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장사가 잘 안되는지 다 낡아빠진 허름한 장비 상점. 다 떨어져 나가 기울어진 간판에는 ‘장비 상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비 상점 이름이 ‘장비 상점’이라니…….
장사가 안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다만, 원래 이 세계의 장비 상점 자체가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사가 지배하는 세계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전투하는 건 두 계열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중 변신계는 변신하는 것 자체가 무기이기 때문에 장비가 필요 없고, 강화계는 주먹으로 싸우는 무투 계열이 요즘의 트렌드다. 달시만 봐도 맨주먹으로 싸우니까 말이다.
‘사실, 로망은 검인데 말이지.’
판타지 세계에서 검을 선호하는 사람이 그리 없다니, 조금은 안타까운 얘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도시도 아니고 일개 마을일 뿐인 이곳의 상점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애초에 이 상점 자체가 게임에서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였다.
지금부터 찾을 무기는 마나를 주입하여 사용하는 마검으로, ‘아카마’에서 주인공이 초반부에 얻을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인 언노운이다.
뭉뚝한 검날의 언노운은 검으로서의 기능은 없다.
단지 주입한 마나를 검기로 변환해 날리는 일종의 마도구로 사용된다.
제이드는 어차피 마나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 방출계 마법사이기에, 언노운은 사실상 관상용으로 수집하는 용도였다. 그래서 언노운과 언노운을 구할 수 있는 이 상점이 이스터 에그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마나는 넘쳐 나는 지금의 나에겐, 이보다 적합한 무기는 없었다.
딸랑―
닦은 지 오래된 뿌연 유리문을 열자, 안에는 성질 더러워 보이는 노파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상점의 구석에 위치한 도검 코너 쪽으로 몸을 향했다.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검들 사이에서 ‘언노운’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뒤졌을까.
‘찾았다.’
역시 언노운은 게임과 같은 위치에 꽂혀 있었다.
1m도 되지 않는 검신.
과연 검의 기능을 할 수는 있을지 의심이 드는 뭉뚝한 검날.
잊혀진 검 언노운은 검집도 없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던 것이다.
“에취!”
방치된 기간이 얼마나 오래였는지, 진득이 쌓인 먼지는 계속해서 재채기를 유발한다. 나는 쌓인 먼지를 털어 낸 뒤 언노운의 손잡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뜨는 아이템 정보창.
띠링―
〈아이템 정보〉
* 아이템: ???
* 설명: ???
* 효과: ???
그러나 아이템 정보창에는 애초에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언노운(Unknown)은 사실상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
단지, 이렇게 물음표로 표시되는 아이템 정보창 때문에 유저들이 그리 이름 붙였을 뿐이었다.
아이템 정보를 별달리 볼 것도 없었기에, 나는 언노운을 곧바로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이요.”
그러나 노파는 잠에서 깨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고개를 까딱거리며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저러다,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물론 이 낡은 상점 따위 아무도 방문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노파를 깨웠다.
“저. 기. 요?”
“에구구…….”
그제야 노파는 눈을 뜨더니 돋보기안경을 쓰고 내가 내민 물건을 살폈다. 그러나 그다지 판매에 의욕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취미로 가게를 운영하는 건물주일지도 모르겠다.
“이거, 확실한 게지?”
“네.”
“으으음… 5다트만 주게.”
“감사합니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검이라 할지라도 검 한 자루를 5만 원에 판다는 건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전설의 마검을 고작 5다트, 5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다니…….
나는 노파가 딴소리하기 전에 냉큼 검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왔다.
* * *
기숙사의 내 방에 도착하자, 어느덧 밖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그만큼 바쁜 하루긴 했다.
나는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곧바로 언노운과 계약할 준비를 시작했다.
언노운에 대해 알려져 있는 유일한 정보는, 영혼이 깃든 에고 소드라는 점이다. 즉, 검 자체에 의식과 의사가 있고 스스로가 주인을 선택한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언노운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마검으로 사용하기는커녕 일반 검으로도 활용할 수 없다. 물론 뭉뚝한 검날을 둔기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기숙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으로 검 자루를 쥐고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젠 이곳 생활이 능숙해져서인지, 마나를 흘려보내는 감각에 조금 익숙해졌다.
우우우웅―
내 몸속에서 백색 마나가 검 쪽으로 스르륵 스며들기 시작했다. 개인의 마나 색은 보통 고유 계열에 물들기 마련인데,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내 마나는 살짝 불투명한 흰색이었다.
나는 언노운에게 마나를 흘려보내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3초를 세었다.
3.
2.
1.
띵―
귓가를 울리는 맑고 청명한 소리.
눈을 뜨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숙사의 내 방이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물이 찰랑이는 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하늘은 검고 빛은 보이지 않았으나 앞이 훤히 보일 만큼 밝았다. 그야말로 몽환적인 공간이었다.
어느새 내가 쥐고 있던 검은 사라져 있었고, 입고 있는 복장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의 교복이었으나, 지금은 흰색 도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무릎 꿇고 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분명 앉아 있을 때만 해도 하반신을 적시고 있던 물은, 일어나자 전부 말라 있었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데.”
정작 이 공간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녀석이 있을 만한 공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고개를 돌리자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조금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백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인생을 다 산 듯한, 어딘가 귀찮아 보이는 얼굴.
언노운이었다.
- 나를 불렀나.
고요한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분명 눈앞에 있음에도, 목소리는 공간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계약합시다.”
그러나 언노운은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 싫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임에서의 언노운은 여기서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간다. 그렇게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언노운은 계약할 의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이드랑은 잘만 계약하면서 나랑은 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운 나는 불만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더더욱 예상치 못한 것은 언노운의 다음 말이었다.
- 그 녀석은 엘가시아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이지.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제이드가 엘가시아 가문의 핏줄이라는 걸 아는 거지? 잠깐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제이드를 아는 거예요?!”
지금 시점에서 제이드와 언노운이 접촉했을 리는 없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그 낡은 상점에 처박혀 있지 않았겠지.
당혹스러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서, 설마 게임을 아는 건가요?”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생각됐다. 그런 게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 게임? 그런 건 모른다.
“그럼 어떻게 제이드를 알고 있어요? 그리고 어째서 제이드와 계약하는 내용을 알고 있는 건가요……?”
미래를 읽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가? 어떻게 봐도 원작인 게임 속에서는 없는 내용이었다.
- 다른 세계선에서 그와 계약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수많은 세계선 중, 내 몸은 단 하나만 존재하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곤 온전히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저 언노운은 모든 세계의 언노운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건가?’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사실 별 얘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냥 제작자가 코딩을 그렇게 한 거뿐인가.’
그랬다.
생각해 보면 저 언노운은 그저 모든 회차의 언노운의 정보를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곳을 게임으로 생각하면 사실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내 냉정함을 찾고 설득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잘 알겠네요. 제이드는 당신을 그냥 관상용으로 가지고 있을 뿐이잖아. 난 제이드와 달리 당신이 절실히 필요해요. 당신 없으면 안 된다고.”
자칫 잘못 들으면 고백이라도 한 듯 오해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내 기대완 달리 언노운은 오히려 반응이 시큰둥했다.
- 그래서 그와는 계약한 거다. 네놈은 거절한 거고.
“아니, 왜요?”
- 네놈 쪽은 확실히 귀찮아 보이니까.
그랬다.
이 빌어먹을 마검 님은 상당히 나태한 귀차니스트였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였다.
나중에 이 마검 님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사용하든 개같이 굴리든, 일단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설득이 필요했다.
“잠시만요! 귀찮게 안 할게요. 그냥 계약해 주시면 안 될까요?”
- 싫다니까.
틀렸다.
이 방구석 히키코모리 같은 마검 님은 도저히 계약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언노운의 거절에 우물쭈물하고 있던 나에게 한 줄기 희망 아닌 희망이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뜬 선택지 창이었다.
[▶ 언노운과 검술 대결로 주종 관계를 확실히 한다.]
[▶ 언노운을 언변으로 설득한다.]
[▶ 포기한다.]
그런데 역시 눈앞에 뜬 선택지의 내역은 범상치 않았다.
‘검술 대결을 하라고?’
게임에서 검사를 키워 봤던 적은 있어도, 검을 직접 손으로 쥐고 휘두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마검이라 불리는 언노운.
이길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고… 애초에 내가 고를 만한 건 하나밖에 없는 거네.’
선택을 강요해 놓고는 결국 고민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참 불만 많은 선택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맘에 안 들어 봤자, 뭐 해. 어차피 골라야 하는데.’
결국 나는 눈앞의 창에서 두 번째 선택지를 터치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자격을 증명하겠다.”
라는 말이었다.
- 자격? 어떻게 자격을 증명할 것이지?
언노운의 말에 나는 내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 대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뭐야. 이젠 또 알아서 하라는 거야?’
참 제멋대로인 선택지다.
그래도 언노운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리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아 보였다. 나는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자격을 증명해 보이겠다. 무, 물론 차차 말이지.”
내 말에 아까까지만 해도 만사가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던 언노운이 피식 웃었다.
- 재밌군. 그래 증명해 봐라.
그녀의 대답에 나는 일단 한시름 놓게 되었다.
‘웃었다는 얘기는 긍정적이란 소리겠지……?’
그래도 이번의 선택지는 입학식 날처럼 메시지를 왜곡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름 내가 고민해서 말한 것보다 효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볼일은 끝났겠지. 그만 가 봐라.
말을 마치자마자 언노운은 두 손바닥을 맞부딪쳐 크게 한 번 박수를 쳤다.
띵―
다시금 머릿속에서 들리는 맑고 청아한 소리.
그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입고 있던 도복이 다시금 교복으로 돌아와 있었고, 보이는 풍경은 기숙사의 방 안이었다.
“뭐, 그다지 나쁘진 않은 결과네.”
그래도 숙제가 생겨 버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자격을 증명하란 소리지?
애초에 그 자격이란 게 뭔데?
아무튼 그것은 앞으로 차차 생각해 나가면 될 것이다.
나는 방금의 마무리에 만족하며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그때,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저건, 아카데미 소속 독수리잖아?”
내가 창문을 열어 주자, 독수리는 무언가 종이를 툭 놓고는 다시금 왔던 곳으로 날아갔다. 종이를 들고 확인하자, 곧바로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다름 아닌 수강 신청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