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1화 (11/170)

11. 프록

“개쉬벌.”

렘은 침을 퉤 뱉으면서 도끼로 묘기를 부리듯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매의 발톱인지 눈깔인지 하는 놈을 조금 전에 놓쳤다.

큰일을 보고 뒤를 안 닦은 것처럼 찝찝했다.

‘사냥에 실패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활잡이 놈은 눈치가 빨랐고, 발도 빨랐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냅다 토꼈다.

튀면서 날린 화살이 매섭기도 했고.

렘은 왼쪽 옆구리 부근을 스쳤던 화살의 흔적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상처는 없다. 다만, 완벽하게 피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뿐.

뒤가 구린 건 구린 거고.

적 진형을 비스듬하게 찌르듯 들어가서 돌격한 판이었다.

렘은 발을 물려 본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새끼 뭐야?”

“죽여!”

주변에 아군이 거의 없었다.

조금 깊숙이 들어온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렘은 투덜대거나 욕설, 기합을 내뱉는 대신 양손에 든 도끼를 휘둘렀다.

오른손에 든 도끼는 중간에 적이 쓰던 걸 주운 거라 무게 중심이 형편없었지만.

이 또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안 쓸 거면 던지면 되지, 뭐.

훙, 푸칵!

정면을 가로막은 놈의 턱과 목을 왼손에 든 도끼로 한 번에 가르자, 꾸물거리던 피가 솟구친다. 피 분수가 확 뿜어졌다.

피 분사를 슬쩍 피한 렘이 오른손을 힘껏 휘둘렀다.

손에 들린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훙-

투척용이 아닌데도 도끼는 세차게 날아가서 표적에 적중했다.

뻑!

도끼가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며 박혀 들었다.

렘은 그대로 돌진하듯 적진을 흔든 후에 아군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우리 분대장은 안 뒈지고 살아 있으려나.’

쉽게 죽을 인간은 아니다.

렘도 살다 살다 그런 악바리는 처음 봤으니까.

‘부족원 중에서도 그런 인간은 없었는데.’

아마도 슬슬 눈치 보면서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있을 거다.

여기서 죽긴 아까운 인간이다.

그렇다고 전장이 퍽 어울리는 인간도 아니지만.

‘야수의 심장이 좀 몸에 붙으면 괜찮겠지만, 재능이 참 아쉽단 말이지.’

보고 있기 안쓰러워 부족의 비전 중 일부를 가르치기도 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스승 노릇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잖은가.

눈앞에서 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인간.

자기 눈 밖에서 뒈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리 본대로 돌아온 뒤다.

“망나니짓을 하고 성과도 없었군.”

작센이었다.

444분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

분대장 엔크리드를 제외하면 사이가 좋은 이들이 없다는 거다.

그런 분대가 용케 굴러가는 걸 보면, 분대장한테 설명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할지도 모르겠다.

“응? 죽고 싶다고 말 거는 거냐? 도끼질에 머리통이 쪼개지고 싶다고?”

“활잡이를 놓친 덕분에 전장이 개판이다.”

이건 확실히 시비였다.

굳이 멀리서 전장 전체를 아우르지 않아도 느껴지는 건 있는 법.

이건 활잡이 때문이 아니라, 프록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프록 전사가 튀어나와서 전장을 헤집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렘과는 마주치지 않았고.

“지랄은. 뒈지기 싫으면 말 걸지 마라.”

“미친 야만인.”

둘은 그대로 서로를 외면했다.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었다.

일상처럼 서로를 비난한 게 전부였다.

444분대는 딱히 진형을 유지하지 않는다.

알아서 싸운다.

진형을 유지하지 않아도, 딱히 모여 있지 않아도 눈에 띄는 놈들이니까.

‘왕눈이 새끼만 빼고.’

정작 렘 자신도 적진을 헤집는 바람에 이리저리 주목을 좀 받았을 거다.

작센이야 소리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게 특기인 놈이고.

저 멀리, 다른 분대원 몇이 보였다.

다들 알아서 활약 중이었다.

나른한 태도로 검을 휘두르는 놈.

경직된 채로 사람을 패 죽이는 놈.

누구 하나 평범한 놈이 없었다.

물론 그중 제일은 분대장이다.

평범 이하의 재능으로 아득바득 살아가는 걸 보라.

저걸 누가 ‘평범’하다고 할까.

‘혹시 모르니까.’

렘은 분대장을 찾아서 지키기로 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뒤나 슬쩍 봐줄 셈이었다.

여전히 죽기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하물며 이쪽 대륙에서는 내 비전을 처음 배운 놈이잖아.’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리며 움직인다. 곧 렘의 눈에 엔크리드가 보였다.

‘음?’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적군 하나가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달려드는 적군의 발을 걸고 도낏자루로 턱주가리를 올려친다.

맞은 놈이 부러진 치아를 뱉었다.

그대로 몸을 반 바퀴 돌리며 팔꿈치를 횡으로 꽂는다.

뻑. 우득!

투구 위를 때리자, 두꺼운 장작 부러지는 소리 비슷한 게 났다.

한 방에 목뼈가 부러진 거였다.

렘은 휘두른 오른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도 시선은 고정했다.

아니, 덤비는 놈을 상대하면서도 아까부터 시선은 분대장을 향해 있었다.

‘능숙해?’

평소에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능숙함이, 먼저 나가서 돕는 게 아니라 지켜보게 했다.

질 것 같지 않았다. 하물며 직감에 가까운 현실이 되어 가는 중 아닌가.

꽤 하는 적병 하나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었는데.

전에 없는 침착함과 담대함이 엿보였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지?

“나도 신기하다.”

옆, 또 작센이다. 왜 자꾸 동선이 겹치나 싶더니.

이 새끼도 분대장 뒤를 봐주러 온 건가?

“오늘 쭉 지켜봤지. 네놈이 헛짓거리하는 동안.”

“그래서?”

“행운의 여신이랑 동거라도 하는 줄 알았다.”

“뭐?”

“운이 따랐다고.”

고작 운? 지금 모습에서 운만 논할 순 없을 것 같은데?

“실력도 몰라보게 좋아졌고.”

작센은 다른 분대와는 희희낙락 잘 지내지만, 자신과는 사이가 나빴다.

뭐, 이 분대원 전부가 다 그런 편이니까.

가령 지금 나눈 대화가 이 분대에 소속된 이후 가장 길게 나눈 평범한 대화였을 정도로.

그만큼 놀랐다는 거겠지.

작센이 놀란 만큼 렘도 놀랐다.

게다가, 이후 렘은 그보다 더 놀라운 걸 두 개나 봤다.

하나는 적의 찌르기를 피한 뒤, 완벽에 가까운 자세로 검을 내지르는 엔크리드였다.

“좋수다!”

렘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고.

작센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단한 노력.

분대장이 얼마나 피를 토하며 검을 쥐는지 알기에, 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일었다.

재능이란 게 참 우습다.

한순간에 몇 개의 계단을 넘어설 때도 있으니까.

렘도 작센도 둘 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분대장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진 않았다.

저 작자도 그렇게 단숨에 몇 개의 계단을 넘어선 거로 보였으니까.

‘이겼다.’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자신이 상대한다면 몇 번의 도끼질이면 충분하겠지만.

분대장은 열 번이면 열 번 다 졌을 상대.

그런데 이겼다. 손쉬운 승리로 보이진 않았다.

자잘한 상처가 눈에 띄었고.

왼손에 든 방패는 쪼개진 폐품이 됐다.

거기에 손등과 무릎 따위에 찬 가죽 보호대가 찢겨 너덜너덜해졌으니.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으로 보아, 호흡도 나갔다.

‘야수의 심장.’

렘은 한눈에 분대장의 상태를 파악했다.

담대함과 침착함.

그 기반이 된 건 자신이 알려 준 비전 덕이었을 거다.

‘그걸 이만큼이나?’

놀라울 정도로 숙달된 모습이었다.

렘은 모든 걸 뒤로하고 일단 농담이나 던질 셈이었다.

“프록!”

그때, 누군가 외쳤다. 분대장의 바로 뒤에 있던 다른 병사다.

이름이 뭐였더라? 벨이었던가?

자신의 이름과 어감이 비슷한 이름이라 기억에 남았다.

그의 말대로 프록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내달리는 게 보였다.

프록, 개구리 인간이다.

얼굴은 개구리의 그것과 닮았고.

피부 또한 그렇다.

그들의 피부는 기름이 맺힌 듯 미끌미끌해서 날붙이든 둔기든 전부 흘려 버린다.

그들을 죽이려면 심장을 꿰뚫거나 마법이나 주술 따위로 태워야 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프록은 인간보다 우월한 근력, 전투 감각을 지닌 타고난 전투 종족이니까.

손에 든 무기가 무엇이든 며칠이면 금세 능숙하게 쓴다는 전투 특화종.

프록은 땅과 수평이 되어 날 듯이 뛰더니, 발바닥으로 분대장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 일격으로 끝낼 생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 발차기에 옆으로 훙 날아가는 분대장을 보곤 쿵 하고 제자리에 떨어져 자세를 잡는다.

뒤로 팔을 뻗는가 싶더니, 그 손에는 창대가 잡혀 있었다.

놔두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렘은 검은 그림자를 보자마자 땅을 찼다.

쾅.

폭음과 함께 땅이 파인다. 발 구르기에 힘을 실은 덕에 흙바닥이 작은 분수처럼 솟았다.

짧은 틈, 렘의 몸이 프록의 옆에 도달한다.

훙!

문답무용, 말을 걸 것도 없이 도끼를 길게 휘둘렀다.

위에서 밑으로 채찍처럼 휘어지며 어깨와 팔에서 도끼날까지 힘을 전달-

그러자 프록은 창을 던지는 대신 기가 막힌 묘기를 보였다.

내던지는 자세에서 오른발을 옆으로 빼더니, 창대를 나무 막대 튕기듯 위로 휘둘렀다.

자세를 바꾼 것도, 창대를 휘두르는 것도 전부 한순간이었다.

꽝!

도끼와 창대가 만났다.

찌-잉 하는 충격이 둘을 중심으로 퍼졌다.

“그륵, 방해꾼이냐? 못생긴 인간?”

“염병할 개구리 새끼야, 저 인간 우리 분대장이거든.”

“……분대장이 분대원보다 약한 게 맞아?”

프록은 한순간에 렘의 실력을 알아봤다.

대쉬, 도끼질, 판단력.

프록은 타고난 전투 종족이고.

전투력만큼 뛰어난 게 있다면 안목이었다.

그들의 툭 튀어나와 데굴데굴 구르는 눈은 한눈에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곤 하니까.

재능 판독자의 재능을 타고난 종이란 거였다.

프록은 데굴데굴 눈을 굴리더니, 곧 뒤로 물러났다.

“됐다. 흥분은 가라앉혔으니까.”

“뭐 이 새끼야?”

“못생긴 인간아, 저 인간이 내가 아는 인간의 ‘그것’을 꿰뚫었단 말이다. 그래서 순간 흥분했지 뭐냐. 그래도 내가 가르친 놈인데, 씁, 하여간 이제 됐다고. 여기서 목숨 걸고 싸우긴 좀 그렇다.”

프록의 안목은 사람의 재능을 보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의 전투 감각은 한순간에 유불리를 파악한다.

렘이 생각하기에 꼭 상대가 불리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좋다.

푼돈 받아 가며 프록과 싸우라니.

손해 보는 싸움이다.

상대가 하는 말이 십분 이해도 갔다.

프록은 심장만 안 뚫리면 사지도 재생한다. 그 덕분인지, 이들은 심장이란 단어에 예민하다.

심장이란 단어도 안 쓰고.

옆에서 심장이 뚫려 죽는 걸 보면 이성을 잃기도 한다.

광전사가 된 프록은 정말 살벌한 기세를 뿜기에.

어느 정도 단련되지 않은 프록은 애초에 전장에 서지도 않는다.

렘은 아는 것들을 곱씹었다.

‘염병, 나도 여기가 이제 더 익숙한가 보네.’

프록 따위의 정보를 이리 줄줄 외고 다니는 걸 보면, 이쪽 대륙 생활이 몸에 밸 만큼 밴 거겠지.

프록이 제 호심갑을 두드렸다.

오로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 호심갑(護心鉀),

하트 아머라고도 부르는 물건이다.

저걸 차고 있는 걸 보니, 제대로 절차를 밟고 나온 프록임에 분명했다.

프록의 도시는 정련되지 않은 칼은 부러뜨릴지언정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니까.

호심갑은 프록의 신분 증명패 같은 거였다.

“또 보자. 못생긴 인간아.”

근데 저건 왜 자꾸 못생겼다고 지랄일까.

프록은 보석을 좋아하며, 심미안이 독특하다.

그들은 잘생긴 인간을 선호했다.

“죽이기 아까운 얼굴이긴 했어.”

프록이 혀를 휘릭 내밀며 말했다. 긴 혀가 파리를 잡아먹는 것처럼 튀어나왔다가 쏙 들어갔다.

저게 웃는 얼굴일 것이다.

그는, 아니, 그녀는 분대장이 있는 쪽을 힐끗 보며 말했고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여자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프록의 특징이다.

인간을 보는 눈과 달리 자기들끼리 짝짓기할 때의 기준은 또 다르다고 하던데.

어째서인지 예쁘고 잘생긴 인간을 좋아한다.

뭐, 그건 렘이 알 바가 아니었다.

“살았냐?”

작센이 분대장을 안고 있는 게 보였다.

“옆구리 한 방으로 갈비뼈에 금이 갔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그래, 팔을 붙여 막았지.”

훌륭하다. 가르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타격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막았다는 건.

야수의 심장 덕일 거니까.

렘은 어쩐지 뿌듯했다.

“맞는 순간의 충격 때문에 머리가 흔들린 것 같군. 죽진 않을 것 같지만, 이대로 놔두면 죽을 수도 있겠지.”

“전장의 열기도 한풀 꺾였네. 업어라. 데려가자.”

“네가 업어라. 길은 내가 열 테니.”

“……넌 진짜 언제 내 도끼에 머리통 찍힌다.”

“너야말로 등에 꽂힐 비수나 조심하시지.”

렘이 콧김을 훅 내뿜었지만, 싸움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래, 어쨌든 분대장이 활약했으니.

그거로 됐다.

렘이 엔크리드를 업었다.

작센은 그 앞에서 검과 방패로 슬슬 길을 열었다.

겉만 보면 딱히 뛰어난 실력 같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것.

제 실력의 반의반도 안 보이고 길을 여는 거다.

‘음흉한 들고양이 같은 새끼.’

렘은 속으로 작센을 욕하며 걸었다.

그의 등 뒤에 업힌 분대장은 잠이라도 든 것처럼 쌕쌕 숨을 내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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