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36화 (36/200)

=======================================

< 036. 멋진 아빠란 (13)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6화 멋진 아빠란 (13)

리그 21라운드.

수원 시티즌의 수비수들은 한 선수가 공을 잡는 순간 몸을 떨었다.

‘온다!’

센터백 영식은 두 눈을 부릅떴다.

불과 몇 걸음 거리. 190cm에 달하는 스트라이커, 마인구가 등졌다가 말고 이쪽을 향해 돌아섰으니까.

뒤쪽, 수원의 골키퍼 홍영철은 인구가 공을 소유한 것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막아아아! 압박해서 막아아아아!”

“아니 달려들어서 태클로라도...!”

“그냥 넘어뜨려어!”

그 표정은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허나, 그건 수원의 수비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 하나 쉬이 접근하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이익...!”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영식은 등 떠밀리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수윽!

한 걸음 차까지 간격을 좁혔을 땐 힘차게 오른발을 내질렀다.

얼굴색은 대번에 핼쑥해졌다.

흔들리는 동공엔 보였다.

스윽!

인구가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툭! 차내 제 태클을 기막힌 타이밍에 피해내는 것을.

“으욱!”

영식은 이를 악물며 냅다 좌측으로 몸을 던졌다.

공은 보내도 자신의 배후를 파고드는 인구까지는 보내기 싫었다.

그러나 그 행위마저 그저 ‘난 최선을 다했다!’ 라는 보여주기 식에 지나지 않았다.

퍼억!

“커헛!?”

영식은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몸끼리 부딪치는 순간 그의 상체는 강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양 반대 방향으로 크게 휘청이며 밀려났다.

잠깐, 상체가 들린 사이에 인구는 가차 없이 열린 공간을 파고 들었고 말이다.

“넘어뜨려어어어!”

수원의 골키퍼는 상체를 한껏 웅크린 채 이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타아아앙!

인구는 우측 에어리어에 발을 들인 그 순간에 왼발 인스텝킥을 구사했다.

촤라악!

[고오오오오오오올! 수원의 골키퍼가 제자리에 서 있다가 그대로 추가 실점을 허용하네요!]

[또 다시 해트트릭을 작성한 마인구우우우!]

[수원을 상대로 4 : 1로 앞서나가는 한가아아앙!]

[이로써 21경기 45골 20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공격포인트를 작성한 마인구우! 와~ k리그2에선 적수가 없습니다아아!]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

어느덧 한강의 홈구장엔 약 6천여 명에 달하는 관중이 입장해 있었다. 그런 그들은 하나같이 희열에 찬 얼굴로 열광했다.

마인구를 위해 직접 제작한 플래카드를 흔드는 관중도 여럿 보였다.

[멋진 아빠 마인구우우!]

[한강의 아빠 마인구우우!]

해설진은 흥분에 겨워 덧붙였다.

[리그 21라운드까지 치러진 현재! 한강 fc는 사실상 승격이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경기를 이대로 마무리 짓는다면..., 2위 팀과의 승점이 자그마치 20점이나 벌어지게 되는 거니까요!]

의문도 표했다.

[왜! 도대체 한강이 아직까지 마인구와의 재계약을 치르지 않는 걸까요?]

[이미 대다수 k리그1 팀이 이적 제안을 해왔는데 말입니다!]

*       *       *

이제 마인구와의 계약 기간은 고작해야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엔 보스만 룰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인구는 구단의 권한을 떠나 자유롭게 이적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한강 서포터즈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 <마인구가짱> : 왜, 왜 재계약 안 하는 건데?

- <한반도스키> : 한강 구단주가 진짜 병신임. 나였으면 애초에 계약 당시부터 1년 옵션 조항 붙였겠다.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잖아.

- <나는늘배고파> : 내 생각엔..., 마인구 측에서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제시한 금액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ㄴ <전문가> : 일리가 있음. 근데 난 것보다도 그간 구단주가 해온 만행을 보면..., 간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아니다. 어휴! 말을 말아야지.

ㄴ <축구경력1년차> : 간을 봐?

ㄴ <전문가> : ㅇㅇ. 애초에 마인구 매각은 기정사실인 거야. 대신에 제일 비싸게 제시한 구단한테 팔려는 목적인 거지. 아마 뒤에서 오지게 가격 올리고 있을 걸?

- <쩐의전쟁> : 내가 볼 때 한강 돈 없다;;; 마인구 붙들만한 돈이 없는 거야.

ㄴ <강중사> : 돈이 없으면 선수들 판매해서라도 보충해야지! 마인구는 꼭 붙잡아야 하는 선수 아니냐? 내년 k리그1에서라도 경쟁하려면?

- <즐라탄탄> : 개줫같은 한강! 이런 병신같은 운영이라면 승격해도 다이렉트로 강등당하겠네.

*       *       *

경기가 끝난 뒤 박동일 감독의 집무실.

동일은 접객용 소파에 앉아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제법 강직한 턱선에 오똑한 콧날, 생기가 돌기 시작한 눈.

샤워 후 머리를 덜 말렸는지 물기가 있는 머리칼은 올백으로 넘겼다.

겉보기에도 흉악하고도 단단해 보이는 몸뚱이에 동일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짜식...’

눈앞의 남자는 다름 아닌 마인구였다.

불과 6, 7개월 전, 녀석을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웬 맷돼지가 눈앞에 있나 싶었다.

하지만 현재.

녀석의 뱃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구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실제로도 단단하지.’

적어도 k리그2에선 피지컬로 적수가 없었다.

컵대회에서도 인구는 k리그1 소속 팀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였다.

‘지금에선 모든 팀들이 원하잖나.’

마음 같아선 동일은 눈앞의 제자를 붙잡고 싶었다.

‘같이..., k리그1까지 제패하자고 말하고 싶을 만큼.’

동일에게 있어 마인구는 이제 천군만마와 같았다.

어느덧 90분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몸 상태까지 만든 데다, 슈팅 대비 골 순도는 1부, 2부를 통틀어서도 최고였다.

‘상대 지역에 머무르는 것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압박감을 선사하고 말이야.’

만년 꼴등 팀 한강이 압도적 승점 차로 순위 1위를 달리는 것도, 자신의 전술보단 인구의 지분이 아주 컸다.

그래서 욕심이 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뉴캐슬에서 제안이 왔다고?”

“예, 그래서 가려고요.”

“딸은 어떡하고?”

“우리 세나도 영국으로 갈 겁니다. 세나 엄마가 영국으로 발령이 났거든요.”

“그렇구만.”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속한 뉴캐슬이 접촉했다는 사실에 동일은 적잖게 놀랐다. 허나 금세 피식하니 웃었다.

‘놀랄 것도 없지.’

인구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자가 어디 자신뿐이겠는가.

‘구단보다 먼저 선수에게 접촉했다라.’

한강의 강경민 구단주는 아직도 k리그1을 상대로 협상 중인 모양이었다.

‘계약 기간이 짧은 만큼, 뉴캐슬은 선수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로군.’

조금은 걱정이었다.

강경민 구단주는 호락호락한 걸 떠나서...,

‘그 염병할 새끼, 무지 질척대는 놈인데.’

어떡해서든 제값 이상을 받아내려고 발악 아닌 발악을 할 게 뻔했다.

솔직히 말해, 구단주가 강경민 같은 한량만 아니었어도, 동일은 마인구를 설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가라.”

“이렇게 쉽게요?”

“딸도 간다며.”

“예.”

“그럼 가야지. 어쩌겠냐.”

“시즌이 아직 안 끝났는데요?”

오히려 반문하는 인구에 동일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투덜댔다.

“이 기회 놓치면 어쩌려고? 어디 유럽에서의 제안이 흔한 줄 알아? 왜, 득점왕이랑 리그 우승 따놓은 단상인데 도중에 가면 아쉬워서 그래?”

“아무래도..., 뭐. 조금 아쉽기야 하죠.”

인구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가 말고 씨익 웃었다.

“근데 아시잖아요. 제가 그런 기록에 매달리는 성향은 또 아니라는 거. 단지, 조금 걸리네요.”

“뭐가?”

“우리 갱년기 오신 박동일 감독님. 나 없다고 연패하고, 강경민 그 또라이 같은 구단주한테 이리저리 치이고 다닐까 봐.”

푸흣, 하고 동일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염병하고 자빠졌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바보가 아닌 이상은 어떡해서든 승격은 하겠지. 연패를 해도 그건 순전히 내 실력이 문제인 거고. 그런 부분은..., 욕 먹어도 돼. 지금은 네 앞날만 걱정하라고. 뉴캐슬이 강경민 그 양반이 만족할 만한 제안을 해줄지도 모르겠다만.”

인구는 별 개의치 않다는 듯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아아, 그거는 크게 신경 안 씁니다. 만족할 만한 제안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요.”

“...그게 무슨?”

동일은 의문을 채 이어가지 못했다.

“그나저나, 감사합니다.”

“...뭐?”

느닷없는 발언에 동일이 놀란 눈을 끔뻑였다. 어느덧 눈앞의 인구는 새삼 험악한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하고도 따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이 새끼 왜 이래? 갑자기 징글맞게?”

마인구는 어색해하기까지 하는 동일을 세상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절 구제해주셨잖아요. 감독님 아니었으면 현재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아니, 더하게 뺑이쳤을 지도요.”

끝으로 인구는 처음, 그때처럼 테이블에 가감 없이 머리를 박았다.

쿵!

“대가리 박습니다!”

*       *       *

마인구를 영입하고자 k리그1 구단에서 제안해온 평균적인 이적료는 한화 15억이었다.

보스만 룰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경쟁까지 붙었기에 강경민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 25억 이상까진 먹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전북과 울산 등에서 25억 상당의 이적료를 제안해왔고 말이다.

20억 이상은 k리그1에서도 핵심급으로 분류되는 이적료였다.

강경민은 중역의자에 앉아 손톱을 깎다 말고 히죽 웃었다.

‘대개는 핵심 용병 수준이지...!’

당장 25억만 하더라도 역대 k리그1 이적료 순위에서 5위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1위는..., 수원에서 뛰던 올리배라였던가.’

당시 올리배라는 한화 36억 원에 수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놈은 결국은 유럽에서 뛰다가 한국으로 넘어온 케이스잖아.’

반면 마인구는 k리그1의 아래 티어인 k리그2.

만약 이 이적이 성사되면 역대급 잭팟이라 할 수 있었다.

구단주로서도 진귀한 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크흐흣.”

상상만으로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결국은 선수만 동의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마냥 뜻대로 되지 않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장이 방문했고, 그는 찬물을 끼얹었다.

“뉴캐슬?”

사무책상 턱에 발을 걸쳐 마저 발톱을 깎던 강경민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사무책상 앞에 선 단장은 눈치보듯 말을 이어나갔다.

“예. 마인구 선수가, 다른 제안은 다 제쳐두고 뉴캐슬의 제안만 응하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뉴캐슬에서 제안해온 이적료는 얼만데요?”

“한화로 15억 규모입니다.”

“...장난하나?”

강경민은 황당한 웃음을 머금었다.

치켜뜬 눈으로는 애꿎은 단장을 한 번 쏘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그리고 마인구 그 새끼는 자기가 뭔데 멋대로 통보를 하고 지랄을...!”

“저 그게..., 선수가 워낙 강경하게 나와서...,”

“강경하게 나오면 지 좆대로 해도 된대?”

“아니, 그건 아니지만...”

강경민은 한 손을 들어 휙휙 저었다.

“어림없다 하세요. 뉴캐슬이 적어도 25억 이상 제안해오면 응해주겠다고. 거절 사유는..., 이적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입...!”

그는 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덜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마인구가 성큼 발을 들였으니까.

놀란 얼굴의 단장과,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구단주를 본 인구는 곧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그럼 나 이적 안 할 건데? 그냥 뻐틴 기지 뭐. 공짜로 데려가라고.”

“...뭐?”

“우리 강 구단주님.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게 이롭지 않겠어?”

< 036. 멋진 아빠란 (13) > 끝

ⓒ 강로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