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93. 늑대가 되기로 했다 (11)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93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11)
“이야~”
인구는 손에 든 휴대폰 속 기사를 보며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선수 영입을 선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라이훌라는 두 명의 선수를 뉴캐슬에 추천했다.
뉴캐슬은 사전 라이훌라가 언급한 금액보다 싼 가격의 유망주에 덥석 물어버렸고 말이다.
허나 인구는 알고 있었다.
‘미끼를 확 물어부렸구만.’
일전에 라이훌라는 말했다.
[한 포지션당 최소 1500만 파운드(한화 236억)의 이적료 조건을 내세울 생각입니다.]
그렇게 최소 4명의 선수를 영입하기로.
그럼에도 보다 저렴한 선수를 추천한 데는...,
‘그렇게 선수 영입하고 세이브한 금액으로 추가 선수를 넌지시 뉴캐슬에 던지려 하는 거지.’
결국은 협상 간에 언급한 최종 금액을 어떡해서든 맞출 생각이었던 거다.
라이훌라로서도 막 epl로 입성한 구단에 자신의 유망한 고객을 보냄으로서 기타 이득을 취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추아매니랑 라흐마뉘라.’
해당 선수들의 영입에 상당수 팬들은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 난 추아매니랑 라흐마뉘라는 선수 처음 들어봐.
- 추아매니는 2000년생이고, 라흐마뉘는 1994년생이네? 나이는 합격...,
- 흠. 현재보다는 미래를 도모한 영입이 아닌가 싶어. 특히 추아매니는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 보르도B(2부)에서 뛰던 친구라고. 올시즌에 이르러서야 1군으로 콜업된 거고.
- 마이크 애슬리가 마이크 애슬리 놀이를 했을 뿐이잖아. 다들 왜 그래?
하지만 일부는 기대했다.
- 인쿠의 성공 사례를 두 눈으로 직접 본 만큼! 이번 영입도 기대됩니다!
- 차라리 좋아! 다 늙은 베테랑 싼값에 영입하는 것보다는 어리고 유망한 자원 영입하는 게 낫지! 들어보니 추아매니는 활동량도 엄청나더만?
- 뉴스 좀 검색해보니까 추아매니는 AS 모나코랑 몇몇 중위권 구단이 원할 만큼 재능 하나는 인정받던 모양인데? 거기다 라이훌라가 추천한 선수잖아. 즉, 검증은 된거라고!
한 팬의 말처럼 인구라는 성공 케이스가 있는 만큼, 뉴캐슬 영입에 한한 팬들이 반감이 다소 줄어든 것이다.
반면 인구도 들어본 적은 없는 선수들이긴 했다.
그러나 일전에 마주한 라이훌라는 카페 실외 테이블 의자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하며 두 사람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오를레앙 추아매니는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아군 디펜시브 라인 위에서의 컷팅 능력이 우수하며, 활동량을 비롯한 역습 전개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지요. 어린 만큼 잠재성이 무궁무진하고요.]
[아미르 라흐마뉘는 코소보의 국가대표 센터백으로서,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저돌적인 수비가 일품인 선수입니다. 특히 공중볼 경합과 빌드업 능력이 장점이라 할 수 있지요.]
이어 말했다.
두 사람은 머지않아 전 세계가 주목할 레벨에 오를 재능들이라고.
라이훌라는 확신에 차 있어 보였다.
인구는 단 일말의 의문도 없이 긍정했고 말이다.
‘거기다 선수단 댑스는 두꺼울수록 좋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뉴캐슬의 일부 선수들은 EPL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타 리그라도 1부 리그에서 뛰었다면...,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디나모 자그레브는 챔스랑 유로파 리그도 꾸준히 출전하는 팀이고 말이야.’
곧 인구는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쪼록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겠지, 뭐.’
현재 그는 우즈번에 위치한 자그마한 공원에 발을 들였다.
시즌이 끝난 데다 딸의 방학기까지 맞은 만큼 소풍을 나온 것이다.
날씨는 어느 때보다 맑았다.
6월인 만큼 현재 온도는 선선한 19도.
“와, 인쿠다...!”
“대박!”
“저 꼬마는 딸인가?”
예전과 달리 정원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몇몇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봤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다가오진 못했다.
눈치를 보다가 다가오려 하면 인구가 특유의 서슬프런 눈으로 노려본 것이다.
번뜩!
‘다가오지 마라. 사인은 이따 해줄게.’
라는 속말을 담아.
이는 오직 딸을 위함이었다.
‘혹여나 우리 세나 놀라면 어쩌려고?’
그 걱정과 달리 세나는 산책 나온 댕댕이마냥 세상 해맑아 보였다.
“우아아아! 새다! 새야아!”
“흐헣. 녀석 참.”
잔디 밭을 힘차게 뛰어나가는 딸을 보자니 절로 빙구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손은 바삐 움직였다.
‘여기다가 돗자리 깔면 되겠네.’
인구는 커다란 푸른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쫙 펼쳤다.
가은이는 회사에 있었기에 함께하지 못했다.
‘아주 바쁘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세나에 무신경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틈틈이 연락도 하고, 퇴근하면 나 못지않게 세나랑 많이 놀아주니까.’
생각을 하는 중에도 손은 움직였다.
미리 챙겨온 골프 가방 속에선 여러가지 도시락 반찬이 나왔다.
“이건 우리 세나가 좋아하는 귤젤리!”
“우아!”
고양이처럼 새를 보고 폴짝 뛰어나갔던 세나는 그새 총총 다가와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감탄했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휙! 자그마한 손이 튀어나와 사각 모양의 귤젤리를 입안으로 가져가기까지.
우물우물 씹던 세나는 이윽고 자그마한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맛있쒀!”
“그럼! 그럼! 누가 만든 귤젤리인데! 아빠가 유기농 귤에다가 유기농 젤라틴을 써서 만든거라구. 아아, 정성 다섯 스푼은 덤이구.”
“아빠는 요리사야!”
크흥!
딸의 칭찬에 절로 흥에 겨운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인구는 우쭐한 얼굴로 골프 가방 속에서 몇몇 도시락 세트를 추가로 꺼내 들었다.
“딸! 이건 두부전이야! 두부엔 단백질이 풍부하고 우리 몸에 유익한 식물성 지방이 있다는 거, 아빠가 일전에 말한 적 있지?”
“웅!”
“그럼 아~ 벌려.”
“아~”
두 눈을 똘망똘망하니 뜬 채 장난스런 표정으로 입을 벌리는 딸을 보며 인구는 젓가락으로 두부전 하나를 집어 먹여주었다.
우물우물!
“마시쒀!”
딸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인구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떠날 새가 없었다.
“자자,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요고는 표고버섯 볶음!”
“이건..., 쪼큼 맛이 없어 보이는데?”
“어허. 우리 세나. 설마 편식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자나!”
“그럼 아~”
살짝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도 자신이 주면 잘 먹는 세나였다.
“이건 165도에 아빠가 직접 튀긴 돈가스!”
“아~!”
“이거는 노각 무침이라는 건데. 노폐물 배출에도 좋고, 항암작용도 있고! 위장 기능에도 좋대. 당연 뼈도 튼튼!”
“우우..., 세나는 뼈 튼튼해. 아빠 닮아숴...”
"자. 아~"
"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딸아이였다.
한참 좋아했다가도 맛없는 음식엔 금세 눈썹 끝이 아래로 축 꺼지는 게 참 귀여웠다.
그래도 인구는 딸의 웃는 모습이 더 좋았다.
그러니 이제 다시 당근을...!
“이거는 우리 딸. 너무 건강한 것만 먹으면 심심할까봐 조금 악랄하게 항정살을 준비했지!”
“와! 세나 고기 조아해!”
굳이 골프 가방을 들고 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날 그날 세나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아예 여러 가지, 여러 나라 음식을 몽땅 해버렸으니까.
건강도 챙길 겸.
‘남으면 뭐.’
이웃 줘도 되고, 자기가 먹으면 그만이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인구는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도시락을 잘 정리하여 골프 가방 속에 쏙 집어넣었다.
후식은 생딸기 바나나 주스.
냉온병을 꺼내 미리 준비한 컵에다가 줄줄줄 따라주니 세나는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꿀꺽꿀꺽 들이켰다.
“크으! 쪼아!”
어디서 배운 건지 추임새까지 넣은 세나는 콧잔등을 찡긋하며 제게 엄지를 쳐들었다.
"와..."
인구의 입에선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딸기 바나나 주스 Cf 보는 줄 알았으니까.
그때였다.
“음?”
가만 보니 세나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금세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도 봐라.
“세나야. 오늘 날 좋지?”
“웅. 시원해!”
휙!
자신이 말을 붙이면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한 번 바라봤다가 휙하니 그새 또 고개가 돌아간다.
‘뭔데 그래?’
궁금증이 동한 인구는 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평평한 잔디밭에서 몇몇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죄다 남자 아이들로, 대충 보니 세나보다 두 세 살 위의 나이 같았다.
“나는 매시!”
“매시? 그럼 난 반 다이크 할래!”
“난 래반도프스키! 패스해! 그냥 바로 골 넣어버릴 테니까!”
아이들은 유명 선수를 언급하며 해당 선수의 플레이를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나는 인쿠우!”
히죽.
순간 한 아이가 당당하게 인쿠라 외치자 인구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이 지역 자체가 뉴캐슬이다 보니 자신을 좋아라 하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뉴캐슬의 미래는 참으로 밝...,’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인쿠? 왜 인쿠야?”
“왜긴! 뉴캐슬 레전드니까.”
“웃기네. 매시랑 래반도프스키, 반 다이크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잖아? 다른 선수로 바꿔!”
“...”
인구의 눈 밑이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저 금발 머리 꼬마가 줏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속으로 외쳤다.
‘당당하게 굴어! 사내답게! 네 주관을 바꾸지 말라고! 인쿠가 최고라 그래!’
허나 바람과 달리 금발 머리 꼬마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해버렸다.
“헤헷. 하긴 인쿠는 아직 매시나 래반도프스키에 못따라오니까.”
“거기다 성격도 더러버.”
“맞아. 악동이야!”
“에잇 가가멜 같은 놈!”
“인정! 그럼 난 카림 밴제마!”
“그래! 좋아! 합격!”
인구는 똥 씹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꼬맹이놈들, 저거 지금 나 있는 거 알고 일부러 저러나?’
어쩌면 뉴캐슬 동네에 놀러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새싹 서포터즈가 아닐까 싶었다.
현재까지도 맨유 팬들은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살짝 서운하긴 했으나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세나가 왜, 저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냐가 근본적인 의문이었으니까.
‘잘생긴 놈이라도 있나?’
한 놈 한 놈 봤을 때는 세나가 확 반할 만한 꼬맹이는 없어 보였다.
‘죄다 내 어린 시절보다는 못하는구만 뭐.’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의 두 눈은 점차 커졌다.
‘설마...?’
세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표정, 거의 본적이 없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는 두 눈빛은..., 얼핏 보면 차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였다.
‘마치 갖고 싶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눈이잖아.’
이윽고 그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딸, 설마..., 축구 하고 시퍼?”
한편으로는 아빠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스스로를 자책했다.
‘진즉에 물어보는 건데...’
가만 보니 세나가 가장 많이 접하던 것도 축구였지 않나.
‘아빠가 축구 선수니 당연한 거였잖아!’
그러니 어쩌면 세나는 그 어떤 것보다, 어쩌면 한참 전부터 축구를 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인구는 아직 어린 세나였기에 구기 종목 등은 아예 배제하다시피 했었다.
체계적인 성장을 이유로...!
“...!”
그리 또 정리하니 인구는 입을 쩍 벌리며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나, 나야말로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틀딱 어른이었던 거야?’
그때, 세나는 입을 일자로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제 똘망똘망하던 두 눈은 가늘게 좁혀졌다.
귓가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쟤들 너무 축구를 못 해. 그래서 한심해서 쳐다 봐써.”
“...응?”
“내가 뛰어도 저것보단 잘 뛸 거 같고든. 죄다 세모발이야. 쟤들은 이미 싹이 트기도 전에 밟혀쒀. 꾸욱.”
“...?”
< 093. 늑대가 되기로 했다 (11)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