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3)
“황성(皇城)이 어디 있는지 들은 적 있느냐?”
“어? 그러고 보니….”
“그래, 아마 들은 적이 없을 게다.”
딱히 여명이 외계(外界)에서 온 이방인이라 모르는 것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황제가 거하는 황도(皇都)가 어딘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천 년 전이야 황도라고 하면 나라의 수도이자, 제국의 중심과 같은 것이었지만. 현재에 이르러 딱히 수도라 불리는 성(省)도 없었으며. 설사 황도가 없더라도 각각 성을 지배하는 황족, 즉 영수들이 기거하고 있으니 백성들도 나라에서 외면받나 싶은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후웅! 후웅!
“과거야 인간 권력자의 의중 하나에 백성들이 갈려 나가는지라 백성들은 황제와 권력자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나, 삼신수와 우리 영수들이 삼국을 장악한 이후 권력자가 백성들의 생업에 영향을 끼칠 일이 대부분 사라졌으니, 백성들이 황도를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당연한 얘기일 터.”
“…그래도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 않나요?”
아무리 살기가 좋다고 한들 자신이 사는 국가의 수도가 어딘지, 그리고 황제가 거하는 수도는 어떠한지 궁금증은 느낄 법했다.
인간이라면 가질 원초적인 궁금증일 텐데, 이 세상 사람들은 그런 관심도 없단 말인가?
“후후, 그 말도 맞느니라. 허나 알지 않더냐. 삼국의 영토가 얼마나 넓은지. 하나의 성만 해도 당장 자급자족이 가능한 환경이며. 금천상단과 같은 대상단이 각 성과 타국의 물품을 유통시켜 주니 문화의 다양성과 발전성 등이 떨어질 일도 그다지 없으며. 중원삼국 각지에 퍼진 정보 조직들이 항상 무수한 관보(官報)와 서적을 가지고 오니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일도 잘 없지. …특히 그 망할 부엉이 계집애가 빌어먹을 정도로 일을 잘하니, 원.”
아장아장한 발로 ‘운전’ 중이시던 여우님은 백효님을 떠올리며 배알이 꼴려 보였다.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 싫다는 듯.
여명은 그러한 미곡왕의 말투에 괴리감을 느끼며 쓰게 웃었다. 생긴 건 세상 귀여운 마스코트인데, 말하는 게 노회한 정치인 못지않다며.
하지만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사실에 시선이 돌아가 여명은 중얼거리듯 물음을 던졌다.
“여우님의 말대로라면, 지역별 차별이 없다는 거죠?”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현대 세계 최고의 대국(大國)조차 감당 못 하는 것이 지역별 감정이다.
모든 인프라가 평등하게 돌아간다는 건 아무래도 꿈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니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단언했다.
그것은 ‘자부심(自負心)’이었다.
“신경 좀 썼지. 아무래도 인간이란 자고로 본인들이 사는 고향이 풍족하고 타지역과 차이가 없다면 대부분 만족할 줄 아니 말이다.”
“확실히….”
“후후, 어디 이뿐인 줄 아느냐? 설혹 온천(溫泉)이나 아미산과 같은 특별한 장소로 가고 싶은 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하지. 상단 중에는 타지역으로 사람을 옮기는 업을 행하는 이들도 넘쳐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이 가능하게 한 가장 핵심 인물이자 유능한 영수가 다름 아닌.”
척!
“바로 본녀이니라!”
“…와아.”
짝짝짝.
“우후후후!”
여명은 과장되게 손뼉을 쳐주었다. 서로가 민망할 정도로 유치한 행위인 것을 알지만. 칭찬에 유치하고 말고가 어디 있을까.
또한 여명 본인도 유치한 호응을 선보이면서도 진심이 반절 섞인 감탄을 느끼는 중이었다.
‘분명 저번에 안휘행에서 여우님이 황룡국의 행정을 모두 책임지고 손봤다고 했었지?’
그때는 반신반의했는데, 그녀가 이토록 빠삭한 것을 보니 그때 그 말이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여명은 신기해하였다.
깨끗하게 닦인 도로를 보고?
아니다. 이미 한번 본 것을 보고 자꾸 놀랄 게 무얼 있을까.
그가 놀라운 건, 그래.
아홉 꼬리 달린 여우가 타지역간의 원활한 운행과 관광 등을 위해 만들었다는….
“비구(飛球)라고 하느니라. 백성들을 위해 한 달 동안 열 번 정도 정기 운영되는 물건이지.”
“…비행선 같네요.”
“운치 면에선 내가 만든 것이 더 좋지 않으냐?”
“그건 반박 불가 인정이긴 하죠.”
흔히 기구(氣球)나 비행선과는 전혀 결이 다른 물건이었다.
다름 아닌.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종이비행기라니….’
그랬다. 여명은 지금 거대한 종이비행기를 타고 거의 날다시피 떠다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하늘 비행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후우우욱!
저공비행(低空飛行)이라 할 수 있으리라.
마치 자기부상열차가 있다면 이러한 감각이지 않을까 싶었고. 종이비행기란 이름에 서핑보드를 타고 땅을 달리는 황홀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로망의 실현과 다름없는 신비한 기물이 아닐 수 없으며. 여명은 기환학사의 눈으로 종이비행기를 보았다.
“…이거 엄청나네요. 기환술이 5중첩, 아니다 8중첩인가?”
“후후, 실력이 늘긴 늘었구나. 하지만 틀렸다. 정확히는 16중첩이니라.”
“와….”
16중첩이라니?
이 소형 자동차만 한 종이비행기 안에 그 정도로 복잡한 기술이 쓰여졌단 말인가?
“월?”
“어려운 일이냐고? 으응, 쉽게 말하자면 반도체 만드는 거랑 난이도가 비슷할걸?”
“……월.”
“역시 이과 강아지. 바로 이해하네.”
최근 과학 사이언스 전문 잡지와 여러 대학 논문도 읽는 설기인 만큼, 반도체라고 하니 이 기물이 어느 정도로 폼이 많이 들어갔을지 예측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로 기환술을 중첩시켜 새긴다는 건 고난도의 기술이었으며. 기환학사 한두 명 가지곤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뭐, 만드는 것이 어려운 만큼 성마다 보급되는 비구의 숫자 또한 적은 편이지. 많이 보급시킬 수만 있다면 성마다의 운행도 원활할 터인데, 아쉬운 일이야….”
“지금도 충분히 대단한데요, 뭘.”
“후후, 그리 말해줘서 고맙구나. 뭐, 쓸만한 기환학사가 도와준다면 더욱 고맙기도 할 것 같다만….”
“…그, 그건 나중에 얘기하죠.”
“우후후, 그러자꾸나.”
“…으으음.”
여명은 은근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구미호의 요망한 눈길이 부담스러운 듯 땀을 삐질거렸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았고. 자칫 잘못 걸리면 그날로 공돌이 노예, …아니, 기환술 노예가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조심해야지.’
최근 들어 느낀 거지만. 여우님을 보고 있자니 단골 대학교수가 떠오르고 있었다.
자기 대학원생에게 아주 끈끈한 시선을 던지던 대학교수가 말이다.
“월!”
“어? 벌써 왔어.”
여명이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설기의 신호와 같은 외침이 크게 울렸고. 여명은 보았다.
“…저기가.”
“그러느니라.”
천의각(天意閣).
황룡국 최상최고(最上最高)의 조직이었다.
또한.
“모든 백성들에게 그 실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황도로 가기 위한 출입구이기도 하지.”
* * *
정통의 강호이자, 소림사가 중심을 잡아주는 구파일방의 구룡맹.
오대세가를 필두로 한 호족들의 회(會). 혹은 세가연합이라고 불리는 정천련.
사실상 군부 문파의 대두(大頭)이자 정점이라 할 만한 군문이자, 정파제일인 무봉일패가 다스리는 백룡성.
금천상단을 필두로 모인 상인들의 세력 상인연합.
이렇듯 황룡국에는 그 힘이 엇비슷하다 못해 서로가 언제 치고 나갈지 모를 정도로 강대한 세력들이 즐비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구룡맹이나 정천련 등이 지는 해라고 한다면.
백룡성은 이미 하늘 저편에서 떠오르는 조일(朝日)과 같다는 것이고. 상인연합은 금력만 놓고 보자면 황룡국을 벗어나 타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란 것이리라.
허나 이러한 강인한 세력조차 감히 빗대지도 못하는 세력이 하나 있으며. 황룡국 오세(五勢)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일각사세(一閣四勢)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논외 취급받는 세력이 존재했다.
천의각.
한 명의 기환학사에 의해 세워진. 오로지 기환학사만이 모인 소수 세력이지만. 그 힘만큼은 황룡국을 넘어 마교와 비등하다고 불리는 세력이 다름 아닌 천의각이었다.
어찌 단일 세력에게 이러한 힘이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천의각을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천의각이니까.
그래, 천의각은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일을 얼마든지 해내는 세력이었다.
“당장 이 비구만 해도 본녀의 의뢰를 들은 천의각에서 만들어준 것이지. 본녀는 본디 인간의 세력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으나 천의각만큼은 인정하는 바이니라. 이만큼 대단한 이들도 또 없을 터이니.”
“…듣고 보니 정말 그렇긴 하네요.”
여명은 제 역할을 끝내고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종이비행기를 멍하니 보았다.
저걸 저렇게 회수하는 거구나.
“진짜 대단하네….”
“역사는 짧더라도, 기환학사 중에서도 알짜배기들만이 모인 곳이니 대단할 만도 하지. 자허 그 애송이나 마교의 지괴가 비록 경지가 대단한 기환학사인 것은 맞지만. 천의각이 가진 발상과 독창성만큼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야.”
“으음,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자허와 지괴 등의 인물 등이 각자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대가(大家)라면, 천의각은 하나의 연구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외골수이거나 개인의 연구만을 중요시하는 기환학사들이 무려 서른 명 가까이 모여 힘을 합치고 있으니 감히 황룡국, 아니 삼국제일을 논할 만도 할 터.
다만.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하네요. 역사도 얼마 안 되고. 그렇다고 황룡한테 충성을 바치는 것도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황성으로 가는 문을 관리하는 건지.”
그래, 황룡과는 어떠한 접점과도 없을 것 같은 무리가 왜 황성의 출입문을 관리하는 게 가능한 것이고. 이를 위해 영수가, 그것도 미곡왕 정도의 거물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사뭇 이해가 안 가는 여명이었다.
미곡왕은 여명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조언하듯 말을 이었다.
“간단히 생각하거라. 도리어 충심이 없고. 누구도 예상 못 할 곳이기에 비밀을 지키기 용이한 선택지인 것이지.”
등하불명. 도리어 누구도 예상 못 할 곳에 숨긴다.
“그렇게 들으니 또 납득이 가는 말이네요.”
물론 여전히 뭔가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명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원래 정치란 게 그렇지 않은가.
무수한 이해관계와 비합리와 합리 사이에 일어나는 오묘함.
주식처럼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휘몰아치며 혼돈밖에 없는 이질적인 규율.
여명은 천의각과 황룡의 관계 또한 이러한 이질적인 것이라 여겼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황룡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멍.”
“걱정 좀 그만해. 누가 보면 설기 네가 내 엄만 줄 알겠다.”
“월!”
“…화내는 부분이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네가 누나는 아니지….
여명과 설기가 늘 그렇듯 투덕거렸지만. 투덕거림 사이에는 어딘지 모를 걱정과 복잡한 심경이 감돌고 있었다.
여명은 황룡을 만나길 원했고. 설기는 육감적으로 주인이 황룡과 만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인조영수라고 하지만, 영수는 영수.
설기의 육감(六感)은 마냥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바였으나, 여명은 과감히 천의각까지 온 것이니 대립하는 것이 당연했다.
뭐, 대립이라고 한들.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월!”
“그, 그래도 만나야 할 것 같긴 해.”
“으르르릉!”
“화내지 마라니까, 네 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아! 물지 마 이 녀석아!”
“왈!!”
그야말로 애정싸움과 마찬가지였기에 남들 눈에는.
“거 참 귀여운 녀석들인지고.”
참으로 흐뭇하고도 하찮은 것들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지만.
여우는 천의각의 문이 열릴 때까지 한참을 그들의 재롱을 구경하였다.
tmi후기.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천의각을 제외하고도 황성으로 갈 수 있는 통로는 딱 여섯 개밖에 없으며. 그 문들 대부분의 위치는 영수가 아니면 모른다.
-비구, 그러니까 종이비행기는 땅에서 약 3미터가량 뜬 상태로 이동하며. 반중력을 이용해서 떠다니는 물체다.
-시속 180km로 떠다니며. 바람의 영향도 받지 않기에 여행할 때 쓰기 딱 좋다.
-천의각이 어떤 곳인지 굳이 말하자면 미친 공돌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을 보고. 대부분은 그냥 ‘와, 저런 게 있구나’하고 놀라지만. 천의각의 기환학사들은 ‘오, 신기하네…. 당장 만들자!’라고 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
-아이언맨 슈트나 건담을 보면 실제로 만들 인간들만 있다고 보면 된다.
-천의각이 황룡국 최고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인, 전자기력(電磁氣力)을 인위적으로 이용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레일건이다.
-건드리면 그날로 문파 하나가 산과 함께 날아간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