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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46화 (46/130)

46화 도미닉 연구소

그들은 기괴한 팔을 움직여 내 얼굴을 붙잡고 살폈다. 다른 이는 구슬을 조작해 내 몸을 살폈는데, 잠시 후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순도 높은 마나가 감지돼.”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육체 능력과 밸런스도 최상, 먹이나 재료로는 쓸 수 없는 등급인가? 주인님의 실험실로 옮겨야겠는데?”

“한 달에 한 번 볼까 하는 최상품이 연달아 잡혀 오다니.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좋아하시겠어.”

품평은 아주 후하게 끝났다.

의식이 있다는 것을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최상품이 연달아 잡혀 왔다고? 왠지 그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순간 어깨 부분이 시큰거렸는데, 큼지막한 도장이 찍힌 자국이 보였다.

최고 등급을 표시한 것인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고로 분류된 것치곤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난 키메라들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몰래몰래 주변을 쉴 새 없이 살폈다.

잡혀 온 이들부터 키메라 무리까지, 엄청난 머릿수가 머무는 만큼 공간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여럿 존재했는데, 난 그중 가장 작은 동굴로 이송되었다.

최상품이라서 그런지, 관리인도 한 명 붙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잠시 후, 철로 된 거대한 문 앞에 관리인이 멈춰 섰다.

문 앞에 관리인이 손을 대자, 철문이 흔들리며 천천히 열렸다.

안쪽으로 들어온 관리인은 멈칫하더니 한 곳을 노려보며 신경질을 부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안쪽 공간에는 또 다른 관리인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실험대 위에 누군가를 올려놓고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기 드문 실험체가 도착했잖아. 너도 맛 좀 볼래?”

“또 건들려고?”

“지금껏 봤던 것 중 최고야. 보라고.”

조금 전 신경질은 어디 가고 날 데려온 관리인은 날 구석에 내팽개친 채 동료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험체?’

아, 나 말고 또 다른 이가 있다고 했지.

내 몸을 옥죄고 있는 키메라의 눈을 피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관리인 쪽을 바라본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시시덕거리는 관리인들 실험대 밑 쪽으로 흘러내리는 금발이 보였다.

어째 익숙한 머리 색깔이다.

젠장, 제발 건들지 마.

“주인님이 곧 오실 텐데, 위험한 거 아니야?”

“즐기기엔 충분한 시간이야. 어차피 사라질 몸뚱이인데 건드린다고 티 나겠어? 우리 몰골을 보라고. 괴물까지 됐는데 보상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맞는 말이야.”

“피부를 봐, 그 희귀하다는 다크 엘프라고. 몸매 죽이지 않아? 흐흐흐.”

괴물로 변해도 밝히는 건 똑같은 건가?

욕망을 품고 있는 걸 보니, 인간의 이성을 가진 놈들로 보였다.

음심을 품은 관리인들의 대화에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아서, 자살 스위치를 누르려는 저놈들을 말리고 싶었다.

“가슴부터 볼까? 여기 단추부터 풀어…… 끄아아아아악!”

역시나 이미 늦었나.

슬슬 움직일 때가 된 모양이었다.

난 기습적으로 몸을 튕기면서 소리 질렀다.

“펜리!”

처절한 비명이 터진 순간 그녀를 다급히 불렀다.

그녀가 위험에 빠져서는 절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성이 있는 놈들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놈들을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웠다.

“죽이면 안…!”

이어지던 외침은 키메라의 움직임에 단절됐다. 날 붙잡고 있던 키메라가 긴 팔로 내 목을 거칠게 조여왔다. 서둘러 오른팔을 뻗어 키메라 입 속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번쩍―

“크에에엑!”

황금빛이 입 속에서 터져 나온 순간, 키메라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땐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몸매를 운운하던 관리인은 형체가 갈가리 찢겨 핏덩이로 변해 있었다.

“화끈하게도 조져놨네.”

다행히 한 명은 살려놨다.

날 끌고 온 관리인은 복부에 꼬챙이가 박힌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러댔는데, 그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정보도 좋지만, 안전도 중요했다. 소란에 바깥 괴물들이 모조리 몰려올 수도 있는 상황.

난 다급히 펜리에게 다가갔다.

“키메라들이 몰려올 겁니다!”

“안 올걸?”

“네?”

“소리를 차단했거든.”

펜리는 늘씬한 허리를 쭉 펴며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그제야 반투명 막이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까지 알고 있는 거야?

‘배우면 진짜 개꿀일 것 같은데.’

마법의 유용함을 다시금 느꼈지만, 미련을 접었다.

‘마력’은 나와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악!

듣기만 해도 움츠러들 정도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펜리의 손이 어느새 벽에 매달린 관리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정확히 심장이 자리한 부위였다.

진짜 살벌하네.

행동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여자였다.

“입도 안 열었는데 죽이려고요?”

“이 녀석이 인간으로 보여? 이 정도로 안 죽어. 이미 테스트도 해봤어.”

“…테스트?”

설마, 관리인 하나를 핏덩어리로 뭉개놓으면서 신체 구조를 확인해본 거야?

무서운 년.

펜리와 절대 적이 되면 안 될 이유가 또 생겼다.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어야겠는데?

그녀는 관리인을 돌아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심장을 움켜잡고 쭉 잡아당기자, 관리인이 피를 토해내며 살려달라 빌었다.

이딴 고문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엘프들은 어디에 있지?”

심장이 튀어나오려고 하자, 관리인은 자동 로봇처럼 아는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심지어 묻지 않은 것까지 말해줬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에겐 마석이 아닌 심장이 존재했다.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뇌나 다른 작업을 해놓지 않은 건가?

우리에겐 좋은 일이었다.

“먹이? 먹이로 줘?”

관리인의 대답에 펜리의 표정이 굳었다.

“이, 일반 엘프들은 먹이로 던져집니다!”

“누구의 먹이로 말이지?”

“그건 저도 잘…… 크, 크아아아악!”

“네 심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모,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중심부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지는 이들을 ‘먹이’라고 표현할 뿐, 구덩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했다. 몇 차례 심장을 주물럭(?)거려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펜리는 그 외에 쓸만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한 후 슬쩍 미소를 지었다.

관리인의 눈에는 그 미소가 악마의 미소로 비쳤다.

“사, 살려주겠다고…!”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퍼석―

심장이 으스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관리인은 곧 축 늘어졌다.

펜리는 피 묻은 손을 털어낸 뒤 곰방대를 물었다.

그 사이, 난 실험실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있었다.

도미닉의 개인 실험실이라고 했다. 분명 쓸만한 물건이 있을 것이다.

잡혀 온 이는 우리가 전부였는데, 우리 주변에는 실험체를 묶어두기 위한 실험대들과 기괴한 형태의 실험 도구들이 테이블 위에 즐비했다.

‘끔찍하네.’

곳곳에 피의 흔적이 한가득해서 공포스러웠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하나.

내 시선은 곧 커다란 책상에 쏠렸다. 도미닉이 쓰던 것 같은데, 서랍 이곳저곳을 열다가 작은 철제 상자를 발견했다. 살펴보니 열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여는 거지? 부숴볼까? 하지만 마법사의 보관 상자라 섣불리 건드리기가 껄끄러웠다. 상자를 흔들며 귀에 대보고 있는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 잠금장치가 걸린 거야.”

“풀 수 있습니까?”

“안에 든 것의 절반을 내게 준다면?”

“샤르바딘을 구하러 온 거 아닙니까?”

“돈 될만한 건 취하면서 가는 주의라.”

하여튼 욕심만 그득그득한 년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나눌 수 없는 것이라면 공유하는 것으로 하죠.”

“좋아.”

“약속 지키십시오.”

“날 뭐로 보는 거야?”

당신을 잘 아니까 그러는 거야.

난 그녀에게 상자를 넘겼다. 어차피 마법에 문외한인 내겐 제안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상자를 붙잡고 잠시 살펴보던 펜리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법 장치를 풀 퍼즐을 찾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두 손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굳게 닫혀 있던 상자가 덜컥 소리와 함께 열렸다.

기대감으로 입술을 혀로 핥던 그녀는 곧 안을 살피곤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가 생각했던 물건이 아니었던 모양.

그녀가 상자에서 꺼낸 물건은 한 권의 공책이었다.

곁 표지에 새겨진 문양.

불타오르는 심장을 본 순간, 난 짧게 신음을 흘렸다.

‘도미닉의 키메라 연구 일지다.’

저 공책에는 일평생 도미닉이 인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연구 지식이 집약되어 있었다.

흑주술사나 흑마녀, 흑마법사처럼 인간을 매개체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이들에겐 엄청난 보물.

물론, 공책의 가치를 알아봤을 때의 얘기였다.

“이게 뭐야?”

책을 뒤적거리던 펜리는 미간을 좁혔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였기 때문이다. 혹여나 마법 처리가 됐는지 살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꽝인데?”

반짝이는 보석이 아니자, 흥미를 잃어버린 표정.

페이지를 파르륵 넘기던 그녀는 책을 그대로 태워버리려고 했다.

“무, 뭐 하는 짓입니까?!”

돈을 성욕보다 더 밝히는 욕심쟁이에다, 무서운 년이지만 이건 못 참는다.

나는 다급히 공책을 낚아챈 뒤 피어오른 불똥을 탁탁탁 털어냈다.

이 미친 엘프가 방금 뭔 짓을 하려고 한 건지.

이 연구 일지는 훗날 학살자의 진영인 ‘주술사들의 둥지’로 넘어가 주술 위력을 두 단계나 높이는 역할을 한다.

내가 카멜이었다면 당장 저년을 죽이라고 외쳤을 거다.

학살자 역시 이 연구 일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앞장이 다 탔잖아요!”

“빈 쓰레기를 태우겠다는데 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노려봐?”

“소유권은 저에게도 있는 거 아닙니까? 살펴볼 시간은 줘야죠.”

“흐응.”

펜리는 곰방대를 물고는 뻐금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설마 내 반응에서 뭔가를 눈치챈 건가.

눈치 빠른 년이니 그럴지도.

백지에 적힌 내용을 보려면 특수한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알려줄 것 같아?

“움직이시죠. 샤르바딘은 ‘제단’ 쪽에 있을 것 같으니까.”

“제단?”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꾼 효과가 있었다.

뭔지 모를 책보단 샤르바딘의 생사가 그녀에게 훨씬 중요할 거다.

난 소설의 정보 일부를 그녀에게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관리인이 털어놓은 정보가 있어서 말하기 쉬워졌다.

“먹이를 던져놓은 구덩이를 말하는 겁니다. 끌려오기 전에 저들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구덩이를 ‘제단’이라고 말하더군요.”

펜리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제단이라는 건, 누군가를 모시는 장소를 말한다.

미치광이 마법사가 어떤 존재를 추종하고 있다는 말인데.

“어떤 존재의 똥구멍을 빨고 있는 거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샤르바딘이 그 제단에 던져졌다는 겁니다.”

샤르바딘은 뛰어난 미모와 달리, 무력은 평범한 엘프였다.

먹이로 간주됐을 것이고, 실제로 그녀의 유골은 제단에서 발견됐다.

샤르바딘은 지금 제단에 갇혀 있다.

‘문제는 생존 여부인데.’

샤르바딘이 잡혀 온 날짜가 이틀 전이었다는 정보를 얻었다.

시일이 제법 흐른 뒤라 생존을 확신하기 힘든 상황.

“먹이로 던져졌다면 그 먹이를 탐하는 존재도 있겠죠.”

“그 존재가 약하거나 소화불량이길 빌어야 하나?”

이틀 전에 샤르바딘을 포함한 수백에 달하는 이종을 한꺼번에 제단의 먹이로 던졌다고 했으니, 그것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실제로 포식자는 한 마리이니까.’

서둘러야 했다.

그녀가 죽었다면 아쉬운 상황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으니까.

펜리는 곰방대 연기를 내 얼굴에 후― 불었다. 몇 번 당해보니, 이 행동은 불만을 표할 때 그녀가 보이는 행동 같았다.

불만?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아슬아슬하겠어?”

“면책 기간이 아직 하루 남았습니다. 그 안에 샤르바딘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흥!”

일주일 안에 샤르바딘을 찾으면 그녀의 생사와 상관없이 난 면책권과 함께 징표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벌써 6일이나 흘렀다는 뜻이었다.

“그래, 일주일까지 단 하루 남았지. 아주 엿 같은 배 속에서 6일을 머물렀다는 뜻이야.”

“…….”

“내가 그 안에서 쫄쫄 굶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응? 맞혀볼래? 누군가를 씹어 먹고 싶지 않았을까?”

시발, 역시 벼르고 있었나?

속 좁은 년.

왜 말 안 꺼내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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