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123화 (123/130)

#123화 쥐새끼 사냥을 시작해볼까

“…….”

푹신한 의자에 기댄 카멜은 턱을 괸 채 나른한 표정으로 영상구를 감상했다.

영상구에선 황금빛 광채가 번뜩였다.

영상이 찍힌 장소는 라웁 숲으로 복면인이 빛을 이용해 반다이크를 몰아붙이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복면인과 반다이크의 전투 장면.

반다이크는 곧 복면인의 단검에 찔려 무력화되는 것으로 장면은 마무리되었다.

렌구아가 가져온 기억 영상구인데, 카멜은 최근에 알렉스란 인물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다시 꺼내 보기 시작했다.

홀로 시간이 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영상을 살피곤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혼자가 아닌 여러 이들을 막사로 불러 모았다.

불러 모은 이들은 모두 셋.

렌구아, 리옹 그리고 아케인이었다.

카멜은 영상구를 렌구아에게 건네며 말했다.

“렌구아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 아닙니다.”

반다이크 무력화 영상은 렌구아 입장에서 알려지기 껄끄러운 약점이었지만, 카멜은 영상을 이곳에서 공개했다.

황금빛 주인의 존재는 더는 렌구아만 아는 정보가 아니었기에.

“리옹.”

“높게 평가해도 3성,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그래? 하지만 렌구아가 직접 제작한 반다이크를 이겼지. 너도 렌구아의 주술 인형을 상대해봐서 알 텐데?”

“네. 4성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실력을 숨겼을 가능성은?”

“반응 속도와 움직임을 봤을 때 여유를 둔 것 같지 않습니다.”

“3성에 무게를 둔다는 뜻인가?”

“저 영상구에 비친 실력만 본다면 3성이 확실합니다. 능력이 특출날 뿐이죠.”

“능력이라…….”

리옹의 확언에 카멜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렌구아를 바라봤다.

“복면인이 영상구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나?”

“복면인의 반응을 초 단위로 살핀 결과 첫 교전 시에는 반다이크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는 눈치챘다?”

“네. 주술 붕대를 알아보곤 그 뒤로는 빛을 이용해 반다이크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초반에는 영상구의 존재를 몰랐을 겁니다.”

“그럼 능력만 빼면 별것 없다는 뜻인데.”

“저 빛이 확실히 문제입니다.”

황금빛.

저 빛은 현재 주술사들의 둥지에서 최우선 조사 대상에 놓여 있었다. 그 덕에 일부 퍼즐이 맞춰지긴 했다.

바로 황금빛의 주인.

카멜이 가볍게 손짓하자 리옹에 초상화 한 장을 식탁에 올려놨다.

한 인물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였다.

리옹과 렌구아는 그 인물을 직접 만나봤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 입에서 나온 이름은 달랐다.

리옹은 인상을 구기며 ‘암살자 놈’이라고 했고, 렌구아는 ‘가호를 받은 빌어먹을 놈’이라고 했다.

카멜에겐 과거 ‘그’의 전달자로 자신을 찾아왔던 놈이었다.

이름 없이 ‘놈’으로 불리던 초상화의 인물은 얼마 전 스스로 이름을 부르짖으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스 마르샤. 수정구에서 나온 복면인의 인물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초상화.

구원의 성자와 라웁 숲을 함께 탈출했던 이종족들의 기억을 뽑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분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구원의 성자가 넬리토리 협곡에서 도망친 전달자라는 것을 알아냈고, 최근 혈맹을 맺은 인간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다만, 단 한 명.

“…….”

초상화를 처음 본 아케인의 반응이 이상했다.

말없이 초상화만 뚫어지게 보며 푸른 빛의 귀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이 자의 정체가 암살자라고 했는데, 혹시 어느 조직에 몸담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왜 궁금하지?”

“알려주시면 답해드리겠습니다.”

“크룩스.”

“아, 그렇군요. 역시 살아있었군요.”

“살아있다?”

“원래 죽었어야 할 인물인데, 살아있군요.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

카멜의 눈에는 아케인이 뭔가 더 숨기는 듯한 표정인데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아케인은 수하가 아닌 이득을 위해 잠시 함께하는 동반자다.

그런 아케인이 이 자리에 있는 건, ‘그’와 관련된 정보 공유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조사는?”

“둥지의 정보엔 없는 인물입니다. 마르샤 가엔 자식이 없습니다. 그 돼지 상인이 싸지른 자식이라면 가능한데. 그것까진….”

“가주패의 진위는?”

“진품입니다. 하지만 둥지에선 알렉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신분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유는?”

“돼지 상인의 혈육이라고 하기엔 너무 뛰어납니다. 게다가 마르샤 지역 주변에 그를 아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처음 황금빛의 주인을 파악했을 때, 카멜은 저 암살자 놈을 ‘그’로 의심했었다.

영상구에 나온 지리적 위치는 도미닉의 각성 장소와 근접한 연구소 숲이었기 때문이다.

반다이크를 연구소에 보낸 건 도미닉의 연구일지를 강탈하기 위함인데, 암살자에게 잡혀 임무에 실패했다.

그런데 도미닉 후아튼의 각성마저 어긋난 상황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 저 녀석이 있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알렉스란 인물의 정보를 수집할수록 의심보단 의문이 들었다.

‘…3성.’

고작 3성의 실력으로 도미닉 후아튼을 죽이고, 신명의 주인이 된 아레나를 제거할 수 있을까?

블라이어를 손에 쥔 자신조차 부담스러워서 포기한 존재를?

‘퍼즐이 안 맞아.’

분명 그놈 뒤에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흐름을 뒤틀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조직 세력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세력으로 의심되는 조직이 이름을 드러냈다.

‘헌트(Hunt).’

최근에 카멜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회귀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조직이 나타났고, 베네타는 혈맹으로 강하게 묶였다.

토바른의 세력 구도가 완전히 변한 것이다.

헌트 뒤에 ‘그’가 있다면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그때 아케인이 초상화를 집어 들었다. 그는 초상화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이 자가 ‘그’란 존재입니까?”

“며칠 전까지 ‘그’로 의심했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게 지금 판단이다.”

알렉스란 이름으로 자신에게 직접 쪽지까지 보낸 놈이다.

‘그’라고 하기엔 스스로를 너무 노출시킨다.

결정적으로,

“이 초상화의 인물이 그 신명의 주인이 아닌 모양이군요.”

“신명 목록에서 그자와 겹치는 정보가 없다. 다른 인물이 존재해.”

베일에 찬 신명의 주인.

카멜은 그 신명의 주인이 ‘그’일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며칠 전 아케인이 준 신명 목록을 떠올렸다.

[XX XXXX― 신명 사냥꾼(xx)]

[X XX XX XX]

[세이렌의 찬가(Siren's Hymn)]

[XXXXXX 심장]

[XXXX 길잡이]

[XXX 반지(XX)]

이전보다 두 가지 단서가 더 생겼다.

‘길잡이’ 그리고 ‘반지’.

하지만 이것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주어진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다.

카멜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최근 ‘그’의 신명 목록에서 노출된 정보는 없었나?”

“없습니다.”

“저번에는 어떻게 알아냈지? 분명 모른다고 했을 텐데.”

“제 능력이 아닙니다. 그건 신명의 주인이 받은 페널티입니다.”

“페널티?”

아케인은 ‘그’의 신명 목록이 추가됐다는 것을 알려왔지만, 그땐 그 목록이 무엇인지 읽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전 ‘길잡이’와 ‘반지’란 단서를 가지고 왔다.

그 이유가 페널티라고?

신명 목록에 페널티가 있다는 건 카멜도 처음 듣는 정보였다.

“신명과 관련된 맹약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여러 형태로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그 페널티가 ‘그’에겐 신명 목록의 노출이다?”

“확신하긴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노출됐으니까요.”

“‘그’가 맺은 맹약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나?”

“글쎄요. 대부분 주어진 신명과 관련 있으니 ‘사냥’과 관련 있지 않을까요? 가령 사냥에 실패를 했다거나.”

“사냥이라….”

새로운 단서를 얻었지만, 이번에도 시원하게 결론이 안 나왔다.

위안이 되는 건 ‘그’에게 점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일까.

다른 방법 또한 눈앞에 놓인 상황이었다.

‘그’의 단서가 될 녀석들이 자신의 영토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록터를 다시 잡아들인다.”

헌트의 행동 대장 록터 펠리스.

록터의 외골수 성정을 알고 있기에 그동안 믿지 않았던 소문이지만, 알렉스가 라웁 숲에서 꼬리를 드러내면서 의심이 생겼다.

록터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블라이어 영토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맴버가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알렉스와 록터, 두 녀석의 머리를 가져오면 ‘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록터에 관한 소문을 더 빨리 알았으면 좋을 뻔했어. 하필 탈출한 뒤에 듣다니….”

“…송구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리옹이 고개를 숙이며 죄를 청했다.

자신에게 록터를 감시하라 명했는데,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록터 곁에 확실한 첩자를 심어뒀는데 너무나도 쉽게 노출되면서 감시망이 뚫려버렸다.

리옹이 검자루를 움켜잡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만 내려주시면 제 손으로 직접 잡아 오겠습니다.”

“리옹 마트레인. 내가 에토르에 직접 온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대계(大計)가 코앞이다. 그대는 날 지켜라.”

“…충.”

펄럭―

순간 거친 비바람이 불어닥치며 막사 덮개가 뒤집혔다.

덮개 사이로 비추는 흐릿한 성곽의 형태. 폭우 너머 가까운 거리에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토르 성벽.

카멜은 지금 에토르를 코앞에 둔 상태였다.

“자, 의견 교환은 이쯤 하지.”

카멜은 식탁 옆에 놓인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에는 여러 말이 놓여 있었다.

특히, 코룬 강 주변에 검은 말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는데, 그중 색이 다른 말은 단 한 개뿐이었다.

새하얀 말.

표적인 록터였다.

카멜은 아케인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아케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록터의 말을 집어 들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방향을 잡곤 록터의 말을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시켰다.

“이쪽이군요.”

“정확도는?”

“거리가 있으니 오차가 있겠지만 백 걸음 안쪽일 겁니다.”

“완벽하군. 그대란 동반자를 곁에 둔 건 내게 엄청난 행운이었던 모양이야.”

“약속만 지키시면 됩니다.”

카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케인의 힘을 빌리면서 자신의 계획이 엄청난 속도로 앞당겨졌다.

특히 ‘그’의 신명 정보를 팔아 아티팩트를 긁어모은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로 인해 에토르를 손쉽게 집어삼킬 기회가 생겼다.

조금 전 아케인이 알려왔던 신명 각성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배덕의 기사라, 록터 펠리스다운 신명이로군.’

회귀 전, 록터는 그렇다 할 신명 각성이 없었다. 친형의 뒷배로 자신의 세력 형성에 지독한 방해꾼 역할을 했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로 인해 블라이어를 손에 넣는 데만 수년을 소비했다.

그래서 성주가 된 후 가장 먼저 록터부터 정리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의외의 결과였지만, 록터의 신명 각성은 지금 자신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아케인은 신명 각성자의 위치를 파악할 능력이 있었다.

록터를 잘만 이용하면 알렉스까지 엮어서 낚을 기회.

카멜이 손을 들자, 렌구아가 통신구를 들고 다가왔다.

에토르의 계획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 눈앞의 문제부터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쥐새끼 사냥을 시작해볼까?”

아케인이 록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반나절 정도.

시간은 충분했다.

그 안에 사냥을 끝낸다.

지도에 수많은 말들을 둘러보던 카멜은 자신의 패를 살폈다.

사냥개 부대.

주술사들의 둥지.

대규모 노예 사냥꾼 무리.

그리고,

“블라이어의 군대를 베네타 국경과 길목에 모조리 배치해라.”

에토르 점령에 군대가 필요 없어지면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패가 생겼다.

베네타로 빠져나갈 모든 구멍을 대규모 포위망으로 틀어막은 후 천천히 사냥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카멜은 검은 말 하나를 집어 든 후 조금 전 아케인이 놓은 록터의 말 앞쪽에 세웠다.

수정구가 빛나자 카멜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잭 그리고 하우엘. 사냥 시작이다.”

첫 번째 입질은 사냥개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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