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꿈을 찾아 걷는 행자
마커스는 아찔함을 느꼈다.
식은땀도 흘렀다. 이마가 금세 축축해졌다.
‘이 새끼들이?’
적군이 부린 수작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렇다고 구경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가 현 보병대대의 지휘관이었다.
지원군까지 합세하며 2개 대대로 불어난 부대다.
“거북이 중대 후방 대기! 나머지는 거인을 막는다! 진형 흐트러뜨리지 마라! 물러나는 놈들 뒤통수에 화살을 꽂아!”
그의 명령을 들은 부관이 같은 말을 반복.
축약한 명령을 들은 전령이 사방으로 달렸다.
“시발, 막아! 그냥 막아! 후퇴해도 죽는다!”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병사의 희생을 강요했으니, 사기는 곤두박질칠 것이고, 한 번 밀리기 시작한 전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건 꿈 같은 일이 될 테니.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당장은 부대를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뿔 나팔이 연신 울렸다.
뿌우우우우!
마커스는 축축하게 시야를 가린 안개를 보며 생각했다.
염병 같고 지랄 맞은 환경이라고.
이전 전장에서도 이 미친 안개 때문에 다 뒈질 뻔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주술로 생긴 안개이긴 했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결했다고 했지?
이전 대대장의 기지와 전술로?
‘개도 안 믿을 헛소리를.’
이전 대대장이 어떤 인간인 줄 안다. 뒷돈 좋아하는 귀족 출신의 군인.
능력보다 욕심이 앞서는 병신이다.
주술을 부순 건 다른 위인이 분명하다.
다들 쉬쉬하지만, 주술파괴자란 별명을 부대 내에 떠돌게 한 그 소대장이란 친구.
운이 터진 병사, 행운의 여신과 동침했다는 소문의 병사.
그렇게 크로스 가드로 보냈더니, 그쪽 일까지 해결하고 온, 뭔가 다른 병사.
왜인지, 이 순간 그 병사가 떠올랐다.
미치광이 소대를 통제해 뭐라도 하게끔 하라고 불렀던 그 병사의 이름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았다.
엔크리드.
그와 함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 끝나고.
안개가 서서히 흐려지는 저 너머로.
인간보다 머리 몇 개는 위에 있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미친.”
거인이라니.
적 지휘관 새끼가 작정했구나.
어설프게 싸우느니, 힘을 하나로 모아 본대에 싸움을 건 거다.
이게 도박이라면 판돈 전부를 올린 격이었다.
‘하, 이 와중에 저딴 짓을 해?’
기실 이전부터 파격의 연속이었다.
병사를 내세운 결투로 사기를 떨어뜨리고.
후방을 쑤시고.
거인을 내보내서 한 방에 판을 뒤엎으려 한다.
이건 전략의 천재가 부린 조화인가.
아니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무식한 전략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인가.
모른다.
전장은 결과로 이야기할 뿐.
성과도 승부도 그렇다.
그러니 여기서 지면 마커스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리라.
초조함이 가슴을 치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히 그에게 전쟁광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마커스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와 욕망, 원초적 본능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게 만드는 그런 욕망의 마차가 전신에 피를 공급했다.
‘흐름, 약간의 흐름만 탄다면.’
마커스는 앞뒤를 다 가늠하고 전략을 짜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승부사였다.
머리는 그의 부하가 쓰는 거였다.
“퇴각해야 합니다. 거인 하나에 최소 일개 소대 이상의 병력이 소모될 겁니다.”
“적이 준비한 수가 치명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추스르고 거북이 중갑이 아닌 궁병대로 상대해야-”
머리 쓰라고 모아 둔 부관 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다.
“전장 좌측! 요정과 암살자가 나타나서 지휘관을 무차별 암살합니다!”
이런 시발?
“전장 우측! 일개 분대 이상의 전쟁 용병이 날뜁니다. 특급 이상입니다!”
지랄이었다. 염병 났다.
그래도 마커스의 심장은 쪼그라들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퇴각을 바라는 부관의 눈빛을 외면하며 마커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변화, 아주 작은 거라도 좋았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만 바뀐다면.
마커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만약 이대로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아니, 기회는 있다.’
사람이 모이면 특출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병대대 안에도 그런 이들이 있을 터다.
순응하는 파도를 깨고 넘어가는 작은 손짓이 필요했다.
마커스는 그런 순간이 오리라 믿었다.
“대장님!”
부관이 대들 듯 외쳤다. 그만큼 급했다. 그 와중이다. 전령이 뛰어왔다.
멀리서부터, 아주 큰 소리로 전장의 상황을 알리며.
목에 핏대가 서는 걸 넘어서, 소리치다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전령의 외침이다.
“급보! 급보! 거인을 죽였습니다!”
변화, 순전히 직감에 의지해 기다리던 그 변화였다.
누가 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전군 반전!”
마커스가 외쳤다. 아군의 반격이 시작될 순간이었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그만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외침에 나우릴리아군은 곧바로 달리는 거북이가 됐다.
거북이 중갑 부대를 중심으로 만든 원형 돌격진이었다.
마커스가 자신 있는 대규모 집단 전투였다.
* * *
거인의 죽음이 시작이었다.
곳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세찼다. 여름에서 가을을 넘어갈 때쯤 불어오는 그런 세찬 태풍과도 같았다.
“저어언구우우우운!”
각 중대장의 곁, 목청이 커서 전령이 된 병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우우우우!
전진하라는 뿔 나팔 사이다.
“돌겨어어어억!”
“와아아아!”
“다 쓸어버려!”
“죽어라! 병신 새끼들아!”
벨도 그 일원으로 합류했다. 거인을 죽인 렘, 거인의 힘을 받아 낸 아군의 활약을 보니 가슴이 들끓었다.
질 것 같지 않은 전장, 그런 느낌이 들었다.
파바박.
창을 든 보병이 먼저 달려들어 가시처럼 적군을 찔렀다.
푹!
찔린 부대는 버텼다. 아즈펜의 정병은 단단했다. 방패와 갑옷, 역으로 장창을 들이밀었다.
“열어!”
아군 창병의 뒤쪽에서 터진 외침이다.
그래서? 단단하면 우리만큼 단단해?
거북이 중갑 중대.
사이프러스 사단 4연대 4대대의 1중대.
기사의 이름을 딴 부대 내에서도 자랑하는 정예.
별개의 독립 유군이 아닌, 부대의 핵심이 되는 전력.
그들이 움직였다.
전술은 단순했고,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은 더 단순했다.
‘나아가 부수고 깬다.’
거북이 중갑 중대는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해 나섰다.
걸음은 느리지만, 묵직했다.
선두에 선 보병대가 창이었다면 이번에는 철퇴였다.
그것도 방패와 갑옷을 우그러뜨리고 부수는 철퇴.
중갑 부대의 주력 장비는 본래 장창, 하지만 이번에 필요한 건 묵직한 전진 돌격이다.
그들은 적의 방패와 갑옷을 부수기 위한 보조 장비인 둔기로 교체한 채로 나아갔다.
안에 속옷을 입고 그 위에 갬비슨, 다시 그 위로 사슬 갑옷과 팔과 다리에 쇠 건틀렛과 그리브를 찬 부대의 돌격이다.
그들이 뭉쳐서 진격하자 무슨 쇠뭉치가 덤비는 착각이 들 법도 했다.
선두에 선 열 명의 중갑 보병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취했다.
머리 위, 수직으로 무기를 들었다.
일반 메이스보다 길이가 긴 메이스가 피로 물든 땅 위로 그림자를 만든다.
“이런 씨.”
적병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곧 선두에 선 열 명의 중갑병이 동시에 무기를 내리쳤다.
대기를 가른 철퇴가 적병의 방패와 갑옷, 어설프게 솟은 창대 따위를 후려쳤다.
쾅! 쩌저정! 우직! 콰직!
다양한 소음이 일시에 터져 섞였다.
첫 번째 돌격으로 인한 공격.
적병 중 죽은 이는 없었다. 진형 대 진형의 싸움이었다.
일격에 무너지진 않았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적아가 바짝 붙게 된 진형.
서로의 경계가 무너져 겹쳤다.
아침 해가 뜨기 전, 해와 달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듯.
그리 양군의 병사가 각자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발이 묶인 채로 제자리에서 싸우는 중갑 보병대는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 줬다.
콰직!
두 번째 몽둥이질에 버클러 따위가 부서지며 허공에 나무 조각이 비산했다.
부서진 방패를 든 아즈펜 병사의 동공이 흔들리고.
방패 너머로 다시금 철퇴가 날아와선 그의 투구 위를 후려쳤다.
뻑!
“꺽!”
가죽 투구가 쇳덩이의 충격을 해소해 줄 순 없었다.
일격에 머리통 안쪽이 함몰되어 쓰러지는 병사다.
그 위를 중갑 보병대의 발이 지나갔다.
우직, 우직.
뼈가 부러지고 광대가 함몰되며 피가 터진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몸이 혼을 잃었다.
중갑병의 발밑에 깔린 병사에게 남은 건 죽음뿐.
“전진, 한 걸음!”
중갑 보병 중대장은 제 부대가 자랑하는 진형을 유지했다.
그러니까 천천히 한 걸음씩, 적의 숨통을 죄는 진격이다.
돌진이나 돌격이라 하기에는 느리고 굼떴지만.
상대가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니.
“쓸어버려.”
중대장은 자신감에 찼다. 그럴 만도 했다. 전황이 한순간 뒤엎어졌으니.
이 전투에 만약 기사가 있었다면.
기사의 결투로 시작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싸움을 걸지 않았다.
비장의 칼을 숨겼고, 그걸 꺼내 쑤셨으나.
아군의 칼이 더 단단했다.
그것도 생각지 못한 그런 단단한 칼이었다.
아무리 렘이 미치광이라고 해도 거인을 갖고 놀다 죽일 줄 누가 알았겠나.
“우어어어어!”
누군가의 함성이 대기를 찢고 하늘로 솟았다. 병사들이 전부 흥분했다. 눈이 벌게져 창을 쑤시고 검을 휘둘렀다.
간간이 도끼를 집어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이쯤에서 마커스의 용병술이 다시 빛을 발했다.
중갑 보병대로 전면을 치며 상대 군대 진형을 허물어뜨린 뒤.
“쏴! 쏴! 다 쏴 버려!”
일군이 우회했다. 발 빠른 경갑 궁병대, 숏보우를 든 레인져 부대다.
마침 부대에 합류한 뛰어난 레인져 하나가 이들을 이끌었다.
핀이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마커스의 명령을 듣고,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다.
화살이 날아간다. 그 화살에 죽는 사람이 많진 않았다.
그저 화살을 쏘고, 또 쏠 뿐.
아끼지 않고 화살을 쏴 대며.
“항복! 무기를 버리고 땅에 머리를 박아라! 항복하면 죽이지 않는다!”
거듭 외친다. 목청 좋은 전령 몇이 같은 말을 반복해 전장에 퍼트렸다.
흐트러진 전황, 외곽 쪽을 내달리는 이들은 안 그래도 사기가 꺾여 뒤로 물러서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핀을 만나는 순간, 전부 무기를 버리고 양손을 들어야 했다.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마!”
핀은 일부러 항복한 인원을 살려 뒀다.
그 효과는 여실했다. 다들 하나둘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있었으니.
바뀐 전장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렘은 거인을 죽인 이후 손을 털었다.
‘땀 식겠구먼.’
딱 여기까지 재밌었다. 이다음은? 추격하고 학살할 차례인데.
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학살극을 피한다는 그런 말랑말랑한 생각은 아니다.
이미 이긴 싸움이다. 쫓는 게 귀찮을 뿐이지.
혹시 적군에서 거인 같은 걸 또 숨겨 놓진 않았을까 보고 있는데, 없었다.
지휘부 쪽에서 술렁거림이 느껴졌을 뿐.
저것들 곧 다 튀겠네.
‘주술이라도 부리든가.’
그런 기미도 없다.
흐름은 넘어갔고 전장은 끝났다.
그게 렘의 판단이었다.
그는 돌아서서 제 소대장을 찾았는데.
“뭐여, 시벌.”
이 작자 어디 갔나, 뒤에서 잘 지켜보라니까.
자신이 거인이랑 싸운 것도 제대로 안 보고 사라졌네?
거기에 들고양이를 비롯해서 다 안 보이네?
그러니까, 그중 하나랑 같이 갔단 거네?
‘어?’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우어! 미치광이 소대 만세!”
“렘 만세!”
거인을 죽인 덕에 주변에서 아직도 렘의 이름을 드높이는 이들이 있었다.
지나치는 이들마다 렘을 칭송했다.
아군에 있는 미치광이가 살육에 미친 적군, 거인을 죽였다.
무엇보다 마지막 그 수법은.
거인이 휘두르던 거대한 자이언트 해머를 보더니, 거인의 허벅지를 발로 차고 무기를 쥔 거인의 손가락을 주먹으로 후려쳐 부러뜨렸다.
이후 그대로 허공에 몸을 띄우더니, 회전.
머리가 바닥으로 가면서 렘의 발이 거인의 턱을 갈겼다.
호쾌한 타격이었다. 그다음은 굴러다니는 창 하나를 들더니, 거인의 부서진 턱부터 머리통 뒤까지 뚫고 예술품을 만들었다.
쓰러진 거인은 무슨 조형물 같았고.
그 앞에 선 렘은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 같았다.
거인은 소설 속 악인으로 흔히 등장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연신 환호가 터진 건 당연했는데.
“시끄러!”
자신을 칭송함에도 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에서 렘을 칭송하던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제야, 그들의 머릿속에는 렘의 별칭이 환한 달빛처럼 떠올랐으니.
‘그냥 미치광이.’
이유 없이 지랄하는 미치광이.
괜히 화내고 염병 떠는 미치광이.
“우리 소대장 어디 갔냐?”
누군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 도끼 두 자루를 든 엔크리드가 있었다.
안 그래도 이쪽으로 오는 참이었다. 렘과 라그나, 엔크리드가 마주쳤고.
“아니, 내가 지켜보라…….”
“오다 주웠다.”
엔크리드는 렘의 말을 끊고 무기를 던졌다.
두 자루 도끼가 허공을 갈라 렘의 손에 들어왔다.
탁탁하고 양손을 뻗어 받아 쥔 렘이다.
“음?”
그립감, 쥐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직접 쥐고 느껴 본바.
전에 쓰던 것보다 좋았다.
손수 관리한, 피를 먹어 본 그런 무기.
무게 중심부터 도끼날까지.
양질의 철을 쓰고 제대로 관리한 그런 무기였다.
“내 도끼 부서졌다고 이거 구하러 간 거요?”
모로 가도 곧게만 가면 되는 일.
엔크리드는 렘을 알았기에.
“응.”
수긍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 얻어걸린 거지만, 이거로 평화가 찾아온다면야.
이유 모를 살기를 뿜어내던 렘에게서 한결 부드러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살기가 옅어졌다.
“보라는 거 보긴 했고?”
“봤지. 거인을 막는 도끼. 힘으로 이기는 것도.”
말하는 엔크리드의 눈, 렘은 제 소대장의 눈을 봤다.
농담처럼 던진 도끼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의 눈 안, 타오르는 불길, 욕망과 욕정이라 불러도 무방한 그 불.
배우고 익히고 새로이 나아가기 위해.
제 꿈이라는 걸 찾아 피를 쏟아 내며 걷는 행자(行者)가 그곳에 있었다.
이거면 충분했다.
이거야말로 렘이 엔크리드란 인간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좋수다.”
렘은 웃었고.
엔크리드도 웃었다.
둘의 웃음은 달랐으나, 또한 비슷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라그나가 읊조렸다.
“일단 검을 몸에 붙이고.”
그런 라그나의 뒤로 불쑥 작센이 솟았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다가온 작센이다.
“감각이 무르익어 육감이 열리면 다음은 뭐겠습니까? 세분화, 각각 나눠서 단련하는 일, 또한 반응하는 법. 할 거 많습니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돌아갔다. 작센과 눈을 마주치고 눈으로 물었다.
‘그게 다 뭔데?’
답은 없었다.
“다음에.”
절단은 라그나보다 이쪽이 더 특기인 것 같은데.
“이 새끼가? 끼어드네?”
렘이 눈을 부라리고.
날이 선 말들을 나누기도 전에 아우딘도 돌아왔다.
“우어! 우리 쪽 미친 거인이 더 세다!”
환호 한번 끝내주는군.
그래, 이쪽은 미친 거인이 되어 돌아왔다.
전신을 피로 적신 뒤, 수수하게 웃으며.
소매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저리 순수하게 웃는 건 재주인가, 아니면 그냥 미치광이인가.
“발라프 식 박투의 핵심을 아십니까?”
얘도 비슷한데.
엔크리드의 시선이 미치광이 거인에게 향했다.
아우딘이 눈웃음을 보였다.
“염병, 아주 다 끼어드네?”
렘이 화를 냈고.
다들 서로 살기를 뿜어냈으며.
엔크리드는 잠시 지켜보다 말렸다.
전장 한복판, 전투야 어찌 됐든 엔크리드를 가르칠 생각에 바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이번 전장의 최고 수훈자였다.
엔크리드는 그런 수훈자 무리를 말리며 말했다.
“근데, 나머지는?”
지금 보니 앤드류를 비롯한 애들이 안 보였다.
“휩쓸려서 앞으로 갔수다.”
렘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