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36화 (236/261)

236-연적(戀敵)으로 살아남기?(3)

십만대산은 분명히 말해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무수한 산봉우리가 무너지고 대지는 갈라져 금방이라도 거대한 싱크홀이 당장 수백 개는 넘게 생길 것 같았으며. 샘물과 강줄기 또한 이미 마를 대로 마른 절망적인 멸망의 풍경.

비록 지금이야 백모의 힘으로 시간이 멈춘 것 마냥 파괴가 멈춰져 있지만. 이 또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며. 십만대산의 주민들에겐 안 될 말이지만. 대이주(大移住)가 필요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미친.”

“…….”

여명은 기함했고. 설기와 북궁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하는 법마저 잊고 말았다.

그 정도로 눈앞에 펼쳐지는 찬란하고도 웅대한 광경은 인간의 언어적 표현마저 모두 사멸시킬 지경이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크리스천보다 불교인에 가까운 여명조차 아는 천지창조의 구절.

그러한 구절이 절로 연상될 정도로 여명이 지금 보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후두둑!

무너졌던 땅들이 퍼즐마냥 다시금 합쳐지며 균열조차 그 흔적을 감추었다.

구구구궁!

뿌리까지 뽑힌 숲과 강물 등이 더욱 생기 넘치고 힘찬 모습으로 복원되어 갔다.

고오오-!

수천 년간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킨 산봉우리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금 꼿꼿하게 그 형태를 잡아 갔다.

경악하고 두려웠으나, 동시에 존경 어린 경외심이 품어지며. 한낱 인간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위대한 힘 앞에 모든 힘이 풀리고 만다.

허나 무수한 두려움조차 밀어낼 정도로 여명의 몸 전체를 떨리게 하는 감정은 하나였다.

‘……미치도록 멋지네.’

감동.

이 하나의 감정이 모든 감정의 파노라마를 밀어내며 여명의 가슴 한 구석을 충만하게 채웠고. 전신을 떨게 한다.

쿠구궁.

그렇게 천지창조를 연상케 하는 흑원의…, 아니 신(神)의 권능이 마침표를 찍었을 때 흑원이 여명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가볍게 물어보았다.

━우오.

이 정도면 멋지냐고.

그러한 물음에 여명이 대답할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음이다.

“네, 멋지네요.”

과(過)하도록.

………

………

“흠, 여전히 괴물이군.”

시간이 멈춘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자력으로 정신을 유지하는 붉은 개, 홍염천마는 자신의 털을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홍염천마는 약 50년 전 흑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천마의 의무 중 하나인 ‘신에 대한 도전’을 행하기 위해서.

결과만 말하자면 그 도전에서 천마는 유린(蹂躪)이란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짓밟히고 또 짓밟혔다.

그것은 사실상 도전으로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흑원이 놀아 준 것밖에 되지 않는 행위였을 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홍염천마에게 흑원은 ‘재밌었다, 다음에 또 놀자’며 여전히 장난을 칠 따름이었고. 그때 홍염천마는 확신했다.

흑원신교가 울부짖는 대의는 영원히 이루어질 일이 없는 허망한 꿈과 같다는 것을.

그 증거로 보아라.

엿가락처럼 부서지며 장난처럼 다시 고쳐지는 십만대산을.

“…후우, 참으로 좌절감을 안기는 존재로다.”

홍염천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딘지 허망함을 보였으나, 그의 눈가에는 숨길 수 없는 전의(戰意)가 감돌았다.

비록 수만, 혹은 수억 번을 싸워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끝없이 투쟁하는 것이 그의 삶일지니.

비록 지금은 이토록 절망스럽지만 언젠가는……!

“…후, 나도 교인들을 책망할 것이 아니군.”

홍염천마는 피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도 아직 한참 주제도 모르는 애송이가 맞다며.

“흠, 한데….”

홍염천마는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가라앉히며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의문이라기 보단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 제 눈을 의심하는 것에 가까운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선 자기 혼자 납득했다.

생각해 보니 별 특이한 일도 아니라는 듯.

“주인이여, 당신은 여전히 내 예상을 아득하니 뛰어넘는구려.”

홍염천마는 쓰게 웃으며 절레절레하였다.

천년의 세월조차 그 한 사람에게조차 비할 데가 없다며.

홍염천마가 그렇게 한 인간에게 경의 어린 표현을 보내고 있을 때, 정작 경의를 받은 인간은….

“…나 팔 부러지겠다.”

손이 탈탈 털리도록 토르티야를 굽는 중이었다.

………

………

“오오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우오오오!”

“…작업 안 걸었어요.”

“우오.”

“……으음.”

마치 지켜보고 있다는 듯 두 손가락으로 경고를 보내는 흑원이었고. 여명은 침음을 삼켰다.

이 양반은 그냥 자신이 숨만 쉬어도 싫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명은 손만큼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치익, 타닥!

흔히 쓰이는 밀 토르티야가 아닌, 옥수수 가루를 직접 뭉쳐 만든 수제 옥수수 토르티야가 철판에서 쉼 없이 구워졌고. 그런 토르티야 위로 각종 재료들이 차례차례 올라갔다.

새우와 조개, 생선 구이 등이 올라간 해산물 타코.

간단한 비법 간장 소스와 각종 향신채와 신선한 채소 등이 들어간 간단한 타코였고. 여기까지 보면 별 거 아닌 흔히 맛 좋은 타코일 뿐이지만.

여명은 미세한 차이 하나가 요리의 품격과 품질을 완전히 뒤집는 것을 잘 아는 요리사였으며. 사소한 정성 하나로 타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뚝뚝.

화악!

“오오!”

향긋하기 짝이 없는 라임과 오렌지, 레몬 등의 향이 코를 스치니 백모가 좋아했고. 기뻐하는 아내를 보며 흑원의 입가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무려 신수와 부처가 만족할 만한 라임의 향이라는 대목에서부터 여명이 쓴 것은 그냥 라임즙이 아닌, 직접 숙성시킨 라임 비네거(Vinegar)였고. 이것이 타코를 훨씬 특별하게 만드는 여명만의 비법이었다.

‘이게 진짜 대박이거든.’

일명 천연과일식초. 재료의 산지(產地), 만드는 장인에 따라 그 풍미와 신맛 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여명이 가장 신경 써서 만든 재료가 아닐 수 없었다.

천산표 라임과 레몬, 오렌지 등의 과실로 만들고. 여명의 기환술과 절묘한 숙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특제였기에 약간만 뿌려 줘도.

바삭!

“우오!”

산미(山味)를 비롯한 음식 본연의 맛을 한 단계, 아니 세 단계 이상 증진시켜 주는 효력마저 있을 따름이었다.

‘나도 설마 이 정도로 잘 만들어질지는 몰랐지만.’

산미란 것이 음식의 맛을 돋우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과하게 느껴지며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호불호가 갈리는 게 산미가 아닐 수 없지만. 여명이 감히 장담하건대, 천산표 비네거가 가진 산미는 어떤 이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맛이라 장담한다.

‘저게 완전 천연 조미료지.’

신종 아미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명의 비네거는 솔직히 창작자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조미료가 아닐 수 없었다.

단지 과일식초의 역할만 기대했던 것을 뛰어넘는 효력은 여명의 오산이었지만. 이런 오산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따름.

‘덕분에 기분도 좋아진 것 같고.’

여명은 슬쩍 흑원을 보았다.

“우오오오.”

“오오오!”

동산만 한 크기를 자랑하던 흑원과 백모신원의 몸집은 일반적인 고릴라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뭐, 일반적인 고릴라의 덩치라도 충분히 위협적인 건 맞지만. 그래도 방금 전에 비하면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수준이었고. 미식(美食) 데이트를 위해 이보다 더욱 좋은 크기도 없으리라.

‘상황이 참….’

여명은 괴수대전을 치르다가 갑자기 데이트를 행하는 두 신을 보며 마냥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가늠이 안 돼요, 가늠이.’

갑작스레 여명이 요리를 하는 이유는 별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우오.

[친구 자랑.]

백모에게 있어 친구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존재였고. 제 남편에게도 여명의 장점을 소개시켜 주어 그녀와 같은 심정을 느꼈으면 하는, 정말이지 순수한 의도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순수한 의도와 달리 여명에겐.

‘아니, 왜?’

기함할 만한 상황에 불과했지만.

방금 전 창세기의 편린과 같은 것을 보고 도저히 흑원을 편히 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백모가 저리 자신을 자랑하니 안색만 경직될 따름이다.

‘제발 그냥 가라, 가…!’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는 흑원이었다. 분명히 음식은 필요 없다고 하며 갈 것이 분명했….

-우오.

…흑원에게 거절은 없었다.

도리어 ‘네놈이 얼마나 날 만족시킬지 두고 보마!’라는 분위기가 그득하였지…!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여명에게 거절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요리사의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생사(生死)의 위협이 느껴지거늘 어찌 거절이 있을 수 있으랴.

그리고 지금,

치이익!

‘빡시다.’

여명은 타코 만드는 기계가 되어 열심히 손을 놀리며 백 개의 타코를 단번에 만들어 내었다.

정작.

후두두둑!

“우오!”

흑원에게 타코 백 개조차 입가심에 불과했지만.

터억.

“우오, 오오.”

“…알겠어요.”

추가 주문만 대략 30번이 넘는 형국에서 손은 덜덜 떨렸지만. 여명은 약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두려운 상대여서가 아니었다. 단지 제 요리를 먹고 아직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흑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멈출 수가 없어서 이러는 것이지.

‘내가 오늘 진짜 모든 걸 쏟아붓고 만다!’

흑원을 만족시키자고 하는 오만한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그저 손님의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만큼 후회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었지.

이른바 직업 윤리에 의한 독기(毒氣)를 머금고 여명은 손을 다시금 움직이며 다양한 타코를 만들어댔다.

타코스 알 카르본(Tacos al carbón).

숯불고기 종류를 총괄하는 타코를 의미했으며. 여명은 돼지, 양, 염소, 소, 닭, 오리, 거위 등을 비롯한 구울 수 있는 육류를 통째로 구워 타코를 만들었다.

각종 자원이 풍부한 흑원국에서 얻어 낸 모든 식재료를 총망라해서 사용하는 다양성이었고, 설사 낯설거나 잡내가 심한 재료가 있을지라도 그에겐.

툭툭.

“자요.”

“우오!”

만능 과일식초가 있었고. 덕분에 고기의 잡내와 맛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거기다 라임 말고도 레몬과 오렌지, 만리향 등등 식초의 가짓수도 넘쳐났기에 계속해서 색다름을 주니 백모는 만족했고. 흑원은 여전히 퉁명스럽지만.

“……오.”

‘뭐, 먹을 만하네’ 하며 심드렁하게나마 만족감을 표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참으로 바른 말이었다.

손으로는 토르티야 반죽을 만들어 굽고.

칼이 날아다니며 육류와 해산물, 채소 등을 손질하고.

숯불에서 고기 등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구워지고.

이러한 정성 섞인 작업들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져 재료가 갖추어지면 바로 내놓는, 말 그대로 극강의 멀티캐스팅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멀티캐스팅이 정성스러운 게 아니라, 대충 만드는 것이 아닐까 따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명은 장담한다.

자신이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되려 써는 각도와 굽기 하나하나를 모조리 다 따지면서 지극정성을 다하면 다했지.

그렇게.

“자, 이건 좀 강렬할 겁니다.”

“오오?”

Tacos De Birria, 일명 비리아 타코.

고기와 각종 향신료와 고추 등을 더한 강렬한 매운맛과 짭짤함, 신맛과 달달함이 모두 더해진 감칠맛 폭탄과 같은 타코.

일반적으로 소고기를 쓰지만. 여명은 소고기 대신 양을 썼다.

좀 더 강렬한 풍미와 맛을 내기 위해서.

양고기 특유의 육향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육향을 잡아내는 것이 요리사의 솜씨이며. 그 육향마저 풍미로 만들어냈을 때 양고기만큼 맛있는 고기도 없는 법.

그렇게 양고기로 만든 노릇노릇한 비리아 타코가 뜨끈한 열기를 가득 품은 채 흑원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바삭! 바삭!

“……우오.”

“…….”

“우오.”

그저 그렇다.

여전한 혹평이 아닐 수 없으나, 여명은 그제야 안심하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도 그럴 게.

“우오!”

왜 웃어!

“그러게요.”

험한 혹평과 달리 흑원은 확실하게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숙수는 그제야 만족할 수 있었다.

tmi후기.

-백모의 행위는 마냥 눈치가 없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이대로 가면 흑원이 여명을 적대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눈치 없이 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명의 실력을 과하게 신뢰하는 것이지만. 백모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흑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위업 하나를 쌓는다는 의미이며. 게임으로 치면 ‘신화급 칭호’를 얻은 격이다.

-여명은 모르겠지만. 흑원, 그러니까 신한테 인정받으면서 여명은 신선(神仙) 테크트리가 열린 것이다.

-포켓몬을 예시로 말하자면, 인간이 신선으로 진화하려면 진화의 돌이 필수인데, 여명은 지금 그 진화의 돌을 얻은 셈이다.(물론 쉽지는 않을 예정이다.)

-인간이 신선이 되면 영수와 같은 지위라고 볼 수 있으며. 여명은 신선만 되면 황족 확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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