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키에에에에엑!!
크게 울부짖는 거대한 거미 마물.
방금 매기가 짓밟아 죽인 작은 거미들은 아마도 저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새끼들이었나 보다.
포효를 끝마친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이내 내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미의 여덟 다리는 참으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딱 적당한 상대인가?”
저번에 인스턴트 던전 오크 굴에서 매기를 테스트해 봤을 때는, 사실상 달시 세이피어가 함께했었기에 온전한 힘을 가늠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번이 매기를 제대로 테스트할 좋은 기회였다.
“가라, 매기! 몸통…으로 공격!!”
- 끼루욱!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럭비 선수처럼 한쪽 어깨로 밀고 나가기 시작하는 매기.
곧 매기의 단단한 근육질은 달려드는 자이언트 스파이더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우우웅!
집채만 한 자이언트 스파이더에 비해 3m 정도 크기인 매기의 몸집은 비교적 작아 보였지만, 힘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 커다란 녀석을 압도한다고?”
매기는 이미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슬슬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 키에에에엑!!
고작 자신의 반만 한 매기에게 밀려 당황한 자이언트 스파이더는 괴성을 질러 댔다.
녀석을 유린하는 매기의 웅장한 모습에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긴, 나도 놀라고 있는데 실제로 당하는 저 녀석은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거대한 몸집을 어깨로 밀고 있는 매기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리고 곧 여유도 잠시, 슬슬 끝내겠다는 생각을 한 매기가 거미의 다리 하나를 품 안으로 끌어안아 잡더니,
- 끼루욱!
쿠우우웅!
그대로 머리 위로 넘겨 등 뒤로 메쳐 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레슬링의 기술, 수플렉스를 보는 것 같았다.
- 키에에에엑!
땅바닥에 꽂혀 버린 자이언트 스파이더는 거꾸로 뒤집힌 채로 다리를 꼼지락거리다가, 곧 그 자리에 마정석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잘했어.”
- 끼루우욱!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은지, 근육을 자랑하는 포즈를 취하는 매기.
매기의 이런 모습은 처음엔 징그러워 보였지만 보다 보니 익숙해졌고, 한편으로는 귀엽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까…….”
케이든 교수가 학생들에게 준 미션은 본인들을 추적하는 것.
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밖에도 ‘협곡의 군주’라는 서브 이벤트가 주어져 있었다.
어찌 됐든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그중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케이든 교수님이 말한 그 특혜라는 것이 상당히 궁금하기도 한데…….”
이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협곡의 수학여행에서 케이든이 주겠다는 특혜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단순한 추가 학점?
아니면 숙박 시설 보장?
어쨌든 간에 무언가 좋은 게 있으리라는 건 틀림없었다.
“흐음… 어떻게 할까.”
어차피 서브 이벤트의 제한 시간은 24시간, 시간은 충분했기에 나는 케이든의 미션과 서브 이벤트 간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 진짜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죠? 정말 짜증 나요!”
옆에 있는 돌기둥 위에서 누군가 불평하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올렸다.
그러나 돌기둥은 10m가 넘는 길이었기에, 위에 있는 누군가의 확인은 불가능했다.
어찌 됐든 그 누군가와 합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일단 매기를 불러보았다.
“매기야.”
- 끼룩?
“혹시 날 태우고 저기 위로 올라갈 수 있어?”
- 끼룩!
매기는 대답과 동시에 내게 엉덩이를 보이며 허리를 숙였다.
“…업히라는 거겠지?”
- 끼룩!!
‘탑승하다, 타고 가다.’는 느낌을 상상했었던 나는 결국 매기의 등에 초라하게 업히고 말았다.
뭔가 근육질의 남자에게 업히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지만, 막상 업히고 나니 매기의 몸은 보기완 다르게 푹신푹신했다.
겉모습이 근육 덩어리라 그렇지 아무래도 솜인형의 재질은 변하지 않은 듯싶었다.
“…그럼, 올라가랏!”
- 끼루욱!
나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돌기둥을 올라가는 매기.
마치 건물을 오르는 킹콩처럼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는 클라이밍을 했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매기의 등에 업힌 나는 돌기둥 위로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최악이에요! 이런 곳에 갇힐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돌기둥의 위에는 팔짱을 낀 채 연신 바닥에 발길질을 하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와 그 옆에서 찍찍거리는 캐서린의 사역마, 레토리가 보였다.
“뭐가? 여기 갇혀 있었던 거야?”
“누구… 앗!”
캐서린은 나를 보더니 죄를 지은 듯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캐서린은 낙하하는 중에 실수해서 이 아무것도 없는 돌기둥 위에 착지한 모양이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나침반은?”
“그, 그게… 나침반은 조금 전에 낙하하다가 잃어버렸고……. 게다가 저의 레토리 님은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요…….”
“뭐? 고소 공포증?”
거참, 까탈스러운 사역마다.
그리하여 공기 저항 마법의 나침반은 잃어버리고, 레토리는 고소 공포증 때문에 기둥을 내려갈 수 없었기에, 캐서린은 여기서 아무것도 못 하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던 것이다.
“그나저나 나침반을 잃어버렸다니 큰일이네. 그래서야 추적은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뭣하면 나랑 같이 다닐래?”
“에… 에에에?! 진짜요?!”
“뭘 그렇게 놀라?”
애초에 팀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넓은 지형일수록 사역마를 다루는 소환계 마법사가 유리한 편이니까.
캐서린은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 그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응? 뭔데?”
“…고마워요.”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이 말을 꺼내는 캐서린 골드버그.
나는 이내 그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건 이후에 정식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인가?’
생각해 보면 지난 일주일 동안의 캐서린 골드버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내 주변을 계속해서 쭈뼛쭈뼛 기웃거렸었다.
아무래도 지난 광폭화 때 일의 고마움을 전달하고는 싶었는데, 그녀 성격상 쉽게 말 꺼내기 힘들었겠지. 게다가 그동안엔 단둘이 있을 기회가 없기도 했었다.
나는 그 자존심 높던 캐서린 골드버그가 이렇게 먼저 감사를 표하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뭐, 됐어. 어차피 너네 오빠한테 감사의 선물도 받았고.”
“오라버니…가요?”
“응. 그 오라버니라는 사람,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더라고.”
캐서린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래도 내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때 일 다 기억나? 광폭화했을 때 말이야.”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대충은 알아요.”
“그래?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이야. 하마터면 샬롯 아메드가 죽을 뻔했잖아.”
“…….”
뭔가 실수한 건가.
내 말에 순간 캐서린 골드버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뭐지……? 아직도 샬롯 아메드를 싫어하나?’
다만 그렇다기엔 그녀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이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이 싸늘해진 분위기를 풀어 보려 애썼다.
“아, 아니. 정말 다행인 건 맞잖아. 뭐 어때, 다 지난 일이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카데미 측에서도 이번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서 처벌도 안 받게 되었고…….”
“…너무해요.”
“…미안.”
방금 내 말이 너무 심했나?
어째서 내가 구해 준 캐서린에게 사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캐서린이 울 것 같았기에 서둘러 그녀를 달랬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저번 일로 좀 변한 듯싶네.’
광폭화 사건으로 변한 것은 제페토 골드버그뿐만은 아니었다. 캐서린 골드버그도 또한 그 특유의 까탈스러운 성격이 많이 유해져 있었다.
‘뭐, 아까 전 불평불만으로 보아 아직 성깔은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이젠 그렇게까지 남을 무시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다들 뭐 하고 있으려나…….”
그러고는 나침반을 꺼내서 확인했다.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향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근처에 교수님들이나 이올렛 선배 중 한 명이 있나 보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추적 미션,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애초에 추적에 적합한 계열은 정해져 있었다.
보통은 기동력이 빠른 계열 마법 쪽이 유리한 게 틀림없었고, 원소계 같은 공격에 특화된 마법 계열은 이번 추적 훈련에서 다소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래를 내다봤다.
돌기둥은 거의 20m 정도의 높이였기에, 아래를 내다보자 위저드 협곡의 주변 풍경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 위저드의 협곡은 산맥이 깎여 만들어진 험준한 골짜기들의 집대성이었다. 지금 있는 고지대에서는 지형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으나, 골짜기에 가려진 사람들의 모습까지는 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다른 동급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던 나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저건… 뭐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멀리서 들려오는 커다란 파열음.
그리고 그 정체는…….
“…설마, 제이드?!”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남색 폭발.
그리고 사람으로 보이는 두 실루엣이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그 시전자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제이드의 방출 마법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듯한 인영은 아마도 케이든 교수겠지.
“…저 정도면 케이든 교수를 죽이려는 거 아니야……?”
수업에 열정이 넘치는 제이드라도 그렇지, 저건 조금 심해 보였다.
“아무리 케이든 교수라도 제이드한테는 못 버티는 거 아닐까…….”
나는 멀리서도 느껴지는 제이드의 무력에, 순간 이전 수업에서 운 좋게 이긴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확실히 근처에 있는 사람은 케이든 교수는 아닌데…….”
다시금 나침반을 확인하자, 역시 나침반은 케이든 교수와 제이드가 있는 쪽 방향이 아닌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든 교수가 아니라는 소리는 아텔라 교수와 이올렛 선배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아텔라 교수는 절대 못 잡겠지만, 이올렛 선배라면 엄청 쉬워 보이는데……?”
왠지 아까 버스 안에서 본 태도로 보아, 그녀라면 귀찮아하며 모른 척 잡혀 줄 것만 같았다.
“아니지. 생각해 보니까, 특혜는 케이든 교수를 잡았을 때만이잖아? 결국 다른 사람은 잡아 봤자 별 이득은 없겠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북동쪽의 얕은 골짜기에서 보이는 무언가 커다란 생물.
그리고 그 생물의 머리엔 수북한 검은 갈기가 있었다.
“저건… 사자? 설마, 저게 라이오넬?”
멀리서 봐선 작아 보였지만, 아무래도 주변 골짜기랑 크기를 비교해 보면 못해도 5m는 되어 보였다.
나는 라이오넬을 보고는 찾을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저 녀석을 혼자 잡으라는 말은 없었지?”
분명 서브 이벤트에서는 협곡의 군주 라이오넬을 처치하라는 말이 있었을 뿐, 그 밖에 다른 조건은 달려 있지 않았었다.
그렇다는 말인즉슨, 파티 플레이가 가능하단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함께할 동료들이 넘쳐 나기도 했다.
나는 일단 캐서린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울먹이는 걸 그치고 내 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괜찮아?”
“무, 무슨 소리시죠?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아까는 미안. 그건 그거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 계속 따라다닐 거야?”
“네……? 따, 딱히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나침반이 없어서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는 수 없이 따라다녀 줄게요.”
“그럼…….”
나는 손으로 라이오넬 쪽을 가리켰다.
캐서린도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라이오넬을 확인했다.
“저거 같이 잡을래?”
내 말에 캐서린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자.”
나는 캐서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캐서린은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악수인 줄 알고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순간 캐서린 골드버그의 새하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뭐, 뭐예요!!”
“꽉 잡아!”
그리고 나는 캐서린의 손을 잡은 채로 함께, 20m의 돌기둥 아래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