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35화 (235/261)

235-연적(戀敵)으로 살아남기?(2)

-만약, 신수와 엮일 일이 있다면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하거라.

-네에?

여느 날처럼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달콤한 위스키 봉봉을 드시던 여우님은 지나가듯 자신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신수라면, 그 삼황제(三皇帝)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삼황. 혹은 삼신수라 불리는 중원 삼국의 지배자들.

-하하, 제가 그런 엄청난 분들을 뵐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세상만사 모를 일이지. 어쨌든 그대는 본녀조차 유혹할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이니 말이다. 아무쪼록 주의를 기울이거라.

-…유혹한 적 없는데 말이죠.

-후후, 오늘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으로 본녀를 유혹해 놓고 그런 말을 하다니, 죄 많은 남자로다.

-……하하.

-어쨌든 본녀의 말을 기억하거라, 가능한 한 신수들과 엮이지 말거라. 그들은 참으로….

‘…제멋대로의 끝판왕이라더니.’

[우오오!!]

[우오?]

[우오오오~!]

콰아앙! 콰과광-!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네.”

흑원과 백모신원이 산봉우리를 뽑아 캐치볼을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여명은 미곡왕의 충고를 되새기며 후회하면서도 억울해하였다.

본의 아니게 신수란 양반과 엮이고만 현재의 상황을 말이다.

* * *

이 어지럽다 못해 세계멸망과 같은 상황이 어쩌다 펼쳐진 것인지 의문이었던 그들에게 백모신원은 친절히 자신과 흑원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명 일행의 이해를 도와줬다.

“별거(別居) 중이었다는 거야?”

[우오오.]

“그것도, 500년 가까이?”

[우오.]

“…아무리 그래도 엊그제는 아니다, 야.”

[우오?]

영수와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한없이 다른 법이었고. 백모신원에게 있어 500년은 인간 기준으로 닷새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부부싸움 스케일 단위가 수백 년이란 게 참….’

흑원과 백모신원이 싸우는 이유는 사소한 것이었다.

왜 일반 부부도 서로 같이 살다 보면 가치관에서 차이가 나고.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다툼도 벌이며 싸우는 경우가 흔하지 않던가?

이런 싸움이 과격화되면 부부싸움이 되는 것이고. 서로 죽네 마네하며 결국 이혼하거나 별거 등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신수라 불리고 부처라 불리는 존재라 할지라도, 부부 사이에 싸움이 나는 건 흔했고. 그런 흔한 이유로 그들은 수백 년 단위로 싸우고 화해하고, 또다시 다투길 반복할 따름이었다.

“월….”

설기는 흑원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지진과 태풍, 해일 등과 같은 자연재해가 어째서 그토록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런 양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니 그 사달이 나는 것이지.

다만 겨우 다툼 때문에 설기의 조상들이 지저세계로 피신해야 했다는 대목에서 설기는 차마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할 창피한 얘기라며.

“…그런데 저분 하는 거 보니 백모한테 꽉 잡혀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싸움이 많이 난데?”

[우오오.]

슬쩍 보아도 백모를 향해 애정 넘치는 구슬프고도 정성 어린 세레나데를 아끼지 않는 흑원이었다.

한데 싸울 이유 같은 게 있기나 한 것일까?

[우오!]

“으음….”

그러한 여명의 발언에 백모는 말도 마라며 고개를 저었고. 불만을 토로하듯 여명에게 많은 울분을 내뱉었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염장질이 아닐까 싶었으나, 나름 심한 고충과 같았으니.

“질투가, 과하다는 거구나.”

[우오!]

과하다는 수준이 아니라며, 백모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흑원은 질투심은 흉악(凶惡)하다는 말로도 부족했고. 백모신원을 괴롭히는 스트레스의 원흉과 다를 바 없었다.

[우오오….]

“그, 그건 좀 심하네.”

“백모신원께서 뭐라고 하신 겁니까?”

“으응, 그러니까 옛날에 백모가 마음에 들어 했던 성성이 부족이 있었대.”

영수는 아니지만. 영물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성성이들은 한 섬의 지배자였고. 백모신원은 그런 섬의 성성이들과 제법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한데 그들이 백모신원과 친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까닭일까.

흑원은.

“성성이들이 지배하는 섬 전체를 뽑아서 바다에 매장시켰다고 하네.”

“무, 무슨…!”

“말 그대로 지도를 다시 그려야하게 된 거지.”

여명은 비교적 덤덤히 말하면서도 식은땀이 줄기차게 났다.

사실 북궁린에게 한 얘기는 흑원의 질투심으로 발생한 일들 중 가장 수위가 낮은 얘기였으니까.

‘미친, 이걸 어떻게 얘기해.’

흑원의 질투심은 들으면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으며.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재앙이자. 질투의 화신(化身)이란 말로도 부족할 테니.

그리고 문제는.

[우오….]

“…….”

주르륵…!

질투의 화신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으며. 심상치 않은 눈빛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혹한 일이었다.

‘살려줘…!’

또다시 본의 아니게 황제 겸 신수에게 연적(戀敵) 판정을 받은 연약한 요리사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 * *

다행스럽게도 흑원이 여명을 풍선 움켜쥐듯 쥐어 죽일 일은 없었다.

이미 흑원은 과거 질투심에 눈이 멀어 백모신원의 소중한 것들을 파괴했고. 이 때문에 흑원은 백모신원에게 무수하게 실망감을 안기는 것으로 최후통첩마저 들은 상태였다.

-우오오!

한 번만 더 내 소중한 친구나 물건을 파괴한다면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떠나 흑원과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통보.

질투심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백모신원을 사랑한다는 증거와 다름없었고. 흑원은 결코 여명을 건드리지 못했다.

[크우우우…!]

…건드리진 못해도 노려보긴 했지만.

[우오!]

[…우우.]

흑원은 백모신원의 경고에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짠함이 다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여명은 속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도.

━우오!

‘…머리 울려 죽겠네.’

심언과 같이 뇌리를 자꾸만 울리는 경고가 여명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번역하자면 ‘당장 내 아내 어깨에서 내려와, 이 자식아!’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여명은 내려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내려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

여명은 저 무서운 흑원 앞에서 자신이 멀쩡히 정신차리고 있는 이유가 백모 덕분임을 짐작했고. 이 어깨 위에서 내려가는 순간 어쩌면 혼절하는 것을 넘어 사경을 헤맬지 모른다는 불길함마저 느꼈다.

‘저건 진짜….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왜 여우님이 그토록 엮이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영수란 존재가 대화가 통하고. 나름 인자하고 순수하다면, 신수는.

‘저게 애초에 생물이긴 한 걸까?’

겉보기엔 잘생긴 고릴라였지만. 여명의 천안은 저 존재가 가진 근본적인 것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벼락이 뭉친 것 같다.’

여명은 단 한 번도 핵폭발이 일어나는 광경을 본 적이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흑원은 핵폭탄 수천 발, 아니 수만 발조차 흑원 앞에서 하찮기 짝이 없는 고물이 될 것임이 분명하리란 것이다.

이토록 확신하는 이유?

그것도 그럴 게.

‘……상한선(上限線)이 안 보여.’

흑원이 내뿜는 기운은 십만대산을 뒤덮는 것으로도 부족해 하늘로 뻗어 나갔고. 급기야 그 너머를 향해 무한히 잠식하고 있었다.

숫제 천안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은 흑원만이 오롯이 존재했으며. 급기야 이 세상이 중원 삼국인지 흑원인지조차 헷갈리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저것은.

‘신(神)수.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하네.’

전지전능한지는 몰라도 파괴신(破壞神)은 얼마든지 될 수 있을 터이니.

십만대산과 마교인들에겐 재수 없는 일이지만. 흑원이 십만대산까지 날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였다.

“그러니까, 아내한테 사과도 할 겸 해서 아미산까지 갔는데, 아내가 없어서 아내의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이건가?”

“…월.”

“재수가 없는 자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건 뭐 뒤통수도 깨지고 코도 깨지고. 그야말로 다 깨진 격이었다.

불운(不運)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암운(暗運)이 드리웠다는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 그럼 나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거야…?”

여명은 자신이 백모를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에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자기 때문에 십만대산이 말 그대로 부서진 격인지라.

하지만.

[우오.]

백모는 고개를 저었다.

설사 여명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도 아미산이 대신 부서졌을 뿐이고. 뭐가 부서지건 똑같이 부서졌을 테니 말이다.

“…아미산 부서진 거나, 십만대산이 부서진 거나 다 안 좋은 일인 것 같다만.”

[우오?]

그런가?

“…….”

자기 집 부서진 거 아니라고 태평한 건, 영수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모양.

여명이 짜게 식은 시선을 날릴 때, 흑원은 여전히 여명의 뇌리에 경고를 날려댔다.

━우오!!!

‘내 아내한테 수작 부리지 마라!’와 ‘누구한테 지금 잔소리하느냐!’는 잔소리가 메아리치듯 수백 수천 번씩 울려댔다.

머리가 지끈거리긴 하다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여명은 생긴 게 아깝다며 흑원을 어처구니없이 봤다.

‘생긴 건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잘생긴 고릴란데 말이지….’

가끔 인간보다 잘생긴 동물 사진이라 하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흑원이 정확히 웬만한 남자 배우보다 잘생긴 표본과 같은 고릴라였다.

인간 기준으로 봐도 저토록 잘생기고 멋있게 생겼거늘, 왜 저리도 하는 짓은 팔푼이 같은지 원.

‘생긴 거랑 분위기가 다 아깝다.’

입만 열면 점수를 까먹는 양반이 있다면 딱 저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오오?

…진짜?

“…아, 들렸어요?”

━오오…….

“……큼큼.”

본의 아니게 팩트 폭력을 날린 여명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연달아 했다.

설마 마음마저 읽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라, 여명은 무안한 듯 시선을 회피했고. 흑원은 어딘지 울적해 보였다.

제 아내가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신수가 왜 저리 감수성이 풍부한지.’

━우오.

‘사랑하면 바보가 되는 법이라고요? 아니 그보다 마음 좀 그만 읽어요!’

━오오오.

‘그냥 들리는 걸 어떡하라고요? …미치겠네!’

이 양반 앞에서 뭘 숨길 수가 없겠다며 여명은 헛웃음을 흘렸다.

까도까도 양파 같은 양반 같으니.

━오오오?

‘그걸 저한테 묻는다고요?’

━오오.

‘참 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여 버릴 것 같은 시선을 던지던 흑원은 살며시 백모의 눈치를 살피며 여명에게 물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멋져 보이겠냐고.

자신한테 왜 저런 걸 묻나 어이없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자신을 싫어하는 파괴신에게 조금이라도 점수를 딸 기회 아닌 기회였으니.

‘멋있는 거라, 원래 남자가 멋있을 때는 일할 때라고 하긴 하는데….’

━우오!

‘파, 파괴하는 거 빼고요.’

━오오오….

‘아니, 실망하지 말고요. 다른 건 없어요? 예를 들어 천지창조(天地創造) 같은 거?’

━우오오?

‘…아, 그런 건 안 되시는구나.’

역시 신수라 한들 진짜 신은 아닌 모양이다.

여명은 그렇게 결론 내리려 하니….

━우오.

‘네에?’

따악!

흑원은 ‘천지창조는 무리지만, 이 정도는 가능하다’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른바 핑거스냅이었고. 세상의 절반을 날리는 대신.

구오오오!

──파괴된 세상을 복원시키는 핑거스냅이었다.

재생(再生)이 시작되었다.

tmi후기.

-참고로 흑원 때문에 고향을 잃거나 죽은 이들은 백모신원이 모두 되살리거나 본인이 거둔 상태다.

-흑원의 진심 펀치가 떨어지면 현대 육대주(六大洲) 중 다섯 개가 날아간다.

-흑원의 인간 버전 외모는 ‘톰 하디’의 리즈 시절과 닮았지만. 훨씬 더 카리스마 있고 잘생겼다.

-백모신원이 흑원과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잘생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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