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92. 늑대가 되기로 했다 (10)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92화 늑대가 되기로 했다 (10)
크로아티아.
디나모 자그레브 vs 리예카.
삐, 삐, 삐이이이이이이이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우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
크로아티아의 명문 구단,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대팀 대 리에카의 맹공을 거듭 막아낸 끝에 2위와의 승점 차를 2점 차 유지하며 리그 1위를 수성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해설진은 감탄에 겨워했다.
[디나모 자그레브! 비록 대 리예카와 무승부로 시즌을 마감지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자그마치 7경기 연속 무실점이에요!]
[디나모 자그레브의 수비력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론 올시즌만 놓고보면 유럽 5대 리그 내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한 수비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디나모 자그레브는 이번 시즌 유로파 리그 8강전에 오르는 호성적을 달성해냈습니다! 오직 수비력 하나만으로요!]
해설진이 침을 튀겨가며 말하는 중에 중계 카메라는 한 선수를 비쳤다.
갈색 머리칼에, 노란색 눈동자.
그리고 192cm에 달하는 큰 키를 지닌 센터백.
해설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이름을 부르짖었다.
[아미르 라흐마뉘! 오늘 경기에서도 태클 3회, 인터셉트 4회! 클리어 4회 등을 기록하며 팀 내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아!]
* * *
아미르 카드리 라흐마뉘는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이중국적자였다.
1994년생인 그의 포지션은 센터백이며 희소성이 높은 양발잡이기도 하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kf 드레니차라는 팀에서 성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현재.
그는 손에 든 태블릿 pc 속 화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엔 검은 머리 동양인의 플레이가 재생 중.
툭, 타앗-!
상대 진영 깊숙한 곳에서 검은 머리 동양인은 마주한 수비수를 백 플립플랩으로 제쳐버렸다.
다소 템포를 끊어먹을 수 있는 개인기였으나...,
뻐엉-!
“...!”
라흐마뉘의 두 눈이 일순 크게 떠졌다.
수비수를 현란한 개인기로 벗겨낸 직후 검은 머리 동양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슈팅을 구사했으니까.
‘슈팅 스탠스가 저렇게 바로 잡힌다고...?’
아니, 라흐마뉘가 보기에 스탠스가 채 잡히기도 전에 그냥 어거지로 때려 찬 공 같았다.
그런데 웃긴 건 강하게 떠오른 공이 정확히 우측 크로스바 상단 아래로 쏙 떨어졌다는 거다.
'마치 자석에 끌려간 것 같아.'
다음 장면, 이어진 다음 장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화면 속 검은 머리 동양인은 각이 없는 위치에서도 슈팅을 때렸고, 큰 키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개인기를 여지없이 부렸다.
‘하지만 대부분 전진성을 위주로 한 개인 드리블이야.’
쭉 관찰하니 그런 게 보였다. 팬텀 드리블이나 헛다리짚기, 잔발스텝 등 모든 동작이 전진에 무게를 두었다.
‘막기 버겁겠어.’
오히려 전진에만 무게를 두면 지역 방어 형태로 기다렸다가 한 걸음 차로 접근한 순간에 달려들어 막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라흐마뉘가 본 화면 속 남자의 드리블은..., 어딘가 달랐다.
‘밸런스도 잘 잡힌 데다가, 한순간에 동작이 크게 바뀌어버린다....’
상대 수비수가 옳다구나! 하고 발을 뻗는 그 찰나, 남자는 돌연 저 스탠스에서는 나오지 못할 스텝으로 상황을 벗어났다.
스윽.
얼마 지나지 않아 라흐마뉘는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소파엔 배불뚝이 에이전트, 미노 라이훌라가 편안히 앉아 있었다.
라흐마뉘는 물었다.
“제게 이 선수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그 선수의 이름은 인쿠입니다.”
“인쿠.”
라흐마뉘는 작게 중얼거렸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우승을 위해 뛰느라 크로아티아 밖 이슈들은 라흐마뉘의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이 화면 속 인구를 처음 알았다.
라이훌라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뉴캐슬의 스트라이커죠. 그리고 올 시즌 뉴캐슬은 잉글랜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EPL로의 승격을 확정지은 상태입니다.”
“...이 스트라이커가 많은 공을 세웠겠네요.”
“맞습니다. 리그에서만 70골을 기록한 괴물 골잡이지요.”
“...”
라흐마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잉글랜드 챔피언십은 영국의 2부 리그였다.
허나 암만 2부 리그라 할 지라도 그 리그의 수준이 높다는 걸 라흐마뉘는 모르지 않았다.
적어도 20골만 넣어도 스트라이커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리그에서만 70골을 넣었다고...?’
조금 전 인구의 플레이만 봐도 팀의 핵심이겠거니 했었는데, 기대 이상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라이훌라는 테이블 위 찻잔에 손을 뻗으며 덧붙였다.
“뉴캐슬은 2위와의 승점 차를 20점 차로 벌리며 우승을 확정 지은 팀입니다. 총 팀의 득점은 146점.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그가 창단된 이래···. 이 또한 신기록이지요.”
허나 라이훌라는 말했다.
“하지만 팀 실점률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68점이니까요.”
“68점..., 이라고요?”
“네. 24개 팀 중에서도 14위에 머물러 있지요.”
라흐마뉘의 눈밑이 살짝이지만 꿈틀거렸다.
라이훌라의 말대로라면 뉴캐슬은 챔피언십 한정, 독일 1강이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 그 자체였다.
‘팀 득점도 146점이래잖아.’
그에 반해 수비 실점률은 언밸런스한 수준이었다.
‘공격이 저리 강하면..., 수비 쪽에서도 이점을 볼 텐데...’
공격이 강하면 상대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뉴캐슬을 상대하는 팀마다 공격보단 수비에 보다 치중할 수 없는 입장이 되니까.
‘그런데도 저만한 실점률이라니...’
센터백인 그가 보기엔 자동문에 가까웠다
그마저 인구의 헌신적인 수비 리딩에 실점을 줄인 거였지만 말이다.
이쯤 되자 라흐마뉘는 왜, 라이훌라가 자신에게 이 선수와 뉴캐슬에 관해 언급한 건지 알 것 같았다.
그 생각처럼 라이훌라는 차 한 모금을 맛보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뉴캐슬로의 이적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잠깐의 적막이 일었다.
라흐마뉘는 살짝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었다.
마주한 라이훌라는 여전히 푸근한 미소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었다.
“...왜 저입니까?”
라흐마뉘는 고민 끝에 물었다.
눈앞의 라이훌라와는 벌써 10년째 에이전트와 클라이언트로서 동행하고 있었다.
KF 드레니차, 유스 클럽의 유망주에 불과했던 당시 라이훌라는 바람처럼 제 앞에 나타났다.
원래는 다른 선수를 관찰하고자 방문한 거였으나..., 그는 고작 16살에 불과했던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딱 봐도, 월드클래스의 잠재력을 지녔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랑 계약하시겠습니까? 아주 탐나서 이대로는 못 지나치겠네요.]
라흐마뉘는 거리낌없이 그 손을 맞잡았고, 시간이 흘러 라이훌라는 물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목표요?]
당시, 드레니차에서 성공적인 성인 데뷔전을 치룬 어린 라흐마뉘는 상상만으로 즐거운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훌륭한 선수들이 있는 구단에서 뛰고 싶습니다.]
[훌륭한 팀이 아니라 훌륭한 선수들이 있는 구단이요?]
[예.]
[어째섭니까?]
[훌륭한 선수들이 있다면..., 그 구단도 훌륭할 테니까요. 거기다...,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뭐를요?]
[축구는 혼자서 잘해선 죽도 못쓴다는 걸요.]
드레니차는 리그 내 최저 득점률을 기록할 만큼 공격수들의 활약이 저조했었다.
암만 최후방 센터백으로서 수차례 골을 막아내도 결국 동료의 득점이 터지지 않으니 끝에선 맥이 빠져 패하기 일쑤였고 말이다.
그런 경험을 온몸으로 체감했기에, 어린 시절의 라흐마뉘는 재차 말했다.
[이왕이면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는 구단에서 리그 경쟁을 하고 싶습니다! 그럼 기타 고민 없이 내 역할만 잘하면 되잖아요?]
현재.
때마침 라이훌라는 답했다.
“당장 제 고객 중에, 당신만한 수비수도 없으니까요.”
“하, 하하.”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던 라흐마뉘는 웃음을 흘렸다.
한편으로는 감동이었다.
눈앞의 에이전트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우선 목표를 여전히 기억해내며 이렇게 찾아왔으니까.
이어 그는 다시 한번 태블릿 PC 속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
화면 속 인구는 득점 후 역주행 세레머니를 펼친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으로 추정되는 관중들은 무릎 슬라이딩을 선보인 인구를 향해 격분하여 온갖 욕설을 퍼붓는 채로.
‘표정만 봐도 딱 그래 보이네.’
하늘에선 쓰레기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말이다.
와중에 인구는...,
‘세상 즐거워하고 있어.’
머리 위로 물병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데도 그는 악랄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깡다구도 보통 깡다구는 아닌 것 같았다.
“만족, 하십니까?”
라이훌라가 넌지시 물었다. 라흐마뉘는 이제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뉴캐슬로, 이적하고 싶습니다.”
마인구라는 스트라이커도 스트라이커지만..., 확실히 EPL 진출은 라흐마뉘에게 있어서도 탐나는 제안이었다.
꿈에 그리던 빅리그로의 진출이니까.
거기다 에이전트가 말하지 않았나.
‘수비 실점률이 67점. 24개 팀 중 14위...’
그 말인즉슨,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는 소리였다.
라이훌라는 마치 당연히 자신이 응하리라 여긴 것처럼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늘 그래왔듯 저는 당신에게 최대한 이로운 계약을 주도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요.”
"늘 그래오셨죠."
라흐마뉘는 긍정했다.
그러다 문득, 라흐마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예?”
“아니, 눈 밑이 너무 거무튀튀하신 거 같아서요. 볼살도 좀 들어가신 것 같고...,”
그 말처럼 미노 라이훌라의 눈밑엔 검은 그늘이 져 있었다.
복스러웠던 볼살은 배탈로 고생이라도 한 양 움푹 들어갔고 말이다.
이야기 내내 평온하기 그지없던 라이홀라는 처음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 하하. 그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불현듯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한 고객의 친절한 초대에, 아무 생각 없이 향했다가 마주했던 무한 놀이 지옥을...,
[꺄하하하핫! 삼촌! 삼촌 퐁퐁 같아!]
[하, 하하하!]
[삼춘은 오늘부터 곰돌이야!]
[고, 곰돌이 좋지요...!]
[그럼 곰돌아! 목마 태워져어!]
[곰돌아!]
[예에? 꼬마숙녀님?]
[왜 안달려...?]
[...?]
[달려줘어! 말처러엄! 다닥! 다닥!]
* * *
6월.
이적시장 개막과 함께 뉴캐슬은 새로운 영입생을 발표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핵심 센터백, 아미르 라흐마뉘! 이적료 1200만 파운드(한화 193억)에 4년 계약 뉴캐슬행 확정! 연봉은 150만 파운드(한화 24억)!]
디나모 자그레브가 유럽 5대 리그에 속한 구단은 아니었기에, 라흐마뉘의 이적에 툰들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의 축구에 미친 자들은 놀라워했다.
- 이 녀석, 크로아티아 리그 최고의 수비수잖아!
ㄴ 맞아. 이번 연도랑 지난 연도! 2연속 리그 베스트에 뽑힌 센터백이지!
- 키도 큰 데다 발밑 능력이 좋은 선수야. 저돌적이고 공중볼 경합 능력도 좋지! 희소성인 양발잡이기까지... 크으!
물론 뉴캐슬의 영입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미르 라흐마뉘의 영입 소식이 있고 고작 하루 뒤....,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랑스 리그,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신성, 오렐리앙 추아매니 영입 확정! 이적료 1100만 파운드(한화 177억)! 연봉은 100만 파운드(한화 16억)로 추정...! 4년 계약!]
< 092. 늑대가 되기로 했다 (10) > 끝
ⓒ 강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