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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16화 (216/261)

216-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1)

할짝!

“…?”

여명은 일순 정신을 차렸다.

새벽 늦게 잠이 들어 잠기운이 쏟아지는 그였지만. 평소 체력단련에 쏟은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인지, 정신의 나른함을 몸의 활력으로 일깨우는 여명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쉬고 싶은데….’

딱 15분만 주면 완전히 정신이 들 것 같으니, 약간만 다시 눈을 감고 싶은 바람이다.

한데….

할짝!

“으음….”

여명의 그러한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지 그를 자꾸만 괴롭히는 것들이 있었다.

“크릉!”

“컹컹!”

“…너희, 거기서 뭐 해?”

일순 눈이 번쩍 뜬 여명이 본 것은 자신의 가슴 위로 올라와 얼굴을 핥아대는 강아지 두 마리였다.

이제야 깼냐며 불만스레 눈살을 찌푸리는 검정 강아지, 마구 꼬리를 흔들며 마냥 반가워하는 금색 강아지까지.

앙증맞기 그지없는, 누군가에겐 최고의 모닝콜이 아닐까 싶으나.

“비켜, 이것들아.”

무거워….

만만치 않은 무게에 괴로워하며 여명은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을 따름이었다.

* * *

지저세계의 아침답게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가는 아침.

허나 보석의 빛이 밤보다 훨씬 환하게 빛을 머금으니, 마치 새벽하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치가 있다면 제법 운치가 있는 하늘이 아닐 수 없었고. 분위기 내기에도 딱 좋은 환경이다 싶다.

드륵, 드르륵!

요즘엔 보기 드문 엔틱한 형태의 커피 그라인더.

아는 지인이 일본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찾아 선물 받은 것을 여명이 직접 발품을 팔아 복원한 것이었는데, 커피광 한 명이 백에 팔라고 해도 팔지 않을 정도로 제법 희귀한 것이었다.

물론 팔지 않은 이유는 마냥 희귀하다는 이유가 아닌.

‘겨우 백만 원 가지고 누가 법구를 팔겠어.’

그에게 딱 맞는 아이템이기에 그런 것이었지만.

무림에서 전해지는 격언에서 이르길, 오래된 명검에는 영성(靈性)이 깃든다고 했다.

이처럼 질 좋은 품질에 물건이 오랜 세월을 쌓으면 물건 고유의 기운이 감돌기 마련이었고. 여명이 선물 받은 그라인더 또한 그러한 영성이 깃들어 있었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손쉽게 여명에게 알맞은 법구가 되어줄뿐더러, 이것으로 커피콩을 갈면.

“냄새가 좋구나.”

“이 사부의 코오피는 항상 마실 때마다 특별하구먼.”

“커피다, 이놈아.”

“그래, 코오피.”

“…….”

일반 커피콩을 볶아 갈았을 뿐인데도, 어마어마하게 풍성한 향이 올라오며 입매가 가지런하게 풀려갔다.

추가로 입에 머금으면 향 못지않은 풍부한 커피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으니…!

“백이 아니라 천을 줘도 안 팔지, 이건.”

오직 이 그라인더로만 낼 수 있는 맛이니 커피 매니아라면 절대 포기할 이는 없는 맛일 터.

그렇게 커피의 풍미를 즐기며 그 매력에 흠뻑 빠지며 모닝커피를 즐기고 있으니.

“크릉.”

“컹!”

…칭얼거리는 두 형제견이 그의 다리를 투박하게 쳐대었다.

마치 작게나마 불만을 표현하듯.

허나 여명에겐 그런 형제견의 칭얼거림이 다르게 다가왔다.

“끼 부리니, 너희?”

“월!”

설기가 기어이 화를 내었다.

어디서 남의 남자한테 침을 바르려고 하느냐며 분노하는 설기였고. 이에 검둥이와 밤톨이가 설기의 잔소리를 모른 척했다.

이것이 더욱 설기의 화를 돋우는 행위였을까, 설기가 다시금 울며 잔소리를 퍼부으며 기어이 엊그제처럼 검둥이와 싸웠고. 영악한 밤톨이는 형과 누나의 싸움에 살며시 빠지며 순진한 눈망울로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제 형제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커엉!”

“내 덕분이라고? 이 녀석, 말도 예쁘게 하네.”

“헥헥!”

여명은 밤톨이 녀석의 털을 몇 번 어루만져주며 흐뭇함을 느껴야 했다.

‘이런 동생 있으면 진짜 평생 업고 다니겠네.’

혈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동생인 놈들과는 천지 차이가 아닐 수 없다며 여명이 쓴웃음을 짓고는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고 같이 놀아줄 수 없는 일이니.

“컹?”

“…나중에 놀아줄게.”

더 어루만져 달라 애교를 부리는 유혹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고 놀아야 할 게 아니겠는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컹!!”

밤톨이는 순간 좋아 죽으려는 표정을 지었다.

진솔한 반응이었고. 요리사 입장에선 자신의 요리가 인정받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여기 주방은 있나?”

워낙 음식은 안 만들고 건강식만 먹는 동네인지라, 주방이 있나 싶은 불안함이 피어오르는 여명이었다.

* * *

사마윤윤.

그녀는 초조한 기색으로 검마전(劍魔殿)에 입성했다.

십칠마종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마전을 온전히 소유하여, 일종의 지주(地主)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또한 지주가 정해진 마전에선 그 주인이 곧 법도이며 왕이나 다름없으니…!

‘목이 베이는 게 아닌지, 원.’

검마종이 십칠마종의 종파 중 그나마 유순하다고 하지만. 한번 적으로 인식되면 가장 광폭한 곳이기도 하니 사마윤윤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흑천께선 무슨 생각인지, 원.’

이른 아침부터 홀연히 검마전에 가셔버린 그의 작은 주군.

그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다 못해 혹시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였다.

어찌 보면 신하의 걱정이라기보단, 모정(母情)이 아닐까 싶은 감정.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애초에 주교를 보좌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주교에게 애정이 생기는 것은 신교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전통과 같은 것.

‘너무 귀여우셔서 원.’

그렇게 흑천주교를 떠올리며 입가가 헤프게 벌어지기 직전, 사마윤윤은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 사마윤윤이 아닌가요.”

“…갈지윤. 당신이 왜 여기 있지요?”

“저의 주군께서 여기 계시니, 당연히 저도 여기 있어야겠지요.”

“금천주교께서?”

백천주교에게 검마가, 흑천주교에게 그녀가 있듯, 금천주교를 따르는 시종(侍從)이 있을 따름이니.

뇌마종(腦魔宗)의 제자이자, 신교의 차세대 두뇌라 불리며. 동시에….

“식선에게 실수를 저질렀다지요? 하여튼 무식한 짓은 혼자 다 하는군요. 제발 자칭 기환학사라면 그러지 좀 말죠, 우리?”

“…….”

…말을 참 예쁘게 하기로 유명했다.

“말을, 참 곱게도 하는군요….”

“호호, 칭찬 감사해요. 하지만 칭찬을 해준다고 해도 이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을 아세요.”

“저도 충분히 아는 바이니, 그만 강조하시죠.”

“원래 반성이란 타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대충 듣지 말고, 자세히--.”

“…….”

그래, 이런 점 때문에 싫은 거였다.

‘저게 비꼬려는 의도가 없다는 게 더 화가 나!’

갈지윤의 말에는 아무런 악의(惡意)가 없었다. 그저 정말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과 남의 문제를 지적하는 성격인지라 저러는 것뿐이지.

하지만 오히려 저러한 면 때문에 더욱 기분이 상하거나, 시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 갈지윤에겐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높으신 분들은 저런 진솔하고도 담백한 점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크게 샀으며. 뇌마께서 친히 제자로 삼으시기까지 했으니, 원.

‘하여튼, 높으신 분들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어.’

“…후우, 먼저 가겠어요. 갈 소저도 금천주교를 찾길 바랄게요.”

그녀는 갈지윤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괜히 얘기만 섞어다가 더욱 불편해지는 상황이 찾아올 테니.

한데.

“같이 가도록 하지요. 어차피 저의 주군은 형님 분과 같이 계실 테니.”

“…그냥 따로 가면 안 될까요?”

“비효율적이에요. 대화 상대가 있는 편이 흥겨울뿐더러, 검마전에서 혹시라도 생길 불화를 같이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뭔….”

명석한 머리와 달리 눈치가 없는, 아니 아예 눈치 자체를 키우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미간이 떨리는 그녀였지만. 갈지윤은 마냥 싱긋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가, 같이 가는 건 좋지만 좀 떨어져서 걸어주면 안 될까 싶네요.”

“호호,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

사마윤윤은 차마 뱉지 못할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으나, 용케 참은 자신을 칭찬했다.

괜한 빌미를 만들어주었다가 흑천주교에게 피해를 줄 노릇이기에.

그래도 역시.

“식선은 어떤 분이던가요?”

“…비마동에서 파악하고 있을 텐데요.”

“그래도 문서로 본 것과 직접 본 것에는 차이가 클 테니까요. 아, 혹시 좋아하는 이상형이나 물건은 없던가요? 아니면-.”

“…….”

떨어질 것 같은 귀청이었고. 사마윤윤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질린 표정을 지을 즘.

“크릉-?”

“커엉?!”

두 여성은 일순 경직하며 다급히 뜀걸음질을 하였다.

그녀들이 모시는 두 주교의 비명과 같은 것이 들렸고. 시종일관 여유 있던 갈지윤마저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설마 두 주교에게 무슨 일이…!

콰앙!

두 여인은 단백설이 지배하는 마전이란 사실조차 잊은 채 문을 부술 듯이 열었다.

단백설의 심기를 건드릴지 모른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을 잃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공포였….

“그러게 적당히 좀 먹으라고 했지. 배탈 날 줄 알았다.”

“…크…릉.”

“커엉….”

“어휴! 네 형제들 왜 이러냐, 대체?”

“……월.”

…두 여인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 글쎄요….”

갈지윤과 사마윤윤은 눈을 끔뻑이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하고 있던 중, 순간 코끝이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고소하고도 매력적인 내음.

이 냄새는 대체….

“아, 어제 봤던 분이네.”

“시, 식선을 뵙습니다!”

“…고개 그렇게 90도로 안 숙여도 돼요. 그보다 아침은 챙겨 먹었나요? 마침 우리도 먹던 중이었는데.”

“아침? 조, 조식(早食)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침 달걀이랑 밀이 좋은 게 많아서, 빵 좀 구웠어요. 먹어봐요.”

“…….”

“응? 아아, 얘들? 맛있다고 계속 과식하더니 이렇게 됐어요.”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두 형제견을 못 말린다고 평가했고. 사마윤윤은 그제야 안심이 되면서도 낯 뜨거워 고개가 수그러졌다.

‘흑천이여,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살이 토실토실 오른 새끼돼지처럼 배가 볼록해진 주군의 모습은 차마 그를 애정하는 그녀조차 보기 창피한 것이었다.

뭐.

“…혹시, 저도 먹어도 되나요?”

자신의 옆에 있는 애처럼 뻔뻔스러운 계집애도 있었지만.

한 번씩 저러한 철면피가 부러울 때가 있다 평하는 사마윤윤이었다.

* * *

“…잘 먹네.”

여명은 자신이 구운 모닝 토스트.

그러니까 가볍게 달걀물을 묻혀 구운 토스트를 즐겁게 먹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닭 가슴살과 샐러드만 주구장창 먹는 고집스러운 이들이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인 모양이다.

‘확실히 재료가 좋으니, 뭘 해도 좋네.’

딱히 설탕을 넣지 않았음에도 밀가루 자체 당분이 워낙 좋은 밀로 만든 식빵과, 웬만한 특등급 유정란보다 훨씬 노른자와 흰자가 또렷한 달걀.

이 두 개의 재료만으로 만든 달걀 토스트는 큰 호평을 받는 중이었다.

워낙 간단하게 만든 것인지라 입가심만 되면 최고라 여겼는데.

‘설탕 뿌리는 건 선 넘으려나?’

괜히 설탕마저 찍어 먹게 했다가 인간 사료가 탄생할 우려가 있는지라 여명은 자중하기로 했다.

교리가 [건강 우선]인 동네에서 괜히 건강 망치는 길을 전파하면 그것만큼 벌 받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딸기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범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처럼 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까 하는 욕심이 생기던 중 여명은 때마침 어느 자리를 향해 시선이 갔다.

“…으음, 자운 어르신 아직도 안 돌아오셨네요.”

“얘기할 거리가 많겠지.”

“흘흘, 그냥 명복이나 빌어주거라.”

“명복이라니, 그래도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여명은 지금쯤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두 사형제를 떠올리며 마냥 태평하게 읊조렸다.

………

………

“이 사부가 과거 보여준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더구나. ‘마지막 만찬’이라는.”

“…….”

스르릉.

“그래, 어디 원하는 대로 이 사부의 음식도 가져왔으니 말해보려무나.”

“…장문사형, 이, 일단 검부터 좀 치우고….”

“어허허, 역시 그 주둥이부터 베어야 하는 것인가, 허허!”

“…….”

자운은 인자하다 못해 해탈한 것만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묻기로 했다.

수십 년 사형제로 산 정이 있는데, 이 정도는 선택하게 해주겠다는 듯.

“선택지를 주마. 팔이냐, 다리더냐?”

“…….”

“참고로 목이란 선택지도 있으니 신중히 고민해 보거라, 허허.”

“…커헉.”

자허는 광인처럼 눈이 회까닥한 사형의 눈을 마주하며 헛기침을 심하게 했다.

백 년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식은땀이 홍수처럼 나는 자허였음이다.

tmi후기

-물건에 영성이 깃들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야 하며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영성이 깊을수록 기환학사가 법구로 삼기가 쉽다.

-커피 그라인더처럼 법구가 된 물건으로 조리를 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다.

-예시로 들면 영성이 깃든 고급 안경이 있다면, 이런 안경으로 투시 능력 기능이 생긴다.

-‘잘 보인다’는 조건을 충족한 결과이고. 만약 고급 가죽 지갑에 영성이 생긴다면 금복(金福)이 생기며, 붉은실이나 연애편지 등에 영성 혹은 기력을 집어넣는다면 연애운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기능을 알고. 여명은 모쏠 남성의 짝사랑을 이루어준 일만 다섯 번 정도 있다.

-이 때문에 여명은 정작 본인은 짝이 없으면서 [연애 도사]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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