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뭐?!”
나는 루퍼스 그레이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티 매지션이 이렇게 대놓고? 도대체 어떻게?!’
녀석은 분명 블랙잭의 간부 중 하나 ‘스페이드’.
녀석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로 들어온 목적은 뻔했다.
분명 아카데미의 침공을 위한 준비 단계인 거겠지.
‘내가 막아야 해.’
그런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지금 당장 내가 나서 봤자, 너무 뜬금없는 행동일 것이다.
비록 내가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수석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방금 들어온 신입 교수를 안티 매지션이라고 섣불리 말하기에는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 마땅한 근거도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 무슨 일이야, 제로 학생?
단상 위의 히로빈 그린월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히로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제야 나는 주변이 고요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주변의 이목은 전부 나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졸았습니다.”
나는 꾸벅 허리를 굽힌 뒤에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뒤에서 나를 미친놈 같다고 수군대는 동급생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무튼 계속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이 친구는 7년 전에 제가 직접 가르친 제자 루퍼스 그레이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개를 받은 스페이드, 아니 루퍼스 그레이엄은 단상 위에서 학생들을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7년 전에 제자였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흠칫 놀랐다.
‘아카마’에서 스페이드는 그저 스페이드였을 뿐.
이렇게 대놓고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온 적은 없었기에, 방금 들은 말은 처음 듣는 정보였다.
‘하긴 아카마에서는 케이든 교수가 병상에 누워 있는 일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저 히로빈 영감탱이가 직접 가르친 제자라니…….’
칼루스 아카데미는 직책과 상관없이 교직원 대부분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교감인 실라이 샌드윅스도 강의를 하나 맡았듯이, 교장인 히로빈 그린월드도 변신계 전공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루퍼스 그레이엄은 변신계 마법사.
아마도 7년 전에 히로빈 그린월드 밑에서 직접 수강을 받아 신임을 얻은 모양이었다.
- 그럼 직접 소개하세요, 루퍼스. 아니, 루퍼스 교수.
“네, 그린월드 교장님.”
히로빈은 말을 마치고는 단상에서 살짝 물러섰다.
그러자 루퍼스가 이내 마이크 앞에 서서 단상 아래의 학생들을 내려다봤다.
루퍼스는 또래라 해도 믿을 정도로 매우 젊고, 거의 제이드급으로 잘생긴 꽃미남이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사람을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마성의 남자였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니 안녕? 편하게 말해도 될까?
생글생글 웃으며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루퍼스.
주변의 반응을 보니 이미 반쯤은 저 남자의 목소리에 홀린 듯 보였다.
- 소식은 들었어. 저번 주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지. 그런데 사실 바깥 사회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야. 이 아카데미의 정문을 벗어나게 되면 의외로 세상은 그리 안전하지 않아. 항상 수많은 마물의 위협, 그리고 안티 매지션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
나는 당찬 목소리로 호소하는 녀석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지? 안티 매지션들의 위협이 도사려?’
웃기는 소리다.
정작 본인이 그 안티 매지션이고, 게다가 위자드 협곡에서 우리를 습격한 주범이었으면서, 잘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녀석의 가면을 부숴 버리고 싶은 걸 참으며 이빨을 갈았다.
- 그렇기에 내가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임시 교수로 부임한 이상, 나는 여러분들을 더욱더 강인한 마법사로 만들 계획이야.
녀석은 계속해서 연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내가 녀석에게 이를 가는 것과는 달리, 주변의 동급생들은 이미 녀석의 연설에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 너희들의 선배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이 세계의 어엿한 어른으로서. 책임지고 너희를 어엿한 마법사로 이끌어 줄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내 담당 ‘대마법사전’ 강의도, 그리고 기숙사 사감으로서도 잘 부탁한다.
짝짝짝!!
와아아아아!!
강당에는 아우레인 기숙사 생도밖에 없음에도 학생들의 호응은 매우 열렬했다. 루퍼스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녀석을 조용히 노려볼 뿐이었다.
이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옆에 앉아 있던 루비 버밀리온이 조용히 속삭였다.
“제로, 무슨 일이야?”
루비의 말에 나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살짝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넌 내가 하는 말을 믿어 줄 거야?”
“믿어 주냐니? 글쎄……. 적어도 너라면 거짓말을 할 거 같지는 않은데?”
“그럼, 만약에 내가 저 단상 위에 있는 사람이 안티 매지션이라고 하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 교수님이랑 원래 아는 사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의 루비 버밀리온.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냥 해 본 말이었어.”
“뭐야, 그게…….”
역시 지금으로서는 논리적으로 저 녀석이 안티 매지션이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미친놈이라고 볼 게 분명했다.
- 자, 그러면 오늘부터 일주일간, 여러분들의 1교시는 이 루퍼스 교수의 재량 강의가 될 겁니다. 담당 기숙사 사감과 친해질 계기도 필요하고, 또 저번 주에 있었던 안티 매지션 사건으로 여러분들에게 ‘대마법사전’ 교육이 좀 더 중요할 테니까요.
그렇게 히로빈 그린월드의 말을 끝으로 강당의 집합은 해산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루퍼스 그레이엄의 지도하에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기숙사의 뒤편 공터로 이동하게 되었다.
공터에 도착하자 루퍼스는 다시금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할게. 내 이름은 루퍼스 그레이엄.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고 임시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교수는 초임이야. 아, 그리고 나는 아우레인 출신은 아냐. 이그니움 기숙사 출신이지. 요즘엔 기숙사별로 기 싸움 같은 건 별로 없지? 어, 어라? 반응을 보니 조금은 있는 거 같은데……?”
자연스레 학생들과의 대화를 시작한 루퍼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강당에서 처음으로 본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완전히 아우레인 기숙사 학생들 사이에 녹아들어 있었다.
얼핏 주변 분위기를 살피니 이미 학생들 대다수는 루퍼스라는 새로운 인물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것 같았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대마법사전 강의를 하기에 앞서서 너희들의 실력을 좀 보고 싶은데. 이래 봬도 내가 졸업한 지 벌써 꽤 돼서, 학생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네. 괜찮다면 어디 너하고 너, 앞으로 나와 줄래?”
루퍼스가 지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이드와 루비 버밀리온이었다.
제이드는 호명을 받자마자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고, 루비도 질세라 따라나섰다.
루퍼스는 둘의 어깨에 한 손씩 올리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둘이 잠시 대련해 볼래?”
그런데 제이드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훈련용 던전이 아닌데 괜찮을까요?”
지금 당장에 대련하라는 것은 훈련용 안전장치 없이 진행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제이드의 말은 본인이 진심을 다하게 되면 루비 버밀리온이 다칠 수도 있을 거라는 제이드 나름의 섬세한 배려였다.
다만 그런 제이드의 말이 되레 루비 버밀리온의 자존심을 건든 모양이었다.
“무, 무슨!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교수님, 진심으로 하면 상대가 다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괜찮나요?”
그러자 루퍼스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있는 한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보여 줘 봐.”
“진짜죠?”
“그래도 적당히 살살할게.”
“뭐, 뭐라고?”
그리하여 둘의 대련이 성사되었다.
루퍼스의 등장으로 계속해서 심란했던 나는 이래도 되나 싶었다.
가뜩이나 혼란스럽기 그지없는데, 갑작스레 둘의 대련이라니.
다만 이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둘은 이미 대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루퍼스가 시작을 알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제이드는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주변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남색의 마나가 감싸고 있었다.
반면 루비 버밀리온은 일단 거리를 벌리자는 판단을 내리고는 중력 마법을 사용해 하늘로 도주했다.
둘 중 먼저 선공을 시작한 것은 루비 버밀리온.
상공에 떠 있는 루비 버밀리온은 이내 주문을 외웠고, 그녀가 시전한 중력 마법이 제이드를 덮쳤다.
그런데,
“뭐, 뭐야……?”
제이드는 곧바로 자신의 두 발에 방출계 마나를 모조리 밀집시켰다.
그러자 루비의 중력 마법은 그 거대한 마나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그는 그린 드래곤조차 대응할 수 없던 루비의 중력 마법을 상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제이드라 할지라도 중력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강한 공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제이드는 중력에 저항하는 마나를 제외한 최소한의 마나만을 사용하여 루비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날아오는 방출계 마법을 상공에서 요리조리 회피하는 데 급급한 루비 버밀리온.
결국 둘의 승부는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지켜보던 루퍼스 그레이엄은 이내 둘의 대련을 말렸다.
“그만!”
대련의 종료를 확인 후, 루비 버밀리온은 스르르 지면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제이드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수고했어.”
“응, 너도.”
나는 애초에 이 상황 자체가 못마땅했지만, 한편으로는 루비 버밀리온이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 제이드가 단번에 승부를 못 낼 정도면 꽤 하잖아?’
결국 둘의 대련은 누가 우위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제이드가 풀 파워를 내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아무튼 당장의 대련만 놓고 봐서는 루비 버밀리온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루퍼스 그레이엄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이름이 루비 버밀리온이랬나?”
“네, 맞아요.”
“그래, 루비 버밀리온.”
루퍼스는 그녀를 호명하며 생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미소에서 어딘가 불쾌함을 느꼈다.
“내가 조금 어드바이스를 해 줘도 괜찮을까?”
“아, 네…….”
“루비 학생의 힘은 충분히 강력해. 다만, 내가 봤을 때는 그 힘이 조금 분산되는 느낌이 들어.”
“네?!”
루비는 자신의 고유 마법 운용에 대한 지적에 당황한 듯 보였다.
보통의 강의에서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고유 마법 운용을 터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루비 버밀리온은 나름 협회장의 딸이자 영웅의 가문 버밀리온의 영애.
능력에 대한 지적을 썩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물질계 전공 강의도 아니고 그저 대마법사전 강의 시간인데 말이다.
그러나 루퍼스는 계속 들어 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왜 제이드 학생의 공격을 회피하는 거지?”
“그야… 맞으면 안 되니까요?”
“아니, 내 말은 이미 훌륭한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왜 안 쓰냐는 거야.”
“네?”
“고도로 집중된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할 수 있고 대상을 굴절시킬 수 있어. 그것은 질량이 0인 빛이라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마나’일지라도 마찬가지지. 난 루비 학생이 조금만 집중하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을 마치고는 씨익 웃는 루퍼스.
그러고는 제이드를 불렀다.
“제이드 학생?”
“예.”
“잠시 거리를 좀 벌려 주겠어?”
제이드는 루퍼스의 말에 따라 조금 앞으로 걸어가 루퍼스와 거리를 10m 이상 벌렸다.
“자, 그럼 제이드 학생은 거기서 나에게 방출 마법으로 나를 공격하면 돼. 최대한 진심을 담을수록 좋고.”
“예?”
“그리고 루비 학생은 내가 말한 대로 제이드 학생의 방출 마법이 나에게 닿기 전, 굴절시켜서 방향을 바꾸는 거야.”
“네?!”
루퍼스의 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제이드는 괜찮냐는 듯 반문했다.
“괜찮을까요, 교수님?”
“그럼. 나는 루비 학생을 믿어. 봐주지 말고 풀 파워로 공격해야 한다.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진짜 하는 거예요? 연습도 없이요?!”
루비의 말에 루퍼스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줬다.
“루비 학생은 할 수 있어. 난 그걸 믿고 있고.”
루비는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루퍼스는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냈다.
“그럼, 와 줘!”
“갑니다!!”
이내 제이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마나.
나는 나를 뛰어넘는 그 거대한 양의 마나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제이드는 곧 그것을 루퍼스 교수를 향해 방출시켰다.
그런데,
「그, 그라비타스 디스토르티오(grávĭtas distórtĭo)!!」
눈을 질끈 감고 주문을 외우는 루비 버밀리온.
다만 그 눈을 감은 행위는 외면이라기보다는 집중에 가까웠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광!!
제이드가 방출한 거대 마법은 중력에 의해 왜곡되어 아카데미의 숲으로 처박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