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49화 (49/175)

49화

* * *

콰아앙!

나는 던전의 입구에 거세게 발길질을 해 보았다.

그러나 던전의 입구는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젠장…….”

제페토 골드버그가 변화했기에, 자연스레 제페토의 따까리들도 달라졌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제 녀석들은 제페토와는 별개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녀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됐던 것이다.

이런 내 불안함과는 달리 루비는 다소 평온해 보였다.

“에이, 설마 여기 하루 종일 가둬 두겠어? 그냥 남자애들 흔히 하는 장난 같은 거 아닐까?”

“…그 녀석들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녀석들인 거 같은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생각해 보니 루비 버밀리온의 말이 그렇게 틀리지는 않은 거 같았다.

뭐, 걔들이 우리를 죽이려 드는 것도 아니고 설마 평생 여기에 가둬 놓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당장 던전에 갇힌 거뿐이고, 교수들이 설마 여기에 갇힌 우리를 버리고 먼저 아카데미에 복귀할 리도 없었다.

사실상 루비의 말마따나 이건 그냥 장난 수준에 그칠 일이었다.

“…그 장난이 많이 악의적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여긴 왜 마법이 안 써질까.”

문이 닫히는 순간, 이미 마법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어째서인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딱히 이 던전이 마나 관련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제한이 있었더라면 내 마나 수준에 사용 못 할 리가 없었으니까.

더더욱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나 언노운까지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던전이지? 그냥 평범한 동굴 같은데?”

던전이라기에는 몬스터의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고, 입구도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편이었다.

게다가 마법과 마도구를 아예 사용 못 하는 던전이라니.

분명 자연적인 던전이라기보다는 아카데미에서 봤듯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것도 없겠다, 나는 루비 버밀리온에게 이 던전의 탐사를 제안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볼까?”

“그래.”

그렇게 우리는 던전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역시나 던전의 내부에는 몬스터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냥 일방통행으로 연결된 길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종착지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듯한 널찍한 방이 있었다.

“뭐야, 이건… CCTV?”

방의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위저드 협곡의 모든 곳을 관찰할 수 있는 CCTV가 보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물론이고, 현재 열심히 학생들을 쫓고 있는 교수들과 그에 도망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여긴 이 위저드 협곡의 관리실인 거 같은데?”

루비는 모니터 앞으로 가더니 앞의 장치들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루비를 따라 모니터 앞에 놓인 장치들을 하나씩 건드려 보았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어쨌든 여기가 아카데미 측에서 이 협곡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관리실이라면, 적어도 계속 갇혀 있진 않을 거 같네.”

“그런데 걔네도 멍청한 거 아니야? 이렇게 가두고 나서 그 이후 일은 어떻게 책임지려고?”

루비의 말마따나 참으로 멍청한 녀석들이었다.

결국 우리가 실종된 게 파악되면 교수들이 우리를 찾을 것이고, 여긴 게다가 아카데미 측의 시설이니 무조건 발견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여기 갇힌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면 자기네들의 범행이 뻔히 알려지게 될 텐데 무슨 생각으로 이랬는지 모르겠다.

“최소 징계는 받게 될 거 같은데. 쯧쯧.”

당하고도 누가 했는지 숨겨 줄 정도로 호구는 아니었다.

물론 제페토 골드버그 때야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한 번 봐주긴 했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장난 수준으로 지나치기엔 너무 짓궂었다.

“난 좀 쉴래.”

루비 버밀리온은 모니터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차피 구조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았기에, 나도 벽에 기대어 방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뭔가 말을 꺼내야겠다 싶은 나는 마침 제페토 골드버그가 생각난 김에 그와 관련해서 물어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혹시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어?”

“조, 좋아하는 사람?!”

내 질문에 루비 버밀리온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좀 많이 실례되는 질문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 지금은 딱히 없거든!”

“그래? 그럼 이상형은?”

“이상형……? 내 이상형은…….”

내 말에 루비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아 딱히 정해진 이상형은 없는 듯싶었다.

“…똑똑한 사람. 그리고 잘생기고 재밌고 잘 웃는 사람.”

그녀의 이상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말을 하려 할 때 루비는 부끄러운지 쓰고 있던 빨간 로브를 푹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날 위해 목숨을 거는 백마 탄 왕자 같은 사람……. 그,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야.”

“그래?”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설마 제이드인가?’

원래 ‘아카마’에서도 루비 버밀리온은 제이드의 히로인 중 하나였다. 물론 다른 히로인인 샬롯 아메드와 에메릴 그린월드에 비해서는 입지가 좁았지만, 게임의 팬들 사이에서는 또 인기가 상당히 많은 캐릭터였다.

‘제페토 녀석. 좀 힘들겠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재 루비 버밀리온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은 제이드뿐이었다. 특히 잘생기고 잘 웃는다는 조건은 누가 봐도 제이드를 저격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루비 버밀리온이 되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너는? 조,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

사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히든 엔딩을 보기 위해 ‘아카마’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도 나는 이 게임을 미연시 게임으로서가 아닌, 성장형 RPG 게임으로 플레이했었기에 히로인과도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애초부터 여자에 별 관심이 없기도 했고, 그건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대충 대답했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아텔라 교수님?”

물론 여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그야 그녀가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어제 보여 준 모습도 조금 멋있었으니까.

딱히 루비의 질문이 짝사랑하는 사람 같은 게 아닌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라 했으니까, 현재 내 입장에서는 아텔라 교수님이 좋은 사람 같았다.

“그래……?”

어째선지 루비 버밀리온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그렇게 또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마침 나는 그녀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또, 뭐?”

루비의 말투는 왠지 조금 무뚝뚝해져 있었다.

“혹시 버밀리온 가문의 가보… 같은 게 있어?”

“…가보?”

루비 버밀리온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이내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이 입고 있는 로브를 쓰다듬었다.

“굳이 있다면, 이거?”

“그 새빨간 로브?”

그러고 보니 루비 버밀리온은 저 새빨간 로브를 항상 입고 다녔었다.

“오빠가 나한테 이걸 물려 주면서 말했어. 이건 우리 가문에 있어서 굉장히 소중한 보물이라고. 물론 아버지가 직접 공언하신 내용은 아니지만.”

“그밖에는 없는 거지?”

“응. 딱히 들어 본 적 없는데?”

“그럼…….”

나는 또 양심에 찔리지만, 어찌 됐든 히든 이벤트를 완수해야 했기에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누가 그 로브가 간절히 필요하다 하면 어떡할 거야?”

“엥? 이걸 왜? 그리고 절대 안 되지! 그야 이건 우리… 오빠가 물려 주고 간 로브니까.”

역시나.

그녀의 반응은 조금 냉랭했다.

‘역시 히든 이벤트. 쉽지 않네…….’

그런데 그녀의 말 중에서 거슬리는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물려 주고 간? 너네 오빠 어디 갔어?”

“어어……?”

내 물음에 루비 버밀리온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조심스레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응……. 우리 오빠는… 저주받은 세대…….”

그런데 그때,

뚜벅 뚜벅 뚜벅.

관리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교수님들이 오셨나?”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관리실 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저, 저 녀석은……?!’

귀까지 올라와 얼굴의 반을 덮는 특이한 터틀넥을 입고 있는 장신의 남자.

그 특이한 복장 때문이라도 저 사람은 이 ‘아카마’의 세계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야 저 사람은 ‘아카마’에서 칼루스 아카데미를 침공한 안티 매지션 단체 ‘블랙잭’의 간부 클로버였으니까.

‘저 사람이 여긴 왜?!’

이윽고 남자, 클로버는 관리실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불청객이 있었군.”

클로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남자가 이 아카데미의 사유지 내부에 침입할 이유 또한 평범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내가 막아야 해.’

나는 조심스레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마법은 시전되지 않았다.

그제야 이 던전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버는 원소계 빙결의 마법사.

고유 마법이 상당히 강력한 녀석이기에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였다.

“으아아아아!”

나는 힘찬 기합과 함께 남자의 몸에 어깨 박치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툭.

남자는 움찔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내 몸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콰아아앙!

내 몸을 그대로 벽면으로 거세게 밀쳐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내 허리춤에 있던 언노운이 튕겨 나가 멀리 떨어졌다.

“괜찮아?!”

루비가 나에게 달려와 어떻게 된 일인지 몸 상태를 살폈다.

“으으윽…….”

벽면에 힘껏 부딪힌 어깨가 아려 왔다.

‘저 녀석 마법사 맞아?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힘이야…….’

분명 이곳에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여태까지 아텔라 교수와의 특훈으로 신체를 꾸준히 단련시켜 왔다.

그럼에도 남자의 힘을 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이상한 놈이로군.”

클로버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내 나에게서 관심을 껐다.

그러고는 모니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머, 멈춰!”

그러나 내 말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클로버는 모니터 아래의 버튼들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모니터 책상 아래에 있는 버튼을 찾아내고는 눌러 버렸다.

그 순간.

웨에에엥― 웨에에에엥―

- 결계가 해제됩니다. 결계가 해제됩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나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타박상을 입은 어깨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 * *

- 결계가 해제됩니다. 결계가 해제됩니다.

“뭐지?”

시간은 벌써 해가 거의 다 저문 초저녁.

학생들을 추적하던 케이든 교수는 위저드 협곡 전체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되었다.

“결계가… 해제됐다고?”

그리고 곧 케이든 교수는 위저드 협곡의 외곽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진동을 느꼈다.

쿵쿵쿵.

쿵쿵쿵.

작게 울려 퍼지는 진동.

그리고 이내 감지 마법을 사용한 케이든 교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인들? 그것도 수십, 아니 수백이?”

이미 상황은 심각했다.

빠르게 판단한 케이든 교수는 품 안에 있는 나침반을 꺼내 들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곧 모든 학생이 소지한 나침반에서는 케이든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다들 잘 들어라. 현재 위저드 협곡에 침입자가 들어왔다. 미처 복귀하지 못한 자는, 신속히 베이스캠프로 집합해라. 다시 한번 말한다. 현재 위저드 협곡 내부로 마인 수백 명이 접근하고 있다. 신속히 다들 베이스캠프로 집합해라.

점점 가까워지는 마인들의 모습에 케이든 교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이건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다들 최선을 다해 살아남도록.

말을 마친 케이든 교수는 나침반을 품속에 넣고는 전력을 다해 베이스캠프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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