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98화 Ep.98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그쪽이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군.”
“난 그거도 좀 괜찮아 보이는데 ?”
“이건 어떻습니까.”
각기 특출난 머리 색을 가진 세 명의 여인이 저마다한손에 옷가지를들고 내 몸에 가져대며 저들끼리 고개를주억거리더니 또다시 새로운옷을 찾아 떠났다.
그제야 나는 나를 위해 준비된 소파에 앉아 이 건물의 주인이 직접 가져다 준 과자와 홍차로 입 가심 한 후, 한숨을 내쉬 었다.
—야!! 활쟁아!! 이거 어때?
—그것보단 옆에 있는 게 더 괜찮아 보이는군요.
—음,그런것 같기도하고?
—그냥 둘 다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니냐.
—아하.
—그렇군요.
아르델라님의 말에 시론과 기에나씨가 뭔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고 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사이 가 좋아 보였다.
분명 성을 나오기 전까지 만 하더 라도 기 에 나씨와 아르델라님 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사이였다.그런 둘이 어떻게 저런 가까운사이가 되었는 가.
나도 모르겠다.
분명 성을 나온 직후까지만 해도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 인지 두 사람은 정작 본인들을 도발한 시론에 게는 크게 감정이 상하지 않아 보였다.
간간이 거리를 걷다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 같은 것을 시론에게 묻거나 평 범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내가 봤기 때문이다.
시론은 당당하게 내 깍지낀 손을 붙잡고 둘의 물음에 대충대충 대 답하며 길을걸었다.
시론은 작년에 의뢰로 한번 이 도시에서 꽤 긴 시간을 머물러 굵직굵직한 장소에 대한 것은 전부 숙지하고 있어 우리는 그저 시론의 걸음을 따라 길을 걸을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곳은 성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거리 주변으로는 하나 같이 고급스러운 외관을 가진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복장도 일반 거리에서 쉽게 보기 힘든 값 비싼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시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믫층짜리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전체 가 의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었다.
처음 안으로 들어서 자마자 여성 속옷이 나 의 류가 눈에 들어와 나는 당연 히 시론이 본인이 입을옷을 사러 왔다고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이 깨지는 데는 믫분도 걸리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계단을 밟아 슩층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잔뜩 보이던 여성 의류는 사라지고 뭔가 기묘한 디자인의 남성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최상층인 믫층까지 우리를 끌고 올라갔다.
과연 최 상층은 뭔 가 달라도 달랐다.
검고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부터 시작해서 천장을 장식한 샹들리에 까지.
무엇하나 값싸 보이는 것이 없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최 상층에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가 전부였다 는 점이었을까.
믫층에 도착한 우리를 향해 구김 하나 없이 빳빳한 슈트 차림의 여성이 다 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이 건물의 주인이자 총관리인이었다.
예의 바른관리인은 이 층에 대해 설명했다.
대충 유명한 장인이 한땀한땀 손수 만들어 단 한 벌 밖에 없는 한정 의 상 들이 라 가격 이 매우 비 싸다는 말이 었다.
요약하자면 ‘너희 돈은 있니 ?’ 쯤으로 알아들으면 되 지 않았나 싶다.
관리인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 시론이 품에서 무언가 꺼내 보여주려 했다. 그런 시론의 앞으로 아르델라님이 나와 왼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관리
인에게 보여주었다.
생글생글웃고 있던 관리인의 눈이 ‘저렇게까지 커져도괜찮은건가.’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커지더니 이번에는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우리를 향해 인 사했다.
아마 아르델라님께서 끼고 계신 반지가 신분이나 가문을 증명하는 것이 고관리인이 그걸 단번에 알아본 것 같았다.
그 후로는 별것 없다.
나는 나만을 위 해 준비된 소파와 테 이블에 앉아 관리 인이 가져 다주는 간 식거리를 먹으며 세 사람이 가져오는 옷을 대충 몸에 가져대 보는 일이 전부 였다.
그래서 셋이 언제부터 가까운사이가된 건가.
다시 말하지만 나도 모른다.
그냥 몇 번인가 옷을 가져와 나에게 대보더니 어느 순간부터 서로 짧게나 마 말을 주고받기 시 작했고 조금 더 시 간이 흐른 후에는 지금처 럼 아주 살갑 게 서로를 부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홍차로 목을 축이 다가 슬금슬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세 사람의 모습 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건 크기가 좀 작네.”
“스미스가사내답지 못하긴 하지.”
“그게 매력이죠.”
“그건 그래.”
셋은 또 나에게 다가와 각자가 가져온 옷을 이리저리 대보다가 사라졌다.
나도 지금에서 야 눈치챈 것인데 시론은 언제부터 아르델라님과 말을 놓 은 사이가 된 것일까.
것보다 나는 언제 까지 마네 킹 노릇을 하고 있어 야 하는 걸까.
“차좀더 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금방가져다드릴게요.”
소리 없이 나타난 관리 인이 비어버린 잔을 가지고 사라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과하게 화려하지 않은 종이봉투들이 바닥에 빼곡 하게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장장 祄시간이다.
祄시간이나 마네킹 노릇을 했고 얼핏 봐도 벌써 30벌이 넘는옷을 구매했 다.
솔직히 좀이 쑤셔 죽을 것 같다.
당장 여기서 나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 며 다시 고개 를 돌렸다.
멀리서 셋이 사이좋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셋이 다투지 않고 지금처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야.
“조금만더 참지 뭐.”
그렇게 넽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나는 마네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나머지는 최대한 신속하게 성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영광이 었습니다.”
관리인이 손수 1층까지 내려와 건물을 나서는 우리를 배웅했다.
장장 믫시간 끝에 건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놀랍게도 건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르렀던 하늘에는 어느새 주황빛 노을이 스멀스멀 물감처럼 퍼져가고 있었다.
“아르델라님.”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를 향해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성으로 언제쯤 복귀하실 예정인지 여쭈어보라하여 왔습니다.”
병사의 말에 아르델라님이 옆에 있던 나를돌아보며 말했다.
“스미스. 피곤하다면 지금 돌아가도 괜찮다.”
“잠깐!!”
내가대답하기도전에 시론이 끼어들어 왔다
시론이 팔꿈치로 아르델라님의 옆구리를 팔로 살살 찌르며 비밀스런 이 야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작게 소곤거렸다.
“이 왕 나온 거 저 아무렇게 나 자란 머 리도 좀 정 리 시 키고 들어 가자고.”
“•••꾈.”
시론의 말에 아르델라님이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정확히는 얼굴이 아니라 대충 쓸어올린 내 머리를 유심히 바라보셨다.
“머리는 지금도 괜찮은 것 같다만?”
“아니아니. 봐봐.”
시론이 풀쩍 뛰더니 내 등에 올라탔다.
작고귀여운손으로 내 머리를 이리저리 들어 올리며 ‘여기가 길다.’ ‘여기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 같은 소리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나도 머리는 한 번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 다.
그간 대충 가위로 정리한 상태 기 에 전체 적으로 다듬을 필요성도 있고 또 슬슬 날이 더워지니 이 기회에 그냥짧게 밀어버리는 것도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론이 내 등에서 내려왔고 아르델라님이 대충 시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 이며 병사에게 말했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돌아가겠다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혹 시키실 일이 있다면 가볍게 손을 들어주십시오. 근처 에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이 달려올 겁니다.”
“그리하도록 하지.”
병 사가 고개 를 숙이 며 빠르게 사라졌다.
“좋아. 마침 근처에 괜찮은 식당도 있는데 끝나고 거기서 술 한잔하고 들 어가면 되겠네.”
“술… 그래. 술도 나쁘지 않겠지.”
시론의 말에 아르델라님이 동의했고 기에나씨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
나 빼고 전부 괜찮은 모양이 다.
“뭐야. 넌 표정이 왜그래?”
“아니, 그냥.”
나는 짧게 헛기침했다.
여 기서 내 가 저녁은 별로라고 이 야기 했다가는 분위 기 가 완전히 거덜 날 것 같았기 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위에서 하도 과자와홍차를 마셔댄 덕에 배가 더부룩하고 입맛이 없었으 나 이 셋이 지금의 거리감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야 나는 얼마든지 내 위장에 음식을 밀어 넣을 각오가 되 어있다.
**
성으로 향하는 길.
“우욱….
“어휴, 주는 족족 받아 마실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
“스미스… 괜찮나?”
나는 목구멍과 식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들을 애써 삼키는데 집중해 야했다.
것보다 이게 다누구 탓인데.
전문인의 손놀림으로 머리는 아주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그 후, 우리는 시론이 추천하는 식당. 아니,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좋은 자리.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프라이 빗룸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간단한 요 리와 더불어 다양한 와인을 주문했다.
요리가 먼저 나왔고 뒤에 와인이 도착했다.
그런데 분명 가볍게 한잔만 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잔이 빌 때마다, 아르델라님과 시론이 번갈아 가며 내 잔에 와인을 채웠다.
뭔 가 이 상함을 느끼 긴 했는데 이 게 술이 들어 가고 또 맛없는 맥주만 만날 먹다 보니 은은한 단맛과 풍미 가 일품인 고급 와인이 입 에 들어 가니 이 게 또 멈출 수가 없어 시론의 말처럼 주는 족족 받아 마셨다.
그리 고 지 금 그 대 가를 치 르는 중이 다.
혼자 족히 祄병은 마신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여러 와인의 풍미와 알콜향이 올라와 아주 괴로웠다.
딱히 취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더부룩한상태에서 너무 과하게 마셔서 속이 좋지 않은 것뿐이다.
속이 좋지 않은 내 등을 시론과 아르델라님이 번갈아 가며 부드럽게 쓸어 내려주었다.
그저 기분 탓일 테지만, 한결 속이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별 탈 없이 우리는 성문에 도착했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경례를 취하며 길을 터주었다.
우리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
“아르델라님.”
기억에 있는 여집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르델라님의 안내를 맡았던 여집사였다.
“별실의 정리에 살짝문제가생겨 조금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군.”
아르델 라님 이 고개를 끄덕 였고 여 집 사도 뒤 에 별말을 이 어 하지 않고서 조용히 물러갔다.
“스미스. 낮에 말했던 것처럼 네 방에 조금 신세를 저야할 것 같군.”
“아,예.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니 점심에 그렇게 하기로 이미 약속을했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저녁에 케르낙스가 찾아오기로 했었다.
그럼 차라리 내가 방을 잠깐 비우고 케르낙스의 방에 가 있는 게 여러모로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는 잠깐 케르낙스의 방에….”
“아아. 잠깐잠깐.”
엩,,
시론이 내 말을 끊고들어왔다.
“크흠. 그, 내가 그 녀석이랑 따로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
“그렇다니까.볼일 끝나면 나중에 내가올라가서 알려주던지. 아님, 그 녀석 올려보낼 테니까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냐?”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론 역시 고개를끄덕였다.
“그럼 얼른 올라가서 쉬자고.”
시론의 말에 나는또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적 피로에 알콜까지 합세하니 아주 몸이 그냥 나른했다.
우리는 계단을 걸었고 시론과 기에나씨가 먼저 슩층에서 인사하며 떠나갔 다.
꽈악.
둘만 남게 되자, 아르델라님 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게 깍지를 껴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른하던 몸에 힘 이 들어갔다.
절로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얼른들어가지.”
“아예….”
깍지를 낀 아르델라님이 내 손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내게 배정된 별실에 들어갈 때까지 누가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별실의 문이 닫혔다.
“……일단 앉도록 하자.”
“옙.,,
나와 아르델라님은 방 한쪽에 놓인 소파에 사이좋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 았다.
우리는 다시 한동안 침묵했다.
깍지낀 손에 식은땀이 배어 나올 것 같았다.
“스미스.”
“예 ?”
내 가 반사적 으로 고개 를 돌려 아르델 라님 을 바라봤다.
아르델라님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소파 앞에 놓인 탁자를 내 려다보고 계셨다.
“시론에게 이야기했다.”
“……뭐를 말입니까?”
“널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얼마 남아 있지도 않던 알콜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후에 물었다.
“언제… 그런 말을?”
“옷을 고르다가문뜩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지. 다행히 시론이 진지하게 생각해 주더군.”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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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의미로 놀랐다.
케르낙스와 함께 했을 땐, 거리 하나를 작살을 내놓을 정도로 화를 냈었 다.
심지어 아르델라님과시론은 첫 만남부터 그리 좋지 않았다.
신전에서의 일을 떠올리면 솔직히 지금도 정수리가 아찔하다.
무엇보다 설마 옷을 고르며 그런 대화를 주고 받았을 줄이야.
정 말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 다.
“그쪽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어 나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그간 너를두 고 시론과 케르낙스. 둘에게 도 넘은 행동을 했던 것은 부러움과 질투 때문 이라고 말이지.”
아르델라님 이 나를 바라봤다.
보석같이 맑은 푸른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욱 빛나 보였다.
“시론이 그러더군. 결정하는 건 스미스. 너라고 말이다. 본인은, 또 케르 낙스 역시 너의 결정을 따를 뿐이라고….”
스르륵.
깍지낀 손에 힘이 풀렸다.
아르델라님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뺐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난 한번 결단을 내 리면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였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스미스. 나 역시 안다. 스스로 누이 를 자처한주제에 지금에서 이런말을 꺼내는게 얼마나한심스러운 일이라 는 걸.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물을 수밖에 없구나.”
아르델라님 이 나를 을곧게 바라보며 조금 전까지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만약…. 스미스 네가… 조금이라도 나를 여자로 생각한다면 내 손을 잡 아주었으면 하는구나.”
나를 바라보는 올곧은 눈동자.
그 보석 같은 눈동자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거절해도 괜찮다.그렇다면 지금처럼 누이와 동생 사이로 지낼….”
아르델라님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을곧게 나를 바라보던 눈이 조심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는 서로 맞닿은 두 손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