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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빅클럽 (26) >
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
138화 빅클럽 (26)
리버풀의 라인 고저는 상당히 높았다.
최종 수비수까지 하프라인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그만큼 배후 공간 노출이 심해지지만 장점도 극대화된다.
바로 위르갠 클롭의 게겐 프레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4면 압박.
퍼억-!
후반전 21분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가감 없이 작동했다.
어김없이 조던 핸더슨이 악착같이 달려들어 뉴캐슬의 소피안 암라바트의 발아래서 볼을 빼낸 데 성공한 것이다.
“fuck...!”
중앙 지역에서 휘청거리며 볼을 빼앗긴 암라바트는 짧게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좌우, 앞뒤로 바짝 붙었던 리버풀 선수들은 그새 제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한 사람 같을 정도로 정밀했다.
투웃-!
핸더슨은 좌측 사이드로 짧은 패스를 찔렀다.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연결받은 사다오 마네는 곧장 언더래핑을 시도-
“어딜...!”
전방에서 접근하던 뉴캐슬의 풀백, 디안드루 예들린은 즉시 마네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상체를 틀었다.
오오옷-!
허나 리버풀 서포터즈는 보다 큰 탄성을 터뜨렸다.
투우웅-!
어마어마한 스피드를 갖춘 마네가 부지불식간에 접근한 예들린보다 세 걸음 이상 거리를 벌려버린 거다.
타아아아앙-!
직후 마네는 좌측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날카로운 오른발 감아차기를 시전했다.
“내꺼어어!”
뉴캐슬의 센터백, 자말 라셀스가 박스 안에서 뒷걸음질 치다 말고 폴짝 뛰어오른 것도 바로 그때였다.
퍼억-!
[아~! 자말 라셀스! 점프 헤더로 공을 아예 골라인 바깥으로 걷어내는군요오!]
[리버풀의 크로스입니다!]
[그 직전, 모하매드 살라가 우측 에어리어로 침투하며 패스를 요청했었는데요!]
해설진의 말처럼 모하매드 살라는 파리처럼 붙어 다니는 알폰스 대이비스를 페인트로 떨쳐내자마자 박스 안으로 뛰어들었었다.
하지만 마네가 직접 슈팅을 노리자 이내 맥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조금 전의 독려의 박수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좁혀진 미간은 좀처럼 펴질 새가 없었다.
힐끗-
다시금 살라는 뒤쪽을 보았다.
정확히 하프라인.
리버풀 수비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점에 인구가 설렁설렁 걷는 게 보였다.
‘저놈...,’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전반전만 하더라도 승리를 자신했는데, 압도적인 지표를 가져가고 있음에도 추가 득점이 터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단 한 골 차잖아.’
백날 골망을 노리고자 두드려도 골이 터지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다.
더욱이 후반전 20분이 흐른 시점에 상대의 눈먼 슈팅이 득점으로라도 이어진다면..., 이건 이것대로 난제가 아니던가.
한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과는 별개의 불길함이 자꾸만 살라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대체 뭐지...?’
일단 인구의 저 느릿한 움직임부터가 거슬렸다.
‘딱히 득점을 노리려고 하는 것도 같지가 않아.’
전반전부터 그랬다.
비록 유효슈팅 두 개를 기록하긴 했다만, 살라가 보기엔 적극적으로 수비수의 배후를 노리지 않았다.
‘버질 판 다이크가 1대1로 마크하고 있다곤 해도...,’
위르갠 클롭은 인구를 예의주시하는 만큼 버질 판 다이크에게 특별 지령을 내렸다.
인구를 직접 마크해 봉쇄하라는.
그리고 단순히 흐름만 놓고 보면 인구는 버질에게 철저히 두 발이 묶여있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지금도 봐라.
저벅, 저벅, 저벅-
스윽!
저벅, 저벅, 저벅-
스윽!
인구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버질 판 다이크는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이에 인구는 느릿하게 걷다가도 순간 스퍼트로 배후를 뚫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를 반복 중...,
결국은 공조차 전개되지 않아 실속은 없었다.
“...”
살라는 고개를 돌렸다.
전방.
“후읏! 후욱!”
“대, 대가리가 아파...!”
디펜시브 지역을 보호하는 뉴캐슬 선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방금 전 헤더로 슈팅을 굴절시킨 자말은 이마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스윽-
살라는 다시 인구 쪽을 보았다.
설렁설렁-
확실히, 뉴캐슬 디펜시브 지역과 다르게 유독 인구 혼자만 편안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입조차 나긋이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말고 살라는 찡그린 얼굴로 홱! 홱!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결국엔 리버풀의 강도 높은 압박에 뉴캐슬은 제대로 된 공격 찬스조차 가져가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쿠는 지금 두 발이 묶인 거야.’
그리고 주장인 조던 핸더슨을 필두로 한 리버풀의 4면 압박에 뉴캐슬은 공격진에 패스조차 넣지 못하는 것이다.
뉴캐슬의 어느 선수든지 간에 공만 소유하면 동료들이 달려가 모든 활로를 차단해 막아 세우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렇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거지.’
그렇게 나름의 판단을 내리니 불길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 * *
인터넷, 또는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경기를 시청 중에 있던 한국 팬들은 스코어 1 : 0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 <인생은구만리> : 와. 전반전만 보면 2골, 3골 차까지 벌어질 줄 알았는데 은근 뉴캐슬이 잘 버티고 있네?
- <코리아넘버원밥주용> : 이거 모른다 ㅋㅋㅋㅋ 이렇게 질질 끌고 가면 뉴캐슬이 역습 한 방에 동점 골 터뜨릴지도 모름.
ㄴ <축구전문가> : 진짜 동감. 리버풀 라인이 높아도 너무 높아서 불안해 ㅠㅠ
ㄴ <코리아넘버원밥주용> : 너 콥이니?
- <인쿠마> : 오늘 뉴캐슬 수비가 생각보다 좋네요. 아주 작정한듯! 이렇게 버티다가 역습 상황에서 제발 한 골 좀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인구 형 한 골 가즈아아아!
- <앨런시어러> : 와..., 아직도 1 : 0? 리버풀 뭐하냐 ㅋㅋㅋㅋ 또 의적풀 모드 가동하는 거임? 이러케?
ㄴ <킹살라> : 의적풀 같은 소리하네. ㅋㅋㅋ 누가봐도 리버풀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구만. 1점차로 리드도 하고 있고.
단연 콥은 이 상황이 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 <스티븐재라드> : 제발! 골 좀 넣어라! 자꾸 뉴캐슬 박스 안에서 볼만 돌리지 말고!
ㄴ <푸른심장> : 슈팅도 때리던데? 겁나 오지게 많이?
ㄴ <스티븐재라드> : 근데 안들어가잖아;;;
- <클롭은야만인> : 유효슈팅만 지금 몇 갠데 한 골이 더 안 들어가...?
- <콥콥이> : 이러다 동점 골에 역전 골 얻어맞고 멘탈 깨지는 거 아님...?
* * *
후반전 24분.
삐이이이-!
주심이 대기심 쪽을 가리켰다.
버질 판 다이크를 곁에 둔 인구는 대기심 옆에 선 두 선수를 살폈다.
‘나미 케이타랑 아담 랄라나.’
두 선수 모두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힐끗 고개를 돌렸다.
경기 내내 분투한 조던 핸더슨과 배이날둠은 교체 사인을 받고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1점 차로 앞서고 있는 만큼 그들은 느릿한 걸음걸이로 향했다.
이에 예들린과 알폰스가 연달아 달려들어 항의하며 한차례 소동이 일었다.
“빨리 좀 나가지?”
“네가 뭔데 나보고 빨리 나가라 뭐라야?”
“뭐. 십자인대라도 끊어졌어? 아니면 이제 노장이라 그렇게 느릿하게 걸어가는 거야? 응?”
“왜? 쪼달려? 우리한테 패하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좌절될까봐?”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설렁설렁 좌우를 거닐다 말고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그 시선은 교체되고 투입되는 네 사람이 아닌 그라운드에 자리한 리버풀 선수 여럿을 살피고 있었다.
“후웃-!”“후우! 후우!”
리버풀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르지 못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뉴캐슬 진영이 자신의 진영인 양 위치한 채였다.
“...”
이어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향해 넌지시 시선을 주니 감독, 라파엘 배니테즈는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게겐프레싱은 4면 압박을 비롯해 빠른 역습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위르갠 클롭은 도르트문트 시절부터 이러한 전술을 구사해왔고 리버풀에 이르러 완성도를 높였다.
올 시즌 리버풀이 맨체스터 시티를 4점 차로 앞서나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게겐 프레싱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으~”
버질 판 다이크를 등진 채 인구는 살짝 벌어진 잇새로 옅은 숨을 토해내며 생각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다란 리스크를 떠안는 전술이기도 하지.’
첫 번째론 극심한 체력 소모라 할 수 있었다.
게겐프레싱 자체가 경기 내내 상대 진영에서 노닐며 공을 탈취하고 역습하는 과정의 연속이니까.
‘공격수며, 미드필더며 수비수며 너나 할 것 없이 말이야.’
조던 핸더슨과 배이날둠이 교체아웃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다른 또 한 가지.
‘라인 고저가 높은 만큼 뒷공간이 취약하다.’
이는 체력 소모가 커진 후반전에 이르러 더욱 취약한 면을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
리버풀은 무지막지한 공세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 골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문득 인구는 지난날 라파엘과의 전술 회의를 떠올렸다.
[최대한 디펜시브를 보호하면서 한 방을 노리는 전략으로 가는 겁니다. 롱 카운터든, 뭐든 간에.]
인구의 제안에 라파엘은 동조하며 덧붙였다.
[그럼 자넨 체력을 아끼게.]
[체력을 아끼라고요?]
[온전히 리버풀의 수비라인에 서서 확실한 기회가 왔을 때만 움직이라는 거네. 뒤는 동료들에게 맡기시고.]
말 그대로 나인 백을 가동하겠다는 소리였다.
이러한 전술은 이른 시간 자칫 2점 차, 3점 차로 실점을 허용하게 된다면 말장 도루묵이 된다.
리버풀은 충분히 어떤 팀을 상대로도 다득점을 기록할 수 있는 팀이 아니던가?
하지만 인구와 라파엘. 나아가 자리한 코치들은 누구 하나 단 일말의 고민 없이 동의하였다.
이유야 아주 단순했다.
올 시즌, 수많은 경쟁팀들과 부딪치고 싸워오면서 두 눈으로, 또 온몸으로 체감했으니까.
설령 상대가 EPL 최강 중 하나인 리버풀이라도 작심하고 극단적 수비 전략을 펼친다면 어떡해서든 버틸 수 있으리라-!
그건 6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방어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북돋우며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할 수 있어!’
‘조금만 버티자!’
‘봐! 쟤들 지금 당황한 거 보여?’
‘한 골이야! 이렇게 버티다가 역으로 골 먹히면 쟤들 맨탈 처참히 부서질걸?’
‘그러니 버텨!’
지금도 아미르 라흐마뉘는 교체투입된 나미 케이타의 슈팅을 골키퍼마냥 몸을 던져 가슴으로 막아냈다.
퍼억-!
철푸덕-!
온 몸을 날린 라흐마늬는 그만 옆으로 볼품없게 넘어졌다.
하지만 공은 전방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굴절-,
투우욱-!
이를 내려앉은 살로몬 런던이 빠르게 뛰어가 힘껏 들이박듯 헤더로 보다 더 길게 전방으로 밀어냈다.
투웃-!
바로 60분 내내 고작 3km밖에 뛰지 않은, 하프라인에 머물러 있던 인구의 발아래로.
투욱-!
동시에 인구는 버질이 뒤에서 바짝 붙어옴을 느끼며 역으로 공을 앞으로 굴렸다가 말고 터닝으로 잽싸게 돌아섰다.
씨익-
한 걸음 차에서 마주한 버질의 면상을 보고선 세상 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말이다.
투우욱-!
투우웅!
버질의 우측 공간으로 공을 길게 차 냄과 함께 쇄도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 138. 빅클럽 (2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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