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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9화 (9/130)

9화 아, 빌어먹을 신이시여

소란스러움을 들은 것일까.

닫혔던 감옥 문이 활짝 열리며 기사 리옹이 들어왔다.

그는 눈앞의 상황을 둘러보곤 표정을 굳혔다. 잠시 후, 연기가 빠지고 카멜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들어왔다.

그는 머리가 터져 죽은 주술사를 잠시 응시하더니 내게 시선을 던졌다.

이유를 묻는 눈빛이다.

눈 떠보니 벌어진 상황이라, 나도 뭐라 대답을 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조금 전 던진 말이 있는데.

“소용없을 거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놈이 한 짓이냐?”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호가 제 목숨을 살렸을 뿐입니다.”

씨익―

난 처음으로 카멜 앞에서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 미소에 답을 하듯,

“리옹.”

“네.”

“가서 주술사들을 더 데려와라.”

뭐 이 새끼야?

카멜의 지시에 리옹이 주술사 셋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비주얼과 풍기는 기운이 딱 봐도 흑주술을 다루는 놈들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영지 한 곳에 웬 주술사들이 이렇게 많아? 특히 흑주술사들은 악명이 높아 개인플레이를 선호했기에 이렇게 모여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즉, 대가를 받고 카멜 곁에 머무는 것이 분명했다.

‘회귀 직후부터 주술사들을 포섭한 건가? 어떻게?’

주술사들은 돈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아니었다. 고작 공자 신분이었던 카멜은 무엇을 제공했기에 주술사들이 곁에 머무는 거지?

‘…설마?’

순간 카멜이 공자 시절에 행했던 잔혹한 행보가 떠올랐다.

마을 여러 곳을 몰살시키고 다닌 사건.

그리고 사라진 시체들.

이때부터 싹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그 짓의 이유가 주술사들의 포섭을 목적으로 했다면 확실히 이 새끼는 미친놈이 맞았다.

인간을 대가로 지불하고 저들을 곁에 두는 것이었으니까.

‘부친이 암살자를 보낼 만도 하네.’

물론, 그 암살자 파티 중 한 명으로 내가 포함된 것은 지독한 불행이었다. 그리고, 그 불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이놈의 기억을 뽑아내는 자에게 마을 하나를 통째로 주지.”

내 생각이 맞았다.

힘을 위해 영지민도 물건으로 취급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그 잔혹한 새끼가 나를 노리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클클클, 안 그래도 제물이 부족했는데.”

“이놈은 내 거야. 눈독 들이지 마라.”

“머리가 날아간 코로토니의 시신이 안 보이나? 우습게 보지 마라.”

마을 하나면 그 수가 천에 이른다.

실로 파격적인 포상이라, 주술사들은 각자 탐욕을 드러낸 채 나를 잡아먹을 듯 다가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아, 빌어먹을 신이시여.”

평소에 관심도, 찾지도 않았던 신을 찾았다. 이딴 상황에 날 던져 놨으니 뭐라도 책임을 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주술사 한 명이 성큼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마약 중독자처럼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무서워 이 미친 새끼야.

딸랑― 딸랑― 딸랑―

이번엔 방울이냐?

주술사의 손에 쥐어진 작은 방울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끄아아악!”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 * *

퍽―!

“…….”

카멜은 주술사의 머리가 터지는 광경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첫 번째로 죽은 주술사와 똑같은 몰골로 죽은 주술사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암살자가 말한 대로 놈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주술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일 정도.

‘이게 가호라고?’

카멜은 눈썹을 찌푸렸다.

주술을 건 주술사의 머리를 박살 내는 가호라니. 이딴 가호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의 기억 속에도 없는 능력.

“끄아아악!”

뒤이어 두 번째 주술사가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가 머리를 움켜쥐더니 뒹굴기 시작했다.

눈이 뒤집히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잠시 후, 축 늘어진 주술사.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

죽었다.

카멜은 셋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을 빠르게 불렀다.

“렌구아.”

“부르셨습니까?”

“지시를 변경한다. 놈의 기억이 아니라 가호가 뭔지 알아내.”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만….”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중단해라. 문책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렌구아는 현재 그가 포섭한 주술사 중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였다.

이곳에서 그를 잃으면 앞으로의 대계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카멜은 그의 안전부터 챙겼다.

렌구아는 암살자로부터 두 걸음 떨어진 채 수정구를 붙잡고 여러 가지 주문을 외웠다.

주문마다 렌구아의 반응은 다양했다. 미간을 좁히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고, 가슴을 움켜잡거나 피를 토하기도 했다.

잠시 후, 구슬에서 손을 뗀 그는 질린 표정으로 암살자를 바라보곤 카멜 앞에 섰다.

“가호가 반응을 보이는 건 정신 계열뿐입니다.”

“자세히.”

“놈의 정신이나 영혼에 충격을 가하면 잠시 후 지독한 반발력이 돼서 돌아옵니다. 주술사들이 머리가 터지거나 미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보다시피 몇 가지 저주를 걸어봤는데….”

카멜의 시선이 암살자에게 닿았다.

부들부들 떨며 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벌레처럼 배배 꼬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육체에 건 저주의 여파인 듯싶었다.

카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계열 빼곤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우습게 볼 놈이 아닌가?’

카멜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더 높였다.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쉽게 상대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과 척지고 에토르를 돕는다면 무척 골치가 아파질 것 같았다.

“기억을 뽑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가? 재료나 제물은 얼마든지 제공해줄 수 있다.”

“…그게.”

“솔직하게 말해라. 불이익은 없을 테니까.”

“제 실력이 미천하여 저자의 기억을 건드리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오르도르 숲의 마녀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렌구아가 한 마녀를 언급하자 카멜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오르도르 숲의 마녀.

오르도르의 숲에는 수많은 마녀가 살아가지만, 오르도르 숲의 마녀라 불리는 이는 한 명뿐이다.

확실히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포섭하기엔 아직 그가 가진 힘이 너무나도 미약했다.

그녀를 불렀다가 오히려 자신이 잡아먹힐 수 있었기에, 카멜은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저주를 풀고 치료해라. 암살자 놈에게 듣지 못한 말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기억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으니, 이젠 저 암살자를 매개체로 ‘그’에게 접근해야 했다.

카멜이 그 다음 움직임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렌구아는 저주의 효과를 제거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암살자에게 걸린 저주가 제법 많아서 서두르지 않으면 불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쇠사슬에서 완전히 해방됐지만, 암살자는 지독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던 카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쯧. 오늘은 대화가 힘들 것 같군.”

“죄송합니다. 하루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낼 다시 오지. 리옹. 시체를 처리해라.”

“충.”

카멜과 렌구아가 감옥을 나가고, 리옹은 병사를 불러 시체들을 처리했다.

리옹이 자리를 비우고, 남은 병사들이 바닥의 피를 닦고 청소하고 있을 때, 쓰러져 있던 암살자가 정신을 차렸다.

“으….”

“어? 정신이 든 모양인데?”

“근데, 뭐라고 웅얼거리는 거야?”

“가까이 가봐.”

“내, 내가? 왜?”

“뭔, 쪽팔리게 겁을 먹고 그래. 손발에 수갑 채운 거 안 보여? 의식을 차리면 곧장 보고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고. 확실하게 해야지.”

병사는 창을 쥔 채 암살자에게 다가갔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암살자는 고개를 내리깐 채 작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배….”

“뭐라고?”

“배, 배고파, 이 시발놈들아.”

“…….”

살았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이번에는 내 말을 뒷구멍으로 흘리지 않고 음식이 제공됐다.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식사 바구니 안에 든 음식은 매우 훌륭했다.

빵은 부드러웠고, 수프도 달달하고 뜨뜻했다. 갓 조리해서 나온 돼지고기와 식후에 먹으라고 와인까지 내줬다.

현대 음식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퀄리티.

이건 평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닐 것이다. 제공된 음식을 통해 현재 카멜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위기는 넘긴 것 같은데.’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더는 목숨을 가지고 위협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카멜의 목표는 내가 아니라 ‘그’였으니까.

난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까지 우걱우걱 씹어 넘겼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공간이고, 머리 터진 시체까지 봤다. 그런데도 음식이 잘 넘어가는 걸 보니, 알게 모르게 환경에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조금 전 고통은 적응이 될 것 같지 않네.’

주술사의 저주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고문관에게 매질 당한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정도니, 그 고통의 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에서 보던 저주를 내가 경험하게 될 줄은….’

그래도 얻은 건 있었다.

주술사 렌구아.

놈의 이름은 나도 알고 있다.

카멜이 만든 흑주술사 단체.

[주술사들의 둥지]의 핵심 인물 중 한 명. 그런 그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신 계열이라….’

정신 쪽 공격을 흡수하거나 튕겨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일종의 반사 같은 건가?

어느 정도의 충격까지 버티고 튕겨내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은 능력이었다. 이 능력 덕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문제는 내가 터무니없이 약하다는 건데….’

육체에 걸린 작은 저주 몇 가지에 저승의 문턱을 밟고 돌아왔다.

정신 방벽이 강하다 한들 칼질 한 번에 죽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오라 1성.’

이제 갓 마나에 눈을 뜬 단계.

악당의 수하, 그 수하가 부리는 하수인들에게도 죽을 수 있는 무력.

‘갑자기 왜 눈물이 나지?’

어떻게 보면 소설 속 악당 세계관에선 최약체인 셈이다.

악당들의 세상에서 무력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 지금 상태라면 누굴 만나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필요한데.

‘빨리 강해지는 방법.’

난 고민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니 잠이 쏟아진다. 확실히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 * *

“입어라.”

눈을 떴을 때, 리옹이 나를 찾아왔다. 여시종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그녀가 내민 평상복을 보자, 내 몰골이 떠올랐다.

확실히 엉망진창이긴 하지.

고문으로 피딱지가 된 옷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옷을 벗으며 씻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시종이 물통을 가져와 내 몸을 닦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호의?’

카멜의 의중이 의심됐지만, 난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렌구아가 약초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탓에 냄새가 지독했거든.

그래도 렌구아가 신경을 써서 치료한 덕분에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내 몸은 걷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병 주고 약을 준 셈인데, 이것조차 감사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서럽다.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자, 리옹이 철문을 열었다.

“따라와라.”

난 리옹의 뒤를 따라 철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횃불로 이어진 끝없는 통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철문이 존재했다. 지하 감옥은 독방 구조로 이뤄진 듯 보였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계단을 보며 드디어 태양을 보나 싶었는데,

‘응?’

리옹은 위층 계단이 아닌 아래층 계단으로 나를 이끌었다.

왜 지상이 아니라 지하로 더 내려가는 거지?

여기 지하 감옥이잖아.

“어디로 가는 겁니까?”

“…….”

리옹이 대답해줄 리 없다고 예상했기에 난 욕설을 삼키며 그 뒤를 따랐다.

지하 3층?

지하 4층?

지하 감옥은 생각보다 깊었다.

나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는 가장 밑층까지 내려왔을 때, 리옹이 눈앞에 닫힌 커다란 철문을 톡톡 두드렸다.

천천히 열리는 철문.

그리고,

―살려줘!

―아악!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

피 냄새와 악취.

‘설마, 아니지?’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을 때, 문이 활짝 열리며 안쪽 광경이 드러났다.

“시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조용했던 독방 감옥과 달리, 이곳은 수많은 인간이 갇혀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긴 복도 양쪽으로 철창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안에 갇힌 엄청난 수의 사람들.

그들은 나를 보자, 살려달라며 아우성쳤다.

그 복도 끝,

그곳에서 카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식탁, 화려한 만찬을 준비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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