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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0화 (10/175)

10화

방금 치렀던 전투를 보아, 이곳은 그리 낮은 난이도의 던전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는 건 보상도 그만큼 기대해 볼 만하다는 얘기였다.

신나서 마법진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오른팔이 다시금 욱신거렸다. 마치 타오르는 유황불에 오른팔을 담가 둔 듯한 끔찍한 통증. 이제는 아까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듯싶다.

그럼에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드롭템을 확인했다. 어차피 상처는 마법으로 치유하면 되는 거니까.

빛이 뿜어져 나오는 마법진의 중앙에 손을 뻗어 그 안의 내용물을 더듬자, 손에 집히는 것 중 하나는 집게손가락 크기 정도의 마정석이었다.

마정석은 마나를 담는 보석, 대개 마물을 처리하면 나오는 재화로, 팔면 꽤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야, 이렇게나 작아?”

물론 내가 원하던 ‘그것’을 사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크기로도 충분하지만 왠지 섭섭했다. 방금 전의 죽을 뻔한 위기와 반쯤 아작 나 버린 오른팔을 생각하면 조금 억울한 감도 있었다.

실망한 나는 얼른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건, 뭐지?”

가운데에 물방울 모양의 하얀색 보석이 달린 목걸이. 아무리 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나는 목걸이를 좌우로 흔들어 보기도 하고, 착용도 해 봤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것도 팔면 되는 잡템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석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때.

〈아이템 정보〉

* 아이템: 오팔의 목걸이

* 설명: 물방울무늬의 오팔이 박힌 목걸이다.

* 효과: 보석의 중앙 부분을 문지름으로써, 마나를 일시적으로 1회 흡수할 수 있다. (쿨타임: 24시간)

게임에서 보던 아이템 창이 눈앞에 떠 있었다.

나는 눈앞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홀로그램에 놀라, 달시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루비를 불렀다.

“저기 이거 보여?”

“무슨 말이야? 뭐가 보이는데?”

“아, 그래? 아무것도 아냐……. 역시 나만 볼 수 있나 보네.”

선택지 창과 마찬가지로, 아이템 정보 창도 나만 볼 수 있는 듯했다.

마땅히 게임에 있는 시스템이 이곳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조금 섭섭할 뻔했다.

그나저나 마나를 1회 흡수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니…….

여기 던전의 기믹이 구현화된 아이템인가? 그럼 개사기잖아?

빨리 효과를 실험해 보고 싶은 나는 루비를 다시금 불렀다.

“왜?”

“지금 마법 쓸 수 있어?”

“마법……? 마법은 왜?”

“아까는 마법 사용 못 했었잖아.”

“응. 이상하게 안 되더라.”

“그거 이 던전의 마법진에 마나를 흡수당해서 그랬던 건데, 지금은 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어?”

“알았어.”

내 말에 루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후 주문을 외우고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에선 선명한 붉은빛의 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목걸이를 조준하고, 중앙에 달린 보석 부분을 문질렀다.

우우웅.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붉은 빛 마나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어… 어라? 어떻게 된 거야?”

마나가 다시 흘러나오지 않자 루비는 당황해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건 일순간이었을 뿐, 다시금 그녀의 몸에선 진홍색 오오라를 볼 수 있었다.

‘흐으음… 지속시간은 1초 정도인 건가.’

그래도 나름 효과가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겠지.’

결국 이 목걸이는 그냥 내가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목걸이의 외형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래도 같이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나 혼자 챙기는 건 예의가 아닌 듯싶었다.

“이거 내가 가져도 되는 거지?”

“응? 그게, 뭔데?”

“던전 보상.”

역시 루비는 던전이 처음인 만큼, 던전의 보상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듯싶었다.

“보상……? 아, 그런 거야? 당연히 네가 가져야지. 네가 잡았잖아, 보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영웅의 가문 출신인 두 사람. 루비와 달시를 데려와 놓고 정작 보스를 클리어한 건 나였다. 그것도 어시스트 없이 혼자서.

‘그럼 애초에 버스 태운 건 나였잖아…….’

뭔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 * *

“또 왔네. 자주 온다?”

의무실에 들르자 이올렛이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것은 기절한 달시를 중력 마법으로 들고 온 루비였다.

이올렛은 조금 전까지 독서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옆의 책상에 탁 소리 나게 책을 내려놓았다. 주말에도 휴식 없이 의무실에 있는 걸 보니, 근무 환경이 나름대로 혹독한 모양이다.

“이번엔 무슨 일인데?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테고. 새 학기 첫 주인데 벌써 의무실을 두 번이나 찾아오는 것도 대단해.”

나는 말없이 지혈을 위해 오른팔에 감아 둔 천을 풀어 내렸다. 그러자 흉측한 모습으로 피부가 다 벗겨진 오른팔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올렛은 그 끔찍한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뭘 하고 다니길래 팔이 이 지경이 된 거야?”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너도 참, 그러다간 제명에 못 죽겠다. 빨리 줘 봐, 팔.”

나는 흉물스러운 팔을 조심스레 내밀었고, 이올렛은 그것을 잡고는 곧바로 남색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상처가 치유되는 게 한 눈으로도 보였다.

이만한 상처를 단번에 치유할 정도라니.

역시 방출계 마법사는 대단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루비는 내 오른팔이 어느 정도 치유되고 나서야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저… 이 친구도 있는데요…….”

“아, 저기 침대 위에 눕혀 놔.”

루비는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달시를 의무실 구석의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중력 마법을 해제했다. 그러자 달시를 감싸고 있던 붉은빛 마나가 사라지더니 달시의 몸이 사뿐하게 공중에서 내려와 침대 위에 안착했다.

루비는 잠깐 달시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더니 이올렛에게 짧은 묵례를 하고 갈 준비를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올렛에게 인사를 한 뒤 루비는 내 쪽을 향하며 말을 이었다.

“나 먼저 갈게.”

“어? 응.”

“그리고…….”

루비는 의무실의 입구에서 살짝 망설이듯이 말을 흐렸다.

“오늘, 고마웠어.”

그 말을 끝으로 루비는 의무실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루비의 말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고맙다고?’

물론 보스 방에서 내가 활약한 건 맞지만, 루비의 고맙다는 태도에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아앗!!”

그때 오른팔을 강하게 꼬집는 이올렛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 버렸다. 팔을 확인하니 어느새 심각했던 부상이 깔끔하게 원상태로 복구되어 있었다.

“다 됐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론 너무 무리하지 마.”

“예에…….”

그런데 내 비명 소리가 워낙 컸던 모양인지, 달시가 침대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일어났다.

어떻게 된 게 달시는 강화 마법이 해제된 이후에 벽에 패대기쳐졌는데도 멀쩡해 보인다. 영웅의 가문 당주답게, 딱히 마법에 의존하지 않아도 어지간히 튼튼한 신체를 가진 모양이다.

그녀는 비몽사몽 한 얼굴과 반쯤 뜬 눈으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아까 전투의 결과였다.

“으으응…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냐니? 아, 던전? 클리어했어.”

내 말을 듣자, 달시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벌떡 뛰쳐나와 방방 뛰기 시작했다.

“뭐어? 나 빼고?! 억울해! 억울하다! 다시 해!”

“뭐, 뭘 다시 해…….”

아무래도 보스한테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게 어지간히 억울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기절한 상태에서도 자기가 보스한테 당했다는 인식은 있는 듯하다. 과연 대단한 정신력이다.

“그렇게 억울하면, 다음에 또 가면 되지.”

“다음에? 다음에 또 갈 거야?”

“응.”

“잠깐, 무슨 얘기야? 던전? 클리어? 설마 너희들 숲에 들어간 거야?”

아뿔싸. 또 달시를 데리고 던전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해서 옆에 있는 이올렛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살짝 노려보는 이올렛의 눈빛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변명을 꺼냈다.

“하… 하하… 그,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냐, 그럴 수 있지.”

“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이올렛은 씨익 웃으며 당황한 내 등짝을 탁탁 쳤다. 그러곤 달시를 한번 쓰윽 눈으로 훑었다.

“거기 여자애는 괜찮은 거지?”

“네에.”

“그럼, 가 봐. 나도 쉬어야지.”

“네.”

이올렛이 쿨한 사람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그녀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는 그렇게 의무실을 나왔다.

의무실에서 달시와 헤어진 뒤, 나는 아카데미 밖으로 나와 근처의 마을에 들렀다.

이 마을에서 구입할 것이 오늘 있었던 일들의 알파와 오메가, 핵심이라 볼 수 있다.

먼저 들른 곳은 마정석을 판매할 수 있는 잡화점이었다. ‘그것’을 구입하기에 앞서 돈이 필요했으니까.

해서 나는 손가락만 한 마정석을 뚱뚱한 털보 점장에게 내밀었다.

“흐으음…….”

점장은 마정석을 요리조리 둘러보고는, 이내 감정을 끝마치고 가격을 말해 주었다.

“10다트.”

“…10다트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다트라니.

참고로 1다트 정도면 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0다트면 10만 원. 세 명이서 목숨을 걸었던 거 치고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현대로 따지자면 최저 시급도 안 나오는 것이다.

“…혹시 좀 더 쳐주실 수는 없나요?”

“10다트.”

저 털보 점장, 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강단 있었다. 게임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이 상점 창으로 대체되는 주제에 말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대사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마정석을 10다트에 팔아넘겼다. 보스 방에서 나온 마정석이 손가락만 할 때부터 뭔가 싸한 느낌이 들긴 했어도 이렇게 싼값이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을 사기 위해서는 충분한 금액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긴 했다.

나는 섭섭한 마음을 뒤로한 채 장비 상점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장비 상점에 가서 찾을 것은 오늘 던전을 다녀온 목적이자, 이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무기.

그것의 이름은 바로 잊혀진 검, 언노운(Unknow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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