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 *
캐서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이유는 제로가 그녀에게 언노운을 떠맡기고 볼일을 보러 갔기 때문이다.
- 어차피 돈은 많으니까 실컷 먹고 있으세요! 캐서린 너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부담 없이 얼마든지 사!
그게 제로가 그들에게 남기고 간 유일한 말이었다.
시간이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누블랑 매장의 문이 곧 닫힐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제로는 먼저 이 둘에게 매장에 가 있으라고 하고, 마정석을 판매하러 상점에 간 것이다.
캐서린은 슬쩍 고개를 돌려 왼쪽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굉장히 무뚝뚝해 보이는 소녀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입고 있는 소복 같은 옷과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전부 하얗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부까지도 새하얀 편이라서 소녀에게서는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그래도 친해지는 편이 좋겠죠?’
언노운은 제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에고 소드.
친해져서 나쁠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캐서린은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에고 소드…가 아니라 언노운 님?”
“그래.”
“그럼, 누블랑 가게로 가요.”
“그러자꾸나.”
외형과 취향으로 봐서는 일곱 살 조카를 데리고 다니는 느낌인데, 말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늙은이 수준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누블랑 매장 앞에 도착했다.
누블랑은 엄청나게 유명한 고급 초콜릿 전문점.
그리하여 누블랑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대도시에나 가야 있을 법한데, 이곳은 귀족의 자제들이 다니는 칼루스 아카데미 주변 마을이기에 각종 사치품에 더불어 누블랑 매장도 있는 것이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밟히는 것은 화려한 장식이었다.
과연 고급 초콜릿 전문점답게, 매장 안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식기와 티스푼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언노운은 곧바로 유리창 안에 진열된 초콜릿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매우 설레는 표정과 함께, 한편으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신중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캐서린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까까지와는 완전 딴판이네요.’
언노운은 아까의 애늙은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초콜릿을 먹고 싶어 안달 난 초등학생과 다름없어 보였다.
한참 진열장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고르고 있던 언노운은 무언가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시, 신상이 나왔었구나! 참으로 누블랑에는 끝이 없도다!”
언노운의 감탄에 캐서린도 그쪽을 슬쩍 확인했다.
언노운이 보고 있는 진열장 앞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번 달 한정 신상 초콜릿케이크’였다.
그런데,
‘케이크 하나에 1,000다트라고요?’
가격이 예상 밖이었다.
물론 골드버그의 집안 수준으로 따지면 감당 못 할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런 캐서린이 놀랄 정도로 케이크치고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그러나 언노운이 진열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던 것은 가격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초콜릿케이크에 대한 감상이었던 것 같았다.
언노운은 이내 그 신상 초콜릿케이크를 주저 없이 골랐다.
이윽고 캐서린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온 언노운.
손에 들려 있는 접시는 각종 디저트로 한가득했다.
초콜릿케이크를 비롯해 초콜릿 마카롱, 초콜릿 푸딩, 초콜릿 브라우니까지.
초등학생의 몸으로 들고 있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디저트를 가져온 언노운이었다.
그 엄청난 양의 초콜릿 디저트에 경악한 캐서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왜? 네놈도 먹지 그러느냐?”
언노운은 누블랑 매장에서 고작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는 캐서린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캐서린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초콜릿은 살찌잖아요.”
그 말에 고까운 눈으로 쳐다보며 혀를 차는 언노운.
“고작 그깟 이유 때문에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걸작을 포기하다니. 참으로 불쌍한 계집이로군. 하는 짓이 그 녀석을 꼭 닮았어.”
“네? 누굴 닮아요?”
그러나 언노운은 질문을 무시한 채, 이내 디저트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우아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초등학생 수준 그 자체였다.
다만, 신기하게도 저렇게 게걸스럽게 먹고 있음에도 입에는 초콜릿이 하나도 묻지 않았다.
캐서린은 조용히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그 모습을 감상할 뿐이었다.
진공청소기같이 접시 위의 것들을 흡입하던 언노운.
그녀가 가져온 모든 디저트를 해치우는 데는 10분의 시간조차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접시가 다 비워지자, 언노운은 또다시 진열장으로 달려가 새로운 종류의 것들을 가지고 왔다.
그 모습에 캐서린은 살짝 질색했다.
‘누가 보면 초콜릿 귀신인 줄 알겠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캐서린은 문득 언노운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그것은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왜 제로와 계약하지 않으시는 거죠?”
사실 캐서린은 제로가 언노운을 사용했던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사용이라면 사실상 에고 소드와의 계약이 이행된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정작 둘 사이는 아직 계약 관계가 아니라니 좀 의외였다.
그런데, 캐서린의 질문을 들은 언노운이 순간 디저트를 먹던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방금까지의 행복에 겨웠던 표정과는 달리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궁금하더냐, 골드버그의 여식.”
“아니 뭐… 단순 궁금증이요?”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 언노운.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곧 소멸한다.”
“네에?! 소멸한다고요?!”
캐서린은 순간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뿜을 뻔했다.
애초에 그녀가 언노운에게 질문했던 이유는 단순 호기심과 더불어 제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노운이 내뱉은 얘기는 낯선 사이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대화의 수준을 넘고 있었다.
“검을 사용할 때마다 내 인격은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아마도 이대로라면 나는 1년 안으로 소멸할 거 같군.”
“그, 그래서 계약을 못 하시는 거군요.”
뜻밖에도 쉽게 풀린 작은 궁금증.
다만, 그 가벼운 호기심에 비해 그 진실의 무게는 조금 무거웠다.
“뭐, 소멸하기 전에 이렇게 잔뜩 누블랑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는 다시금 디저트를 먹어 치우는 언노운.
그 모습에 캐서린은 조금 얼떨떨했다.
‘이걸 제로에게 말해야 할까요?’
고민이 되는 캐서린이었다.
* * *
“1,500다트요?”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상점 주인의 말에 반문했다.
이번 군주급 던전의 결산은 총 2,300다트.
그중에서 보스를 잡아서 얻은 다트만 해도 1,500다트인 것이다.
원래 수중에 있던 돈까지 전부 더하면 총 2,600다트였다.
“2,600만 원이라니…….”
원래 있던 세계로 따지자면 거의 1년 연봉 수준의 금액.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고작 1주일 만에 얻게 된 것이다.
“언노운이 1,000다트로는 부족하다 했었나?”
아마도 지금쯤 실컷 초콜릿 디저트를 먹고 있을 테니까, 1,000다트 정도로는 턱도 없겠지.
“그럼 한 1,500다트 정도는 여유로 남겨야겠네.”
나는 그 정도쯤이라면 충분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1,500다트면 1,500만 원이다.
고작 초콜릿 디저트 따위에 1,500만 원 돈이 나간다는 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간 언노운의 활약과 앞으로 언노운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리 아까운 투자는 아니었다.
“돈은 또 벌면 되는 거고.”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잡화점에서 마정석을 모두 환전한 나는, 남은 여윳돈으로 인벤토리를 구매하기 위해 마도구 전문점을 방문했다.
이번 용암 던전으로 제대로 깨달은 것은 바로 인벤토리의 필요성.
앞으로 얻을 아티팩트들과 아이템, 그리고 마정석들을 생각한다면 인벤토리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인벤토리의 가격은 제페토가 말한 대로 1,000다트.
꽤나 비싼 금액이었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구입하자마자 제페토의 인벤토리에 담아 놨던 피닉스의 알을 꺼내 옮겼다.
“역시 지르는 맛이 있네.”
손바닥만 한 검은 주머니에 축구공만 한 피닉스의 알이 들어가다니.
마법의 세계는 참으로 편리했다.
“그나저나 잘 먹고 있으려나?”
나는 초콜릿을 배 터지게 먹고 만족해 있을 언노운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0분 후.
누블랑 매장에 도착하자,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았던 나는 별안간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네?! 2,400다트라고요?!”
매장 카운터 직원의 말에 내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재차 물어봐도 점원의 입에서 나오는 가격은 2,400다트.
나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언노운을 내려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언노운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는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어, 어떻게 초콜릿 따위로 2,400만 원이…….”
불가능했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던 나는 방금까지 캐서린과 언노운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저, 저게 말이 돼요?!”
테이블에 한가득 쌓여 있는 각종 포장지.
저게 다 언노운의 작품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나는 캐서린 쪽을 슬쩍 올려다봤다.
그러자 캐서린은 본인이 먹은 게 아니라는 듯 흠칫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분명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점원에게 사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저… 혹시 외상을 해도…….”
그런데 그때,
“잠시만요.”
사정사정하며 외상을 하려던 나를 캐서린이 말렸다.
그러고는,
“받아요.”
넌지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종이를 확인하자 보이는 것은 1,000이라는 숫자.
무려 1,000다트의 수표인 것이다.
수표를 확인한 나는, 놀람 반 고마움 반의 얼굴로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고, 고마워. 꼭 갚을게!”
“아뇨, 갚을 필요 없어요.”
“응?”
“구해 주셨잖아요. 오히려 지금 있는 돈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네요.”
“그렇구나……. 그래도 고마워!”
“아니에요.”
천만다행이었다.
캐서린이 없었으면 꼼짝없이 점원에게 무릎 꿇을 뻔한 것이다.
그나저나 1,000만 원어치의 수표를 평상시에 가지고 다닌다니…….
정말 골드버그 가문의 재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캐서린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아, 그리고…….”
“응? 왜?”
“…에고 소드한테 잘하세요.”
“…응?”
뜬금없는 캐서린의 말.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1,000다트를 쿨하게 주고, 또 언노운까지 신경 써 주는 그녀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었다.
* * *
칼루스 아카데미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다만, 지난주에 있었던 일로 인해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는 아우레인 기숙사 학생들을 1교시 대신 강당으로 소집했다.
넓은 아카데미의 강당은 곧 아우레인의 학생들로 드문드문 자리가 메꿔졌다.
“무슨 일이지?”
“어쨌든 1교시가 사라져서 개꿀이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장 케이든 교수님이 지금 혼수상태라는데?”
웅성웅성하는 학생들.
녀석들의 대화에, 나는 새삼 침대에 누워 있을 케이든 교수가 걱정되는 한편, 위자드 협곡을 습격한 녀석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블랙잭… 그리고 침공 이벤트…….’
며칠 동안 용암 던전 안에 있다 보니까 잠깐 블랙잭의 존재를 잊을 뻔했다.
그러나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미 녀석들의 습격은 시작됐다.
당장 지금이라도 녀석들이 들이닥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번 용암 던전 파밍으로 상당히 강해졌으니까.’
용암 던전의 알찬 파밍 덕분에 조금은 걱정이 덜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드는 불안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 아― 아!
이내 강당의 단상 앞에 선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학생들을 조용히 시킨 뒤에 입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번 주에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케이든 교수의 용감함이 있었기에 그 사고 속에서도 여러분들의 안전이 지켜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케이든 교수의 빠른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불미스러운 사고……?’
나는 그 말이 조금 거슬렸다.
저번 주의 일은 ‘사고’가 아니었다.
명백히 칼루스 아카데미를 노린 블랙잭 녀석들에 의한 ‘사건’이었다.
- 칼루스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한 여러분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여러분들을 지켜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케이든 교수의 부재로 아우레인 기숙사의 담당 사감 자리와 대인전 강의의 교수 자리가 비게 되었죠? 그래서 임시 교수를 초빙했습니다. 소개하겠습니다.
히로빈 그린월드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강당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여러분들의 임시 담당 교수 루퍼스 그레이엄 교수입니다!
루퍼스 그레이엄.
그는 바로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