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연적(戀敵)으로 살아남기?(1)
순식간, 아니 찰나(刹那)조차 안 되는 시간에 ‘그것’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흑뢰, 검은 번개가 대지로 떨어지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빌딩만 한 쇠말뚝이 땅을 두들기는 것만 같은 강한 충격이었고. 여명은 세상이 점멸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며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도저히 인간이 맨눈으로 보지 못할 광채가 눈조차 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오오오!]
‘그것’이 포효했다.
‘누구지?’
백모는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백모는 포효를 내뱉더라도 어딘지 모를 부드러움과 너그러움, 혹은 자애(慈愛)와 같은 감정이 드는 울림을 내면 내었지 이렇지 않았다.
‘이, 이건 너무, …폭력적이잖아!’
이 또한 순화해서 말한 게 아닐까 싶었다.
폭력을 넘어 광폭(狂暴)하였고. 패도(霸道)적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감을 조성하는 울음이 아닐 수 없었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자리를 벗어나 도망가고 싶을 따름.
다만 이상한 건.
‘나, 왜 이렇게 멀쩡해?’
이러한 존재가 내뱉는 광폭한 포효를 듣고도 자신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거늘, 이상할 정도로 자신은 냉정하게 자리를 지켰을뿐더러. 조금도 몸을 떨지 않았다.
제 스스로가 강심장이 아닌 것을 알기에 여명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고, 서서히 줄어드는 아릿함을 참으며 힘겹게 눈을 떠보았다.
“……백모?”
[우오?]
괜찮아?
다정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었고. 여명은 자신이 어느 순간 백모의 손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아….’ 소리를 내었다.
“네가 구해준 거구나.”
[우오오.]
백모는 별거 아니라는 듯 흐뭇하게 웃어주었다. 마치 친구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것처럼.
그리고 백모는 서비스도 아주 좋은 친구였다.
“월!”
“사장님…!”
설기와 북궁린.
여명과 가장 가깝고도 끈끈한 두 직원이 그를 껴안으며 몸을 부대꼈다.
“……아.”
몸을 가늘게 떠는 소중한 두 직원을 마주 안으며 여명은 백모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오.]
“…고마워.”
[우오오.]
‘고맙다는 말을 우리 사이에 필요 없다’며 백모는 손을 휘저었다.
또한.
[우오.]
어딘가 미안해 보이는 얼굴로 백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하다고?”
여명은 백모가 왜 미안하다고 하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해준 사람이, 아니 영수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서.
문득 여명은 설기와 북궁린만 확인했지. 다른 이들을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여명은 시선을 돌린 걸 후회하게 되었다.
“이…! 이게 뭐야?!”
평소 침착함 하나만은 고수들마저 인정해주는 여명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이런 걸 보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병자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정도로 여명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제정신으로 볼 것이 아닐 테니까.
“산이….”
아니, 산맥이 무너졌다.
……아니다. 이 또한 틀린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맥이…, 무너지다가 멈췄다?’
자신이 말하고도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 마치….
─멸망하는 도중 시간이 멈춘 것처럼.
* * *
십만대산. 그 광활한 산맥을 이루는 거대한 숲과 강물이, 그리고 계곡과 언덕 등이.
모조리 으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 파괴되어 있었다.
비록 파괴되던 도중 멈추긴 했지만. 여명의 눈에는 한순간이라도 눈을 깜빡이는 순간 과자처럼 와자작 부서질 것만 같았다.
고대 공룡들이 멸망한 가설 중에는 운석 충돌이라는 이유가 있다던데, 이 광경을 보니 충분히 가설로 밀 만하다 싶다.
부르르…!
아찔함 탓일까, 소름이 쫙 돋으며 다리가 풀릴 것 같았으나 여명은 가까스로 몸을 부여잡았다.
‘얘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혼자였다면 공포와 혼란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온몸에 힘이 풀렸으리라.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월?”
“…너희야말로 괜찮은 거 맞지?”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주며, 동시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지지대가 된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이들을 지킬 사명감인지 의무감인지 모를 자존심이 그를 굳세게 버티게 해주었다.
“후우…! 이, 일단 침착하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여명은 나름 냉정한 척을 유지하며 물음을 던졌으나, 그들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월.”
그 검은 번개가 관련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검은 번개는….
“월.”
“…백모?”
백모신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설기의 동물적인 감각이 근거가 된 추론이었고. 평소였다면 그게 무슨 추론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만큼은 저러한 추론이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오오오….]
백모는 여전히 미안해 보였다. 괜히 자기 일에 그를 끼어들게 했다는 사실이 한없이 미안하다며.
그리곤.
[우오오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그녀는 당당히 선언했다.
여전히 여명으로선 이해 못 할 아리송한 얘기였지만. 백모의 선언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명은 질문할 시간조차 포기해야 했다.
쩌저적…!
‘무언가’가 멈춰진 세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기에.
[우오오오!!]
백모신원은 포효했다.
지금 쳐들어오는 무언가를 향해 강한 경고를 내뱉는 듯했지만. 무언가는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지 거침없이 세상을 두들겼고. 기어이….
콰지지직!
멈춰진 세상으로 쳐들어왔다.
[우오오오오!]
[우오!]
백모신원과 세상을 비집고 들어온 그것, ‘검은 성성이’는 백모를 마주하며 으르렁대었고. 여명과 다른 이들은….
“…왜 뜬금 괴수대전이야?”
“월….”
“…….”
진짜배기 킹콩을 목격하며 기절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흑원국의 황제, 신수 흑원의 강림이었다.
* * *
쿠웅! 쿠우웅!!
킹콩, 아니 흑원이 거침없이 돌진하듯 다가오니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대략 진도 6.5는 될 법한 지진이었으며. 이 근처 바다가 있었다면 해일이 밀려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단지 뛸 뿐인데도 이만한 충격이 전해진다는 것이, 저 존재가 가진 강함을 증명하는 바가 아닐 수 없었으나. 흑원과 마주한 백모신원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되려.
[우오.]
여명 일행을 자신의 어깨 위로 올리며 ‘잠시만 기다려라’라고 안심시킬 뿐.
[우오오오!!]
후우욱!
어느 순간 백모신원의 코앞까지 온 흑원은 거침없이 손을 뻗으며 내질렀다.
강력한 레프트 훅!
맞으면 절대 무사할 수 없는 일격이 아닐 수 없었으나. 백모신원은.
콰아앙!!
“…와, 저걸 잡네?”
강인한 레프트 훅은 가볍게 잡아채더니 그 상태 그대로 오른쪽 팔을 가볍게 뻗었다.
정말 가볍게 말이다.
콰앙!
잽(Jab).
복싱에서 흔히 쓰이는 가벼운 펀치.
하지만 백모신원이 날리는 잽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며. 그 충격파가 강풍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한데 그러한 잽이.
쾅! 콰아아! 콰아앙!!
비처럼 쏟아졌다.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무차별적인 주먹.
그야말로 난타(亂打)와 같은 주먹질이 아닐 수 없었으며, 난타의 주먹질이 이어질수록 강풍이 모였고. 어느 순간 소용돌이와 같은 와류(渦流)가 형성되어 하나의 재해를 연상케 했다.
허나 태풍과 같은 난타질을 당하고도 흑원은 전혀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아악!
백모신원의 주먹을 잡아채고 그대로….
훅!
“저먼 스플렉스(German Suplex)?”
실전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며. 한때 강태산이 열렬히 시청하던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나 보았던 말도 안 되는 기술.
한데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기술이 흑원에 의해서 재현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능수능란하게.
백모신원의 어깨에 타고 있던 그들은 순간 자이로드롭과 같은 놀이기구가 공중에게 확, 하고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인 자이로드롭보다 열 배는 더 공포스럽다는 게 다른 점 아닌 다른 점일 테지만!
“…!!?”
모골이 송연해지며 비명조차 제대로 안 나올 때, 충격적이게도 백모신원은 기술을 당하는 와중 멋지게 파훼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기술이 걸어지는 순간 등을 튕겨 광배근의 힘만으로 기술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또한 백모신원은 탈출에서 만족하지 않고. 몸을 튕긴 그 상태에서 멋지게 공중 덤블링을 하더니…!
“플라잉 엘보 드롭(Flying Elbow Drop)….”
이른바 고공격추(高空擊墜)일 것이고. 혹은 백모신원의 일격이라 하여.
“…신원격추(神猿擊墜).”
저도 모르게 생각나는 기술명을 내뱉은 순간 백모신원은 웃는 듯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며.
콰아아앙!!
흑원의 가슴 중앙에 정확히 백모신원의 팔꿈치가 꽂혔다.
* * *
후우우….
백모신원의 일격으로 자욱했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드러난 것은 뻗어버린 흑원의 모습과 속 시원하다며 손을 털고 있는 백모신원의 모습이었다.
[우오~!]
[…….]
한 마리는 흐뭇해하고. 또 한 마리는 대자로 누워있는 기묘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일반인의 잣대로는 도무지 계산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여명은 감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늦은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여유롭게 무언가를 묻고 있을 틈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드디어 조금의 여유가 났다 싶어 여명은 물음을 던질 수 있었고. 백모신원은 마냥 손을 휘저었다.
[우오.]
“뭐?”
[우오오.]
“……?”
[우오.]
“???”
여명은 자신이 들은 게 정확한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말을 믿어야 하는가 싶어.
“사장님, 백모신원께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황제와 싸우신 이유는 또 무엇이고요?”
“월…?”
“아니, 그게….”
답변을 주려고 해도 과연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여명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애매하고 자시고를 떠나, 지금 이 광경을 보고 믿으라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사실 이 싸움 자체가-.
[-우오오.]
고오오…!
대자로 뻗어있던 흑원이 가볍게 몸을 일으키며 그들의 입을 합죽이로 만들었다.
그토록 맞았음에도 어떠한 부상조차 보이지 않는 흑원이었고. 여명과 설기, 북궁린 등은 질린 표정으로 대경실색했다.
말 그대로 ‘괴물’이란 단어가 뇌리를 자연스레 스쳐 간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흑원이 다시금 공격하지 않을까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들이 초조하게 흑원과 백모신원을 번갈아 볼 때, 갑작스레…!
쪽…!
“응?”
“월?”
“…….”
[우오!]
[우오오?]
[……우오.]
[우오! 오오.]
[…우오!!]
콰앙!
흑원이 박치기를 하듯 기습적으로 백모신원의 뺨에 입을 맞추었고. 백모신원은 쑥스러워하듯 흑원의 어깨를 쳤다.
다시금 몸이 덜컹이는 그들이었지만.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일련의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두 성성이, 아니 ‘부부의 애정표현’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진짜였네.”
여명은 이제야 백모신원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싸운 것이 아니라….
‘이게 애정 다툼 수준이면, 부부싸움은 세계 멸망인가?’
단순히 애정 다툼 행각일 뿐이란 백모의 말을 상기하며 여명은 마냥 말문이 막혀갔다.
애정 다툼 스케일 한번 살벌하다며.
tmi후기.
-백모신원과 흑원은 싸운 것 같지만. 싸운 게 아니다. 일종의 말다툼을 대화로 하는 대신 몸으로 했을 뿐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수어(手語)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싸우면 대륙 무너지고. 세상 무너지니 진짜 싸우는 경우는 없다.
-여명과 설기, 북궁린은 백모신원의 어깨 위에 탄 이후 어떤 놀이기구를 타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