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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오늘도 감사함니닷
마대륙
예상치 못한 상처가 하나 늘었지만, 그보다는 얻은 게 훨씬 많았기에 결과적으로 오늘의 시간은 썩 괜찮았다.
살짝 아쉬운 게 있다면 ‘오빠’가 되지 못한 점일까.
뭐,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빠라고 부르게 하는 건 실패했지만, 앞으로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당당히 이름으로 부르는 걸 허락받았으니.
‘부족한 거리감은 남은 시간 동안 차차 좁혀 나가면 되겠지.’
피의 부족으로 살짝 졸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부릅뜨고 있던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흰색에 가깝지만 완벽하지 못한, 조금은 탁한 잿빛 머리칼과 그 색을 쏙 빼닮은 짐승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졸려도 잠들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데 누구는 세상 편안한 얼굴로 고롱고롱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꿈나라 여행 중이라니.
“후우~”
…파닥파닥!!
살짝 숨결을 불어 넣자, 레이벨의 귀가 간지럽다는 듯 통통 튕기다가 아래로 바짝 접혔다.
“누가 환자고 누가 간병인인지 모르겠네.”
그래도 미녀의 잠든 얼굴을 감상하는 일은 퍽 즐거웠기에 이 상황 자체가 싫진 않았다. 그저 팔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조금 느낄 뿐이지.
‘슬슬 깨워야겠네.’
어젯밤부터 내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어울려주면서 마음이 꽤 심란했던 건지, 몇 번 이름으로 불러주고 괜찮다며 다독여주자마자 지금 보는 것처럼 잠들어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자게 해주고 싶었지만, 슬슬 시란이 돌아올 시간이었기에 우리의 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선 그만 깨워서 반드시 내보내야만 했다.
“레이벨.”
손은커녕 허리 때문에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것조차 버거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끽해야 이름을 부르는 정도.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효과까지 미미한 건 아니다.
“레이벨?”
“으음…….”
내 심술을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리고 있던 귀 중, 내 입과 가까운 왼쪽 귀가 쫑긋 위로 올라왔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작은 웅얼거림.
누가 봐도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내 목소리에 반응해 위로 올라온 귀에 다시 한번 이름을 나직이 속삭였다.
“……?”
내 곁에서 얌전히 몸을 웅크리고 새근거리던 레이벨의 귀가 움찔거리더니, 레이벨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저무는 노을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예쁜 속눈썹과 그 노을보다 더 찬란한 금색 눈동자에 내 얼굴이 담겼다.
“그만 시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
나와 시선을 마주한 상태에서 레이벨은 한동안 없이 눈을 깜빡이며 그저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레이벨?”
“음…….”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자 멍하니 있던 레이벨의 어깨가 아주 살짝 흠칫거렸다.
허락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조금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스르륵.
어깨를 흠칫하며 정신을 차린 레이벨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고, 자연스레 잿빛 머리칼이 살랑였다.
“더 늦기 전에 얼른 돌아가 봐. 일찍 가야 일찍 돌아오지.”
“……음.”
뒤돌아 앉은 상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레이벨은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가 본인이 부숴 먹은 창문으로 도망치듯 뛰어내렸다.
“하아.”
순식간에 혼자가 된 나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저 밖에서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리타를 불러들였다.
[ 찾으셨습니까. ]
“미안한데 저 창문 좀 어떻게 고칠 수 없을까?”
어깨에 생겨난 구멍 정도는 혼자 헛짓거리하다 생긴 거라 둘러댈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침입한 듯 보이는 저 박살 난 유리와 창틀은 어떻게든 조치를 따로 취해야만 했다.
[ 복원을 위해 다른 몽마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이곳에 발을 들여도 괜찮을지요. ]
“완전 괜찮으니까. 얼른 부르자.”
리타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또 지시하실 건 없으십니까? ]
그 물음에 나는 정말로 적잖은 고민을 했다.
과연 이걸 부탁하는 게 맞는 건지.
속으로 수십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은 결과.
“…청결 스크롤 좀 가지고 와줄래?”
[ 생활 마법이라면 가볍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
“아니. 스크롤이여야만 해.”
그게 아니라면 굳이 청결 마법이 필요치 않은 일이었으니.
[ ……알겠습니다. ]
리타는 더 묻지 않고 잠깐 침실을 나가, 내가 요구했던 대로 청결 마법이 내장된 스크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거 좀 내 입에 물려주고 잠깐 나가 있어 줘.”
[ 예에……. ]
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리타는 내 지시에 따라 가지고 온 스크롤을 펼쳐 내 입에 물려주고 침실을 나갔다.
‘이 나이 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다는 건 그런 거다.
씻으러 가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침대를 벗어날 수 없기에 당연히 화장실에도 갈 수가 없다.
…뭐, 그런 거다.
**
다행히 몽마들의 마법 실력이 출중해 부서진 창문과 틀의 복원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 이 방에서 있었던 일은 나와 레이벨의 비밀로 남길 수 있었다.
“하루라도 얌전히 있으면 죽냐? 어?”
“하, 하하…….”
물론, 돌아오자마자 내 상태부터 꼼꼼히 살피던 시란이었기에 새롭게 추가된 상처까지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 탓에 나는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시란에게 잔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비젤린님? 그, 아직 멀었습니까?”
“다 됐다. 다 됐어.”
농담이 아니라 왼쪽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시란의 잔소리는 엄청났고, 나는 잠깐이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얼른 겨울이의 얼굴을 보길 희망했다.
하지만…….
[ 몇 번이나 조심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
[ 야!! 다른 곳은 몰라도 허리를 다치면 어떡해?! ]
도망친 곳은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징벌의 방이었다.
[ 아부부부!! ]
덤으로 겨울이는 화를 내는 것조차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작고 통통한 손으로 소파를 어찌나 신나게 때리던지.
그런데 뭘 알고 화를 내는 건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케르낙스와 다른 아내들이 성을 내는 걸 보고 따라 하는 걸 테지.
어쨌든…….
“너도 꼼짝 못 할 때가 있었구나?”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난 영상 통화를 끝낸 후, 수정구를 챙긴 비젤린님이 완전 녹초가 되어 침대에 퍼진 나를 향해 깔깔 웃으며 본인의 침대로 폴짝 뛰어갔다.
“흐흐, 그래도 며칠은 조용히 잘 수 있어서 그거 하난 좋네~”
혼자서만 잔뜩 신난 비젤린님은 침대에 벌렁 눕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마법으로 침실을 밝히고 있던 마법등을 모두 소등시켰다.
꽈아악!!
“으브브브!!”
“내가 진짜…… 하아.”
조심히 옆에 누운 시란은 내 뺨을 많이 아프게 꼬집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어깨에 덧댄 붕대를 풀었다.
“너. 내일도 이거랑 같은 상처 있으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옙.”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빛에 나는 침을 꼴딱이며 얼른 대답했다.
‘역시 통할 리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내들 중에서 시론 다음으로 내 목을 가장 많이 물어봤던 시란이다.
당연히 상처 자국만 보고도 무엇으로 생긴 상처인지 꿰뚫어 봤을 거다. 그럼에도 시란은 모른 척 내 거짓말에 어울려 준 거겠지.
“쪽…….”
시란의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상처 부위를 감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쓰라린 부위를 핥기 시작했다.
약에 의해 괜찮아졌던 부위가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처가 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내게는 익숙한 화끈거림이었다. 바로 상처가 치유될 때 생기는 그 감각.
시란에게는 타액을 통해 상처 회복을 촉진 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목덜미가 아직까지 흉터하나 없이 멀쩡했던 거고.
“여긴 내 거니까. 알겠냐?”
“미안해요.”
“…말은 잘해요.”
상처를 완전히 지워낸 시란이 그 위에 덧씌우듯 이빨 자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살짝 위로 올라와 내 입술을 가볍게 훔쳤다.
“얼른 자라. 빨리 자야 빨리 낫지.”
“넹.”
옆으로 돌아누운 시란은 본인의 머리에 손을 받치더니, 남은 한 손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토닥토닥 두드렸다.
시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
모두가 떠난 아침.
홀로 남겨진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 있다.
“끄으으응~!!”
다만,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아주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된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는 걸 연습 중이다.
“허억, 허억…… 썅….”
십 분은 움직였을까?
이마에 식은땀이 한가득 맺혔고, 이래서는 오늘도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로 기분이 저조해졌다.
‘생각하자…… 생각….’
손이 없더라도 관계를 진척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효율이 너무 나빴다.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또 모를까.
경계의 숲에 모여들고 있는 마인들이 언제 습격을 감행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그렇게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모두 쥐어짜 굴려보기를 잠깐.
“오……?”
나 치고는 굉장히 그럴듯한 방법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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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날씨가...덥다..춥다..이런 건 날씨가 아닙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