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와요 무림식당-239화 (239/261)

239-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2)

“호기심은 여우를 죽인다는 말을 알더냐.”

“…고양이가 아니라요?”

“원조는 여우였느니라.”

“아, 네에….”

여명은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의 단호함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한 트집으로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면 자신만 손해인 것을 알기에.

“호기심이란 심마(心魔)와 닮았느니라. 인간을 번뇌(煩惱)란 이름의 절벽으로 밀어트리는 것이지. 그러니 때론 사람이건 여우건 호기심을 접을 필요가 있음이다.”

다만 그녀의 말 중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로지 누군가를, 아니 ‘자신’을 위한 진지한 조언임을 알기에 여명은 새겨듣기만 했다.

…듣기만 말이다.

“쯧, 하여튼 사내놈이란 것들은 이게 문제이니라. 현명한 말을 해줘도 들어 처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원!”

“…죄송해요.”

“듣기 싫다! 에이잉…!”

“……츄러스 드실래요? 이제 막 튀겨서 따끈따끈한데?”

“허! 본녀가 음식에 넘어갈 것 같은 가벼운 여자로 보이더냐!”

“초콜릿 소스랑 연유 소스도 있는데….”

“…….”

“단짠단짠 소스도 있는데, 이거에 찍어 드시면 엄청나게 고소하고 맛있을 겁니다, 아마.”

“크흠!”

“진짜 안 드실 거예요?”

“이런 괘씸한 녀석…!”

“어, 얼른 가지고 오너라….”

여우는 분개했으나, 몸은 솔직했고. 이미 손은, 꼬리들은 츄러스를 향하며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츄러스 서른 개를 먹어 치웠다.

* * *

여명이 어느 츄러스 장인에게 배운 비법 반죽을 길게 뽑아 튀기고,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적절히 뿌려 만든 츄러스는 입에 넣는 순간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하고도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장인조차 인정한 츄러스에다 초콜릿이나 연유, 혹은 견과류 등을 찍어 먹는다?

그건 이미.

바삭!

“…별미(別味)구나.”

“별미치곤 너무 식사처럼 드시는 거 아니에요?”

“식사는 무슨. 그래봐야 열 개 정도거늘, 많지도 않지.”

“충분히 많습니다만….”

웬만한 대식가가 아니면 물려서 못 먹을 양을 저토록 작은 몸집으로 끊임없이 먹는 백효였고. 여명은 여우님이나 백효님이나 대단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뭐, 여우님의 경우 폭식으로 인해 휴게실에서 쓰러진 상태지만.

“괜찮으실지 원.”

“흥, 괜한 걱정이다. 저 계집애가 겨우 저 정도를 먹고 배가 부를 일이 있을까.”

“네에?”

“태고(太古)적에는 황소 네 마리를 단숨에 삼키던 계집애다. 한데 이런 주전부리 좀 먹었다고 쓰러질 일은 없는 게지.”

“그, 그럼?”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일부러…?”

“그대의 향취를 맡으러 일부러 저리로 간 것이지. 하여튼 음탕한 계집애로다.”

“……?”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만, 여명은 향취란 말에 자기 옷깃을 쥐고 코를 실룩였다.

혹 무슨 악취가 나나 싶어서.

“쯧쯧, 하여튼 벽창호 같은 사내로다. 여가 말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거늘.”

백효는 여명의 모습이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허나 혀를 차면서도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아주 매혹적인 향이로다. 십만대산에서 격(格)을 이루었다고 하더니.’

원래도 영수에게 친화적인 향취를 품던 사내가, 이제는 아예 유혹할 정도로 매혹적인 향취를 내뿜는 격이었고. 이것만 되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거늘….

‘흑원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격이 더욱 완전해졌구나. 이 정도면 훗날엔 신선조차 노려봄 직하니, 원.’

등선, 혹은 신선지경의 경지에 오른 술사가 사라진 지 천 년이 넘었고. 앞으로도 신선에 오를 인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한데 지금, 저 사내는 그러한 자격을 거머쥐었고. 앞으로 어떻게 크느냐에 따라 충분히 그들과, 영수와 비견될 존재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성장추세라면 적어도 백 년 안에는 오를 테지.’

백효는 기대가 되었다. 천 년 만에 다시금 신선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또한 아직 여물지 않는 선도(仙道)의 새싹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이라도 침을 발라놔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잘하면 자신의 세력권에 신선이 한 명 추가되는 것이니, 이득이 아닐 수 없는 바였다.

다만.

“나도, 줘어….”

“산묘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간만에 다리 운동 좀 하겠네요.”

저 영악한 곰탱이 같으니…!

게으르고 나태한 척은 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제 특성을 잘 이용하는 놈이 아닐 수 없으리라.

여우 계집애나 자신이나 품위 때문에 저리 대놓고 매달리지 못하는 것에 반해, 뻔뻔히 다리에 매달려 점수를 따놓고 있다니.

‘보통이 아니야, 보통이.’

백효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산묘를 노려보았고. 백효의 시선을 느낀 산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양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에…?”

“…흥! 네놈의 수작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

* * *

뭔가 영수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가 끝나고. 주전부리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드디어 그들도 여명의 물음에 대한 관심사를 드러내었다.

“전날에도 말한 것 같지만. 황룡과 만나는 건 다시 생각해 보거라. 흑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제멋대로 살 뿐인 성성이의 조언 중 바른말은 하나도 없었다.”

“위, 험해, 황룡, 할아버지….”

“…음.”

여우님뿐만 아니라 백효, 그리고 타인에 대해 항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산묘조차 여명을 말렸다.

황룡과 만나는 일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자꾸만 강조해주었고.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기에 저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만약 평소 여명이었다면 저러한 발언을 듣고 곧장 납득하고. 위험한 행위를 하려고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뜻은 즉.

“죄송해요….”

지금 상황이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효와 산묘는 이를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외려 의뭉스럽게 그를 보았지.

“평소와 다르게 강건하구나?”

“…무슨 일, 있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여명은 볼을 긁적였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묘한 찜찜함을 해결하지 않고는.

“요리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여명은 제 스스로의 상태를 그렇게 진단했다.

여명이 뒤적뒤적 식탁을 뒤져 영수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거, 뭔지 아시겠어요?”

“이건….”

“음?”

백효와 산묘는 여명이 꺼낸, 뼈로 만들어진 열쇠몽둥이를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척 봐도 비범해 보이는 물건이 아닐 수 없었으며. 여기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건 설마….”

“-용골(龍骨)이로구나.”

“…이 건방진 것이.”

“아, 여우님. 이제 깨셨어요?”

“으음, 이제야 소화가 된 것 같더구나.”

백효는 ‘저 뻔뻔스러운 계집애!’라며 욕하는 것을 씹으며 미곡왕은 여명이 천마에게 전해 받은 열쇠를 물끄러미 보며 입매가 실룩거렸다.

“재미지구나.”

용골 자체야 이미 과거 무수한 용들에게서 강탈한 경력이 있는 미곡왕이다.

하니 이 정도 용골을 보고 놀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 용골은 다르다.

사실상 용들이란 것도 지능이 없거나, 이무기보다 못한 것들도 있는지라 별 특별할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뼈는.

“기린(麒麟)의 뼈로다.”

천하의 미곡왕조차 탐이 나는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기린? …목이 긴 그 기린이요?”

“후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형태겠지.”

미곡왕은 식당 한편에 있는 술병 하나를 짚었다.

일본 여행을 간 친구가 사준 술이었고. 거기에는 재밌게도 상상 속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술을 다 마신 후에도 기념 삼아 장식해둔 것이었다.

용의 머리와 비늘, 사슴의 몸과 소의 꼬리. 말과 같은 발굽과 갈기가 있으며 네 개의 발굽에는 하얀 털이 돋아 있어서 달릴 때에는 마치 구름 갈기가 피어나 있는….

“뭐, 실제 모습도 저것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좀 더 화려한 녀석이지.”

“지, 진짜 기린이 있다고요?”

“아무렴. 뭐, 지금은 보지 못하긴 하지만. 분명 기린은 실존하지. 그리고 이 용골은 기린의 뼈이니라. 실제로 마주한 본녀가 장담하마.”

“…….”

여명은 용골의 정체를 듣고 눈을 끔뻑였다. 보통 뼈는 아니라고 여기긴 했지만. 상상보다 더욱 큰 거물이 나온 기분인지라.

그렇게 멍하니 있는 그에게 미곡왕은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기린의 뼈가 그대에게 무슨 영향을 미쳤기에 황룡을 만날 생각을 한 것일꼬?”

“…음, 간단히 말하자면 이 뼈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 최근 잠자리가 뒤숭숭해요.”

“잠자리가? 꿈이 불온하다는 것이더냐?”

“아니요. 그런 건 또 아니에요. 오히려 꿀잠 잡니다.”

“……그럼 좋은 일 아니더냐?”

“그렇죠? 그런데….”

꿈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였다.

* * *

그것은 십만대산을 갔다 온 이후부터 계속해서 일어난 특이현상이었다.

-…나 또 무슨 꿈 꾼 것 같은데?

-월?

-아니, 기억은 안 나.

-…월?

설기는 ‘이상한 일도 다 있네.’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꿈을 꾸는 것이야 사람이라면 빈번히 일어날 일인데, 왜 이상한 일이라고 평하냐면 이유는 간단했다.

-또 같은 꿈이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여명은 벌써 며칠째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꿈이 ‘동일’한 것이란 것은 안다.

이 정도로 기기묘묘한 것을 보면 참으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어떻게 된 게.

-왜 이렇게 개운하지?

-…멍.

이상한 소린 것은 알지만. 기억도 나지 않은 기기묘묘한 꿈을 꾸고 나면은 몸이 개운하고 그날 하루가 상쾌했다.

아무래도 꿈이 악몽은 아닌 모양.

허나 악몽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현상이 며칠째 계속되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아니, 거슬린다는 표현도 틀린 말일 거다.

꿈 덕분에 한동안 컨디션이 최상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정체불명의 꿈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찜찜하네.

이유를 모를 꿈이 반복되지만. 이상하게 기억에는 남지 않는 현상은 묘한 거슬림과 찜찜함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황룡을 만나면,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월!?

-…알아, 제정신 아닌 거.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음이었다.

“…뭐, 여우님이나 다른 분들 입장에선 어처구니없는 소리인 건 알아요. 한낱 꿈 때문에 기껏 해주신 조언을 모두 안 듣는다는 거니까. 솔직히 죄송하긴 하네요.”

“…….”

“크흠, 화, 화나셨어요?”

여명은 살살 그들의 눈치를 보았다.

평소 잘 응대해주는 그들이 저토록 무덤덤한 반응인 것을 보면 여러모로 기분이 상한 게 아닐까 싶어서.

여명은 한층 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입을 우물거리고 있으니, 미곡왕은.

“…심각한 일이구나.”

“네에?”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야.”

“…??”

일순 미곡왕을 비롯한 다른 영수들의 낯빛이 흐려지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아니, 갑자기 반응이 왜 이래?

“그대는 그저 찜찜하다고 평했지만. 단언컨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니라. 기린의 용골이 촉매(觸媒) 역할을 하여 그대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 분명할 터.”

“여도 동감하느니라. 빠르게 해결하는 편이 좋을 터.”

“동…감.”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요?”

평소 어떤 일이 터져도 자신들이 기꺼이 해결해줄 것이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던 그들이거늘, 지금만큼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영수들만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

절로 같이 심각해지는 그에게 미곡왕이 힘겹게 입을 열어갔다.

“후우, 본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본녀가 나서야겠구나.”

“네에?”

“가자꾸나.”

황성(皇城)으로.

미곡왕은 마음에 드는 친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서듯 그리 선언했고. 여명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여우의 비장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어라 태클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지라.

‘어, 어쨌든. 일이 잘 풀린 셈인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여명은 목적을 이룬 것에 의의를 두자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찝찝한 것은.

‘왜 저렇게 불쌍하게 보시지?’

황성을 간다고 하니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안쓰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백효와 산묘의 시선이 따가웠고, 여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 후회하면 안 되는데.’

막상 수술이 다가왔을 때 느끼는 불온함이 전신을 엄습하며….

여명은 쓰게 웃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이었다.

tmi후기.

-영수들은 옛날 옛적에는 하나같이 토지신으로 받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제물을 많이 받아먹었는데, 하나같이 덩치가 있는지라 대식가인 경우가 많았다.

-영수들 변신에는 3단계가 있고. 거대화, 소형화, 인간화 등이 있는데, 과거에는 거대화 상태로 돌아다니니 토지신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었다.

-괴물 취급받는 영수도 있었는데, 인간들이 사냥하려다가 도리어 몰살엔딩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괴물 취급받은 영수들이 인간들을 싫어하는 강경파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삼국 황실에 속하지 않은 상태이고. 백효 또한 강경파 인물이다.

-그래도 백효가 그나마 온순한 편인지라 인간들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아예 활동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과거 중원삼국에 용들이 많이 날아다녔지만. 과거 미곡왕이나 산묘 같은 영수들이 보양 등을 목적으로 많이 잡아먹어 그 개체 수가 한없이 적어졌다.

-여름날 장어 먹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중원의 용들은 깨달음을 얻어 영물이나 영수가 되지 않는 이상 일반 동물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공룡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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