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276화 Ep.275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문 앞에 서 있던 성기사는 언덕에서 막 을라온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그럭-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건강에이상은 없나?”
“예? 예. 건강합니다.”
나에게 다가온 그녀는 대뜸 내 건강에 관심을 가졌다.
“갑자기 우울해진다거나 환경이 바뀌면 숙면을 잘취하지 못하진 않고?”
“예 에 … 어디서든 잘 잡니다. 우울하지도 않고.”
“정신적으로 불안감을 느낄 만한 사건을 최근에 겪은 적 있나?”
“없습니다만…?”
“음.”
모든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자, 성기사가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말했다.
“일주일 후 풍요의 신전으로 오도록.”
“일주일.
“그래. 일주일.
“언제까지 가면 됩니까? 새벽? 점심?”
“편한시간에 찾아오라고 대사제님께서 말씀하셨다. 단, 자정 전에 출발 해 야 한다는 점은 고려하도록.”
“아,예. 알겠습니다.”
“으 浮 •
그녀는 다시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시원스럽게 나를 지나쳐 언덕 아래로 사라졌다.
잠깐 떠나가는 성기사의 등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나왔어.”
현관에서 슬리퍼로 갈아신고 있으니, 부엌에서 앞치마를 걸친 베네오가 걸어왔다. 그녀의 몸에선 담백한 감자 스튜 냄새 가 났다.
“성 기사가 뭐라고 하던가.”
“일주일 뒤에 출발하니까 그때 신전 앞으로 오래요.”
“바쁘겠군.”
그녀는 내 외투를 손에 걸치고 나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바쁠게 뭐 있나.준비는다됐는데.”
“그걸 말한 게 아니다. 정확히 떠나는 날자가 정해졌으니 그전까지 다른 연인들이 널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 아하.”
그쪽이었나.
그런데 다들 바쁘고 지쳐서 그럴 시간은 있을는지 모르겠다.
방으로 들어와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옆에서 돕는 베네오에게 물었다.
“베네오도 그럴 예정입니까?”
“예정? 무엇을 말하는 거지.”
“절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내 질문에 그녀는 잠깐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 다.
“나는 괜찮다.”
“……정말로?”
“그래.그러니 다른 연인들에게 더 신경 써 주도록. 아, 검은고양이도크게 신경 써 줄 필욘 없을 거다.”
“냐호? 냐호는 왜요.”
“나중에 알… … 꺅?!”
기습적으로 껴안으며 목덜미를 깨물자 품에 들어온 베네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지금알려줘요.”
“나, 나중에 듣는 쪽이 더 … 으음… …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을 바지 속으로 넣자 베네오가 곤란하다는 듯이 신 음을 흘렸다. 나는 깨물고 있던 그녀의 목덜미를 뱉어내며 또렷이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말안 해줄겁니까?”
“•••나는 입이 무겁다.”
그리 말하며 뻘쭘하게 펴고 있던 손으로 내 허리를조심스럽게 껴안아왔 다. 점차빨갛게 물들어가는 뺨.높아지는체온.
“어디 얼마나무거운지 확인해 봅시다.”
**
베네오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나에게 숨기려던 것들을 모조리 실토 했다.
“너무가벼운거아닙니까?”
“•••비겁한 녀석. 내가그 떨리는 건 싫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리고 엉덩 이는 또 왜 그리 집요하게 괴롭히는 거고…….”
“괴롭힘 당한것 치고는굉장히 좋아하시던데.”
“…….”
품에 안겨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품에서 빠져나갔 다.
“어디 가세요?”
“•••경비대.”
벗겨졌던 바지를 끌어 올리 며 그녀 가 대 답했다.
“같이 가요. 저도 볼 일 있거든요.”
“저녁에가면 될텐데.”
“저녁까지 있다가오면 되지 뭐.”
“•••꾈.”
베 네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방을 나갔고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내가 즐겨 입는 외출용의 두꺼운 코트가 들 려 있었다.
**
크르르릉一
“오랜만이다야.”
내 가 반갑게 인사하자 드레 이크가 길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베네오가 용무가 있는 곳은 경비대가 아니라, 경비대 옆에 붙어 있는 마사였다. 그곳에 있는 이 녀석을 돌봐주기 위해 온 것이다. 나는 겸사겸사 얼굴을 보러 온 것이고.
“살이 쪘군.”
크르릉一!!
베네오의 무심한 한마디에 드레이크가두꺼운 꼬리로 바닥을 팍팍! 내려 치며 불만을표시했다.그런데 내가보기엔 전혀 살쪄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 거 같은데요?”
그르릉…….
날뛰던 녀석이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나에게 머리를문질러왔다.그 모습 을 옆에서 지켜보던 베네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편들어주지마라. 버릇나빠진다.”
“•••아니 뭔•••꾈.”
드레 이 크에 게 질투라도 하는 거 냐고 물으려 던 나는 날카로운 그녀의 눈 초리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며.
“방해꾼은 이만 사라지겠습니 다.”
“그래. 얼른가라.”
내가 떠나려고하자뒤에서 드레이크 녀석이 울기 시작했다.그러나나는 케르낙스에게 볼 일이 있었기에 손을 흔들어주며 시원스럽게 마사를 빠 져나와 집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퇴 직금으로 드레 이크를 받다니 .’
아르델의 기사를 그만두면서 베네오는 금전이 아닌, 방금까지 꼬리를 탕 탕 내 려치 던 드레 이크를 데 려왔다.
‘덕분에 함께가는거지만.’
입이 무겁다고 도발 아닌 도발을 했던 베네오가 1시간 만에 털어놓은 비밀들.
사실 비밀이라고 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녀의 말처럼 나중 에 알게 되었을 때가조금 더 즐거웠던 그런 내용이랄까.
다름이 아니고, 1주일 뒤에 떠나는 여행길에 마부로 베네오가 함께하게 되었다. 이유는 척박한 지형도 빠르게 달릴 수 있으면서도 쉽게 지치지 않는 드레이크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냐호. 냐호도 여행에 함께 하게 됐다. 이유는 국경을 넘고 골디 아스 왕국의 관문과 도시를 넘어갈 때 필요한 신분을 위해서였다.
냐호가몸담고 있는 흑선 상단은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거대 한 상단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만큼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만큼 사람들에게 주는신뢰 역시 대단할것이다.
우리는 냐호가 이끄는 상행의 일원이 되어 골디아스 왕국의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이 번거로운 준비는 모두 나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베네오가 이야기해 주었다.
똑. 똑. 똑.
어느새 케르낙스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 나는 노크를 하며 그녀를 불렀다.
“케르낙스. 나야.”
—스미, 스? 어... 음. 들어와라.
익숙한 문고리를 당기 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는 케르낙스와 눈이 마주쳤다.
“쉬고 있었구나.”
“끄응… 잠깐.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밀리아님은?”
나는 몸을 일으킨 케르낙스의 옆에 앉으며 자리에 없는 행정관님의 행방 을 물었다.
케르낙스는 길게 하품을하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모르겠다… 눈을붙이기 전까진 계셨는데 어딜 가신 모양이야.”
“그렇구만.
어깨에 머리를 기댄 아름다운 금발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케르낙스가 눈을 감고 조금씩 이쪽으로 몸을 기울여왔다.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
“아니. 아니다… 잠깐 눕는 것보다 이렇게 …….”
케르낙스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내 손을 붙잡고 본인의 뺨에 살포시 가 져댔다.
“스미스… 너의 온기를 느끼고 체취를 맡는 쪽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 로도 훨씬 많은 피로를 풀어준다.”
“쑥스럽구만.”
.........
나는 한동안 케르낙스가 내 손바닥에 뺨을 문지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음……오늘은 일찍 왔구나.”
케 르낙스가 조금 아쉬 운 표정으로 고개 를 들었다. 나는 오랜 피로가 쌓여 조금 탁해진 푸른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내가 찾아온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마력을불어 넣으면 되는 건가?”
케르낙스의 손에 쥐어진 단검.
당연히 평범한 단검은 아니고, 두 번째 슬롯에 등록한 둥글둥글한. 날이 서 있지 않은위로의 검.mk2다.
그러나 지금 케르낙스의 손에 들린 단검은 날이 서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베네오에게 부탁해 날을 세웠다.
“떨어트리지 않게 꽉쥐고.”
“ 알겠다.
케르낙스가 단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o o o o 츸 I 厂챺
!!
그녀의 마력을 머금은 단검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케르낙스가 놀란 눈 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녀를 향해 그녀가 원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힘주지 말고천천히.천천히 누른다는생각으로.”
“으음.
내 말에 케르낙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웅웅! 떨고 있는 단검을 원래 차고 있던 검을 향해 가져댔다.
스으윽, 툭.
« 11”
그저 가볍게 단검을 가져댔을 뿐인데 검이 검집 채로 잘려 나갔다. 케르낙 스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길쭉한 검이 손잡이만 남을 때까지 그 과정을 반 복했다.
“허,허어…….”
“위 험하니까 마력은 그만 거두고.”
“ 아, 알겠다.”
케르낙스가허둥거리며 얼른 마력을 거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검 은 얌전해졌다.
나는 멍하니 손에 들린 단검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때?”
“어,어떻냐니… 이건, 이건……미쳤다. 스미스. 이건, 정말위험한녀석이 다.”
조금 전까지 멍하니 단검을 보고 있던 그녀가 단단히 정색하며 나에게 말 했다.
“이건… 정말로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자의 손에 들 어가게 된다면…….”
“나도 알아.그래서 묻는 건데, 너만괜찮다면 케르낙스. 너에게 검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어.”
이걸?”
“그거 보단 더 길고 튼튼하겠지.”
“으, 으음.
정색하고 있던 그녀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케르낙스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고 조용히 대답하기를 기다 렸다.
나는.”
지쳐 보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힘을 주어 나를 바라봤다.
“•••스미스. 네가 만든 검을 꼭 가지고 싶다.”
“알겠어.”
나는 케르낙스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직접 건네주고 싶지만, 그럼 다른 애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까 지하에 남겨두고 갈게. 나중에 나 떠나면 그때 가져가.”
“•••고맙다.”
“고맙긴. 내 가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 건데. 그보다 케르낙스.”
“왜그...스, 스미스?”
손에 쥔 단검으로 아랫배를 살짝 누르자 케르낙스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케르낙스.”
“아,아직 할일이….”
붙잡은 손을 풀었다. 그 손을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내 품으로 당겼다.
“해,행정관님께서 언제 돌아오실지…….”
“괜찮아. 길게 할거아니거든.그냥.”
그녀의 탄탄한 복부를 꾹꾹 누르던 단검을 조금 더 깊숙이. 아래로 밀어 넣 었다.
“이 녀석의 다른 사용법을 알려주려는 것뿐이야.”
조용하던 집무실은 곧 케르낙스의 교성으로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