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07화 (107/170)

107. 일대일이라면

엔크리드는 제 의도가 먹혔다는 걸 알았다.

전장을 개판으로 만드는 거.

보라, 지금 개판이 된 전장을.

더 없이 제대로, 반복했던 오늘 중에서도 양질의 오늘이 된 판을.

개판 중에서도 개판이 됐으니.

‘됐네.’

난전을 유도했고, 그게 먹힌 덕에 늑대인간 학살이 일어났다.

병사도 여럿 죽긴 했으나, 아무리 마구잡이로 덤볐다고 해도 몇몇씩 모여 최소한의 진형을 갖춰 싸우는 병사 쪽이 더 유리했다.

‘병사 쪽이 이기겠군.’

그리 유도한 개판의 외곽에서 숨을 돌리는 중에 로저가 달려든 거다.

선뜻 달려들어 창을 내지르는데, 창날이 점처럼 보였다.

무서운 찌르기였다.

엔크리드는 크게 움직이는 대신 몸만 살짝 틀었다.

갬비슨은 이미 너덜너덜했지만, 그는 자신이 입은 가죽 갑옷의 단단함을 믿었다.

훙. 드드득.

그렇게 상대의 창날이 옆구리를 스쳤다.

따끔한 통증은 없다. 그렇다면 갑옷이 버틴 거다.

엔크리드는 그대로 창대를 옆구리에 끼웠다.

“흥!”

로저는 제 단창을 옆구리에 끼운 엔크리드를 보며 힘을 줬다.

창을 단숨에 당겨 상대의 팔과 옆구리를 헤집을 생각이었다.

창날을 옆구리로 잡아?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

삐-이익!

그리 힘을 준 순간.

괴상한 소리와 함께 이마 앞이 섬뜩해져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니, 고개를 젖히는 것만으로 부족해 허리도 뒤로 꺾었다.

놀라운 반사신경과 순발력이었다.

‘개 같은.’

핑하고 머리털과 투구의 이마 부분을 칼날이 스쳤다.

쓰로잉 나이프였다. 날아든 칼날이 어둠을 가르며 긴 선을 그렸다.

물론 그게 눈에 보이진 않았다.

감으로 알아챈 것뿐.

섬뜩했다. 그 섬뜩함이 금세 분노로 변했고.

로저가 불같은 화를 연료로 도로 몸을 세울 때.

어째 손에 쥔 창에 무게감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머리카락과 조우할 시간이다.”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다. 머리 위를 가로막는 그림자가 보였다.

엔크리드였다. 어느새 달려들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날래?

몸집과 어울리지 않는 기민함이다.

위에서 밑으로 내리꽂는 칼날.

그게 로저의 눈에 남은 마지막 잔상이었다.

퍽!

정수리가 쪼개지며 그의 머리를 감싸 머리털을 숨겨 주던 투구도 쪼개졌다.

쫙, 터진 머리통 사이로 뇌수와 피가 섞여 흘렀다.

툭.

땅에 내려선 엔크리드는 제 몸을 점검했다.

창을 잡고 상대의 이마에 휘슬 대거를 날린 뒤, 앞으로 뛰어 수직 베기, 생각한 그대로의 움직임과 결과였다.

‘나쁘지 않네.’

크게 다친 곳은 없다. 조금 전 창을 붙든 덕에 옆구리가 시큰거리긴 하지만.

손가락으로 갈비뼈 어림을 만져 봤다.

‘부러지진 않았고.’

그럼 괜찮다. 멍이나 좀 들었겠지.

“시이발! 대장!”

적병의 외침이 들렸다.

일부 적병이 로저의 죽음을 봤으나, 봐서 어쩔 건가.

눈에 핏발이 섰다고 해서 상대하던 라이칸 놈들을 두고 덤빌 순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노리는 늑대인간이 아직 송곳니를 흉흉하게 빛내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 한 번의 칼질로 싸움의 향방이 묘해졌다.

로저의 죽음으로 창병이 조금 처진 그런 느낌이랄까?

아직 우위에 있는 건 확실하나.

사이사이 늑대인간에게 죽는 놈들도 나오긴 했다.

지금도 그랬다.

머리털 없는 지휘관의 죽음을 본 병사가 눈이 벌게져서 흥분한 사이 제 몸뚱이를 숨겼다가 튀어 오른 애꾸눈의 라이칸스로프에게 머리통을 얻어맞았으니.

퍽!

애꾸는 손톱이 아니라 주먹을 썼다.

본능을 따라 손톱과 이빨을 무기로 삼은 게 아니라 주먹질을 하는 거다.

그래, 저 정도는 해야 콜로니를 이끄는 리더라 할 수 있지.

마물 군체의 리더가 어디 뭐 아무나 시켜 주는 건가.

그렇다고 주먹만 쓰는 것도 아니다. 제 몸에 달린 무기도 충실히 잘 썼다.

애꾸가 그대로 병사 몇을 상대로 따다다당 하며 손톱을 휘둘러 창날을 쳐 내곤 창대 두어 개를 부러뜨렸다.

그렇게 두 놈을 죽인 후, 다시금 제 군체 뒤로 몸을 숨겼다.

나무의 그림자, 적병의 뒤, 다른 라이칸 새끼들이 날뛰는 뒤쪽.

어떻게든 숨어서 기습을 노린다.

아까부터 비슷한 전법을 썼다.

계속해서 어둠에 숨어 기습하는 거로 빈틈을 후벼 파고 있었으니.

엔크리드는 제 무리 사이로 숨은 놈을 찾는 걸 포기하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 사이, 장창병 하나가 달려들었다.

“복수를!”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네.

그쪽 대장도 일대일로 덤벼서 뒈졌는데, 어딜 혼자서.

처음부터 일대일로 싸웠다면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었다.

그래서 만든 개판 아닌가.

엔크리드는 날아오는 창대를 검면으로 쳐 내고 발바닥으로 지면을 밀며 창대를 따라 검을 밀어 넣었다.

드드드드.

창대의 껍질을 벗기며 다가간 칼날이 창수의 목에 다다랐다.

푸걱.

잘 벼린 칼날이 적의 목을 벴다.

반쯤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고.

엔크리드는 목을 자른 동작에 이어 원심력을 이용, 몸을 휘릭 돌리며 눈앞으로 검을 바로 세웠다.

‘언제 오나 했다.’

엔크리드의 뒤편.

로저의 시신 쪽에서 자세를 낮춘 라이칸 새끼 한 마리가 보였다.

살금살금 뒤를 잡은 늑대인간 무리의 리더다.

어느새 자신의 뒤로 돌아온 놈이다.

애꾸눈의 라이칸스로프.

놈의 노란 눈이 빛나며 엔크리드를 마주 봤다.

“먼저 올래? 내가 갈까?”

늑대인간 리더는 로저보다 까다로운 상대가 맞다.

다만.

엔크리드는 일흔여덟 번의 오늘 동안 그 어느 오늘도 쉬이 보낸 적이 없었다.

어깨의 힘을 뺐다고 발악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빨리 가자.”

이놈을 죽이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손톱이 허공을 가르고 틈을 쪼갠 찰나의 순간 점과 점을 이어, 따다당, 칼날과 손톱이 부딪치고.

몇 번의 공수 교환 이후, 엔크리드의 칼이 애꾸 늑대인간의 팔을 잘랐다.

‘무기의 우위.’

이번만큼 실감한 적이 없다.

크로나를 투자해서 만든 검이 빛을 발했다.

번번이 휘두르는 놈의 손톱을 후려쳐 깼고.

그 틈에 팔을 벴으며, 승기를 가져왔다.

애꾸 라이칸이 아래에서 위로 훙 하고 발톱을 휘둘러, 엔크리드가 있던 자리를 세로로 쪼갰다.

엔크리드는 왼발을 옆으로 빼서 피하고는 몸을 휘릭 돌렸다.

정수리부터 가랑이 사이까지 중심축에 무게를 싣고서.

발끝, 무릎, 허리를 탄 원심력에 근력을 더해 중검식의 강격을 뿌려 냈다.

회전하며 뻗어 나가는 검이 달빛을 가르고 동시에 늑대인간의 목도 갈랐다.

쉭.

손에 저항감이 남지 않는 일격.

타격점에 정확히 맞아 목을 베어 낸 검.

석.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늑대인간의 머리가 날아간 것도.

모두 한순간이었다.

침묵이 내려앉진 않았다.

이 싸움을 지켜본 이들도 몇 안 되니.

장창부대가 진형을 갖춰 달려들어 싸웠다면.

죽는 건 엔크리드였을 것이다.

늑대인간 무리가 덮쳐도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전에서 일대일이라면.

‘안 질 것 같으니.’

그래서 만든 상황이었다.

하물며 지휘관도 애꾸 라이칸 새끼의 버릇도, 싸우는 방식도 몇 번이고 경험했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버릇을 아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반 바퀴 회전하며 검을 뻗어 냈기에 엔크리드를 중심으로 달빛이 회오리치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물론 환상일 뿐이었다.

엔크리드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이제는 호흡을 돌릴 때였다.

하물며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벽은 아직 남아 있었다.

* * *

어, 저거 좀 이상하지 않나.

원래 저랬나?

위기라고 생각하고 달려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갈 수 없어 옆으로 빙 돌아가는 중이었다.

토레스는 엔크리드가 검을 휘둘러 로저를 베는 것도 애꾸 라이칸 새끼의 목을 썰어 버린 것도 봤다.

그러며 드는 생각이다.

변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대련만 십수 번이다.

그때의 엔크리드와 지금의 엔크리드는 달랐다.

‘뭐가 달라졌지?’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칼질이 조금 더 싸늘한 것 같은데?’

여유도 더 있어 보이고.

“원래 저렇게, 음, 잘 싸우는 거지?”

옆에서 핀이 물었다.

드문 실력이다. 보는 순간 누구나 다 그리 생각할 것 같았다.

“죽여주게 잘 싸우네.”

감탄하던 핀이 눈을 매섭게 빛내더니, 갑자기 왼발을 길게 뻗어 땅을 밟더니 반대편 발로 돌멩이 하나를 탁하고 차올렸다.

발등에 맞아 위로 솟은 돌멩이를 쥔 핀이 달리면서 옆으로 휙 던지자.

팩하고 날아간 돌이 적병의 뒤통수에 맞았다.

딱 소리와 함께 머리통을 맞은 놈이 고개를 숙인 순간, 늑대인간이 손톱으로 놈의 등을 후볐다.

퍽!

한 방에 등에 구멍이 나진 않았다. 갑옷이 여간 튼튼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빈틈을 허용한 대가로 등을 맞은 적병은 옆으로 굴러서 피해야 했고, 그 덕에 진형이 흐트러졌다.

진형을 갖춰 싸우던 이들 사이로 라이칸 두 마리가 파고들었다.

진형이 무너지면 라이칸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토레스는 그쪽으로 시선을 한 번 줬다가 돌렸다.

이 와중에 돌을 던지는 핀도 이상한 여자지만.

토레스는 지금 엔크리드가 너무 이상했다. 어색했다. 묘한 느낌이 가슴을 쿡 찔렀다.

말로 표현하자니, 뭐라 할 말은 없고.

그냥 이상했다.

엄청, 매우, 몹시.

‘왜?’

곱씹어 보면 다 이상한데, 몇 개만 꼬집자면.

‘일단, 실력.’

토레스는 지금 눈앞에서 달빛에 취한 라이칸 새끼를 상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는 싫다. 이길 수야 있긴 하겠지만, 죽을 수도 있다.

단검으로 목을 쑤시려고 하다가 손톱에 어디 하나라도 잘못 걸리면?

‘아우.’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괜한 상상이었다.

그럼, 엔크리드는?

‘심장이 돌덩이냐?’

담대한 수준을 넘어선 과감함 아닌가.

적군, 그것도 잔뜩 약을 올려 둔 적병 무리와 늑대인간 사이에서 회피 묘기를 보이질 않나.

적 지휘관을 단칼에 죽여 버리질 않나.

‘저 애꾸 라이칸도 슥삭 했고.’

검으로 손톱 몇 번 때리더니, 그대로 목을 벴는데.

그 솜씨가 사르르르 하고 아랫배가 살짝 아플 수준이었다.

회전하며 뻗어 나간 검이 무슨 채찍처럼 휘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아.’

토레스는 그제야 자신과 대련하던 엔크리드와 지금의 엔크리드의 차이를 인지했다.

‘숙련도가 다르잖아. 숙련도가.’

분명 어색하고 어설픈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자기가 빈틈을 후벼 파며 많이 싸우면 싸울수록 빈틈을 메우기 좋다고 조언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새 완숙의 경지로 보인다.

적어도 지금의 회전 베기는 그래 보였다.

‘며칠 만에?’

천재였나?

아닌데, 같이 어울려 봤기에 안다.

엔크리드의 몸 쓰는 재능은 그저 그런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와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으로 둔한 편인데.

‘이야. 이건 뭐.’

그냥 검을 휘두르면 한 마리나 한 명이 죽는 수준이다.

지휘관과 애꾸를 죽인 뒤에도 간간이 엔크리드를 노리며 늑대인간이나 적병이 달려들었는데.

스텝 밟고 우직하게 내리긋는 검에 머리통이 깨지고.

작정한 수평 베기는 갑옷을 베는 대신 묵직하게 후려치듯 때려 갈비뼈와 내장을 작살냈다.

칼날이 직접 파고들지 않는다고 해서 충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

중검식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수평 베기라 하겠다.

‘쟤들은 겁나지도 않나.’

엔크리드가 적이라고 하면 싸우기 무서울 것 같은데.

물론 토레스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지휘관과 리더.

그 외에 죽은 놈들이 서넛이 더 늘고.

그러자 엔크리드에게 덤비는 놈이 없었다.

보름달에 취해 이성을 잃은 라이칸 놈들도 아예 엔크리드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보고도 지나치고.

빙 둘러서 가고.

‘나 같아도 그런다니까.’

그렇게 되니, 적병과 라이칸의 싸움만 남았는데.

그 전투도 거의 끝자락이었다.

홀로 고고히 달빛만 받으며 엔크리드만 남았다.

그게 퍽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익숙한 태도, 달빛 아래 엔크리드는 숨을 고르고 담담하게 나머지 싸움을 지켜봤다.

그걸 보는 순간 토레스의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늑대인간과 적병이 고작 인간 하나를 피하는 모습도 놀랍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긴 덕택이기도 했다.

위화감 따위가 토레스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실력은 그렇다 치자고.’

그럼, 이 상황은?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잖아.

라이칸 새끼들하고 회색 개 부대가 만난 것부터.

개구멍에서 계속 뒤에 뭐 있는 거 아니냐고도 했고.

‘지휘관 이름은 어떻게 아는데?’

그건 진짜 말이 안 되지 않나.

우연이라 치부할 수가 없잖아.

의문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었다.

지금 토레스가 그랬다.

그렇게 우회해서 달리는 동안 이상하다는 말만 되뇌자.

“뭐가 자꾸?”

옆에서 핀이 물었다. 달리면서 핀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전장의 향방을 읽는 중이다.

둘 중 누가 남든 다 쓸어버려야 하지 않겠나.

처음에는 인간 쪽이 유리했는데.

지금 보면 라이칸 놈들이 이길 것도 같고.

라이칸은 진즉부터 엔크리드란 흉몽을 피했는데.

인간 쪽은 아니었다.

몇 번 더 엔크리드를 노렸다. 그 덕에 머릿수가 더 줄었다.

이렇게 된 거? 전부 한 명이 만든 상황이다. 엔크리드, 무슨 독립 소대의 소대장, 몸이 예쁘고 얼굴도 예쁜 남자.

뭐, 무슨 전술의 천재 같은 건가?

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죄다 이상해.”

옆에서 같이 뛰는 토레스가 계속 신소리를 뱉었다.

둘이 꽤 친해 보였는데, 뭔가 아무것도 모르겠고,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고.

뭐, 이런 눈빛으로 엔크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 차려, 남은 놈들 처리해야 하니까.”

그리 말하며, 핀은 작정했는지 허리춤의 도끼를 던졌다.

막 적병과 눈이 마주친 뒤다.

붕!

손을 떠난 손도끼가 회전하며 적병의 가슴팍에 퍽 하고 꽂혔다.

도끼에 맞은 적병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아프지, 새캬.”

핀이 말하며 달렸다.

옆에서 달리는 토레스는 계속 이상하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그렇게 엔크리드에게 합류한 둘이다.

우회해서 오는 바람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쨌든 가시거리 범위 안에 있다가 합류하란 말을 지킨 셈이었다.

“뭐 좀 묻자.”

그리고 토레스는 물어야 했다. 이 상황이 뭔지, 어떻게 된 건지.

실력이 묘하게 변한 건 제쳐 두고.

가장 급한 것부터.

“지휘관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냐?”

이건 그럴듯한 변명이 있을 턱이 없었다.

엔크리드는 무던했다. 그게 뭐 중요하냐, 이거다.

“우연히.”

“우연?”

우연으로 적군의 지휘관 이름을 알 확률은?

“크라이스가 적군 중에 이상한 놈이 있다고 말해 준 적이 있어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나? 없다. 그리고 그럴듯했다.

“아.”

“머리 감추고 다니는 게 유명하다고 비웃었지.”

도시급 강자는 아니지만, 적군이니까. 거기에 하는 짓이 특이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경로로 소문을 들을 수도 있긴 했다.

아즈펜에서도 몇몇 놈은 변방수비대 대장의 이름을 알기도 할 테니.

그렇다면 가능하지. 가능은 하지.

“그럼 이 상황은 의도한 거지?”

“당연히 우연이지. 늑대인간 무리가 여기에 오는 걸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당연한 걸 뭘 묻는 거냐는 눈빛이다.

그게 토레스는 무척 거슬렸지만.

“그게 중요해? 나 갑자기 계획이 하나 떠올랐는데.”

핀은 엔크리드가 무슨 타고난 전술 천재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고.

토레스는 엔크리드의 어투에 또 묘한 여유를 느껴 어색했지만.

둘 다 귀는 열었다.

일단 들어는 봐야 할 거 아닌가.

“성벽 넘자. 지금이라면 아무도 성벽을 넘을 놈이 있다곤 생각 못 할걸?”

개구멍은 누가 봐도 적군이 파 둔 함정이었고.

거기서 가까스로 도주한 거다.

적병이 도시로 돌아가기 전에 몰래 성벽을 넘는다면?

“기가 막힌데?”

핀이 먼저 동조했다. 그럴듯했다. 당연했다.

계획은 반복된 오늘을 통해 세웠다.

이게 어설프면 이상했다.

“씁.”

토레스가 혀를 차긴 했으나, 그도 동조해야 했다.

어쨌든 작전은 그대로 진행 중이니.

지금 엔크리드가 말한 게 더없이 날카로운 비수가 될 것 같긴 했다.

그것도 적이 찔리는지도 모르게 쑤실 비수.

“가자고.”

그렇게 아직 늑대인간과 적병의 싸움이 끝나기도 전.

셋은 움직였다.

“씨, 튄다!”

라이칸 대가리에 창을 찔러 넣던 병사가 외쳤다.

그렇다고 쫓아갈 순 없었다.

남은 병사의 숫자는 고작 열둘.

진형을 갖춰 싸울 순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로저 대장을 갈라 버린 저 작자와 싸우고 싶진 않았다.

“젠장.”

그러니 괜히 욕만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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