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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24화 (224/261)

224-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9)

하책(下策).

천마가 저리 평가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설기의 아이디어는 얄팍하면서도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신교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후손을 낳는다.

겨우 이런 것이 무슨 책략이라고 할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으나, 설기는 신교의 최고 걸작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같잖은 잔꾀조차 하책이라고 후하게 평가 받는 것일 테지.

“너야말로 영수에 가장 근접한 존재이니. 너의 핏줄이 더럽혀진다면 모두가 분노할 테지.”

“…….”

맞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녀는 영수에 가장 근접한 존재였음이다.

십칠마종 전부와 싸워 동수를 이룬 전적마저 있는 홍염천마는 무력(武力)만 따졌을 때 영수조차 뛰어넘는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영수 취급은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설기는 다르다.

“네가 가진 그 힘이야말로 증거이지.”

“멍….”

우우웅.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기력.

오로지 기환학사와 영수와 같은 존재만이 사용가능한 선천적인 힘.

피륙의 기능(技能)만 보았을 때 영수보다 뛰어날지도 모르는 홍염천마지만. 기력이 없다면 그것은 속이 텅 빈 만두와 다를 바 없으니.

한데 무려 천 년이란 시간이 흘러 태어난 설기의 존재는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영수의 신체와 기력.

이 두 가지 힘을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가치는 감히 측정조차 불가능하니 말이다.

만약의 얘기지만, 이러한 그녀가 성체가 되어 홍염천마와 동등한 신체능력만 갖춘다면 이제 그것은 완연한 영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데. 만약 이러한 설기가 후손을 낳는다면?

그래서 더욱 시간이 지난다면 그때는…!

“십칠마종들은 너의 자손이 틀림없이 흑원마저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더군.”

“…그래서 싫은 거예요, 멍.”

설기가 십칠마종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였다.

뇌에도 근육으로 가득 찼을 것 같은 광신도 놈들.

“그래서 더 그들 의도를 따르고 싶지 않고요, 멍.”

십칠마종과 더불어 설기의 자식을 기대하는 이들의 바람과 반대로 만약 전혀 별다른 재능도 없는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가장 큰 엿이 될 거예요, 멍.”

천 년 가까이 이어졌던 신교의 대업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닐 수 없을 터.

그렇기에 분명 치기 어리고도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수 없으나 설기는 가출을 감행한 것이다.

자신에게 더욱 큰 부담을 안기며. 자신을 마냥 도구로만 여기는 신교의 사람들을 피해서.

하지만….

“뭐,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하려는 건 이제 포기했지만요, 멍.”

“어찌하여?”

“주인이 말했어요, 멍.”

“음?”

“날 아끼래요.”

주인은, 여명은 자신의 얘기를 듣고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꾸짖거나 잘했다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단지.

-네 선택이 그런 거라면 상관없지만. …넌 괜찮겠어? 겨우 다른 사람들한테 엿 좀 먹이려고 너를 망가트리려는 건데,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야?

-월….

-그리고 우리 백설기. 자식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낳아도 되는 게 아니야. 목적만을 위해 애를 낳았다간 내 꼴 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

-…….

여명의 얘기를 기억한다.

인조영수 소리를 듣지만, 결국 태어나보니 월등한 영수의 몸으로 태어나. 현대로 따지면 하나의 소국(小國)의 지배자와 다름없는 종교 기업의 후계자이기까지 한 그녀였으며. 나름 사랑도 많이 받고 큰 것에 비해 불행한 삶만 살았던 그녀의 주인.

그런 주인이 해준 진심 어린 충고를 거역할 정도로 설기는 막돼먹지 못했다.

“그러니 하책은 버릴 거예요, 멍. 그냥 주인이랑 잘 먹고 잘살다가 훗날 잘못해서 교주가 된다고 해도, 멋대로 살 거예요, 멍.”

“…교주 자리는 실수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만.”

“제가 안 한다고 해도 십칠마종이 무장봉기를 일으킬 걸요, 멍.”

“……으음, 반정(反正)을 염두에 둬야겠군.”

천마는 제 딸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이를 소교주로 새워야 할지 잠시 고심하면서도 문뜩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여전하군.’

그녀, 아니 이제 그라고 해야 할까?

“인연이 설마 본인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질 줄이야,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군.”

“뭐라고 했어요, 멍?”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변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제 자식도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며 천마는 살며시 웃었다.

‘역시 대단하구려, 본인의 유일한 주인(主人)이여.’

천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한들 전(前)주인을 이기기는 힘들다며 간만에 즐거움을 느꼈다.

추억 어린 옛 향수를 되새기며.

* * *

한편, 부녀가 제법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여명은.

“설기를 천산까지 데리고 와준 게 어르신이라면서요?”

실질적으로 설기와 여명을 중매(?)해준 노인에게 물음을 던지는 중이었다.

“…….”

지괴는 여명의 말에 일순 눈을 끔뻑였다.

“…맹랑한 소교주 같으니, 그것까지 말해버리면 어쩌잔 건지, 원.”

“원래 걔가 좀 솔직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소, 솔직? 그 맹랑한 것이?”

지괴는 그 요망한 소교주가 유망한 후배를 얼마나 구워삶은 건가 싶었다.

‘제 본모습을 아예 숨기고 살았구먼, 이건.’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르는 지괴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소교주의 뻔뻔함이 천마신공 못지않다며.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긴 하네요. 설기를 마교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가출을 도와주다니.”

“허허, 늙은이의 장난인 것이지, 뭐.”

“장난이라….”

여명은 저 말이야말로 말장난이 아닌가 싶었다.

듣기론 그 [인조영수 계획]을 발의한 기환학사와 주술사 등의 후예가 다름 아닌 눈앞에 지괴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괴만큼 인조영수의 완성(完成)을 기원하는 자도 없을 터.

한데도 지괴는 설기를, 그들의 최고 걸작을 내보내었다.

설기가 자신들의 원대한 소망을 망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죄의식 때문인가요? 선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여명은 지괴의 행동을 죄책감에 의한 것인가 싶어 물었지만. 지괴는 망설임 없이.

“아닐세.”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후배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 같지만. 선조의 업(業)은 선조의 업일 뿐. 내겐 크게 다가오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그토록 한 가지 일에 매달린 것에는 존경을 표하는 바이네. 비록 그 길이 사마외도로 가는 길이었다고 하더라도.”

“…….”

“허허, 이런 내가 경멸스러운가?”

“…아니요. 경멸까지는 뭐.”

뜻밖이라면 뜻밖이지만. 여명은 이러한 말을 들었음에도 지괴에게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어르신도 그 천마님이랑 같이 싸운 사람 중 한 명이라면서요? 어떻게 보면 혁명가 같은 분인데, 욕할 게 아니라 대단하다고 여겨야죠.”

“크흠, 그 얘기까지 들었구먼.”

지괴는 제 업적을 늘어놓는 것이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마냥 뻔뻔한 양반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박한 느낌.

‘어째 반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마교의 기환학사인 지괴가 정상적이고, 정파의 기환학사 자허는 삼국에서 가장 기피되는 위험분자이고….

어째 입장이 반대되어도 한참이나 반대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자허 말인가? 기환학사들 중 특이한 놈들은 많지만. 그토록 괴팍하고 막무가내 같은 양반도 드물지. 나도 가능하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이니, 원….”

“…….”

저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게, 더러워서 피한다고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리라.

* * *

그그극.

“나왔네, 얘기는 많이 했고?”

“월!”

석문 바깥으로 나온 설기는 한층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교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부친과 마주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와서 그런지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진 모양이다.

여명은 기특하다며 머리를 매만져주고 있으니, 닫히고 있던 석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휙!

──가지고 가라.

“응?”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은 제법 거대한.

“열쇠?”

묵직한 것이 거의 5kg 아령은 될 법했으나,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이거 혹시, 뼈?”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

뼈로 만들어진 열쇠를 주고 나쁘지 않다고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근데 이거 진짜 뼈 맞나?’

분명 외관 자체는 뼈를 깎아 만든 것 같았지만. 묵직한 감각하며, 어딘지 쇳덩이가 손에 쥐어진 느낌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귀중한 뼈다귀 열쇠.

여명은 난감하게 고개를 갸웃거려….

──원한다면 그대에게 일어난 신비한 현상을 억제할 수도 있을 터. 물론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겠지만.

“……!”

여명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어.

그러나 천마는.

──만나서 즐거웠다.

그그그극.

석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완전히 그와 단절하였다.

마치 이 이상의 얘기는 사양하겠다는 듯.

“무슨…?”

여명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뼈다귀 열쇠와 닫힌 석문을 번갈아 보았다.

‘중요한 장면에서 뜬금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증만 유발해놓고 입을 닫은 천마였고. 물어보고자 저 석문을 열고 싶어도 원론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않을 것 같달까?

“어휴! 괜히 온 것 같아, 진짜.”

“월.”

설기는 이제야 제 심정을 알겠냐며 주인의 팔을 토닥였다.

원래 저런 답답한 양반이라는 듯.

………

………

콰아아앙!

“지괴…!”

독연(毒煙)을 풀풀 날리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의가 감도는 눈으로 이를 갈았다.

만년한철과 천잠사와 같은 절세의 보구가 온몸을 꽁꽁 동여매어 굴욕적이게도 반나절이나 교주의 곁을 떠나야 했던 기기련이었다.

이 원한을 갚지 않는다면 밤에 잠도 오지 않으리…!

물론 그를 공격한 것은.

구왕.

천마의 짓이긴 했지만.

“원망할 거라면 본인을 원망해도 좋다. 그는 본인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니.”

“…어찌 제가 교주를 원망하겠나이까. 무엇보다 먼저 무례를 범한 것은 저였으니, 교주께선 말을 거둬주시지요.”

“그럼 지괴는?”

“그 영감은 교주와 다르지요.”

“…….”

천마는 당분간 지괴를 위해서라도 피신시켜놔야겠다 다짐했다.

괜히 전우 한 명을 잃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그는, 간 모양이군요.”

그때 기기련이 복잡한 속내를 숨기지 못하며 그가, 식선이 떠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관찰하고 있었다.

천마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았고. 그녀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교주, 그는 너무 위험합니다.”

불쾌한 소리를 내뱉었고. 천마는 무심한 듯 되물었다.

“어찌하여.”

“그건….”

기기련이 식선과의 첫 만남부터 그토록 적대적이었던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괴의 평가대로 질투와 갈망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그는, 식선은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저조차도.”

“그렇군.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군.”

“…….”

기기련은 인정하기 싫지만 고개를 주억거려야 했다.

식선이 가진 방대한 기력이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선천적인 재능인지 모르겠으나, 식선을 만나는 순간부터 기기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와 같이 있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질 것 같다고.

“위험한 자입니다. 마도인의 본질을 뒤엎을 정도로.”

마도(魔道)의 본질은 투쟁과 본능.

한데 식선이란 사람과 같이 있으니 기기련은 그러한 투쟁심과 마도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내면의 짐승이 얌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파나 사파의 인물에겐 모르겠지만. 마도인에게 있어선 치명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마공이란 인간의 투쟁심과 본능을 토대로 힘을 발휘하는 무공이었으니…!

“저희의 본질을 위협당한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위험합니다.”

기기련은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신교는 약점을 만들게 되리라고.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거대한 약점이 되어 그들을 찌르는 치명적인 비수가 될지도 모를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복잡한 마음을 모조리 읽어낸 천마는.

“독마종, 그대의 말은 진실하구나. 그래, 그대의 말대로 어쩌면 그는 정말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

“허나….”

“…….”

──이미 늦은 것 같군.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기기련은 자신이 빠르게 대응하였다고 여기고 있지만. 이미 식선은 깊숙이 신교를 침투했다.

그 증거로 보아라.

뚝뚝.

“그대는 이미 졌군. 독의 종주라 불리는 그대가 이미 중독(中毒)된 것 같으니.”

“…오, 오해입니다! 이, 이건 결코…!”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유혹적인 냄새가 아닐 수 없으니.”

“!!?!”

후두둑…!

기기련, 그녀의 입에서 침이 홍수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참고 싶었다.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음에도 그녀는 입에서 떨어지는 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크으윽!”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반나절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락모락 하고 따스한 열기를 내뿜는 ‘두부’

저 두부를 타고 흘러 퍼지는 고소하고도 유혹적인 내음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먹겠는가?”

“저, 저는….”

“안 먹겠다면 본인 혼자 먹도록 하지. 본인 또한 참는 것이 힘겨우니.”

“…….”

“참고로, 그대도 잘 알겠지만 본인은 두 번 권유하지 않는다.”

그래, 천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은 권유해도 절대 두 번은 권유하지 않는 사람.

기기련은 마치 사생결단을 앞둔 사람처럼 동공이 미치도록 떨렸고. 그녀는….

“교, 교주시여…!”

털썩.

“두, 두부가 먹고 싶어요….”

“음.”

천마는 굴욕적인 자세로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 꿇은 기기련을 긍정해주었다.

“이런 패배도 있는 법이겠지.”

싸우지도 않고 절대고수에게 패배를 안긴다.

정말이지.

“그대는 여전하구려.”

전생이든 현생이든 당해낼 수가 없다고.

오늘따라 뜻 모를 소리를 자주 내뱉게 되는 천마였다.

tmi후기.

-지괴의 첫 등장은 10화이다.

-여명이 받은 뼈다귀는 기린(麒麟)의 뼈로 만들어진 일종의 드래곤 본이다.

-단단하기도 단단하지만. 부서져도 다시 복구되는 기능이 있다.

-눈치챈 독자님들도 있겠지만. 뼈다귀 열쇠는 여명의 식당과 연동되어 있다.

-뼈다귀 열쇠의 사용법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과 비슷하다.

-실사판 도르마무 놀이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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