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렌 식 검술
“응? 잉? 어떻게 안 거요?”
“예언자 아니다.”
엔크리드의 말에 렘이 부츠에 들어간 벌레를 바닥에 털어 내고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분대장이 넣었수?”
“내가 안 넣었다.”
“씁.”
렘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엔크리드는 렘의 눈초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렘이 밑으로 떨어뜨린 벌레를 엔크리드가 발로 짓이겼다.
우직.
별로 유쾌하지 못한 느낌이 부츠 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퉤.”
엔크리드는 침을 뱉어 대충 벌레의 사체를 바닥의 흙과 비벼 두고 말했다.
“야수의 심장 알려 줄 수 있지?”
“음? 그거 기억하고 있었수?”
렘이 부츠를 고쳐 신고 일어나며 말했다.
“잊을 만한 일은 아니지.”
“잊고 싶다고 위장에 술을 갖다 부을 때는 언제고.”
그때는 그랬다. 꿈에서 자꾸 도끼에 목이 잘리는 장면이 나오니, 정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해 줄 수 있어? 없어?”
“오늘따라 열의가 끓어 넘치는 거요? 좋수다. 합시다.”
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센, 아침 당번 좀 해 줘. 내일은 내가 할 테니까.”
먹어야 힘을 쓰니, 식사는 하더라도 설거지 따위에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거다.
“네, 그러죠.”
잘 웃고 타인과도 잘 지내는 분대원이 작센이다.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 엔크리드는 작센이 이곳에서 조율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센이 제 적갈색빛 머리카락을 툴툴 털어 내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렘이 킁 하고 코를 풀었다.
“저 새끼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당연하게도 작센이 이곳에서 조율자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면, 엔크리드가 이곳에 올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작센은 타 부대랑은 그리 잘 지내면서 오히려 4분대원과는 사이가 나쁜 편이었다.
물론 엔크리드만 빼고.
엔크리드는 묘하게 제 분대원의 신뢰를 받는 편이었다.
그게 이런저런 부탁을 말없이 들어줘서인지, 그게 아니면 평생 십인대 분대장으로 살 것 같은 허접한 실력 때문인지는 엔크리드도 몰랐다.
그저 두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렘이 천막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엔크리드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꺼림칙한 놈이오. 느낌이 안 좋은 놈이니, 너무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수.”
그러는 너는?
엔크리드는 속으로만 되물었다.
이전 부대에서 상급자와 시비가 붙어 그 상급자의 턱을 부수고 온 놈이 할 말인가, 이게.
렘이 자신한테야 은인이지만.
타 부대, 특히 이전 소속이었던 1소대에서는 렘을 죽일 듯이 노려보곤 한다.
제 소대장의 턱을 그리 만든 놈이 예뻐 보이진 않겠지.
엔크리드는 따지지 않았다.
따진다고 변하는 건 없다.
시간 낭비다. 이걸 따지느니 야수의 심장이나 더 익히고 말지.
렘에게 야수의 심장을 배우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특히 1소대 새끼들이랑 친한 거 보면 더 찝찝하단 말이우.”
그래, 그렇다고 치자.
엔크리드가 대거리하지 않자, 렘이 걷던 발을 멈췄다.
“왜?”
“분대장 양반, 오늘 진짜 이상하네, 평소라면 뭐라고 한마디 할 타이밍 아니었수?”
그렇다. 평소라면 상급자의 턱을 부순 놈이 할 말이 아니라고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친해지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을 거다.
친해지라고 종용하느니, 차라리 서로 싸우지 않게 떨어뜨려 놓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개성 넘치는 사사사 죽음의 분대를 이끄는 엔크리드의 비법이기도 했고.
“할 말 없는데.”
엔크리드는 말을 잘랐다.
렘은 제 뒤통수를 북북 긁었다.
“거참 이상한 날이네.”
둘은 아침을 먹고 막사 외곽의 공터를 찾았다.
전장에서 훈련 따위를 하는 모습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엔크리드는 평소에도 이래 왔다.
아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지나가는 이들도 딱히 둘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야수의 심장 전수가 시작됐다.
“……나 말고 딴 놈한테 몰래 배운 적 있수? 그럴 리 없을 텐데.”
“배운 거 반복만 했어.”
“훈련한다고 이게 이렇게까지 된다고?”
또 한 번의 죽음은 또 한 번의 경험이었으니.
엔크리드는 전보다 마음을 다잡기 쉬웠다.
그걸 본 렘은 의아한 눈빛을 보내다가도 ‘좋수다’ 하고는 넘어갔다.
“내가 볼 때, 분대장은 재능이 있는 거요. 이 정도로 하는 거면.”
렘이 어제와 비슷한 말을 던졌다.
재능이라,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
조금 전, 끝내 렘의 도끼를 피하지 못했다.
그 도끼는 목울대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손목만 까딱하면 목에 긴 흉터를 남길 정도로 가까운 위치였다.
“아슬아슬했수다.”
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엔크리드가 이리 배우는 게 기특한 듯했다.
웃음에 어딘지 모를 만족감이 배어났다.
엔크리드도 그걸 느꼈다.
“무슨 짓을 하면 도끼를 그렇게 휘두를 수 있는 거냐.”
조금 전 그 도끼질.
렘의 도끼는 몇 번이나 자신을 죽인 찌르기보다도 빨랐다.
도끼날이 목 피부 거죽 위에 닿을 듯 말 듯 다가온 건, 정말 눈 깜빡할 새였다.
실제로 엔크리드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지만, 도끼날의 움직임을 놓쳤다.
“음, 재능?”
엔크리드는 오랜만에 렘이 참 재수 없는 새끼라는 생각을 했다.
원래 이런 놈이긴 했다.
“훈련한다고 다 되면 세상에 칼질 못 하는 놈이 있겠수?”
렘이 낄낄 웃었다.
엔크리드는 아까 렘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읽어 냈듯, 이 새끼가 자신을 놀리는 걸 즐긴다는 것도 알아챘다.
이상한 새끼였다.
하긴, 이 분대에 이상하지 않은 놈이 어디 있을까.
“더 훈련하면? 더 노력하면? 자는 시간도 없이 검을 휘두르면?”
엔크리드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가진 딜레마였다.
재능이 없다면 포기해야 할까?
엔크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 대신 진격을 택했다면 자신이 가진 건 무엇인가.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소위 천재라는 놈들이 열 걸음씩 간다면 자신은 반의반 걸음씩이라도 쉬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겠다는 의지뿐이다.
“거참. 오늘 진짜 이상하단 말이지. 진지함의 비약이라도 쳐드신 거요?”
렘이 도끼를 대강 허리춤에 묶어 둔 줄에 걸치며 말했다.
“아니.”
“분대장.”
웃음기 없이 렘이 엔크리드를 불렀다.
렘과 눈을 마주쳤다.
짧은 침묵 뒤, 렘이 입을 열었다.
“사람은 잠을 안 자면 뒈진다오.”
부들.
렘 새끼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볼을 떨며 웃음을 참다가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자는 시간도 없이 검을 휘두르면 어떨지에 대한 답이었다.
“꺼져.”
엔크리드는 대륙 공통의 손가락 욕을 했다.
중지를 들어 보이는 거다.
렘은 낄낄대며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엔크리드는 더 가르쳐 달라 조르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그 사실을 엔크리드는 너무도 잘 알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자신이 가진 검술을 점검했다.
찌르고 베고 휘두르는 기본 검술.
기본 검술 이후 배운 건 발렌 식 용병 검술이다.
허접한 건 아니었다.
발품을 꽤 팔았고 돈도 꽤 들었다.
은화 몇 닢 따위에 배울 수 있는 검술은 아니다.
발렌 식 용병 검술.
기사급은 되지 못했으나, 용병 계에서는 꽤 이름 날린 발렌의 검술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환검(幻劍) 계열이다.
본래 발렌이 어떤 식으로 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기술은 몸에 익혀 뒀다.
엔크리드는 거기에 힘을 쏟았다.
‘죽은 뒤에는 같은 하루가 반복되지만, 몸에 남은 건 사라지지 않았다.’
야수의 심장은 머리로 배운 게 아니라 몸으로 익혔다.
그 말은 제 몸에 남은 건 그대로라는 거다.
몸을 혹사했다. 굳은살이 깊게 베인 손바닥이 다시 터질 정도로 그리 검을 휘둘렀다.
본래 병사는 검을 쓰지 않는다. 창이 기본 무장인 게 대부분이다.
사사사 분대장을 맡았기에 얻은 특전이다.
엔크리드는 검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훈련을 거듭한다. 손아귀가 아프지만, 참는다.
먹은 게 소화가 끝나지 않아 위장이 시큰하지만, 참는다.
발끝, 손끝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환검은 속이는 검이다.
상대를 속일 수 있는 수단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쓰라고 했다.
실제로 용병 세계에 발렌 식 검술 몇 개는 이미 퍼져 있었다.
가령 넘어지는 척하다가 상대를 찌르는 기술 따위다.
치사하다고 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왜 치사한 게 되는가.
기사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엔크리드는 그와 논쟁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의 가치관이 있는 거다.
자신은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는 거고.
허락된 시간은 반나절.
다리가 후들거리진 않았다. 이 정도로 다리가 풀린다면 그동안 매일 해 온 체력 훈련이 의미가 없을 터였다.
엔크리드의 다리는 튼튼했다.
“몸뚱이가 튼튼한 건 참 장점이오.”
렘이 돌아온 엔크리드에게 말했다.
막 전령이 오간 참이었다.
여섯 번째 오늘의 반복, 대강 하늘만 봐도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년 넘게 훈련한 몸뚱이니까.”
엔크리드는 대강 답하고 다시 소대 자리로 옮겼다.
“튼튼한 몸뚱이가 훈련용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않게 열심히 하시우.”
전장이 시작되기 직전, 렘이 또 낄낄거렸다.
“내일 당번 해 주셔야 합니다.”
옆에서 작센도 말했다.
한 놈은 자신을 놀리는 것 같고.
다른 한 놈은 이틀 연속 식사 당번을 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 같다.
뭐, 표현이 어떠하든 둘 다 자신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것 같으니.
“이따 보자.”
여섯 번째의 오늘이 시작되고.
엔크리드는 다섯 번째 날보다 더 수월하게 적을 죽였다.
처음 덤비는 적은 발을 걸어 넘어뜨려 방패 모서리로 뒤통수를 찍었고.
두 번째 적은 검을 흔들다가 찔렀다.
발렌 식 검술.
용병 세계에서 흔히 알려진 게 아닌, 발품 팔고 돈을 들여 따로 배운 기술이다.
흔들리는 칼끝은 그 자체로 상대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아지랑이라 했다.
배운 걸 실현했고 먹혔다.
보람을 느꼈다.
성장의 기쁨, 충족감이 또 가슴을 채운다.
하루의 반복으로 이뤄낸 것이 적지 않았다.
엔크리드는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해서 허술하게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더 치열했다. 더 몰두했다. 더 몰입했다.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으리라, 갈망과 염원을 품고 살아왔기에 그래야 했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적병을 베고 때리고 넘어뜨렸다.
반복된 전투는 그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 줬다.
‘야수의 심장.’
이전 날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어느새 벨이 넘어지는 순간까지 왔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싸우니, 매번 벨을 본다.
원한다고 전선을 뒤로 물리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함부로 전선을 뛰어넘는 건 자살 행위다. 전장에서 제 위치를 임의로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실력은 그 수준이 아니다.’
엔크리드는 자신을 잘 알았다.
여유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적병 사이를 뚫고 들어가거나 도박에 가까운 행위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욱이 숙련된 궁수의 화살을 미리 알아챌 수준도 안 되고.
퍽!
벨의 머리가 또 터졌다.
“젠장.”
이번에는 꼭 살리려고 했는데 또 실패다.
엔크리드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화살이 허공을 꿰뚫었다. 쌩하는 파공성이 귓가에 남았다.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능숙한 몸짓이다.
“오늘 감이 좋은 것 같수다?”
어느새 다가온 렘이 말했다.
“가라, 화살 쏜 새끼 멱이나 따오든지.”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수다. 감 좋으니 알아서 잘 사시우.”
렘이 떠난다.
다시 찌르기를 장기로 삼는 적병을 만난다.
엔크리드는 또 실패했다.
이번에는 뒤쪽에 달려드는 병사의 몽둥이는 피했으나, 그 바로 옆에서 어떤 놈이 투척 도끼를 던졌다.
지랄 맞았다.
일곱 번째의 아침이 밝고.
“내가 벌레 넣어 놨다.”
렘에게 말하니.
“미쳤수? 돌아 버린 거요?”
“안 미쳤어.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하는 것, 야수의 심장 맞지?”
“음?”
“가르쳐 줘.”
다시 오늘이 시작된다.
렘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수락했다.
배운다. 익힌다.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는 벨을 구하려고도 안 했다.
구하려면 화살이 날아오는 걸 읽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운에 기대야 할 뿐이다.
렘은 어떻게 화살을 피하는 걸까?
엔크리드는 의문을 품고 몸을 움직였다.
찌르기에 또 죽었다.
“자비다.”
그놈의 자비는.
죽는다. 그렇게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열두 번째…… 백 번이 넘는 죽음, 엔크리드는 그렇게 죽음으로 시작되는 오늘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