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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화 (5/175)

5화

* * *

케이든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간 곳은 아우레인 기숙사의 뒤편.

제대로 된 훈련실이 아닌 야외 수업이었기에, 학생 무리는 어리둥절해했다. 케이든은 학생들이 전부 내려온 것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1교시는 물질계 수업이다. 다들 고개를 들도록.”

케이든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학생들은 일제히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가락이 지목한 곳은 바로 아우레인 기숙사의 뒤쪽 벽면. 벽 위쪽으로는 무언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벽 아래 바닥에는 돌멩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너희들이 지금부터 할 일은 이 돌멩이에 자력을 부여하고, 그걸 저 벽면에 붙이는 것이다. 물론 물질계 마법만 사용해서 말이지.”

케이든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기숙사 벽면 위로 던져 올렸다.

착―!

곧바로 벽에 찰싹 붙어 버리는 돌멩이.

딱히 주문을 외우거나 마나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실력이다.

“간단하지? 단, 자력은 영구적으로 부여해라. 너희가 붙여 놓은 돌멩이가 떨어져, 누군가 맞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사실 마법사에게 영구적인 자력을 띤 돌멩이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단한 것은 돌멩이가 아니라 저 기숙사 벽면일 것이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런데 아무리 자력을 부여한다 해도, 어떻게 저 평범한 벽면에 돌멩이를 붙일 수 있는 거죠?”

“아… 그거?”

케이든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저 기숙사 벽면 전체는 내가 만들어 놓은 영구 자석이거든. 14년 전에 말이지.”

케이든의 말에 학생들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아우레인 기숙사를 통째로 자석으로 만든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이니까.

기숙사 내부에는 자력의 영향이 없던 걸로 보아 그야말로 깔끔한 실력이다.

게다가 14년 전이라는 것은, 케이든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신입생 시절, 우리와 같은 나이에 저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 의미를 이해한 학생들은 더더욱 놀랄 테지.

“그럼 시작해라. 시간은 30분 정도 자율적으로 주겠다. 실습이 시시한 녀석들도 있는 거 잘 안다. 다만, 제일 큰 물체를 벽에 달아 놓은 녀석에겐 이후의 내 강의에서 추가 점수를 주겠다. 이 정도면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겠지?”

케이든이 평민 출신이라며 깔보고 무시하고 있던 귀족 녀석들조차도 학점 얘기가 나오니 눈빛이 달라졌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대인전은 엄연히 전공 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추가 점수는 상당히 매력 있었다.

케이든의 말을 신호로 학생들은 저마다 돌멩이를 주워 자력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저마다 물질계 마법을 시전하는 학생들로 인해 붉은 오라가 자욱하게 일렁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루비 버밀리온. 물질계 권좌의 장녀답게,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기숙사 벽면의 꼭대기 부분에 붙여 놓는다.

물질계 마법에 서툴러 끙끙대고 있는 다른 학생들은 벌써 성공한 그녀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 수업은 구조적으로 불공평했다. 애초에 본인의 계열이 아닌 고유 마법은, 사용해 봤자 본래 위력의 10% 정도가 한계니까.

따라서 이 수업은 물질계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아마도 이 수업의 목적은 학생들의 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모든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가르치려는 의도겠지.

그런데 예외는 있었다.

쿠웅!

순간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까까지 없었던 사람 몸집만 한 바위가 기숙사 벽면에 붙여져 있었다.

보나 마나 저 바위의 주인공은 제이드였다.

역시 원작의 주인공답게, 그리고 원래였으면 수석의 자리답게, 물질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이드는 저만한 바위를 붙여 놓았다.

학생들의 이목은 순식간에 평민 출신의 차석에게 집중되었고 제이드는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의 눈빛은 잠시 후 내 쪽으로 옮겨졌다.

아까부터 나를 향해 흘깃흘깃 보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아마도 차석이 저 정도면 수석은 어느 정도일까, 기대하는 거겠지. 다만,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주변을 둘러봐서 적당히 앉을 곳을 찾은 나는 수업은 제쳐두고 나무 그늘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다 들리게끔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시하네.”

그러자 내가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의 흥분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저 녀석, 지금 수석이라고 대놓고 땡땡이치는 거야?”

“아니, 어떻게 평민 주제에 저럴 수 있지?”

“교수는 저걸 그냥 가만두는 건가?”

이런 나를 보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어쩔 수 없다.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들키는 순간 퇴학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 케이든 교수는 이런 나를 딱히 제재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역시 학생들이 뭘 하든 간에 무관심한 교수다.

나는 속닥거리는 귀족 녀석들의 반응은 무시한 채, 수업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1교시는 결국 누가 더 큰 물체를 찾아오느냐의 싸움으로 번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숙사 뒤편의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를 뿌리째 뽑아 온 제이드가 물질계 실습의 추가 학점을 받게 되었다.

‘역시 주인공인가.’

다만 살짝 위화감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게임 내에서 제이드의 행동들은 전부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금 여기 있는 제이드는 자율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대사나 선택에 있어 최선의 결과만 가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이 물질계 수업에서는 보통 루비 버밀리온이 추가 학점을 받게 된다. 저 나무를 뿌리째 뽑아 오는 공략법을 알지 못하면, 제이드의 플레이어는 여기서 추가 학점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잠시 생각하고 있는 와중, 제이드가 나를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계속 쳐다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나 보다.

“다음은 소환계 실습이다.”

이어서 소환계 실습이 시작되었다. 소환계 실습은 가장 큰 개구리를 소환한 사람에게 추가 학점이 부여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소환체를 인정하게 되면 소환계 학생이 유리하잖아? 오직 개구리만이다. 다른 건 인정 안 하니까, 개구리만 가져오도록.”

케이든의 지시에 학생들은 또다시 자리를 잡고서 개구리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다만 소환계 마법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비계열자가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의외로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슬슬 수업이 지루해진 참에 하품을 하고 있는 와중, 내 옆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뭐 해?”

루비 버밀리온이었다. 그녀는 말을 걸어오더니 내 옆자리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냥. 지루해서.”

차마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러자 루비도 그다지 캐묻지 않는다.

“그러는 너는? 되게 수업 열심히 듣는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아까 수업 시간에 열심히 발표하더만.”

“소환계 마법은 영 재능이 없어 가지고. 어차피 개구리는커녕 벌레 한 마리도 소환 못 하거든.”

사실 알고 있는 정보긴 했다. 하지만 의외다. ‘아카마’의 루비 버밀리온은 그래도 수업에는 열심히 참여할 텐데, 지금은 그냥 내 옆자리에 앉아 휴식을 택한다.

원작에선 이렇게 대놓고 쉬고 있는 학생이 없어서인가? 아마도 내 행동 때문에 살짝 전개가 달라진 느낌이다.

첫 몇 마디 이후로 루비와의 대화는 그대로 끊겨 버렸다. 딱히 대화할 화젯거리도 없었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일까.

옆에 앉아 있는 루비가 살짝 어색해진 나는 열심히 소환하고 있는 동급생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비는 그렇게 말없이 소환계 수업 동안 옆에 앉아 있더니, 다음 수업을 시작하자 다시 학생들 사이로 복귀했다.

“이번은 정신계 수업이다.”

순서대로 하지 않고 굳이 소환계 다음으로 정신계 수업을 진행한 이유는, 방금 전 소환한 개구리를 정신계 마법, 디스펠로 소환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7계의 고유 마법 상성은 마나 자체의 상성도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상성도 있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보고 있던 나는, 지루한 나머지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수업에 참여도 안 하는데, 게다가 잠까지 자면 어떤 평판을 들으련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던 나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 * *

“지금 저 녀석 자는 거 맞지?”

“진짜 미친 자식이네?”

한창 디스펠 마법에 열중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한마디씩 하는 에이체스와 벅스 때문에 제페토 또한 그쪽으로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말마따나 제로는 어느새 풀숲에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분명 학점 얘기가 나오기 전엔 그들도 무시했던 수업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이 앞장서서 제로의 수업 태도를 논하고 있는 꼴이 돼 버렸다.

“저, 저 하찮은 평민 따위가…….”

“딱 봐도 저거 학점 따위 쉽게 딸 수 있다고 여유 부리는 거 아니야? 게다가 저렇게 대놓고 무시하면서 말이지. 수석이면 다냐고.”

“수업에 참여 안 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는 건 진짜 개오바잖아.”

옆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에이체스와 벅스의 말이 제페토의 화를 더더욱 부추겼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심기가 불편했던 제페토였다.

물론 제이드가 물질계 수업에서 나대던 것도, 그리고 제로 녀석이 수업에 아예 참여 안 하는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것도 전부 화나는 포인트긴 했다.

그런데 제일 열받는 점은, 저 제로라는 녀석이 루비 버밀리온과 나란히 붙어 꽁냥거렸다는 것이다.

제페토는 입학식 날부터 루비에게 호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영웅의 가문 영애는 똑같은 영웅의 가문 출신인 본인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졌었다.

같은 기숙사에 소속되었을 땐 속으로 만세를 부르기까지 한 제페토다.

그런데 그 루비 버밀리온이 저 듣도 보도 못한 평민 자식과 엮여 있다니…….

“저 꼬라지를 보고만 있을 거야, 제페토?”

에이체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꺼냈다. 어쩌면 그의 말이 제페토에게 도화선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제페토의 마음속엔 저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당연, 아니지.”

고작 평민 주제에 건방 떠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시켜 주겠다고 제페토는 조용히 속삭이며 다짐하고 있었다.

* * *

“나… 설마 지금까지 잔 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이 노을 진 주황빛인 걸 보니 벌써 저녁 시간 가까이 된 듯싶다.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결국 나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걸로 모자라 아예 누워서 잠까지 잔, 그야말로 생양아치가 돼 버렸다. 만약 여기가 일반 학교였으면 수업 태도만으로 진작에 퇴학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담당 교수가 무신경한 케이든인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꼬르륵―

배에서 눈치 없이 배꼽시계가 울렸다. 지금 밥이 넘어갈 때인가? 그렇지만 밥은 먹어야 하잖아.

이미 해는 저물고 어둑해져 가는 와중, 나는 풀숲에 대자로 뻗어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기숙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렇게 배짱 있게 행동하는 이유는, 어쩌면 현실 감각이 다소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생생해도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야 이 장소도 사람들도 전부 게임 속에서 한 차례 겪은 일이니까.

이렇게 내가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그 현실감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기숙사의 입구로 들어가려 하던 때였다.

피슉!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른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

얼굴 가를 어루만지자, 거기서 느껴지는 건 살짝 따뜻한 붉은 액체. 피였다.

“뭐지……?”

수업 첫날, 기숙사 입구에서 나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원작에도 없었다. 이건 분명 내 예상 밖의 일이다.

나는 이 비현실에 당황하여, 그저 피가 흐르는 볼때기를 오른손으로 어루만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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