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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6)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65화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6)
불과 전반전 19분이 흘렀을 뿐이었지만 전광판 속 스코어는 2 : 2였다.
인구의 추가 골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릴리시의 기막힌 어시스트로 인한 애스턴 빌라의 스트라이커 득점이 추가로 터진 거다.
“우어어!”
빌라의 스트라이커, 카이론 데이비스는 두 팔 벌려 포효했다.
팬들은 그 이름을 부르짖었다.
연달아 서포터들은 그릴리시의 이름을 연호했다.
재에에엑!
그릴리시이이!
잭 그릴리시는 애스턴 빌라에 진득한 애정을 지닌 선수였다.
그리고 팀이 강등당한 시기에 수많은 구단의 러브콜이 있었음에도 그는 끝까지 남는 것을 택했다.
‘적어도, 팀을 epl에 올려놓은 뒤에 떠나고 싶어!’
그게 최소한의 도리라 여겼다.
애스턴 빌라는 부진하고, 갖은 기행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려 왔던 자신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팀이었으니까.
그러니 악동이라 불리는 그였음에도 단지 승격을 넘어, 팀을 챔피언십 리그에서 우승시키고 싶다는 열망이란 게 있었다.
마주한 뉴캐슬은 반드시 넘어야 할 하나의 산에 불과했다.
‘승점 차를 좁혀야 해!’
이른 시간 동점 골에 홈팬들은 연속해서 장내 아나운서의 선창에 이어 두 팔 벌려 후창했다.
재애액!
그릴리시이이이이!
그릴리시는 데이비스 대신 골망에 걸린 공을 품에 안아 들고는 빠르게 하프라인으로 뛰어갔다.
툭!
공을 하프라인 중앙에 둔 뒤, 손뼉을 치며 동료들의 분전을 요구했다.
“모두 집중해!”
아직 결과는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의 팀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속으로나마 자신했다.
비록 뉴캐슬이 두 골을 몰아쳤지만..., 잠깐 겨뤄본바 생각보다 적의 배후는 헐거웠다.
‘수비 라인을 평소보다 내린 것 같긴 해도 충분히 뚫을만 하다!’
그때였다.
공을 직접 운반해주곤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는 와중,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측 편향이 있네?”
“...뭐?”
그릴리시는 뒷걸음질을 멈추며 어느덧 공 앞에 멈춰선 검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를 바라봤다.
‘인쿠.’
전반기엔 부상 신세였던 지라 눈앞의 녀석과는 맞부딪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릴리시는 그가 뉴캐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라는 걸 잘 알았다.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서른 골 이상을 기록한 괴물 골잡이야.’
조금 전에도 녀석은 눈 깜짝할 사이 튕겨 나온 공을 하프 발리킥으로 결정지었다.
‘슈팅 스탠스를 비롯해 슈팅 시의 강도도 강력했다.’
예상치 못한 세컨 볼이었음에도 집중력과 결정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놈은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너 온더볼이건 오프더볼이건 좌측으로 빠진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느닷없는 발언에 그릴리시는 찡그린 얼굴로 반문했다.
인구는 피식하니 웃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네 약점이지.”
투웅!
다음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인구가 곧장 아유세 페레즈에게 백패스로 킥 오프를 시전했으니까.
* * *
라파엘 배니테즈는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공간을 좁혀!”
그 외침에 따라 뉴캐슬의 수비수와 미드필더 간의 간격이 좁혀졌다.
툭!
때마침 애스턴 빌라의 잭 그릴리시는 하프라인까지 내려가 수비형 미드필더, 재임스 포터의 땅볼 패스를 받았다.
스윽!
직후 그릴리시는 간결한 터닝 동작으로 돌아서 뉴캐슬 진영을 향해 차고 달리기를 시전했다.
툭!
과정에서 중앙에 있던 뉴캐슬의 미드필더, 존조 셀비가 프런트 태클을 가하자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좌측으로 이동시켰다.
“엇?”
그릴리시의 벌어진 입에서 살짝이지만 당혹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과 달리 좌측 하프 길목에 뉴캐슬의 센터백 자말 라셀스가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발밑 재간이 좋은 잭 그릴리시는 피하지 않았다.
툭 탓!
눈 깜짝할 사이, 그릴리시는 헛다리짚기 후 왼발등으로 공을 띄웠다.
“이익!”
신랄한 상대 움직임에 자말은 이를 악물며 우측방으로 주저앉으면서까지 오른발을 뻗었다.
허나 공은 그대로 자말이 내지른 발등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투웅!
그릴리시가 자말이 주저앉아버린 반대 방향으로 뛰어든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오! 그릴리시! 헛다리 짚기로 자말 라셀스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데 성공...!]
[뉴캐슬의 라이트백 디안드루 예들린이 빠르게 달려들어...!]
툭!
딱 한 걸음 차, 예들린이 오른 발을 쑥 뻗었다.
허나 예들린의 얼굴은 대번에 구겨졌다.
그릴리시가 불시에 오른발을 공보다 앞서 내지른 왼발 뒤쪽으로 가져감과 함께 뒷굽으로 툭 차 공의 진로를 완전히 틀어버렸으니까.
[오오오! 힐 찹! 힐 찹으로 예들린 마저 떨쳐내는 데 성공하는 잭 그릴리시이...!]
곧 바로 역동작에 빠진 예들린의 좌측 배후로 파고들었다. 기어이 문전으로 다이렉트로 향할 수 있는 크로스 공간이 열렸고 말이다.
애스턴 빌라의 지역 해설진은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부상에서 돌아노 재에엑! 완벽한 부활을...!]
그러나 해설진의 끝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투욱!
갑자기, 그릴리시의 눈앞에 거대한 인영이 드리웠다.
“...어?”
두 눈은 순간 흔들렸다.
크로스를 구사하려는 찰나, 돌연 발밑으로 커다란 발하나가 슥 들어와 공을 제 가랑이 사이로 통과시켰으니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윽!
날카로운 바람이 볼끝을 스침과 함께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두 눈은 부릅떠졌다.
“너...?”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마인구가, 어느덧 수비지역까지 내려와 인터셉트를 성공시켰다.
생각지도 못한 가로채기에 그릴리시는 좇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물론 자신이 쫓아가지 않더라도 주변 동료들이 그를 막아 세울 게 자명했으...,
뻐어어어엉!
“....!?”
귀를 찌를 정도의 소리에 그만 그릴리시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인구가 스틸 후 고작 세 걸음 전진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왼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띄운 거다.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쭈욱 날아가는 공을 본 그릴리시는 한순간 질린 얼굴이 되어 부정했다.
“...말도 안 돼.”
그도 그럴 게 아웃프런트로 날아간 공은 마치 유도 미사일 같았다.
우측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휘어지는 궤적은 가히 경악적!
날아간 공은 걷어내고자 활어처럼 솟구쳐 머리를 휘두른 애스턴 빌라 수비수들의 헤더마저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투웅, 투웅, 투우웅-!
뉴캐슬의 또 다른 스트라이커, 살로몬 런던이 좌측 박스 외곽에서부터 힘차게 뛰어든 것도 그때였다.
“으어어어어!”
페널티 박스 안으로 발을 들인 시점에 런던은 기합과 함께 로켓처럼 머리부터 골망을 향해 몸을 던졌다.
투욱!
“허...”
그릴리시는 헛바람을 삼켰다.
족히 50m, 그것도 대각으로 휘어져 날아간 공이 뚝 떨어져 정확히 런던의 이마 정중앙에 걸렸으니까.
촤라아악-!
골망이 물결친 순간에 인구는 그 자리에서 두 팔 벌려 포효를 내질렀다.
“코이...! 아니, 예에에에스으으으으!”
* * *
며칠 전.
뉴캐슬 회의실.
“...이 친구는...?”
공격 전담 코치, 닐슨 오클리는 평소처럼 애스턴 빌라와의 경기 분석을 위해 회의장에 입장했다가 말고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남자, 인구가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던 것이다.
복장은 트레이닝복 차림새였다.
“코치님. 늦으셨습니다?”
인구는 뻔뻔하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허, 참나. 1분 늦은 거 가지고 뭘.”
이내 닐슨은 픽하니 웃으며 받아치고는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
참으로 낯선 순간이었지만 또 닐슨은 곧바로 납득을 하였다.
대개는 플레잉 코치, 또는 은퇴를 앞두고 코치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선수들이 간혹 코치 회의에 참여하곤 한다.
하지만 현역, 그것도 팀의 스트라이커가 이 회의에 낀 건 적어도 뉴캐슬에선 처음 있는 일.
그때, 상석에 앉은 라파엘은 딱 잘라 말했다.
“인쿠도 오늘을 시작으로 간간이 회의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간 보아왔듯, 그는 필드 안의 사령관이니 말이오.”
자리한 코치 중 누구 하나 반발하지 않았다.
라파엘은 당연히 응해주리라 여겼다.
20경기가 넘어가는 동안 함께 해온 만큼 오히려 인구를 향한 상당수 코치들의 눈엔 신뢰를 비롯한 기대감까지 얼핏 비쳤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코치들은 저마다 자신의 전술을 내세웠다.
상대가 전력의 9할 이상이 돌아온 애스턴 빌라인 만큼 닐슨 오클리는 수비적인 플랜을 제안했다.
“우린 지난 라운드에서도 애스턴 빌라의 롱 카운터에 고전했었죠. 결국 1점차 패배를 당했고 말입니다. 이번 라운드에선 주전 자원이 대거 복귀하기까지..., 고로, 수비 쪽으로 보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애스턴 빌라의 발 빠른 공격수 카이런 대이비스는 지역 방어로 막아야 할 선수로써...!”
“잭 그릴리시는 기본적으로 발 밑 재간이 좋아서 1대1로는 막기 버거운...”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4-2-3-1 플랜이 아니라 4-4-2, 클래식한 버전으로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중앙을 보다 두텁게 만들어서...”
때때로 코치들은 설전을 벌였다.
“그렇게 되면 공격은 누가 합니까?”
“인쿠가 있잖습니까?”
“아유세까지 내려서 수비를 시키는 방안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체력적으로도 아유세는 불리한 데다, 신체적으로나, 수비 스킬도 부족한 친구입니다.”
“그러면 다른 대체 선수를...!”
“아유세를 대체할 선수가 있긴 합니까?”
하지만 아직까진 라파엘의 생각과 일치하는 전술이란 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역시 이번 경기만큼은 기존 플랜을 고수하기란 힘들다고 보았다.
‘롱 카운터에 능한 애스턴 빌라다.’
수비라인을 높이면 그만큼 애스턴 빌라는 롱 카운터로 뉴캐슬을 대차게 공략할 가능성이 컸다. 직전 라운드에서 그랬고 말이다.
‘맞불을 놓는 전략도 나쁘진 않다만...’
객관적인 선수 개인 능력치에서 뉴캐슬이 더욱이 더 두드려 맞을 확률이 높았다.
지난 라운드에서 주전 자원이 일부 없는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도 3골을 폭격했으나 4골을 허용하며 패한 바 있으니까.
‘인쿠 혼자 전방에 배치해서는...,’
지난 패배를 토대로 보건대, 충분히 골을 넣을 수야 있겠지만 팀적으로 한계가 명확해 보였다.
그래서, 라파엘은 한 가지 새로운 플랜을 떠올려냈다.
그동안에도 인구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로부터 약 20분이 지나서야 인구의 차례가 왔고 말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전판 옆으로 다가가 서서는 돌연, 자신의 포지션인 원자석을 미드필더 진영으로 내려 앉혔다.
“자네, 뭐하나?”
공격 전담 코치, 닐슨 오클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인구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우리 존경하는 코치님들. 말씀을 쭉 들어보니까, 애스턴 빌라의 공격이 매서워서 수비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특히 이놈.”
인구는 상대편 자석 중 하나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해당 자석은 잭 그릴리시였다.
“발밑 재간은 더 말하면 입 아프고, 중거리 슈팅에 크로스까지 능한 친구잖아요. 거기다 볼 간수가 좋아서 수비수들을 끌어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동료들은 보다 더 쉽게 상대 뒷공간으로 파고들 수가 있게 되고요. 우리 코치님들은 전체 라인을 내려서 요런 부분을 주의하자는 거고. 그렇게 되면...,”
말끝을 늘어뜨린 인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뉴캐슬의 공격력이 다소 감소될 테죠. 그런데 또 내린다 한들 잭 그릴리시의 발밑이 워낙 무서우니 자칫 롱볼에 일격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그래서 추가적으로 공격 숫자를 줄이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으신 거고요. 맞죠?”
누구 하나 부정하지 않았다.
인구는 능숙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처음엔 기존 플랜을 유지하되 상황 봐서 제가 내려앉아서 플레이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아유세보다 수비력도 낫고. 피지컬도 출중하니까. 감독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내려가서 말인가? 스트라이커인 자네가? 그럼 득점은 누가 넣고?”
상석에 앉은 라파엘 배니테즈가 채 답하기 전에 닐슨 오클리가 반문했다.
이에 인구는 어깨를 으쓱대며 입을 열었다.
“호샐루도 있고, 살로몬 런던도 있잖아요. 이왕이면 고공 경합에 능한 선수를 투입하는 게 낫겠죠.”
인구는 덧붙였다.
“솔직히, 저도 자신 있거든요. 크로스 플레이에는. 롱 카운터엔 롱 카운터로 응수하자고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라파엘의 입이 작게 열린 순간이었다.
인구가 자신이 생각한 플랜과 같은 플랜을 방금, 코치들에게 당당하게 전파했으니까.
그 모습에서 라파엘은 이제 기가 차기까지 했다.
‘이 친구는 대체...,’
사실 인구는 지난 애스턴 빌라전과의 패배 후 진즉부터 머릿속에 파훼 플랜을 계획하고 도출에 이른 상태였다.
이는 타고난 재능이었다. 경기 중, 혹은 패배한 경기 이후에도 가끔 번쩍하고 머릿속에서 대응 플랜이 떠오르곤 했으니까.
고로, 인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작전명은..., <해리 케인, 그리고 흥빈이들> 입니다."
* * *
현재.
우아아아어어어어어어어어-!
원정팬, 툰들이 애스턴 빌라의 홈구장을 차지한 것마냥 열광적인 환호성을 터뜨렸다.
한편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있던 라파엘 배니테즈는 감명에 겨운 얼굴로 골을 넣은 살로몬 런던이 아닌, 인구를 향해 중얼거렸다.
“페르난도 토래스인 줄 알았더니..., 오늘은 스티븐 재라드가 출전한 건가?”
< 065. 인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6)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