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66화 (66/175)

66화

휘어진 제이드의 방출 마법은 기숙사 뒤편의 숲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굉장한 장면에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학생들이 놀란 이유는 제이드의 방출 마법의 어마어마한 파괴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공격의 궤도를 꺾은 루비의 마법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짧은 시간에 이러한 마법 운용법을 루비에게 전수해 준 루퍼스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이었을까.

어쨌든 방금의 퍼포먼스는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루비 버밀리온, 본인이었다.

“이, 이게…….”

루비는 본인 스스로도 조금 전에 했던 마법이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통 마법이란 것은 위기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더욱 각성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루퍼스는 그것을 이용해 스스로의 목숨을 베팅해서 루비 버밀리온의 마법을 한층 강화시켰다.

얼타고 있던 학생들은 이내 그러한 상황의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고는 루퍼스에 대한 찬사를 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루퍼스! 루퍼스! 루퍼스!”

“교수님, 저도 가르쳐 주세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사랑해요, 교수님!!”

학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루퍼스 그레이엄이라는 초임 교수의 능력에 감탄했다.

조금 전 루퍼스가 루비에게 해 준 솔루션과 내용.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서 학생이 더 나은 마법 운용을 할 수 있게끔 해 주는 희생정신과 배짱.

아우레인의 오십 명 학생 앞에서, 루퍼스 그레이엄은 교수로서 본인의 자질과 실력을 명백히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우레인의 학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루퍼스는 이내 손을 저으며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일단 완벽하게 수행해 준 루비 버밀리온 학생에게 다들 박수를 먼저 보내는 게 어떨까?”

완벽한 마무리 멘트까지.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그런 루퍼스의 말에 학생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그만큼 루퍼스가 보여 준 실력과 겸손은 학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루퍼스는 다시금 손을 저으며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나는 ‘대마법사전’ 한 과목의 담당 교수지만, 그 이전에 여러분들 아우레인의 책임 교수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여러분들의 마법 실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개인적인 코치와 조언을 해 줄 예정이야. 물론, 너무 세세한 간섭이라는 생각이 들 수는 있겠지만 조금 이해해 주길 바라. 알았지?”

생긋 눈웃음치는 루퍼스 그레이엄.

또다시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수의 등장은 조금 신선할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수인 탓도 있었고, 그만큼 유능한 탓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미 아우레인의 학생들은 루퍼스가 임시 교수인 것도 잊고, 그 이전에 케이든 교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 분위기가 내심 불쾌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금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과연 저 사람이 안티 매지션인가?

저 사람이 진짜 블랙잭의 간부라고?

이미 ‘아카마’를 플레이하여 진실을 알고 있는 나조차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인데, 다른 학생들이 저 교수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루비 버밀리온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다른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루퍼스를 존경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게 녀석의 계획인가?’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신망이 두터워진 교수를 안티 매지션, 블랙잭이라고 고발하게 된다면 과연 이들은 나를 믿어 줄 것인가?

그러한 생각이 들자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속지 말자. 상대는 분명 안티 매지션이야. ‘아카마’에서 이미 전부 확인한 내용들이잖아?’

분명 침공 이벤트가 다가오기 전에 녀석의 정체를 파헤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 * *

1교시가 끝난 뒤, 쉬는 시간이 찾아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전화부스를 찾았다.

그리고 품속의 메모지를 꺼내어 거기에 적힌 번호를 전화기에 기입했다.

띠리링.

띠리리링.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기를 귀에 대자, 다이얼이 몇 번 울렸다.

그러더니,

- 여보세요?

곧 실베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다.

“실베르 라인하르트 차장님 맞으시죠? 저 제로입니다!”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하자 실베르는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 아, 제로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목소리가 다급해? 뭐 알아낸 거라도 있는 거야?

“그게…….”

나는 애초에 실베르에게 모든 것을 말할 심산으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말하자니 조금 망설여졌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돌려 말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케이든 교수님 대신 임시 교수가 부임했거든요.”

- 응? 그런데?

“그런데 그 교수가 왠지 수상해서요……. 혹시 조사해 주실 수 있나요?”

- 뭐? 나보고 조사해 달라고? 마경이 그렇게 한가로운 줄 아냐?!

역시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전달될 리 없었다.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 사람 블랙잭입니다. 그것도 간부 녀석이라고요!”

- 뭐라고……? 블랙잭 녀석이 아카데미 내부로 잠입했다고? 그게 진짜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다만 루퍼스가 블랙잭이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이상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는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맞아요. 인상착의를 들었어요. 위자드 협곡에서 마주친 블랙잭 간부가 말했던 인상착의와 완전 똑같은 사람이에요.”

- 인상착의가 같다라……. 고작 그런 걸로 단정 짓는 거라고?

“그 블랙잭 간부가 말했던 인상착의와 100퍼센트 일치한다니까요? 믿어 주세요…….”

- …그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아무래도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깊은 생각에 잠긴 것으로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었다.

- 알겠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일단은 조사는 해 볼게. 이름이 뭐라 했지?

“루퍼스 그레이엄이요.”

- 루퍼스 그레이엄이라……. 네가 말한 게 진짜 사실이라면, 일단은 아카데미 외부에 경호를 붙여 줄게. 그 밖에 특이 사항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줘.

“예. 감사합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그야 이 세계에서 나는 고작 아카데미의 평민 학생이었고, 상대는 강화계의 권좌이자 마경의 2인자였다.

그런 그가 내 말을 곧이곧대로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 신뢰해 준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 그럼, 일단 알아보고 조만간 연락할게.

“네.”

그리고 이내 신호가 끊겨 수화기에서는 비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방금의 통화 내용에 만족했다.

실베르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상대방은 그리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작 아카데미 학생의 말을 믿어 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갖춘 사람인 것이다.

게다가 아카데미 외부에 따로 마경의 인원들을 배치해 준다니.

지금으로선 거의 최선에 가까운 지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내 수화기를 전화기에 올려놓고 전화 부스를 밖으로 나왔다.

“루퍼스 그레이엄, 아니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

본격적인 블랙잭 녀석들의 움직임.

그러나 나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 * *

나는 곧바로 다음 수업인 아텔라의 검술 수업을 받기 위해 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강의 시간은 조금 전의 통화로 인해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 때문에 지각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말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잖아……?’

벌써 눈앞에 나타난 블랙잭의 간부만 해도 세 명이다.

마인 조작 마법의 하트.

빙결 마법의 클로버.

그리고 아카데미의 교수로 대놓고 들어온 변신계 마법의 스페이드, 루퍼스 그레이엄까지.

전부 다 하나같이 강력한 녀석들이었다.

다만, 불안한 마음 뒤편으로는 해 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적어도 녀석들은 내 존재를 모르잖아?’

아까 내가 강당에서 루퍼스를 보고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도,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마다 루퍼스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을 때도, 루퍼스에게선 별다른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게 당연하다.

그야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현실 속 ‘아카마’의 플레이어.

그리고 그것은 침공당한 ‘아카마’ 속 칼루스 아카데미와 내가 있는 지금의 칼루스 아카데미의 가장 큰 차이였다.

내 존재는 다가올 침공 이벤트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도 유효했다.

위자드 협곡을 습격하고, 이렇게 아카데미 내부로 잠입해도 내가 녀석들을 알고 있는 이상 쉽게 녀석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일단은 당장 저 스페이드 녀석을 감시해야겠네.’

앞으로 일주일간은 매일같이 녀석과 함께하는 수업이 진행된다.

따라서 그만큼 저 녀석과 붙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오늘 하는 것을 보아 딱히 녀석이 무언가를 흘리고 다닐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어느덧 강당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강당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어흥!!”

아텔라 교수가 갑작스레 뒤에서 덮쳐 왔다.

다만, 내 머릿속에는 딴생각이 가득해서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뭐예요……?”

내 차가우리만큼 냉정한 태도에 오히려 놀래킨 아텔라 교수가 더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아텔라 교수는 이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그 반응은. 원래 잘 안 놀라는 편이야?”

“아… 깜짝 이벤트 같은 거였어요……?”

“으, 응…….”

아텔라 교수는 매우 민망해 보였다.

그 모습에 방금까지만 해도 진지했던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내 반응에 아텔라 교수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의기소침해져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혹시 저번 주 일 때문에?”

“저번 주 일 때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케이든 교수님이 빨리 의식을 되찾으셔야 할 텐데 말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 병문안을 몇 번 갔었는데 멀쩡하시더라. 내가 봤을 땐 곧 일어나실 거야.”

아텔라 교수는 괘념치 말라는 듯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 스물다섯 살이셨죠?”

“응? 그런데?”

“그럼 혹시 스페이드… 아, 아니 루퍼스 교수님 알아요?”

“루퍼스 교수님? 아, 그 케이든 교수님 대신에 취임한 교수 말하는 거지?”

아텔라 교수님은 루퍼스와 같은 스물다섯 살.

둘 다 칼루스 아카데미 출신에 동갑이어서 나는 둘 사이에 뭔가의 접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텔라는 루퍼스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글쎄. 아마도 다른 기숙사셨겠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요?”

아쉽게도 아텔라 교수에게서 루퍼스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그녀도 루퍼스 그레이엄이 블랙잭의 간부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싶었다.

“혹시… 아텔라 교수님은 제가 하는 말을 믿어 주실 거예요? 그게 아무리 근거 없는 소리라도요?”

“응?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텔라.

다만,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를 신뢰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비밀도 공유한 유일한 사이.

사실상 이 세계의 사람들 중에 가장 유대감이 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나는 그녀에게 내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급발진.

“잘 들어요…….”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저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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