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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51화 (51/175)

51화

우웅 우웅.

곧 뒤쪽에서 붉은빛이 크게 번쩍이더니 아스텔 교수와 학생들이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케이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려드는 마인들을 한차례 걷어 내고, 힐끔 계곡 아래를 확인하자, 여전히 마인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케이든은 전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웃고 있었다.

이제부턴 그도 진심으로 임할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이제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을 테니까.

케이든은 계속해서 달려드는 마인들을 확인하고는, 다음 마법을 전개하기 위해 양손을 교차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짝.

짝.

짝.

경쾌한 박수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다.

동시에 덮쳐 오던 마인들이 일순간 제자리에서 동작을 멈추었다.

그 이상한 현상에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던 케이든 교수는, 곧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식하게 강한 건 여전하네요, 케이든 선배.”

박수를 치면서 베이스캠프로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것은 다름 아닌…….

“…하이젤?”

그의 옛 직장 후배, 하이젤 트레이슨이었다.

“그 이름은 예전에 버렸어요. 지금은 하트라고 불러 주시겠어요?”

마인들은 하트가 올라오자 정중하게 좌우로 길을 비켰다.

그리고 녀석의 뒤에는 마인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상당수의 안티 매지션들도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케이든과 거리를 벌리고 대치한 하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케이든 선배.”

“…이것들은 네놈의 짓이었군.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냐.”

“글쎄요. 모든 게 변했네요. 저는 이렇게 안티 매지션이 되었고, 선배는 한낱 아카데미의 교수 따위가 되셨군요. 아, 실베르는 이번에 권좌가 됐다 하더라고요. 소식은 들었어요. 그 녀석이 권좌라니 세월이란 게 참 신기하긴 해요. 그렇죠, 선배?”

“…….”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하트.

케이든 교수는 그의 넉살에 잠시 침묵했다.

녀석, 하이젤 트레이슨은 케이든이 막 팀장직을 수행할 때 실베르 라인하르트와 함께 들어온 직속 부하였다.

그러나 녀석은 엄연히 마경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잦은 트러블을 일으켰었다. 안티 매지션을 제압할 때 생포하지 않고 굳이 사살한다든지,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다든지.

그리하여 녀석은 결국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마경에서 퇴출당했었다.

그런 하이젤 트레이슨이 이젠 하트라는 이름으로.

범죄자, 안티 매지션으로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너도 한때 마경이었을 터. 이유가 뭐냐, 하이젤.”

“그 이름으로 계속 부르지 않는 게 좋을 텐데요? 아무튼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후후훗.”

하트는 로브로 입을 가리고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덩달아 그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주근깨가 씰룩였다.

“뭐, 어차피 여기서 살아서는 못 가실 테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희는 ‘블랙잭’이랍니다.”

“블랙…잭? ‘저희’라는 말은 연합이라도 했다는 건가.”

“맞아요. ‘블랙잭’은 자그마치 백 명 이상의 안티 매지션들의 연합이에요. 저도 이곳에서 나름 간부직을 맡고 있고요.”

‘안티 매지션들의 연합이라.’

케이든은 조용히 탄식했다.

그가 마경에 현역으로 있을 때도 안티 매지션들이 연합할 수도 있을 거라는 찌라시는 종종 나돌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합이라고 해 봤자 두 명 이상의 안티 매지션들이 합심해서 마을을 공격하거나 은행을 털거나 하는 정도.

이렇게까지 백 명 이상의 안티 매지션들이 뭉쳐서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저희는 평화가 지긋지긋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도 지루했어요. 그리고 ‘블랙잭’은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바꿀 예정이랍니다. 세상의 주인을 바꾸고, ‘혁명’을 이룰 거라고요.”

“…….”

케이든은 하이젤 트레이슨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역시 녀석과 저 ‘블랙잭’이라는 집단은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모든 것은 ‘블랙잭’을 위해.”

하트는 조용히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든 것은 ‘블랙잭’을 위해!”

“모든 것은 ‘블랙잭’을 위해!!”

하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안티 매지션들이 큰 소리로 제창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케이든은 갑작스레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유치하군.”

그것이 케이든의 감상평이었다.

그리고 그 나지막한 케이든의 혼잣말은 하트를 포함한 블랙잭의 안티 매지션들을 자극했다.

“죽어라!!”

이내 뒤쪽에 서 있던 안티 매지션들 중 한 명이 전속력으로 케이든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녀석의 발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나의 기운.

그 마나 색으로 보아, 녀석은 각력을 강화하는 강화계 마법사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케이든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채, 주문을 외웠다.

「페르기네우스(ferrugínĕus)」

우우웅.

동시에 붉게 물든 케이든의 오른손.

그리고 케이든은 달려드는 강화계 마법사를 향해 오른손을 서서히 옮겼다.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한 안티 매지션은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든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그 순간 녀석의 발끝이 케이든의 붉은 오른손에 닿게 되었다.

그러자,

퍼버버버벅!

순식간에 강화계 마법사의 신체는 큰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고, 그와 동시에 살점이 온 사방으로 튀었다.

“저런…….”

하트는 그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혀를 찼다.

“다들 상대에게 접근하지 마라! 상대는 몸속의 혈액조차도 조종할 수 있다!!”

실력 있는 마법사는 보통 이명(異名)이 붙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저 케이든 교수의 이명은 바로 피의 마법사, ‘블러드 매지션’.

그 이명이 붙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케이든의 고유 마법 때문이었다.

그의 고유 마법은 자기력.

마나를 자기력으로 변환하여 금속을 조종하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자기력의 마법은 체내의 혈액 속 철분까지도 조종할 수 있었다.

평범한 성인의 체내 혈액에 있는 철분은 단 4g.

물론 극소량의 수치라 볼 수 있지만, 케이든은 상대방과의 신체 접촉 시 그 미세한 철분마저 조종하고 상대를 체내에서부터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가 물질계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전투에 돌입할 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붉은 마나가 마치 선혈 같다 해서 그에게 ‘블러드 매지션’이라는 이명이 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경의 전설 케이든이 은퇴한 지 벌써 6년.

여전히 그는 본인의 이면에 숨겨진 ‘블러드 매지션’의 이름값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들 거리를 벌려! 다가가지 말고 원거리에서만 응전해!”

하트는 신속하게 동료 안티 매지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또한 그도 마나를 전개하여 마인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주황빛 마나와 함께, 멈춰 있던 마인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이동하던 마인들은 곧 케이든을 향해 동시에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안티 매지션들의 원거리 투사체 마법들도 케이든에게 일제히 조준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케이든은 콧등의 선글라스를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주문을 읊었다.

「마녜티쿠스 아제르(magnétĭcus ager)」

슈슈슈슝!

그와 동시에 그의 발밑에서 새빨간 선홍빛의 마법진이 나타나고는 이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케이든의 사방에 스파크가 튀는 장막이 펼쳐지더니, 날아오는 마법의 투사체들을 전부 막아 내며 덮쳐 오는 마인들을 그대로 지져 버렸다.

- 키에에엑.

- 캬아아악.

노릇노릇하게 튀겨지는 마인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트의 눈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일단 정지! 상황을 지켜본다!”

고밀도의 마나가 응축된 자기 장막.

분명 마나 소모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하트는 케이든의 마나가 전부 소모될 때까지 대기하자는 오더를 내렸다.

그러나 케이든의 마법이 거기서 끝일 리가 만무했다.

“마침, 이곳은 모래가 많군.”

케이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양손을 교차한 뒤 또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페룸 아레나(ferrum ăréna)」

쉬이이이익!

동시에 지면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끄아아아악!”

- 키에에에엑.

허공으로 솟아오른 사철(沙鐵)들이 마인과 안티 매지션의 몸들을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빠, 빨리 마력 방벽을 전개해라!!”

하트의 명령에 안티 매지션 쪽 소환계 마법사들이 거대한 마력의 방벽을 소환했고, 강화계 마법사들이 합세하여 방벽을 강화했다.

그러나 사철은 방벽을 찢어 버리고 더욱 주변을 휘몰아쳤다.

곧 위자드 협곡의 베이스캠프에는 마인들과 안티 매지션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마인들 중에서 케이든에게 두려움을 느껴, 정신 조작 마법에서 이탈하고 도주하는 녀석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제, 젠장! 저게 마경의 전설, 블러드 매지션이라는 건가?!”

하트가 이끌고 온 마인들의 수는 300명.

그리고 블랙잭 소속 안티 매지션들 30명.

지금 케이든이 상대하는 인원은 도합 330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원수였다.

그럼에도 저 선혈의 마법사는 전혀 밀리는 기색 없이 순식간에 인원수를 줄여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트 쪽에도 비장의 무기는 있었다.

“이대로 물러날 거 같으면 오산이다!!”

치이이이익!

하트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그와 함께 케이든을 향해 날아가는 칠흑의 광선.

콰과과과광!!

“크으윽!”

그리고 그 광선은 케이든의 자기 장막을 뚫고 그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하는 유효타가 되었다.

케이든은 황급히 광선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하고 경계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4m 크기의 거대한 마인.

“살아 있는 마인도 조종할 수 있는 건가……?”

지금까지 그에게 달려들던 마인들은 전부 시체에 마기를 넣어 만든 마인들. 어디까지나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그저 무지성으로 움직일 뿐인 좀비에 가까웠다.

그러나 방금 그에게 광선을 날린 것은 엄연히 살아 있는 마법사가 마기를 받아들여서 형성된 마인이었다.

케이든은 힐끔 상처를 확인했다.

광선에 의해 입은 상처에선 피가 콸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속하게 혈마법을 사용하여 상처를 일시적으로 지혈시켰다.

“…쉽지 않겠군.”

케이든은 슬쩍 계곡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직도 마인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그는 조금 전 공격으로 인해 오른쪽 어깨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한 손으로만 녀석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케이든은 이내 씨익 웃더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왼손으로 집고 스르륵 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콧날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죽는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 아우레인 기숙사의 학생들.

“절대로.”

그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었다.

* * *

“젠장!”

나는 기숙사의 벽에 거세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와 함께 주먹이 아려 왔지만 그러한 통증쯤은 지금의 내겐 아무렇지 않았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공간 전이 마법 이후, 아텔라 교수는 신속하게 아카데미 측과 마경 측에 이 사태를 알렸다. 그리고 마경 측에서도 당장 인원을 파견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잖아…….”

나는 허탈함과 분노,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곳에 온 지 겨우 한 달이었다.

그런데 녀석들, 안티 매지션들이 벌써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직 좀 더 힘이 필요해.’

안티 매지션들의 간부 하나쯤이야 어찌어찌 막아 낼 법도 했다.

그러나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모두를 지켜 내려면,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제발… 무사해 주세요, 케이든 교수님…….’

아무렇지 않게 혼자 남아 버린 케이든 교수님.

나는 그에 대한 걱정에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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