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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45화 (45/130)

45화 한번 믿어보려고

키에엑―

으어! 으어!

라웁 숲, 실험체 감옥을 가득 채우던 키메라들의 괴성이 밤새 울렸다.

키메라들은 밤새 숲을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하루가 더 흘렀을 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천천히 감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숲은 적막에 휩싸였다.

어둠으로 물들었던 숲은 서서히 밝아졌고 아침이 찾아왔다.

그 따스한 햇볕 아래,

새들의 지저귐과 동물들의 울음이 적막을 깨고, 숲 분위기에 변화를 불러왔다.

들썩―!

땅이 반응을 보였다.

땅이 움푹 꺼지더니 잠시 후 일단의 사람들이 땅속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퉤!”

칼은 입 속에 가득 담긴 흙을 뱉어내며 이를 갈았다.

무려, 이틀이다.

보통 반나절이면 물러나는 키메라들이 장시간 머무는 바람에 땅속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들 무사해?”

칼의 부름에 흙을 털고 나오던 수하들이 칼 앞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표정에 힘이 없다.

장시간 베텔의 독으로 심장에 무리를 준 탓에 모두가 허약해져 있었다.

그중에는 엘튼도 있었다.

아서와 헤어진 엘튼은 곧장 칼이 표시해둔 은신처로 돌아와 땅굴로 합류했다.

휴식만 취하면 괜찮아질 현상이라, 칼은 모두에게 휴식을 명하곤 엘튼만 불렀다.

“움직일 수 있지?”

“네.”

“둘러본다.”

주변에 키메라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확인이 필요했다.

칼은 엘튼과 함께 숲을 거닐며 수색을 시작했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흔적을 살핀 칼은 키메라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키메라뿐만이 아니었다.

“모조리 잡혀간 모양이네.”

잡혀 온 이들이 씨가 말랐다.

칼의 말에 엘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갇혀 있던 이들 중 남아 있는 이들은 없었다.

어제 습격으로 살아남은 존재는 칼 일행이 유일했다.

아서의 조언대로 이틀을 땅속에 더 머물렀던 게 일행을 살렸다.

칼은 엘튼과 함께 아서가 머물렀던 들판에 도착했다.

“녀석은 이곳을 벗어났겠지?”

“그럴 겁니다.”

“다크 엘프와 만났다고 했지?”

“네. 서로 아는 사이 같았습니다.”

엘튼에게 상황을 보고받았기에 칼은 아서의 상황을 떠올렸다. 엄청난 강자와 동행 아닌 동행을 하게 됐다고 했는데, 어디 가서 개죽음을 당할 녀석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슬슬 돌아가자고.”

칼은 아지트로 돌아와 곧장 움직일 준비를 했다.

아서의 말대로라면 숲에 큰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그걸 확인해봐야 했다.

칼 일행은 마법진 경계를 앞에 둔 채 잠시 대기했다. 졸졸졸 흐르는 냇가 너머로 칼이 표시해둔 경계선이 보였다.

잠시 경계선을 내려다본 칼은 느리게 선 앞으로 발자국을 내디뎠다.

긴장감이 흐르고,

“…….”

경계선을 넘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몇 발자국을 더 걸은 뒤 등을 돌리자, 일행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수하들.

모두 놀란 표정들이다.

경계선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칼이 조용히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자, 엘튼을 선두로 수하들이 경계선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사라지는 모습 없이 그대로 경계선을 넘어왔다.

‘녀석의 말대로야.’

이틀 뒤 키메라 무리가 사라지면 마법진이 사라질 것이란 말.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이 정도로 확실한 정보를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칼은 아서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서는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했지만, 사실 정보 교환에 가까웠다.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반대로 많은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화는 칼의 다음 행보에 큰 변화를 줄 정도였다.

칼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 사이,

“드디어…….”

“공기가 다른 것 같아.”

수하들은 모두 들뜬 표정으로 숲을 둘러봤다. 고작 한 걸음 차이인데, 숲 분위기가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지옥 같은 장소에서 빠져나온 것이니 감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엘튼은 그 분위기 사이에서 조용히 물러나 칼 곁으로 붙었다.

칼의 다음 행보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

칼은 엘튼을 바라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라면 에토르 영지 주변에 거점을 두고, 크룩스에 복수할 기회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엘튼.”

“네.”

“지금껏 그 녀석의 말대로 움직여서 손해를 본 적이 있던가?”

엘튼은 칼이 언급한 그 녀석이 누군지 바로 눈치챘다.

“경험상 없습니다.”

“녀석이 내게 청사진 하나를 제시했어. 어떻게 생각해?”

“전 칼 님을 따를 뿐입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엘튼의 표정에서 아서에 대한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단단한 성정만큼이나 쉽게 믿음을 주는 인물이 아닌데,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엘튼의 마음을 얻게 된 건지 신기했다.

“녀석에게 뭐라도 받았어?”

“목숨을 빚졌습니다.”

“꽤 비싼 걸 받았네.”

‘뭐, 나도 마찬가지인가?’

칼은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 보는 눈은 엘튼보다 자신이 더 까다로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녀석의 과거가 궁금했다.

고작 신입 암살자일 뿐일까.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신비한 인물.

‘더 궁금해지네.’

크룩스 따위가 담을 수 있는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복수에는 힘이 필요한 법이죠. 그 힘을 빌려줄 인물을 소개해줄까요?]

크룩스의 복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 녀석이 해준 말이 있다.

‘처음에는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한 사내만 영입할 수 있다면 복수는 식은 죽 먹기라고 했던 녀석의 말을 이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먼저 움직이라 조언했던 녀석.

“블라이어 영지로 간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크룩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 인간이 블라이어에 있다고 했거든.”

“설마, 블라이어 성주입니까?”

블라이어의 성주, 카멜 블레이저.

엘튼의 물음에 칼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카멜은 크룩스를 단숨에 짓밟을 힘을 가졌다. 하지만 칼이 생각하는 인물은 그가 아니었다.

“성주에 오른 카멜은 크룩스와 판을 짜고 혈육을 도륙한 인물이라더군. 녀석이 그 임무의 당사자이니 확실하겠지. 블라이어 성주는 크룩스와 한편일 수 있으니 오히려 적에 가까워.”

“그럼 누구를 찾아가는 겁니까?”

칼은 아서의 말을 떠올렸다.

그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할 경우 복수를 넘어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훗날 블라이어 영지와 적이 될 남자라고 해야 하나?”

“네?”

현재는 금광에 갇혀 노역 중이라고 했으며, 아서는 그를 길 잃은 영웅이라 표현했다.

블라이어 가문의 전(前)대 기사 단장이자, 5성급 실력자.

‘록터 펠리스.’

괜히 길을 잃은 영웅이라 표현한 게 아닌 만큼 아서는 그를 섭외할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광산을 탈출한 직후가 영입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지.’

언제까지 광산에 갇혀 지낼 인물이 아니라고 했으니, 블라이어 영지에 머물고 있으면 록터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아서의 정보가 확실한지 사실 확인부터 할 생각이었다.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한번 믿어보려고.”

[한번 믿어보시죠.]

떠나기 전 녀석이 팔찌를 던지며 자신에게 했던 말.

그 모습에서 확신이 생겼다.

한번 믿어본다.

그리고 기다려볼 생각이다.

녀석의 귀환을.

결정을 마친 칼 일행은 록터 펠리스가 갇혀 있는 블라이어 영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카멜의 조력자로 훗날 피의 정복에 한 발을 담갔던 악당 조력자 칼 바스타인.

그런 그가 배덕의 기사이자, 카멜의 대항마였던 영웅 록터의 조력자로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 * *

라웁 숲 중심부에는 하늘 끝까지 솟구친 오래된 절벽이 존재한다. 한눈에 담기 힘든 이 거대한 절벽은 숲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지만,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아니, 정확히 절벽으로 접근하기 전에 습격으로 죽거나 사라졌다는 게 정확했다.

두두두두두―!

지축이 울리며 주변 숲 사이로 짙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숲과 먼지를 뚫고 수백의 키메라 무리가 절벽으로 접근해왔다.

누구의 발길도 허락지 않았던 절벽의 공간은 키메라들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키메라들은 절벽으로 다가가더니 곳곳이 벌어진 절벽 틈새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 무리에는,

으어어―!

황소를 닮은 키메라 무리도 존재했다.

절벽 틈새 안쪽 공간은 동굴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어지럽게 이어진 미로 속에서 키메라들은 흩어지고 뭉치길 반복하며 절벽 안쪽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잠시 후, 키메라들은 절벽 중심부의 드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바닥에 수많은 구멍이 뚫린 공간이었다.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구멍이었다.

쿠웩!

키메라들은 그 구멍 앞에 한 마리씩 서더니, 속에 있던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수거해온 실험체들이 구멍 아래로 하나둘 쏟아졌다.

하나같이 의식이 없는지, 구멍 안으로 추락하듯 빨려 들어갔지만, 누구 하나 비명을 지르는 이가 없었다.

물론 그중에는,

“우읍!”

양손으로 신음을 틀어막고 있는 멀쩡한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으!”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더니 추락이 시작됐다.

키메라가 날 토해낸 것인데, 롤러코스터를 타고 미끄러지는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다.

허우적거리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시야조차 어둑어둑해서 긴장감이 올라왔다. 잠시 후, 어둠이 사라지더니 흐릿한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찾아온 차가운 감촉.

풍덩―!

“……!”

호수에 빠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우적거릴 틈도 없었다. 무언가가 다가와 내 몸을 거칠게 낚아챘기 때문이다.

허공을 부유한 순간,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떴다.

온통 붉은 공간이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난 내부 풍경.

‘…이런 시발!’

욕설이 절로 나왔다.

호수 주변으로 끝없이 뉘어진 인간들이 보였다. 그 수가 천 단위로 셀 수 없이 많았다. 흡사 시체 처리장에 온 느낌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네.”

중얼거림도 잠시, 나도 늘어진 인간 중 하나로 분류되어 구석에 던져졌다.

잡혀 온 이들은 체액에 긴 시간 중독되어 모두 의식이 없는 상태 같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눈에 띄기 쉬워서 우선 기절한 척 연기를 하며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키엑! 키엑!

내 머리 위로 소형 키메라들이 바삐 돌아다녔다.

촉수 같은 기다란 팔을 달고 다니는 녀석들이었는데, 호수 주변에 자리를 잡고 물에 빠진 이들을 낚아채듯 건져내고 있었다.

살펴보니 이곳은 수거해온 실험체들을 한곳에 모으는 장소 같았다.

‘펜리도 이곳으로 왔겠지?’

그녀의 능력이라면 이곳을 충분히 빠져나가겠지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지 않은 이상,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엘프라면 분명 다른 공간으로 격리될 거야.’

그것을 증명하듯 인간과 달리 이종은 잡혀 온 즉시 어디론가 이송되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인간이잖아, 멍청한 괴물 새끼야!”

인간의 언어.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이곳에 존재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키메라에게 자연스레 지시를 내리는 존재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신체 일부가 괴물의 팔다리로 이뤄져 있어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다만, 그들은 이성이 존재했는데, 키메라를 부리는 것을 보니, 도미닉이 부재중일 때 이곳을 책임지는 관리인들로 보였다.

그들은 키메라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며 분류 작업에 몰두했다. 잡혀 온 이들의 성별, 나이, 신체 조건을 따지며 등급을 매기고 있었다.

잠시 후, 관리인들이 내 머리 위로 머리를 드리웠다.

내 차례인가?

“이 녀석, 혈색이 너무 좋은데? 중독된 거 맞아?”

“팔다리를 잘라볼까?”

“그럼 물건이 상하잖아! 멍청아!”

난 두 눈을 감고 꾹 주먹을 쥐었다.

내 몸을 훑어보는 끈적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들 뒤를 따르는 수십 수백의 키메라 무리.

쫄린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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