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피닉스의 알.
이것을 얻었다는 것은 조금 전 본 군주급 마물을 이제부터 내가 사역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 사역의 개념이 소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실물을 사역한다는 것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높을 것이다.
“군주급 마물을 사역할 수 있다니…….”
이 아이템 또한 최소 에픽급 이상의 가치를 훌쩍 넘는 듯했다.
물론, 조금 전의 전투에서 피닉스가 사신 폼의 파르에게 밀리는, 아니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여 주긴 했었다.
다만, 그것은 피닉스와 파르의 상성이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그만큼 파르가 강력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녀석은 다름 아닌 ‘불사’의 존재.
아까와 같은 특수한 조건이 없는 이상, 불사의 사역마라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빨리 피닉스를 보고 싶었던 나는 알을 요리조리 굴려 봤다.
그러고는 이내 피닉스의 알을 두 손으로 잡고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나를 머금은 알이 덜덜덜 떨며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띠링.
[아이템 ‘피닉스의 알’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피닉스의 알’이 부화하기까지는 최소 2주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엥? 아직 사용할 수는 없네.”
빨리 피닉스를 부려 보고 싶었던 나는 시스템 창을 읽고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뭐,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지금 당장은 파르를 얻은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
사실 이번 용암 던전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다름 아닌 파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상성상 유리하다 하더라도 군주급 마물을 가볍게 유린하는 강력한 힘.
물론 매기도 충분히 강한 편이었지만, 파르야말로 ‘영웅의 아티팩트’에 걸맞은 사역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용암 지대 던전을 떠돌아다니던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솔직히 파르 정도만 해도 매우 든든한데 말이지.”
어마어마한 무력의 도깨비불 ‘파르’.
그리고 군주급 마물, 불사의 존재 ‘피닉스’.
게다가 모든 피해를 회복시켜 주는 ‘피닉스의 깃털’까지.
이번 용암 지대에서 얻은 결과물들로 인해 당장의 침공 이벤트에 대한 불안감이 살짝 덜해진 느낌이었다.
이번 군주급 던전의 보상을 결산하고 있을 그때.
어느덧 나선 계단을 전부 내려와 1층에 도착한 캐서린과 제페토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무래도 허겁지겁 뛰어왔는지 캐서린은 숨을 헥헥 몰아 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괜찮아.”
캐서린은 내가 피닉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것은 의심이라기보다는 경탄에 가까웠다.
“어떻게 피닉스를 죽일 수 있어요?! 피닉스는 불사의 존재 아니던가요?!”
“뭐, 운이 좋았어.”
“운이 좋다니……. 그게 말이 돼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존경심 가득한 눈빛.
나는 그런 캐서린의 표정에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런데 그때,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페토가 슬그머니 다가와 빈정대기 시작했다.
“그래. 운이 좋았을 거다. 설마 피닉스를 제대로 알고 죽이기라도 했겠냐?”
딱 봐도 제페토 녀석은 내가 피닉스를 홀로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제페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녀석을 조금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맞아. 어떻게 피닉스를 너희들 도움 없이 혼자 잡을 수 있었겠어? 운이 너무 좋았던 거지.”
“그럼! 그래도 알긴 하는구나.”
제페토는 내 말에 매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는 내 입꼬리 한쪽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난 운이 진짜 좋나 봐. 지금껏 그리핀을 잡은 것도, 캐서린을 마인화에서 구해 낸 것도, 게다가 이번엔 피닉스까지도 잡게 되다니.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걸?”
“그, 그렇지! 네 녀석의 행운이 부러울 따름이다.”
“솔직히 아까 내 사역마가 혼자서 피닉스를 상대할 때는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어. 만약 그게 도철과 도올이었으면 진작에 끝났을 텐데 말이야.”
“…흠흠… 다, 당연하지!!”
우와아.
참으로 양심이 없는 녀석이다.
아니, 지금 녀석은 양심과 현실 부정이 충돌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다.
그야 녀석도 상층부에서 파르와 피닉스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었을 테니까.
게다가 파르가 피닉스를 가지고 놀며 압도하는 모습까지 충분히 확인했을 테고.
분명 고작 평민 출신인 내가 그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제페토는 소환사의 영웅, 골드버그 가문의 장남.
자신보다 강력한 사역마를 내가 다룬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할 테지.
다만, 녀석이 조금 불쌍한 면도 있었다.
녀석도 나름 제이드 정도를 제외하면 칼루스 아카데미 1학년생들 중 최강, 비무제의 우승자 출신이었다.
그런 녀석이 하필이면 나와 엮이게 되면서 별 활약 못 하는 ‘엑스트라 1’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자존심을 굳이 밟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놀려 먹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제페토가 나에게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은 것도 있고, 때론 하얀 거짓말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슬슬 복귀할까? 아, 참…….”
던전도 마무리했겠다, 이제 막 복귀하려던 찰나, 순간 마음속 한편으로 양심이 걸렸다.
아무리 보스를 내가 혼자 잡았다고는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같이 야외에서 취침하고 하루 종일 마물 사냥을 하면서 고생한 것은 골드버그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나는 그들한테도 조금은 보상을 분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얻은 던전 결과물을 분배할까 싶은데. 어느 정도 원해?”
나는 얻은 마정석과 아이템들을 제페토와 캐서린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제페토는 아이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단번에 등을 돌렸다.
“피, 필요 없다.”
분명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녀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제페토는 지금 분한 것이다.
가뜩이나 군주급 마물을 처치하는 데 기여도 못 했으면서 보상을 나눠 받는 게 스스로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겠지. 뭐, 애초에 부유한 가문 출신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나는 제페토를 뒤로한 채, 캐서린에게도 넌지시 물어봤다.
“캐서린, 너는?”
“저도 딱히 필요 없어요.”
캐서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만, 그래도 캐서린에게는 조금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페토야 아무리 나눠 준다 한들 자존심 때문에 거절할 테지만, 어쨌든 우리가 모두 함께 고생했기 때문에 적어도 캐서린은 보상을 나눠 가졌으면 해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캐서린에게 아까 얻은 아이템 중 ‘이프리트의 반지’를 내밀었다.
“자.”
“이건…….”
“화염 저항 30% 효과가 달린 ‘이프리트의 반지’야.”
“에… 아이템 감정도 가능하셨던 건가요?!”
“아… 그건 뭐… 어쩌다 보니? 아무튼 다 같이 고생했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좀 그렇잖아? 받아 줘. 그거 보기엔 단순하게 보여도 최소 에픽급 이상일걸?”
캐서린은 살짝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가 내민 반지를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하필 반지네요.”
“응?”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손가락에 이프리트의 반지를 끼워 넣었다.
중간 라인에 지그재그의 선이 그어져 있는 금반지.
캐서린의 길고 하얀 손가락에 들어가자 제법 잘 어울렸다.
“아, 그리고 참. 너네 마을 내려갈 일 없어?”
“마을이요?”
“응. 당분간 혼자서는 마을을 못 내려가잖아?”
“난 안 간다.”
제페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번 군주급 던전에서 받은 충격이 꽤 큰 모양이었다.
제페토가 거절할 것은 예상하던 바이기도 했다.
“캐서린은?”
“음… 갈게요.”
“그래.”
하마터면 기껏 열심히 파밍해 놓고 정산을 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도 캐서린이 수락했기에, 마을에 내려갈 전우조가 생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을에 가기에 앞서, 던전 클리어 이후 생성된 포탈을 사용해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 * *
군주급 던전을 나오고 제페토는 곧바로 숙소로 복귀했다.
나는 그가 숙소로 가기 전에 잠시 그에게 인벤토리를 빌렸다.
만약 제페토의 인벤토리가 없었으면 마정석과 아이템들을 주렁주렁 들고 다닐 뻔했다.
제페토와 헤어진 이후 나와 캐서린은 아카데미의 정문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런데 캐서린이 무언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카데미의 외출은 세 명 이상부터 가능하다 하지 않았나요?”
“응.”
“그럼 저희 둘만으로는 아카데미 밖으로 외출을 못 하잖아요. 따로 올 사람이라도 있는 거예요?”
“있지.”
“…여잔가요?”
“어, 맞아.”
내 이어지는 답변에 캐서린의 눈썹 한쪽이 점점 치켜 올려졌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이프리트의 반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마을에 못 갈까 봐 걱정인가?’
나는 이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기다려 봐, 곧 보여 줄 테니까.”
“…보여 줘요?”
곧 아카데미 입구에 도착하고 거기에 상주하고 있는 경비병들이 보이자, 나는 허리춤에 있는 언노운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언노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언노운 님, 슬슬 일어나시죠? 이제부터 빚을 정산할까 하는데요.”
역시 이 빌어먹을 언노운 님은 한 번에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캐서린은 갑자기 혼잣말을 시작한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기다려 보라는 듯 그녀에게 눈빛을 보내고, 다시금 언노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누블랑 전문점에 갈 건데 아직 주무시나요?”
언노운을 호출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 ‘누블랑’.
그 마법의 단어를 언급하자 역시나 언노운의 반응이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 뭐? 그것이 진짜란 말이냐?!
“예, 당연하죠. 제가 뭐랬어요. 약속은 지킨다 했죠? 그럼 마을에 가기에 앞서 일단 실체화해 주시겠어요?”
- 알았다!
그리고 곧 번쩍하는 빛과 함께, 눈앞에는 150cm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캐서린은 짐짓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내 에고 소드야.”
“에고 소드라고요? 에고 소드와 계약하신 건가요?!”
캐서린이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에고 소드라는 거 자체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에고 소드라는 것은 최소 에픽급 이상으로 평가받는 아이템이었으니까.
게다가 에고 소드 자체를 구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그 에고 소드와 계약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는 놀라는 얼굴로 언노운을 내려다보는 캐서린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계약은 못 했어.”
“왜요? 어, 그러고 보니… 그 에고 소드, 사용하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응? 본 적 있어?”
“…광폭화 상태일 때 본 기억이 있는 거 같아요.”
“아하…….”
아무래도 캐서린은 광폭화 때의 기억이 꽤나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계약은 못 했지만 저 언노운 님이 가끔 사용하게 해 주시거든. 그 조건이 바로 초콜릿케이크를 바치는 거야. 그래서 마을에 도착하면 초콜릿 전문점에 갈 거고.”
“초콜릿을 바쳐요? 에고 소드가 초콜릿을 좋아한다고요?!”
“응, 특이하지? 나도 빨리 정식으로 계약하고 싶은데, 영 계약은 하고 싶지 않으신가 봐. 그래서 언노운 님. 언제 계약해 주실 거예요?”
내 질문에 잠자코 있던 언노운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계약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다.
“잔말 말고 빨리 가자꾸나.”
언노운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표정 속에선 기대감과 설렘이 읽히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언노운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