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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요 무림식당-227화 (227/261)

227-판이 개판이면, 뒤엎으면 그만(12)

[그래, 당혹스럽고도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는 인과(因果)가 있는 법이며. 내가 한 일 또한 마냥 사사로운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 아닌,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었다.]

자허는 제 잘못을 회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의 하려 했던 일은 결코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했던 일이 아닌, 모두를 위한-!

“네에, 네에. 그러시겠죠.”

[…….]

모, 모두를 위한…!

“그래요, 무슨 사정이 있겠죠. 아주 큰 사정이. 근데, 그 사정이란 걸 밝히고 협력을 구하면 됐을 텐데. 왜 굳이 남의 물건 훔치고. 그걸 부수기까지 하냐는 거죠.”

[…….]

“변명할 말 없으시죠?”

[…크흠. 그것이….]

“됐고. 사정은 저한테 말하지 말고 변호사한테 말하세요. 아, 근데 무림에는 변호사가 있던가?”

여명의 물음에 마교의 인물들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답변을 주었다.

“법관이 있긴 해. 하지만 법관 중 저놈 편을 들어줄 놈이 있을 줄 모르겠는걸-?”

“없지, 있을 수가 없겠지.”

“불만은 없겠지 자운?”

“굽든 삶든 마음대로 하시오.”

…아무래도 자허의 변호를 해줄 인물은 없을 모양이다.

“들었죠?”

[…….]

“그래도, 영감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아! 그래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자허는 긍정적인 여명의 발언에 힘을 얻은 건지 한층 밝게 대답했다.

역시 이놈은 장문사형이랑 달리 정이란 게 있….

“그래도 제사상은 제가 차려드릴게요.”

“월!”

“제사 음식이 맛있냐고? 걱정 마. 육개장이 내 필살음식 중 하나니까.”

“헥헥!”

[……아주 그냥 죽으라고 염불을 외우는구나, 염불을.]

범죄자의 편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었음이다.

* * *

자허는 뭔가 여러 변명을 꺼내려 했지만. 그걸 들어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허가 꺼트린 불꽃은 무려.

“서, 성화가 꺼지다니….”

성화가 무엇인가던가?

신교의 삼대신보(三大神寶) 중 하나이자, 흑원이 직접 내려줬다는 불꽃이며. 십만대산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꺼지지 않는 불길.

이 불이 있는 덕분에 현재 십마대산의 주민들이 건강한 것이며. 무병장수를 누린다는 말조차 있었고. 돈이 없는 걸인조차 의원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보배와 같은 불꽃이 아닐 수 없으니.

한데 그 성화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시, 실수로 꺼버렸다?”

“들은 말로는요. 여러 실험을 해보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득이한 사고였다나 뭐라나.”

“그, 그것을 말이라고…!”

사마윤윤은 혈압이 솟구치는지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졌고. 악다구니를 쓰듯 날뛰었다.

“화내는 건 납득이 가는데, 반응이 왜 저리 극단적이야?”

“그게 말이죠….”

사마윤윤이 속한 사마세가는 배화교의 후손으로 대대로 성화를 지키는 수호자 가문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사마윤윤에게 있어 성화는 그들이 모시는 원초의 신과 같은 것이니 저토록 격한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

“음, 이거 참.”

갈지윤의 설명을 듣고 대충 사마윤윤의 반응을 이해한 여명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고. 슬며시 자허를 향해 물었다.

“자허 영감님, 대체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런 거예요?”

여명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무리 봐도 지금 이 상황은 그랜절을 몇백 번 해도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으며. 마냥 여명을 불러들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솔직히 말해 봐요. 아직 뭔가 있죠?”

[…으음.]

“시치미 떼지 말고요. 있을 거 아니에요. 저를 부른 진짜 이유가.”

[그리 확신하는 이유가 있느냐?]

“눈치 좀 챙겨요? 지금이 간 볼 상황인 것 같아요?”

[……각박하긴.]

역시 강물에 빠져도 입은 둥둥 떠다닐 양반답게, 자허는 다른 이들은 모두 심각한 상황에도 투덜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정말 막돼먹거나 책임감도 없고. 뻔뻔한 인물이었다면 여명이 화내기 이 전에 자운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 터.

자운이 잠잠히 있다는 건 아마도.

‘아직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런 여명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던 걸까.

자허는,

[쩝, 사실은 말이다. 성화가 꺼지긴 꺼졌는데, 완전히 꺼진 건 아니라서 말이다….]

“…?”

꺼진 거면 꺼진 거지, 완전히 안 껴졌다는 건 또 무슨 말일까?

여명이 의문을 보이려고 하니, 자허는 설명대신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뭐예요? 손금이라도 봐라고요?”

[자세히 보거라.]

“대체 뭘 보라는 건지…, 응?”

자세히 보라는 말에 안력을 높이니 여명은 어떤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모래만큼 작아 도저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나, 일단은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말이다.

“이거, 혹시……. 성화예요?”

자신이 묻고도 이게 정말 맞나 싶어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이딴 게 성화?

여명은 차라리 아니라는 대답을 듣길 원했으나. 자허는 역시 양심이 없었다.

[가까스로 건진 거다만. 일단은 그렇지.]

“뭔…!”

이 양반이 혹시 자기를 놀리나 싶었다. 아니, 반짝이 부스러기 한 알을 보여주며 그걸 성화라고 하면 그걸 믿어야 하는 게 맞을까?

차라리 상대방이 자신을 놀리려는 거려나, 그것도 아니면 상대방이 미쳤다고 보는 게….

‘아, 원래 미치셨지, 참.’

여명은 안쓰러운 눈으로 자허를 보았다.

“미치셔도 곱게 미치셔야 하는데….”

“월.”

“아….”

그제야 육성으로 속내가 나오고 있음을 깨달은 여명은 아차 싶었지만. 설기는 맞는 말을 했다며 흐뭇해하였다.

우리 주인은 말도 참 예쁘게 한다며.

* * *

자허가 굳이 여명을 필요로 하며 멀고도 먼 천산에서 십만대산까지 와주길 바란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혹시나 싶은 가능성을 위해서였다.]

자허 그는 어떠한 이유에 의해 성화를 훔쳤고. 그 성화를 결국 꺼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하의 자허라도 아찔할 수밖에 없었으며,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감님한테 그 정도 양심이 있었다고요?”

“월?”

[…너희는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자허는 제 취급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저지른 업보도 있고. 이 팔을 언제까지 움직일 수도 없는지라 다급히 글을 이었다.

[어쨌든, 말을 계속 잊자면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했다. 다행히 지금 보는 것처럼 성화가 꺼지기 전 미약하게나마 그 흔적을 보관할 수 있었고. 난 이것을 가지고 성화를 다시 부활시켜 볼 생각이었다.]

성화는 일반적인 장작으로 태워지는 불꽃이 아닌, 오로지 신도들의 기도와 숭배와 같은 무형의 비물질(非物質)을 장작 삼아 태워지는 불꽃.

그러니.

[대량의 기력을 집어넣는다면 다시 크기를 부풀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여겼지.]

기력은 인계(人界)에서 가장 깨끗하고도 영험한 기운일지니.

신실한 신앙심도 대단하긴 할 터이지만. 아무래도 기력에 비하면 끗발이 부족한 바였다.

자허는 그러한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성화를 태웠고. 다행스럽게도 이론은 들어맞았다.

[원래 이보다 더 작았던 성화가 다시 빛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 이것보다 더 작았다고요? 아니 먼지도 아니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너는 모를 거다.]

무려 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흑원국의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흑원국의 셀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에게 숭배받으며 불길을 키워온 것인데, 그걸 약간이라도 키운 자허의 업적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을….

“애초에 꺼트리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 어쨌든!]

어처구니없어하는 여명의 반응을 무시하며 자허는 설명을 이었다. 뭔가 길고 여러 이론 등을 말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힘이 후달린다는 거네요.”

[…크흠, 그 정도는 아니고….]

“아니긴요. 후달리는 거지.”

[……좀 후달리기는 해.]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지.”

정말 영감님들은 자기가 죽을 판에도 고집과 억지를 부린다며 고개를 저으며,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그였다.

* * *

대충 얘기를 정리하자면, 자허의 원래 계획은 애초부터 여명의 선식이 아닌 여명 본인을, 아니 정확히는.

“이 사부의 방대한 기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너의 기력은 무식할 정도로 거대하니 말이다.]

기력의 양만 놓고 보면 백 년을 넘도록 기환술을 수행한 자허보다 방대한 여명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기력은 성화의 장작이 되기에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을 터.

“이 사부, 본도가 낯이 다 부끄럽고. 미안하기 이를 데 없으나. 부디 힘을 보태주게. 사제의 목숨 따위야 알 바는 아니지만. 성화가 꺼지는 것은 안 될 일이지 않겠는가.”

“그거야, 뭐….”

[장문사형, 불길한 말 좀 그만하시오. 말이 씨가 된다던데.]

“넌 닥치거라!”

“으음. 일단, 시도해보는 정도야….”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식선…!”

옆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여명의 결단을 들은 사마윤윤은 감읍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아무래도 반응이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었으니.

‘더 부담스럽네, 이거.’

자칫 괜한 희망만 주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워지는 상황에서 그는 성화의 부스러기 위로 손을 올렸다.

그렇게.

후우웅-!

방대한 양의 기력을 휘발유삼아 투여했으나, 3초도 되지 않아 기겁하며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미친!? 이게 뭐야…!’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몸 안에 깃든 모든 에너지를 모조리 흡입당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노력? 기합?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건 완전히.

‘메마른 사막에다 물을 흩뿌리는 거랑 뭐가 달라?’

여명은 그렇게 결론 내렸고. 기겁하며 손을 뺐다.

휘청….

“왈!”

“사, 사장님…!”

설기와 북궁린은 여명이 몸을 휘청거리자마자 다가가 부축해주었다.

“나, 난 괜찮아.”

“월….”

“뭐가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다 창백해졌거늘!”

“…하하, 기운이 다 빠지긴 하네.”

힘없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여명은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력이 방전 나는 경험이야 몇 번이고 있긴 했는데, 이건 진짜 결이 다르네.’

체력만이 아니라, 정신마저 아득하게 피로해지는 감각.

여명은 기절하지 않는 자신을 칭찬해야만 했다.

“서, 성화가….”

“역시 식선이군, 그래도 불씨는 피워 올린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스러기에 불과했던 것이, 그래도 이제는 불씨 언저리로 보일 정도로 또렷한 형상을 갖추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성과.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것 같군.”

“으음….”

그랬다. 성화는 여전히 불씨가 미약했고. 한없이 약했다.

손짓 한 번에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처럼.

[…역시, 무리였나.]

이 역시 엄청난 성과임은 분명했지만 자허는 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꺼질 것을 알고 침음을 삼키듯 손가락을 툭툭 쳐댔다.

“사제, 아쉽게 됐구먼.”

[나도 그렇소, 장문사형. 이건 이제 어쩔 수 없구려.]

“……정말 아쉬울 따름이야.”

자운의 말투는 어딘지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포기한 듯, 또한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되어 서글프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며 자운은….

“…내가 어찌하면 되겠느냐?”

[뭘 물으시오, 당연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자허는 피식 웃었다.

하여튼 정 없는 척 다하더니, 이럴 줄 알았다.

“허허, 뭐가 서글프다고 그러실까.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자허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 때문에 서글픔을 참고 있을 장문사형을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못난 짓을 하였다 할지라도 저 양반은 정말 변함없이 그를 사제로 대해준다며.

“쩝, 이럴 줄 알았으면 막내한테 인사나 할 걸 그랬나?”

막내 사제에게 인사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자허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약속한 시간은 끝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자 이제 시작하지.”

“…후우, 괴선. 이렇게 된 건 유감이오.”

야율초. 그는 설마 자신의 손으로 삼국의 전설을 이리 대할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파냐 마도냐를 떠나, 이 사람은 삼국의 역사를 장식한 위인 중 하나였으니.

“캉!”

“…음, 안타깝다고 봐줄 수 없긴 하겠지요. 청천(靑天)의 말씀이 맞나이다.”

“카아앙!”

푸른 털을 흩날리는 강아지가 강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어떤 인물인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청천, 주교의 이름을 가진 강아지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커엉!”

죄인이 도망가기 전에 목을 치라고.

“흥, 걱정 마라. 약속을 어긴 역사는 없으니.”

자허는 그리 단호하게 말하며.

“베라.”

서걱!

……자신의 죽음을 덤덤하게 외칠 따름이었다,

자허, 향년 119세.

곤륜삼선 중 하나이자, 정파의 전설적인 기환학사의 죽음치고 너무나도 허무하고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은….

어찌 보면 갑작스럽고도 어처구니없는, 말 그대로 ‘그다운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tmi후기.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오늘의 tmi는 없다.

-참고로 본 글쟁이는 누가 죽거나 하는 베드엔딩을 싫어한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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