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 *
“일어나라, 애송이들아.”
큰 호령 소리에 나는 단잠에서 깨어났다.
살며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바로 옆 버스 중앙 통로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케이든 교수였다.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이자 베이스캠프, 위저드 협곡이다.”
벌써 도착했다고……?
나는 하아암 입을 벌려 하품을 한 뒤, 창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아직 버스가 착륙하지 않았는지, 창밖에 내다보이는 것은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구름뿐. 더 밑을 내다보자 그제야 그랜드 캐니언 같은 거대한 대자연의 협곡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곳에는 눈을 씻고 봐도 사람이 만들었을 법한 인공물과 숙소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번 수학여행의 목적은 바로 ‘실전 훈련’이다. 지금껏 너희 애송이들은 던전 시스템에 의존한 훈련만 해 왔을 것이다. 그러한 안전장치에만 의존한다면 발전은 있을 수 없겠지. 따라서 너희들은 이 2박 3일의 수학여행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역시 그랬던 건가.
결국 이 수학여행은 수업의 연장선이었잖아?
“여긴 아카데미의 관리하에 마물이 득실거리는 사유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 아래로 내려가서 그 마물들과 상대하게 될 것이다. 자, 받아라.”
말을 마친 케이든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운전석 쪽에 놓여 있던 자루에서 무언가 동그란 물체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학생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졌다.
“그건 마력으로 움직이는 나침반이다. 그리고 그 나침반의 바늘은 우리 셋 중 가까운 사람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가리키지. 너희들은 도망치는 우리를 그 나침반을 사용해서 추적하면 된다.”
“에… 저도 합니까?”
케이든의 말에 이올렛 테오니르가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따지는 표정으로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야 그녀는 엄연히 교수가 아닌 아카데미의 2학년생.
그럼에도 케이든은 이올렛 또한 추적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이올렛의 불만에도 케이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이다. 이번 추적 수업은 2학년 수석인 이올렛 테오니르를 포함해 우리 셋 중 하나를 쫓으면 된다. 추적에 성공한 사람들은 각 인솔 인원의 판단하에 휴식을 취할 수 있지. 그리고 특히 제일 먼저 나의 추적에 성공한 인원은 이후 수학여행에 있어 특혜를 지급하도록 하겠다. 다들 이해가 됐겠지? 자, 그럼…….”
갑자기 케이든은 스쿨버스의 출구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점은 협곡의 마물 중, 사자처럼 생긴 마물은 피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녀석은 이 협곡의 군주거든. 아, 그리고 나침반의 사용처를 미처 다 말하지 못했었군.”
손에 들고 있는 나침반을 학생들이 보이게끔 치켜드는 케이든.
“나침반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내장된 공기 저항 마법이 발동된다. 일종의 낙하산 효과인 거지. 아, 그리고 참고로…….”
케이든 교수는 선글라스를 콧등에서 치켜올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이 버스는 5분 뒤 없어지거든.”
탓!
그리고 케이든은 주저 없이 버스 문밖으로 뛰어내렸다.
‘…여긴 아직 하늘 위인데? 게다가 창문 옆에 구름도 있고…….’
황급히 창문 밖을 내다보자, 그곳에는 붉은 마나로 몸을 감싸고 유유히 낙하하고 있는 케이든이 보이고 있었다.
“하아… 랑켄 교수보다 심하잖아? 저 인간…….”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불평을 늘어놓는 이올렛 테오니르.
그리고 그녀도 케이든을 따라 문밖으로 몸을 던졌다.
곧 창밖으로는 점처럼 작아지고 있는 이올렛 테오니르의 하얀 가운이 펄럭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럼, 애들아, 이따 보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던 아텔라 교수도 이윽고 뛰어내렸다.
이제 버스 위에 남아 있는 것은 당황한 나머지 제자리에 얼어 있는 아우레인의 학생들뿐.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실제 상황 맞지? 진짜 뛰어내려야 되는 거야?”
“나, 나 고소 공포증 있는데?!”
패닉에 빠진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서 입구로 뛰쳐나가는 사람은 역시나…….
“먼저 간다!”
제이드였다.
제이드도 어느새 버스의 문밖으로 사라져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잖아? 어차피 뛸 거 빨리 뛰는 게 낫지.’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선 뒤, 잠깐 심호흡을 하고는 문밖으로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아!!”
현실에 있을 때 번지점프는커녕, 롤러코스터도 제대로 타본 적 없는 나였다. 물론 그 이유는 그동안 놀이공원을 갈 이유와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아무튼 이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상공에서 구름을 뚫고 지면으로 낙하하는 기분은 예상외로 나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귓가를 때리는 바람 소리.
상공에서부터 추락하는 기분은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었다.
곧 무게 중심은 상체로 집중돼 머리에 피가 쏠리고 있었고, 매서운 바람에 강타당하는 얼굴이 아리기 시작했다. 슬슬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손에 꽉 쥐고 있는 나침반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투명한 마나가 나침반을 감싸 안는다.
그와 동시에, 나침반으로부터 마나의 장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부우웅.
마나의 장막이 공기 저항을 받자, 내 몸은 마치 낙하산을 편 것처럼 순간 떠올랐다. 그러곤 낙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휴우…….”
물론 학생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잘못된 방법을 알려 줬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여유가 생긴 나는 위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행렬이 보이고 있었다.
곧 하늘을 가득 메운 학생들.
마치 그 모습이 개미 떼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앙!
큰 굉음과 함께 창공을 날고 있던 스쿨버스가 폭발했다.
“…은근히 케이든 교수도 괴짜라니까.”
수학여행이야 아카데미 측의 일정이지만, 수업 내용 자체는 케이든 교수의 취향이 반영됐을 게 분명했다.
하늘에서의 공중 낙하부터 시작해서 협곡에서의 수색과 추적이라니…….
매사 모든 일이 귀찮아 보이던 케이든 교수는, 은근히 이러한 익스트림 스포츠에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띠링.
천천히 아래의 거대한 협곡 풍경을 즐기며 낙하하고 있을 그때, 눈앞에 오랜만에 선택지 창이 나타났다.
〈서브 이벤트〉
[협곡의 군주]
* 달성 조건: 위저드 협곡의 군주 라이오넬을 처치한다.
* 제한 시간: 24시간 내
* 실패 조건: 사망, 시간 내에 처치하지 못할 시
* 보상: 마법 주문서(???)
“또 서브 이벤트? 뭐, 마법 주문서는 언제나 옳긴 하지.”
비록 이제는 마법 주문서보다 더 강력한 ‘영웅의 아티팩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기본기를 강화해 주는 마법 주문서는 쓸모가 있었다.
게다가 마냥 영웅의 아티팩트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마당이었다.
그야 영웅의 아티팩트는 언제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효과조차도 미지수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협곡의 군주라고?”
문득 아까 전 케이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사자처럼 생긴 마물을 조심하라 했었지.
그 경고가 바로 이 협곡의 군주 라이오넬 때문인 듯싶다.
“뭐, 괜찮으려나.”
이곳에선 이제 더 이상 아카데미 내의 던전 설정 시스템,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곳에 아무런 대책 없이 1학년들을 던져뒀을 리는 없었다.
적어도 이곳은 1학년 수준에도 할 만할 정도로 쉬운 난이도일 것이다.
“…뭐지?”
지면에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착지할 지점의 토양이 새까맣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그것이 평범한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미 떼?”
땅이 까맣게 보였던 건, 주먹 크기의 거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마치 내가 곧 땅에 착지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정확한 포인트에서 대기하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곧 입속에 들어올 먹잇감을 기대하는 듯 보였다.
“…시작부터 쉽지 않다 이건가.”
나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이거나 먹으라고!!”
대답이 끝나는 동시에 주위에 둥둥 떠다니던 백색 구체들이 새까만 지면으로 작렬했다.
퍼엉!
퍼퍼퍼엉!
검게 뭉쳐 있던 거미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 폭격을 맞고 정신을 못 차리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보스 몹들만 상대하다 잡몹을 잡으니 기분이 새롭네.”
일반적인 1학년생들에게는 딱 이 정도 수준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스 그리핀도 처치했고, 게다가 광폭화한 캐서린도 상대한 몸이었다.
“평범한 1학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
팅!
나는 허리춤에 있는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순식간에 회중시계로부터 튀어나오는 하얀 솜사탕,
- 끼룩!
매기가 등장했다.
녀석은 오랜만이라는 듯 내 얼굴에 복슬복슬한 털을 비벼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딱히 이 녀석을 사용할 일이 없었네.”
지난 한 주 동안 굳이 매기를 꺼낼 만한 일이 있진 않았기에 이 녀석도 매우 섭섭했을 것이다.
“그럼 한번 날뛰어 봐.”
- 끼루욱!
슈슈슈슈!
내 말이 끝나는 동시에 매기의 복슬복슬한 솜털 몸에서는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쿵!
바닥에 힘껏 착지했다.
왼쪽 무릎을 굽힌 채 앞으로 뻗고 왼발바닥과 오른쪽 무릎, 그리고 오른손으로만 지탱하는 완벽한 3점 착지.
나는 그 완벽한 슈퍼 히어로 랜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 녀석, 저런 건 또 언제 배웠대?”
- 끼루우욱!
감탄도 잠시, 곧 거미 떼가 겁 없이 매기를 둘둘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미들의 무모한 판단이었다.
쿠웅!
매기의 우람한 근육질 주먹이 지면을 파괴했다.
그와 동시에 죽어 나가는 거미 떼.
쿵!
쿠웅!
매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지면에 주먹 폭격을 날렸다.
주먹이 한 번 땅을 내리찍을 때마다 족히 100마리 정도는 죽어 나가는 듯싶어 보였다.
특히 작은 거미 떼가 옹기종기 밀집해 붙어 있었기에, 주먹질의 가성비가 좋았다.
“휘유, 역시 좀 하잖아?”
- 끼룩!
영웅의 아티팩트로 인한 사역마라는 것을 실망시키지 않는 매기였다.
뭐, 외형은 조금 깨긴 하지만.
공기 저항 마법을 받아 천천히 낙하하던 내 몸은, 곧 지면에 발이 닿을 정도였다.
나는 이미 매기가 정리해 놓은 깔끔한 땅에 발을 디디고 섰다.
“그나저나, 이곳의 마물은 다 이런 식인가?”
이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몬스터’라는 게 존재했다.
흔히 게임이나 영화에서 볼 법한 오크나 트롤 같은 ‘몬스터’들.
마물이랑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보통 마물이란 것은, 생물에 마기가 잠식해서 변하는 것.
주로 판타지 세계에서 볼 법한 몬스터들이 마물이 되는 것이 흔한 경우지만, 이곳처럼 평범하게 서식하던 동물들이 마물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마기에 잠식당하면 마인화하는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만, 동물이나 몬스터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인간은 마기에 저항할 수 있다.
캐서린같이 심신 미약 상태이거나, 본인 스스로 마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아니면 강제적인 마인화의 경우는 볼 수 없었다.
애초에 마경 측에서 마인화를 범죄라 판단하고 처벌하는 이유도 마인화가 본인의 의사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곳은 동물형 마물들이라 이거지…….”
그런데 그때,
쿵!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체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집채만 한 거미가 다리를 꼼지락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