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 277화 Ep.276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
성 기 사가 다녀 가고 엿새 가 흘렀다.
“너무투박한가.”
바닥에 일렬로 나열된 작은 상자들.
그 속에는 시론과 다른 연인들에게 선물할 징표가 들어있다.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포장하려고 노력했으나 실제 내 손은 내가 생각했 던 것 이상으로 재주가 없었다.그래서 그냥노점에서 파는 작은종이 상자에 다가 담았다.
투욱.
계 단을 밟고 내 려오는 소리에 나는 왼쪽 끝에 놓아둔 상자를 들고 자리 에 서 일어났다.
“스미스.”
곧이어 등뒤로 베네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모였다.”
그녀의 말에 나는고개를끄덕이며 돌아섰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가슴 아래에 팔짱을 끼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베네오.
지하를 밝혀주는 마법등의 은은한 빛과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어우러지니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분위 기 가 자연스럽게 연출되 었다.
“잠깐만 와주세요.”
내 가 손짓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손에 들린 작은 상자로 향했다. 그리고 천 천히 걸음을 옮겨 내 앞에 섰다.
“선물입니다.”
“흠. 기쁘긴 하다만 이미 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설레지는 않 는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입꼬리는 보기 드물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베 네오는 내 손에 들린 상자를 넘 겨받고 곧장 뚜껑을 열었다. 나는 손을 뻗 어 상자에 든 징표를꺼냈다.그리고 직접 그녀의 목에 채워주었다.
“으음...이건 조금 설레는군.”
베네오는목에 채워진 징표의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뺨을 붉혔다. 미리 내 용물을 알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누님과는 다르게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얼 굴로 그녀 가 말했다.
“완전히 네 것이 되었다는느낌이 들어… 그래서 좋다.”
“다른 애들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네요.”
“네 가 직접 채워준다면 다들 거절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시론과 케르 낙스. 그 둘은 조금 껄끄러워할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거절하진 않을 거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나열해둔 나머지 상자들을 챙겼다.
“그런데 언제까지 숨어 계실 겁니까?”
“갑자기 나타나는 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 각한다.”
“개 인적으로는 괜찮을 거 라고 봅니 다만.”
“내가괜찮지 않다.”
옆에 붙어 계단을 오르던 베네오가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계속 이대로 생활해도 상관없지만… 네가그걸 원하지 않으니 골디 아스 왕국을 다녀온 후에 밝히도록 하지.”
“그때 가서 무르기 없습니다.”
“……안무른다.”
베네오와 짧은 잡담을 나누며 넽층으로 올라왔다. 우리는 서로 약속한 것 처럼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침실의 문을 열었다.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연인들이 모두 이쪽을 향해 고 개를 돌렸다.
시론, 케르낙스, 기에나, 냐호.
케르낙스는 어제부터 경비대에 출근하지 않고 나와 시간을 보냈으며, 시 론과 기에나도오늘은누님의 배려로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다. 냐호 역시 오 늘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침실의 문을 닫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들의 시선은 정확히 내 손에 들린 상자를 향하고 있었다.
‘너무기대하는 것같은데.’
평소라면 가장 먼저 ‘그거 뭐야?’라고 물어봤을 시론조차 손에 들린 상자 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들고 있던 상자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시론아. 이리와봐.”
으”
O •
내가 손짓하자, 시론이 상자와 나를 번갈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 다.
징표마다 디 자인이 조금씩 달랐으면 더 좋았을 테 지 만, 안타깝게 도 스타 킹과 다르게 슬롯 하나당 하나의 디자인만 등록 가능했기에 징표의 형태는 모두 동일했다.
나는 상자 하나를 들어 시론에게 내밀었다. 시론은 잠깐 내밀 어진 상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상자를 가져갔다.
“열어 봐.”
꼴깍一 시론이 침을 한 번 삼키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눈을 몇 번이나 껌뻑 였다.
?”
살짝 기울어지는 고개.
나는 시론의 입이 열리기 전에 징표를 꺼내 시론의 앞에 바짝붙었다.
“뭐,뭔데…?”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허리를 살짝숙여 시론의 목에 징표를 직접 채워주었다.
“……?”
내 가 한 발자국 떨 어 지 자 시 론은 목에 채 워 진 징 표를 쓰다듬으며 계 속해 서 눈을 깜빡거렸다. 마치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나는 헛기침을 짧게 내뱉으며 설명을 요구하는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 는 시론에게 말했다.
“내 여자라는표식이야.”
“……표 시?”
——, I •
시론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다행히 이마를 찌푸리지도 눈 썹을 아래로 내리지도 않았다.
팔을 뻗어 슬쩍 시론의 허리를 감싸며 품으로 당겼다. 나를 올려다보는 붉 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여자라고. 내 거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표식.”
“•••꾈.”
시론의 두 뺨이 점차 빨갛게 물들어 간다.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눈동자가 살짝 아래를 향했다.
“바,반지나 다른것도 있잖아.”
“싫어?”
“시…!! 싫은 건… 아닌데…… 좀부끄럽단말이야….”
“시론은 내가부끄러워?”
“그,그런 말이 아니라…!!”
고개를 숙였던 시론이 다시 나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면 될거아냐….”
“고마워.”
뜨겁게 달아오른 이 마에 입술을 살짝 맞춰주자, 시론이 바둥거 리 며 품에 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징표의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아주 마음에 안 들진 않은 모양이다.
“케르낙스?”
“••크흠.”
시론 만큼이나 얼굴이 붉어진 케르낙스가 조용히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 왔다. 나는 마찬가지 로 상자를 그녀 에 게 내 밀었다.
“싫은건아니지?”
“결코... 스미스 네가주는 거라면 나는무엇이든 기쁘게 받을 수 있다.”
찰칵一 소리와 함께 케르낙스의 목에 징표가 채워 졌다. 그녀는 시론과 마 찬가지로 징표의 장식을 어루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리나그 녀석이 호들갑 떠는모습이 그려지는군….”
“내가 선물했다고 하면 부러워하지 않을까?”
“그렇겠… 읏.”
기습적으로 이마에 입을 맞추자, 케르낙스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용히 뒤로물러났다.그리고몸을 돌려 시론의 옆에 앉았다.
“기에나.”
“네.,,
앞으로 다가온 그녀 에 게 징 표를 채워 주었다.
기 에 나는 얼굴을 붉히 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그저 은은한 미소를 지을뿐.
“감사합니다.”
“내가 더 고맙지.”
이 마에 입을 맞추자 기 에 나는 조용히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눈을 반짝이 며 잔뜩 기대하고 있는 냐호를 바라봤다.
“이리 와.”
“네〜!!”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앞에 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목을 길게 쭉 뺐다.
그 모습에 나는 피 식 웃으며 상자를 직 접 열고 징표를 냐호의 새하얀 목에 채워주었다. 냐호의 꼬리가더 거칠게 물결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
“너무좋아요〜”
냐호가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에 폭 안겨 왔다.
“냐호야.”
“네〜?”
냐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난 살짝 허리를 숙여 머리 위 에 달린 그녀의 귀에 징표에 숨겨진 비밀을속삭였다.
정말요?”
“응.자, 애들 보고한번 말해봐.”
냐호가 고개를 끄덕 이 며 내 게서 떨 어졌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살짝 날카로 운 눈초리로 이쪽을 보고 있는 연인들을 마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냥냥냥.”
외모와 무척 어울리는 단어가 냐호의 입에서 튀 어나왔다. 귀여운 입술이 닫힘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색이 옅어진 냐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사람의 얼굴에 당혹감과 놀람이 동시에 깃들었다.
“와……정말로 색이 옅어졌어요.”
냐호 역시 본인의 몸에 일어난 변화가 신기한지 반쯤 투명하게 변한 몸을 이곳저곳 살피며 나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나는 꼬리를 흔드는 그녀의 머리 칼을 쓰다듬으며 아직도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에 게 징 표의 숨겨진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내 설명을 모두 들은 시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투명해진다고…? 그게, 그게 말이 돼……?”
“이리 와봐.”
내가손짓하자 시론이 눈을 껌뻑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허리를 숙여 시론의 목에 채웠던 징표를 풀었다.
“어때?”
“뭐가어……?”
몸을 돌린 시론이 멍하니 눈을 껌뻑인다. 그리고 냐호가 있는 곳을 향해
손으— 손 으
빠으川!
“냘?!,,
정확히 시론의 손바닥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냐호가 앞으로 엎어졌다.
시론은 냐호의 뒤통수를 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길게 숨을 토했다.
“손맛은 있었는데……안보여….”
“…….”
나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조용히 시론의 목에 다시 징표를 채워주었다. 그제야 시론은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냐호를 향해 눈동자를 움 직였다.
“……신기하네. 야. 너희도 벗어 봐.”
케 르낙스와 기 에 나가 나를 바라봤다. 내 가 고개 를 끄덕 이 자 그녀 들은 스 스로 징표를 풀어냈다. 그리고 시론과 똑같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는 감정 을 얼굴에 드러냈다.
“이 제 알겠지 엩 내 가 얼마나 대단한 걸 선물했는지.”
“……대단하긴 대단하네.근데 왜 시동어가그따구야?”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시론이 물어왔다. 나는 당당히 시론 의 허리를껴안으며 대답했다.
“내가듣고싶어서. 왜. 싫어?”
“•••누가싫다고했나……그, 그냥물어본 거뿐이야.”
얼굴을 가까이 가져대니 시론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시론아.”
으에?”
내가 갑작스럽게 볼을 잡아당기자 시론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냐호랑도좀친하게 지내줘.”
“......OO ”
시론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냐호를 곁눈질하더니 조금 불만스러운 눈으 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잡아당기고 있던 시론의 볼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삐죽 튀 어나온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튀 어나왔던 시론의 입술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속으로 웃으 며 바닥에 쓰러진 냐호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몸을 뒤집은 다음,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머진 침대에서 말할까?”
**
출발의 날이 밝았다.
“진짜 그것만 챙 겨 가도 괜찮아?”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여벌 옷 정도는 챙기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그보다 옷이 조금 얇은 것 같다.”
신전으로 향하는 길.
세 명의 연인은 내 옆에 붙어 이런저런 걱정들을 이야기했다.
“으,으응…… 걱정은고마운데 이걸로충분해.”
이 말만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 걸까.
짧아도 석 달은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최대한진득하게 내 흔적을 남겨주 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냐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자정이 되기도 전에 만족했다는 듯이 나에게 달라붙어 잠을 청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부족한 상태에서 강제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 결과 해가 뜨기 시작함과 동시에 눈을 떴고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대사제님께선 편한 시간에 찾아오라고 했지만, 원래 정든 곳을 떠날 땐 시 간을 끌면 끌수록 미 련만 커 지는 법 이 다. 그런 이 유로 나는 성 기 사가 찾아왔 던 날부터 아침 일찍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조용히 떠날생각이었는데.’
괜히 배웅을 받으면 그리움만 더 커질 것 같아 지쳐 잠들어 있을 때 편지나 하나 남겨두고 갈 생각이 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을 미리 알기라고 했다는 듯이 셋은 나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지금 이렇게 옆에 달라붙어 배웅을 위해 함께 걷고 있다.
참고로 베네오와 냐호는 마차를 준비하기 위해 경비대의 마사로 향했다.
“그보다그 암고양이 년…….”
손을 붙잡고 걷던 시론이 갑자기 이를 바득바득 갈기 시 작했다.
“확실히 이번에는 단단히 벌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거기에 기에나까지 정색했다.
“크,크흠.”
케르낙스만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헛기침을 토했다.
화난 시론과 기에나를 달래다보니 어느새 풍요의 신전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신전의 안쪽에서 익숙한 차림의 누군가가 이쪽으 로 걸어왔다.
신비할 정도로 새하얀 로브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코위로 짙게 드리운음영.
왼쪽 뺨에 길게 난 상흔.
눈앞에 있음에도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존재.
“네메아님…?”
내가 이름을 부르자, 로브를 눌러쓴 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밝은 햇살은 신비한 로브에 드리운 음영을 지우지 못했다.
“ 자주 보는군.”
음영 아래로 드러난 입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고 맹수와 같은 송곳니 가 드러났다.
네메아님은 잠깐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좌우에 선 세 명의 연인들을 한 번씩 살폈다.
“작별인사는 끝냈나?
“예.충분히 해에에엣?!”
갑작스럽 게 바닥에 서 떨어진 두 다리. 뒤로 기울어지는 상체. 그렇다. 네메 아님이 갑작스럽게 나를 공주님처럼 품에 안았다.
“그럼 이 녀석은 내가데려가마.”
“자, 잠, 네메에에 엑!!”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낄 수 있었다.
**
“……지금뭐가어떻게 된거야?”
“스미스님께서 납치 당하신 것 같습니다.”
“•••납치는 아니다. 납치는 아니지만… 납치 …… 끄응.”
셋은 인지하기 힘든 속도로 스미스를 껴안고서 높은 건물 위를 펄쩍 뛰어 넘 어 사라진 네 메 아를 떠 올리 며 얼굴을 구겼다.
“…… ”
“…… ”
a 99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셋은 한동안 신전 앞에 서서 스미스가 사라 진 방향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몇 분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그, 할 말이 있다만.”
“……뭔데.”
케르낙스가 입을 열었고 시론이 뚱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영주님께서 따로 내리신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늦어도 이틀 후엔 도시 를 떠나야 한다.”
“…… ”
시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케 르낙스가 슬그머 니 시 선을 피하며 말을 이 었다.
“그,으음… 이번에 도시를 떠나면 꽤 오랫동안을아오지 않을 거다.그 러니 그동안 집 관리를 좀 부탁一”
낮게 내리깐 시론의 목소리에 케르낙스가 힐끗 눈동자를 굴렸다. 시론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흉흉한 기운을 풀풀 흩날리며 케르낙스를 노
려보고 있었다.
케르낙스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드, 듣고 있다만.”
진짜 미안한데.”
절대로 미안해할 사람이 할 얼굴이 아니었다.
“나랑 기에나도 길드 본부에서 내려온 특별 의뢰 때문에 곧 도시를 떠날 예정이거든.”
“트,특별의뢰?”
“어. 특. 별. 의. 뢰. 그래서 정말 미 안한데 집 관리는 못 해줄거 같아.”
“그, 그렇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음.”
시론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시론이 케르낙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기이한 각도 로 꺾 어 시선을 회피한 케르낙스와 억지로 눈을 마주 봤다.
“정말, 정말우연히 말이야.”
가늘게 뜬 눈 사이로 싸늘하게 식은 붉은 눈동자가 정확히 케르낙스의 얼 굴을 담아냈다.
“만약 여길 떠나서 우리가 정말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시론의 입꼬리 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참재미있을 거 같아.그치?”
“•••그, 그럴것 같군. 하, 하하…….”
케르낙스가 시론을 따라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조 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