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0화 (50/175)

50화

* * *

“…된 거 같군.”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클로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모니터를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정신을 다른 곳에 두었을 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멀리 떨어진 언노운을 어떻게든 회수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클로버가 벽에 기대앉아 있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뚜벅 뚜벅.

곧 클로버는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흐음… 어째서 날 공격한 거지?”

그의 입장에서는 전혀 공격당할 이유가 없었나.

그렇지만 나는 녀석을 익히 알고 있었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곧 아카데미를 침공하는 집단 ‘블랙잭’이 활동한다는 소리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계가 해제되었으니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

나는 대답 대신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펑!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클로버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빠르게 상체를 던져 언노운을 집으려 했다.

그런데,

「듀라투스(duratus)」

쩌저적.

허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로 시선을 내려보니 이미 하체가 녀석의 빙결 마법에 의해 냉동된 그대로였다.

‘이, 이런…….’

“뭐, 뭐 하는 짓이야!”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루비는 내가 빙결 마법에 걸리자 그제야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주문을 외웠다.

“그라비타스 폰데… 켁… 켁…….”

그러나 루비의 주문은 보다 빨랐던 클로버의 손놀림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리고 클로버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부여잡더니 서서히 상공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멱살이 잡힌 루비는 허공에서 발을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저 자식, 힘이 장난 아니잖아……?’

분명 녀석은 딱히 강화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 한 손만을 사용해서 루비 버밀리온을 들어 올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괴력이었다.

“켁… 켁…….”

허공에 목이 잡힌 채로 발버둥 치는 루비 버밀리온.

그런 그녀를 보고 클로버는 잠시 갸우뚱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식을 자아냈다.

“너 버밀리온 가문의 영애인가?”

“그, 그렇다면… 어쩔… 건데.”

“이런, 실례.”

이내 클로버는 루비 버밀리온의 멱살을 풀고 조심스레 바닥에 놓았다.

“이건 이거고, 아무리 그래도 땍땍거리는 건 질색이니까.”

말을 마친 클로버는 루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러자 루비는 기절한 듯 앉은 상태에서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루비! 괜찮아?!”

나는 다급히 루비를 부르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나 얼어붙은 하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젠장……!’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는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언노운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 거기 학생.”

“나 말하는 건가?”

“그래, 너. 도대체 나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내가 그쪽을 공격한 이유……?”

나는 최대한 녀석과의 대화를 오래 끌어야 했다.

“글쎄, 왜일까?”

“…말장난하자는 건가?”

“아니 아니, 말장난은 아니고. 결계를 관리하는 관리실 던전에 들어올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이런 곳에 들어올 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나? 아, 그렇지 참. 그래. 처음 당신을 봤을 때부터 느꼈어. 당신이 결계를 부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곳에 들어올 이유가 그거밖에 더 있겠어?”

“흐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클로버.

그러나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또 느리게.

중언부언, 중구난방으로 말을 늘이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왜 이 안에 있던 거지?”

“왜 이 안에 있었냐고? 글쎄, 왜 이 안에 있었을까? 그것도 남녀 둘이 말이야. 혹시 아카데미는 나오셨나? 아카데미를 나오셨으면 충분히 아실 텐데. 아, 뭐야, 꼴을 보아하니 정규 교육을 못 받은 모양이지? 그럼 모를 수밖에. 나와 저 루비 버밀리온은 이곳에서 무려 데이트 중이었다고. 알겠어?”

이젠 존댓말을 쓰는 건지 반말을 쓰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내 입에선 언어가 뒤죽박죽 섞여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신경 쓸 참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대화를 계속 이끌어 나가야 했다.

게다가, 녀석은 딱히 내 이런 수다스러움을 말리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글쎄, 그건 알 필요 없다.”

“누군진 몰라도 이러는 걸 보면 아카데미를 굉장히 증오하나 봐? 아니면 뭐, 단순 범죄? 단순 범죄일 리는 없나. 이렇게 결계까지 부술 정도면 상당히 계획적인데. 그럼 혹시… 여기 수학여행 온 인원 중에서 찾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순간, 내 마지막 말에 클로버의 눈썹이 반응하며 씰룩였다.

나는 그러한 반응에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귓가에는 아까보다 더욱 선명하게 위잉위잉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여기 수학여행에서 찾는 사람이 있는 거구나? 목적은 돈? 귀족 자제들을 노리는 거야? 아니면 영웅의 가문? 영웅의 가문 출신에게 원한이 있어서 노리는 거야?”

말을 하면서 정작 나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들, 안티 매지션 집단 ‘블랙잭’이 ‘아카마’를 습격했을 때 밝혀진 이유는 딱히 없었다.

애초에 평범한 시나리오에서는 침공 이벤트나 블랙잭 같은 안티 매지션 세력은 등장하지도 않았었고, 히든 엔딩 시나리오에서의 ‘블랙잭’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존재였다.

내가 ‘아카마’를 플레이했을 당시에는 딱히 ‘블랙잭’이 튀어나오는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야 애초부터 그건 히든 엔딩이었고, 히든 엔딩에서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와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녀석의 반응을 보아 녀석들은 현재 우리 중 누군가를 찾으러 온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 이유가 맞는다면, 원작 ‘아카마’에서도 녀석들이 아카데미를 침공한 이유가 들어맞았다. 그 ‘누군가’가 아카데미에 있기에 아카데미를 습격한 것일 테니까.

“도대체 누구를 노리고 침공한 거지?”

“…그건 딱히 알 필요 없다.”

클로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나와의 대화가 질린 모양인지 CCTV의 모니터로 시선을 향했다.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게 끝이야? 결계를 해제하기만 하면 되는…….”

말을 잇던 나는 모니터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마인들? 어째서 마인들이. 그것도 수백 명의 마인이 이곳을 침범한 거야?!”

화면 속에는 족히 어림잡아도 백 명은 넘어 보이는 마인이 위자드 협곡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아카마’에서도 겪지 못한 일이었다.

“슬슬… 휴식은 이만하고 합류해 볼까.”

클로버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목을 까딱까딱 꺾었다.

“자, 잠깐 기다려! 이대로 우리는 두고 가는 거야? 죽이진 않고?!”

“…뭐지? 죽고 싶나?”

“왜 살려 주는 건데?”

“딱히 살인에는 취미가 없다. 게다가 그 대상이 어린 녀석일수록 더더욱.”

“그래……?”

그렇단 얘기지.

위잉위잉위잉.

내 귓속은 이미 이 시끄러운 진동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더욱더 증폭되어 이젠 살짝 거리를 벌리고 있는 클로버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클로버가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많이 늦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입단속은 했어야지. 고출력……!!”

내 왼손에 느껴지는 엄청나게 방대한 마나의 기운.

“매직 미사일!!”

콰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왼손으로부터 뻗어 나온 그 거대한 고출력의 백색 마나는 그대로 클로버의 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사일은 계속 전진해, 앞쪽에 있던 모니터와 장비들, 그리고 던전의 벽면까지 모조리 남김없이 파괴했다.

그와 동시에 내 하체에 걸려 있던 빙결 마법도 자연스레 풀려 있었다.

‘해냈다…….’

처음으로 매직 미사일을 충전한 시기는 벽에 밀쳐져 주저앉았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 한 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언노운을 잡으려는 시도나 대화를 계속해서 시도한 것도 전부 눈속임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뭐지……?”

고출력 매직 미사일에 의한 충격의 여파가 가시고, 보이는 것은 멀쩡히 서 있는 클로버였다.

아니, 클로버는 적어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온몸이 자신의 빙결 능력에 뒤덮여 얼음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 손의 방대한 마나를 확인한 순간,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직감한 순간,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빙결 마법에 가둬 대미지를 회피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상태는 스스로도 해제할 수 없어 보였다.

녀석은 몇 분째 능력을 해제하지 않고 있었고, 얼음을 때리고 발길질하고 매직 미사일을 날려 봐도 부서질 기미도 보이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이내 나는 당분간 녀석이 이곳을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휴우…….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네.”

상대방의 몸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하는 원소계 마법사라니.

클로버는 지금의 내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가늠하기 힘든 아찔한 상대였다.

그럼에도 나는 최선의 수를 사용하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낸 것이다.

녀석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다들 괜찮으려나?”

아까 전 모니터로 확인된 마인의 수만 해도 수십이 넘었다.

지금쯤 베이스캠프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빨리… 합류해야 해.”

나는 서둘러 매기를 소환하고는, 기절한 루비 버밀리온과 같이 매기의 등에 업혀 순식간에 던전을 빠져나와 베이스캠프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아우레인 기숙사는 베이스캠프로 몰려드는 마인 부대를 하나둘씩 막아 내고 있었다.

벽을 타고 오는 마인 한 마리를 쳐낸 아텔라 교수가 등 뒤의 케이든 교수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거 끝이 없는데요…….”

“…….”

그러나 케이든 교수는 침묵하며 조용히 마인들을 처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 협곡의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는 협곡을 타고 고지대인 베이스캠프로 올라오는 수백 마리의 마인이 보이고 있었다.

곧 묵묵히 전투에 집중하던 케이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은 개중에서 기동력이 빠른 놈들일 뿐입니다. 곧 삽시간에 저 수백 마리의 마인 떼가 합류할 겁니다.”

이대로면 베이스캠프는 고립당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이끌고 저 마인들과 맞서 싸운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텔라 교수님. 혹시 이 인원 전부를 데리고 아카데미로의 전송이 가능합니까?”

“예? 지금 있는 마나로 아슬아슬하게 가능은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의 공간 조작 능력은 이 오십 명의 인원조차도 전송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다만, 공간 전송은 시전 마법이었다.

“그러려면 3분가량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습니까? 충분합니다.”

“예?! 아, 아니요. 공간 전송의 마법진에서 가만히 3분을 버텨야 해서…….”

“그것도 괜찮습니다.”

케이든 교수는 콧등의 선글라스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가 남을 겁니다.”

“예에?! 여기 남으신다고요?!”

곧 이곳 베이스캠프로는 저 수백 마리의 마인이 덮쳐 온다.

이곳에 남겠다는 것은 죽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케이든 교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텔라 교수님. 아카데미의 교직원이라면 이해하실 겁니다. 학생들을 데려가 주세요.”

잠시 침묵하는 아텔라 교수.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고는 베이스캠프 입구에 케이든 교수를 남겨 둔 채, 텐트 주변에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때마침 베이스캠프로는 사족 보행을 하는 요상한 근육 괴물 위에 올라타 있는 제로와 루비 버밀리온이 도착하고 있었다.

“왔나, 애송이. 빨리 텐트로 복귀하도록.”

케이든 교수는 그들을 텐트 쪽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올라오는 마인들을 묵묵히 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제로가 다시 찾아왔다.

아무래도 제로는 지금 상황에 대해 아텔라 교수에게 듣고 온 모양이었다.

“저도 남겠습니다, 케이든 교수님!!”

분명 목소리는 떨리지만 제로의 눈동자에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이든 교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필요 없다. 빨리 복귀나 해라.”

“아뇨! 저도 이 일에 관련이 있습니다. 저도 남아야 합니다!!”

이 일에 관련이 있다고?

케이든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혼자면 충분하다.”

“그, 그렇지만……!”

“걱정 마라, 애송아. 이대로는 안 죽는다.”

말을 마치고 케이든 교수는 살짝 손을 들었다.

그리고,

딱.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부웅!

제로의 몸이 떠오르더니 아텔라 교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아텔라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순식간에 붉은 마나의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케이든 교수는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 아카데미의 교수라는 건가…….”

케이든은 손을 번쩍 든 뒤, 자기장으로 이루어진 장막을 펼쳐서 마인들이 베이스캠프로 침입하지 못하게 막아 세웠다.

“…나도 이젠 교수 노릇이 익숙해진 거 같군. 노아.”

이내 3분의 시간이 흐르자, 아텔라 교수와 학생들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위자드 협곡에 남겨진 것은 이제 케이든 교수와 수백 명의 마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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