우적거리기까지.
염동규, 그 역시 샤워장에선 항상 당당한 남자 중 한 명이었으나...,
‘규, 규격 외다...!’
우연찮게 그가 본 인구의 것은 한국에서 태어날 수 없는 변종의 것이었다.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딱 한 발.
딱 한 발만 더 접근한다면 진짜 지는 거라고....!
쿵!
결국 동규는 문을 닫고 급히 자리를 피했다.
철푸덕!
직후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은 동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씨발...”
한순간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결코, 그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 017. 아빠의 클라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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