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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 멋진 아빠란 (14)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7화 멋진 아빠란 (14)
“너 이 새끼...! 아악!”
흥분에 겨워 외치다 말고 강경민은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발톱을 깎는다는 게 그만 살이 집힌 거다.
“이, 이씨...!”
엄지발가락을 한 손에 꽉 쥐며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는 구단주에, 인구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쏙 집어넣은 채 다가가 멈췄다.
“저번부터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하는데, 반말에 이어서 나도 너한테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해볼까?”
“뭐, 뭐라고?”
“저, 저기 마인구 선수?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그렇잖아요.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생긴 것부터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게 생겨가지고. 솔직히 말해봐. 너, 친구 없지?”
흠칫!
순간 강경민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인구는 그 찰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혀를 쯧쯧 찼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지간히 성격이 개 같아야지. 쯧쯧! 딱 봐도 공감 능력이 떨어져 보이잖아. 자기중심적인 데다가..., 이러니 돈 많다고 누가 붙어있으려 하겠어?”
인구는 어후! 라며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아니, 거기다 좀생이기까지 하잖아?”
“하, 이, 이 새끼가 지금... 누굴 놀리나!”
강경민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뜸 빽 소리쳤다.
“나 친구 있거든-!”
아주 잠깐, 장내엔 적막이 감돌았다.
단장은 입을 벙긋거렸으며 인구는 과하게 억울해하는 경민에 그만 안쓰러운 눈길로 말했다.
“너 이 새끼...., 진짜 친구 없구나?”
예상대로 강경민은 협박했다.
“너 인마! 그렇게 깝죽대다가 벤치 신세만 지는 수가 있어! 어? 알아? 내가 그깟 푼돈을 아까워할 거 같아? 마음만 먹으면 너까짓 녀석 벤치에만 썩히다 내보낼 수 있다고!”
물론 인구는 개소리에 귓구멍을 파며 나직하게 정정해주었다.
“푼돈은 아니지 않나? 아니, 그리고 요리보고 저리 봐도 지금은 내가 갑이잖아. 일전에도 말했을 텐데? 나, 몇 개월 경기 못 뛰는 것쯤 개의치 않는다고.”
“이, 이 새끼가...! 네가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 응? 길거리에서 전전하던 놈 믿고 데려온 게 누군데!”
“아아. 길거리에서 전전하던 건 아니고. 뭐, 받아줘서 고마운 건 맞아. 그 마음은 변함없어.”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인구는 한 손을 휙휙 저어 보이며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15억 정도는 안겨준다잖아. 들어보니까 15억도 한강 역사상 최고 이적료라며? 그런데 뭘 짜구 욕심내려 그래? 선수가 다른 구단은 싫다는데.”
그러다 말고, 인구는 쿵! 소리 나게 두 손으로 사무책상을 짚었다.
허리를 숙이고 얼굴까지 들이미는 인구에 버럭버럭 소리치던 경민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쑥 뺐다.
‘이, 이 새끼 눈빛이...’
반쯤 미친 인간 같은 눈빛이었다.
수틀리면 뭐든 할 것 같은 그런 눈 말이다.
“왜, 왜! 뭐!”
인구는 몸을 뒤로 최대한 뺀 채 발악 아닌 발악하는 경민을 향해 최후통첩을 날렸다.
“정 개싸움 하고 싶으면..., 한 번 해봐. 진짜,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너 내 별명 들어봤지? 광견병이라고. 그게 왜 생겼는 줄 아냐? 사람 엉덩이 물어뜯어서 생겼어.”
“...”
“진짜로 물어뜯었어. 기분이 줫같아서 그냥 앙! 하고.”
“너 지금 나한테 협박...!”
“협박은 네가 먼저 해놓고선 무슨. 이건 쌍방인 거지.”
인구는 콧잔등을 찡긋하며 아주 차분한 얼굴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진짜, 안 보내주면 무는 건 덤이고 나 선수단 분위기 개판 내버린다? 언론에다가는 네 앞담 오지게 까고. 구단주 미친 돈독 오른 새퀴가 삔또 상해서 경기를 안 내보줘요, 라고.”
* * *
2주 뒤.
[마인구!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 확정! 이적료 한화 15억...!]
[마인구! 연봉 15만 파운드(한화 2억 4천만 원) 수준으로 2년 계약...!]
[돌아온 탕아! 마인구가 뛰게 될 뉴캐슬은 어떤 팀?]
시즌 도중에 선수가 떠난다면 대부분 팬들은 아쉬워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인구를 향한 팬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만년 꼴등 한강을 단 반 시즌만에 승격에 가장 가깝게 만들었으니까.
[한강 fc! 마인구 없더라도 승격에 가장 가까워...!]
[축구 전문간들 ‘한강은 남은 경기 전 경기 패하지 않는 이상은 사실상 승격 확정!]
특히나 이 이적은 국내 내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속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은 한국 팬들에게 있어서도 쏠쏠한 국뽕을 맛보게 해준 것이다.
- <인생은인구처럼> : 솔직히 이젠 인구 없어도 승격은 거의 확정이지 ㅋㅋㅋㅋㅋ
- <산티아구무네즈> : 와..., 뉴캐슬 유나이티드!!! 우리 한강이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파 선수를 배출시키네?
- <시어러가돌아왔다> : 감동입니다. 마인구 선수! 꼭 뉴캐슬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십시오!
- <암동규> : k리그로 시즌 도중에 이적하는 거였으면 욕하려고 했는데. 도전을 위한 챔피언십이라. 크으~! 난 응원할 거임!
- <지송팍> : 뉴캐슬 유나이티드? 영화 스코어에서 주인공이 처음 뛰던 그 구단 아님?
ㄴ <훔바훔바> : 맞음. 툰!!!
- <축구경력2년차> :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마인구가 진짜 어릴 때부터 축구를 계속 해왔다면 지금쯤 손흥빈이랑 같은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어서...
반면 뉴캐슬의 서포터즈, 툰들의 반응은 좋을 리가 없었다.
- :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자마자 주전급 자원 몇 명 팔아 재끼더니 영입한 게 변방 리그의 동양인 스트라이커...?
- : 이건, 너무했다. 난 쟤가 축구선수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
- : 검색해보니까 축구선수 된 지 이제 겨우 1년 차던데;;; 진짜 내가 본 게 맞긴 한 거냐?
- : 하. 망했어. 승격은커녕 강등 걱정하게 생겼네.
* * *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에 위치한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1892년 12월 9일에 창단됐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약 5만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어. 라이벌로는 선덜랜드, 미들즈브러가 있고.”
“아하.”
인구는 조수석에 앉아 차창 너머의 풍경을 보았다.
영국은 뭔가 하늘부터 한국보다 드넓어 보였다.
운전대를 쥔 스카우트 로버트 파이기는 자부심이 깃든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린 프리미어리그에서만 약 4회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어. 챔피언십에서도 4번의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그렇군요.”
“엘런 시어러라고 아나?”
“모를 리가 있나요. 옛 영국의 유명한 스트라이커잖아요.”
“거기서 하나만 더 덧붙이자고. 뉴캐슬의 레전드, 라고 말이야.”
파이기는 두 뺨을 붉게 물들인 채 덧붙였다.
“1996년부터 2006년. 자그마치 10년간 뉴캐슬을 위해 뛰며 395경기 206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지.”
“아, 하.”
인구는 감탄한 척,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호응해주었다.
하지만 속은 질렸다.
‘이 인간..., 투 머치 토커였어.’
마음 같아선 세나와 함께 영국행에 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며칠 앞서 가은이가 세나를 영국에 데려갔고, 이후 뒤늦게 자신은 파이기와 함께 영국행에 올랐다.
절차란 게 있었으니까.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파이기는 화제를 전환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지지만..., 챔피언십도 똑같아. 잉글랜드 자국 선수들의 축구 실력 저하를 빌미로 외국 선수들의 영입 규정이 여간 까다롭기 그지없으니.”
그 말대로였다.
잉글랜드 챔피언십 외국인 선수 영입 규정엔 1500만 파운드(한화 243억) 이상의 이적료가 발생해야만 했다.
‘반면에 난 한화 15억.’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또 비유럽 나라인 경우엔 피파랭킹 50위권 이내여야 한다.
현재 한국은 피파 랭킹 57위로 이 역시 충족하지 못했다.
‘외에도 워크파밋이 나오려면 국가대표 경력이 어느 정도 인정이 되어야 한다만.’
인구는 성인팀 대표 경력이 전무했다.
그런 그가 뉴캐슬로 이적할 수 있었던 데는, 예외 조항이 먹혔기 때문이었다.
파이기는 자랑스레 말을 이었다.
“그 옛날, 박지송도 그랬다지? 국가대표 출전 횟수가 부족해서 하마터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이 결렬될 뻔했다고. 그런데 유명 축구인 3명의 추천서로 겨우 올드 트래포트로 입성할 수 있었다고 말이야. 알랙스 퍼거슨, 거스 히뒹크, 그리고 요한 크루이프. 크으!”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를 인구는 파이기, 본인 입을 통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아까 비행기에서 말해줬잖아.’
그리고 인구를 위해 추천서를 써준 이는 바로 엘런 시어러, 캐빈 키건, 마이클 오웬이었다.
셋 모두 한때 선수로서 월드클래스라는 평을 받았던 유명인.
파이기는 힐끗 이쪽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들 모두 여전히 뉴캐슬을 사랑하고, 또 여전히 진하게 연결되어 있지. 후훗. 툰은 영원하니까.”
“아하.”
인구는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결국은, 인맥으로 들어왔네.’
어릴 적, 인맥을 그리도 싫어했건만 한강에 이어 뉴캐슬도 인맥이 작용했다.
허나 17살 때와 지금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다.
‘인맥이라 해도...,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는 거니까. 그게 옳았다, 라고.’
또 반드시 영국행에 오르고 싶었다.
‘세나.’
잠깐 떨어진 사이, 인구는 더욱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 보고 싶다, 우리 딸. 크흡...!’
자신은 진정한 딸바보가 맞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고작 며칠 안 봤다고 그새 우울증이 다 오려 했으니.
간간이 환청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아빠아?]
[아빠아!]
[아빠아~!]
[코이뚜우우!]
라고.
“...흡!”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제 반응에 파이기는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감동할 만하지. 그만큼 자네의 능력을 높게 평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아아, 물론 안주하지는 말게. 뉴캐슬에서의 경쟁은 아주 치열할 테니까. 잠깐 방심한 사이 벤치만 데우고 있을지도 몰라.”
“아, 예.”
인구는 굳이 해명하지 않고서 조수석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울적한 눈으론 바깥 풍경을 보며 간절히 바랐다.
‘우리 딸! 얼른 보고 싶다...!’
어쨌거나 그 딜레이 기간 동안, 뉴캐슬의 의무팀장이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메디컬 테스트까지 끝낸 상태였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주제는 바뀌어 있었다.
“잉글랜드 북동부의 축구를 종교라 표한다면..., 우리 툰들은 뉴캐슬을 대성당이라고 부르지.”
“대,성당이요?”
“그만큼 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소리야. 축구는..., 우리에게 있어 인생의 전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단 거라고.”
“...”
순간 인구는 파이기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왜인지, 못하면 한국에서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폭격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가서였을까.
“와...!”
인구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한강의 홈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뉴캐슬의 웅장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파이기는 씨익, 웃으며 환영했다.
“Welcome to your house!”
< 037. 멋진 아빠란 (1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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