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 키스하고 싶어 (60/181)


#60. 키스하고 싶어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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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착각한 거라면, 끝나고 나서 때려.”

무슨 소리야, 하고 생각하는데 태하가 갑자기 허리를 확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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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것이 입술을 덮쳐 왔다.

시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겨우 태하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욕망이 폭발하듯 흘러넘쳤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더 세게 안아줬으면 좋겠다. 더 깊게 입 맞춰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태하의 입술은 그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고, 언제까지나 입술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용기를 내서 태하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가, 시현은 속으로 당황했다. 의외로 감촉이 푹신했던 것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왜 이렇지?

이상하다 싶어서 살짝 등허리를 눌러 보았다. 단단한 근육 대신에, 푹신한 솜 같은 감촉이 느껴지면서 손끝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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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시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태하는 온데간데없고, 이불만 한 아름 껴안고 있었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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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강시현…….”

시현은 이불을 뒤집어 써버렸다.

*

시현이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옆집에 있는 태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태하가 처음으로 혹시, 하고 생각한 것은 공원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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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한테 당신은 세상의 전부야.]

서툰 말주변이지만 진심을 담아 고백하자 시현은 대답 대신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입술을 가져가다 태하는 흠칫 놀라서 행동을 멈췄다.

또 실수하면 안 되지!

지난번에 허락 없이 키스했다가 시현은 하루 종일 제 얼굴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그 하루 동안 태하는 후회와 자책으로 반쯤 미쳐 버릴 뻔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을까. 나란 놈은!

기적처럼 시현이 그 후에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등에 입 맞췄을 때 화들짝 놀라며 손을 뿌리치는 시현을 보고, 태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 아직 멀었구나.

그 자체에 상처받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태하는 시현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자신을 봐 주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으니까.

이번에야말로 태하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서 겨우 얻은 마음 한 조각인데, 약간의 실수도 있을 수 없었다.

다행히 손잡는 것까진 싫어하지 않으니까, 그 이상은 절대 하지 말자.

수도 없이 다짐했는데, 바보같이 그만 분위기에 휩쓸려 키스해버릴 뻔하고 뒤늦게 가슴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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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리자, 윤태하.’

그렇게 다짐하며 태하는 시현과의 첫 데이트를 무사히 마치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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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즐거웠어.]

그런데 어째서일까. 작별인사를 하고도 시현은 그를 보내기 싫어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커피를 마시자는 둥, 과일이라도 먹고 가라는 둥 하면서 붙잡았다.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느껴져서 솔직히 무척 기뻤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야 이쪽이 천 배는 더할 테니까.

하지만 사실 태하는 한참 전부터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원래도 좋아했는데, 서로 마주 보게 되니 그야말로 감정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거짓말 안 보태고 1초에 한 번씩 키스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현이 발이 아프다고 해서 업고 움직였는데, 행복한 것과는 별개로 한편으론 괴로웠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몸이 제 등에 밀착돼있는 게 자꾸만 의식이 돼서, 걷는 내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어쩌면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지!

함께 있는 내내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느라, 집에 도착했을 때쯤 태하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집에까지 들어오라니.

이 밤에 단둘이 한 방에 있으면서 커피만 마시고, 과일만 먹을 자신이 없어서 거절하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헤어져서도 좀처럼 뒤숭숭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시현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아까 공원에서, 갑자기 눈은 왜 감았던 걸까.

혹시 진짜로 나와 키스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헤어지기 전에, 자꾸만 내 입술 쪽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혹시 그런 의미로 나한테 커피 마시고 가라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도, 나와 뭔가 하고 싶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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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 좀 작작 마셔라.’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향하고 마는 자신을, 태하는 애써 꾸짖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은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 있으니까 별것 아닌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닌가.

겨우 손등에 입 맞춘 거 가지고 그렇게 질색을 하는 걸 봐놓고도, 자꾸만 저 좋을 대로 해석해 버리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양심도 없지.

눈치 없이 달아올라 있는 몸을 식히기 위해 태하는 한참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누워서도 온 신경이 다 옆집 여자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도 지금쯤 조금은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자기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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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쩍 뛰고 징그럽다고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슬퍼졌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사실이지만, 순수한 감정만 품을 수는 없는 게 남자라는 동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척이다, 밤늦게야 태하는 겨우 잠이 들었다.

……정작 옆집 여자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로.

*

다음 날 아침, 시현은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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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서 와. 아침 먹어야지.

인터폰 화면 속에서 태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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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금방 갈게.”

시현은 대꾸하자마자 욕실로 뛰어들었다. 재빨리 세수를 하고, 눈썹까지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출근용 복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서 편하게 입는 것 중에는 제일 나은 옷으로.

평소에 태하가 아침 먹으라고 부르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잠옷 그대로 입은 채 슬리퍼 끌고 어슬렁어슬렁 가곤 했던 게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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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태하 앞에서 세수도 안 한 채로 밥을 먹을 생각을 했지?’

그런대로 봐줄 만하게 된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 나서야 시현은 옆집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두른 태하가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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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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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젯밤에 꾼 꿈이 떠올라서 시현은 민망함에 얼른 시선을 돌렸다.

각각 쟁반을 놓고 마주 앉았다. 부드럽게 끓인 누룽지와 계란찜, 젓갈 등이 각각 작은 그릇에 담겨 쟁반 위에 예쁘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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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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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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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침엔 가볍게 빵이나 샐러드가 좋으면 말하고.”

자꾸만 태하의 입술로 시선이 가는 바람에 시현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인데 어쩌자고 입술만 저렇게 예쁜 건지. 립스틱을 바른 것도 아닌데 어쩌면 저렇게 선명하고 고운 빛깔인지.

가슴이 너무 뛰는 바람에 태하가 기껏 힘들여 차려준 음식의 맛조차 잘 느낄 수가 없어서 시현은 새삼 자각했다. 아, 내가 중증은 중증이구나.

겨우겨우 접시를 비우고 일어나자 태하가 와이셔츠 윗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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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준비하고 나와. 차에서 기다릴게.”

이미 시현을 깨우러 오기 전에 거의 출근 준비를 다 마쳐 둔 것 같았다. 옷장에서 넥타이를 꺼내는 태하에게 다가가서, 시현은 그의 손에서 넥타이를 빼앗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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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줄게.”

태하는 조금 놀란 얼굴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다짜고짜 매주겠다고는 했는데, 문제는 정작 해보니까 쉽지 않았다.

가만있자, 이걸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렇게 맸다가, 풀었다가. 저렇게 맸다가, 도로 풀었다가. 시현이 한참 고생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쿡쿡,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태하가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그제야 시현은 얼굴이 확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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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어?”

부루퉁하게 묻자 태하가 한껏 가늘어진 눈매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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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서.”

이게 누나한테? 흘겨보자 태하의 얼굴에서 문득 미소가 가셨다.

언제 웃었느냐는 듯, 어느덧 태하는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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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조용했던 갈색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숨 막히게 전해져 오는 긴장감에, 시현은 감히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키스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태하가 부드럽게 시현의 손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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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겠다. 넥타이는 내가 맬 테니까 얼른 가서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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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그래.”

그제야 시현은 꿈에서 깬 듯 흠칫 놀라 태하의 집에서 나왔다.

출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동안 시현은 몇 번이나 방금 전 상황을 머릿속으로 되돌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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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키스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 아니었나?’

어제만 해도 긴가민가했던 것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었다.

……해야 될 타이밍에,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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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립스틱을 바르며 시현은 고민했다. 안 한 것도 아니고, 이미 했던 키스를 왜 안 하는 걸까. 내가 싫다고 한 적도 없는데.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자 태하가 건물 앞에 차를 대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현이 차를 타자 태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시현은 긴장해서 절로 숨을 삼켰다.

그러나 태하는 키스할 생각 따윈 전혀 없어 보였다. 안전벨트만 매어 주고 쿨하게 차를 출발시켜서, 시현은 한층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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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무 생각 없는데, 일일이 나 혼자 이러는 거니?’

불안감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태 태하와 키스한 것은 세 번이었다. 처음 태하가 제 마음을 고백했을 때 한 번, 청첩장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한 번, 그리고 제 쪽에서 고백할 때 한 번.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그냥 살짝 입술에만 닿았다 떨어지는 정도였으니까, 진짜 키스다운 키스는 딱 한 번뿐이었다.

그 후로 아직 태하는 시현에게 한 번도 키스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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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막상 해보니까 별로였던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현은 서운해졌다. 나는 가슴이 너무 뛰어서, 그다음 날 네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도망 다녔는데…….

차가 회사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시현은 결심했다. 혼자서 고민해봐야 어차피 답은 안 나온다. 정말 그런 건지, 시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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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서 먼저 내릴게.”

태하는 순순히 회사 근처의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워주었다. 가방을 챙겨 들고 문을 열려다가, 시현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그의 뺨에 쪽, 하고 키스했다.

태하가 흠칫 놀라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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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시현은 눈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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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

순간 태하가 숨을 삼켰다. 태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시현은 텔레파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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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윤태하!’

태하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이쪽으로 몸을 기울여 왔다.

입술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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