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67화 (67/175)

67화

“응?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아텔라는 내 말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그녀가 놀라지 않은 이유에는, 그만큼 내가 한 말이 터무니없는 내용이라는 것도 있어 보였다.

하긴, 뜬금없이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니.

게다가 이곳이 원래 내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 세계라는 것까지 알게 된다면 더더욱 믿을 수 없을 내용이겠지.

다만, 나는 이왕 말을 꺼낸 김에 그녀를 완전히 믿게끔 설득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에요. 이건 그냥 하는 소리도, 농담도 아니고, 지금껏 숨기고 있던 저의 비밀이에요.”

“…….”

내가 조금 더 진지한 표정으로 강하게 말하자, 그제야 아텔라는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넌지시 내게 물어 왔다.

“…그럼 그 말이 사실이라는 근거는?”

근거라.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증명할 방법이라고는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그마저도 게임 속 내용과 이곳의 흐름이 다른 탓에 소용없었다.

이것은 처음으로 부딪힌 현실이었다.

한 번도 스스로가 이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러한 상황이 닥쳐 오자, 마땅히 스스로를 변호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음… 설명할 방법은 딱히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틀림없이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원래의 이름도 제로가 아니고요. 나이도 다르고, 심지어는 원래 마법사도 아니에요.”

“…그래?”

아까와는 달리, 아텔라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로서 나를 보는 시선의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되었다.

미친놈 취급하거나, 장난으로 생각하거나.

다만, 그럼에도 아텔라는 제3의 선택지, 나를 믿어 주는 방향을 택한 모양이었다.

“…믿을게.”

“네?!”

“믿는다고, 네 얘기.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장난을 할 녀석은 아니잖아? 그러면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치고. 원래는 어떤 세계였는데?”

나를 믿어 준다는 아텔라 교수의 말.

순간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는 목구멍으로 터져 나올 거 같은 울컥거림을 겨우 삼키고, 이 ‘아카마’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세계에서 게임을 했었던 나의 이야기.

그리고 ‘아카데미의 마법사’라는 게임의 내용.

내가 아는 모든 얘기를 토해 내자, 아텔라는 묵묵히 그것을 들어 줄 뿐이었다.

몇 분.

아니 몇십 분.

나는 내가 처음으로 ‘아카마’를 했었을 때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를 알게 된 아텔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국엔 네가 고등학생은 아니라는 거네?”

“네, 맞아요…….”

“그럼, 몇 살?”

“원래는 스물두 살이에요.”

살짝 달라진 듯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아텔라 교수는 눈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나이는 내가 더 많네? 그럼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이제부터 누나라고 불러.”

“네에……?”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지금껏 진지했던 분위기가 조금 흐트러졌다.

그리고 아텔라 교수는 장난 반, 진심 반이 담긴 눈빛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난 네가 한 말 믿어. 적어도 지어낸 얘기는 아닌 거 같아.”

“믿어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서 누나라 부를 거야?”

“그… 누나는 좀…….”

내 반응에 아텔라 교수가 피식 웃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도 괜스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말하길 잘했어.’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지는 못하겠다.

그야 원래 세계에서도 인간관계는 여러모로 복잡했으니까.

그럼에도 아텔라 교수는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원래의 세계에선 그 블랙잭이라는 녀석들에게 모두 당했다는 얘기지?”

“네,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네. 칼루스 아카데미에는 일단 권좌만 해도 둘이잖아. 심지어 히로빈 그린월드 교장님은 권좌이기 이전에 200년 전 마계 대전의 영웅이셨고. 그런데 전부 죽었다고? 백번 양보해서 네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는 해도, 전부 죽었다는 건 조금 믿기 힘든데?”

아텔라의 진지한 분석은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교수님들은 뭐 하고 있었지……?’

아텔라의 말마따나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직원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케이든까지 멀쩡했었다.

그런데 제이드를 제외하고는 전부 죽었다니.

나는 눈을 감고는 조심스레 침공 이벤트 당시 상황을 되짚어 봤다.

침공 이벤트는 1교시가 시작되기도 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난다.

플레이어, 제이드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눈을 뜨고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이미 아카데미 내부에는 마인들과 안티 매지션들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기숙사의 학생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제이드는 마인, 안티 매지션들에 맞서 싸우고, 순차로 블랙잭의 간부들을 처리하며 상황이 종료된다.

그리고 결국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은 것은 본인, 제이드뿐이다.

‘응?’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카마’ 속의 침공 이벤트에서는 케이든 교수도, 아텔라 교수도, 교장 히로빈 그린월드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어디서 싸우다 죽었겠거니 싶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게 블랙잭에게 처리당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왜 다들 죽은 거지?”

“뭐야, 그것도 모르는 거였어?”

“네……. 게임 할 당시에는 주인공 외의 주변 인물들에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네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게임 속에서 블랙잭과 싸우던 학생들은 있었어도 교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것은 블랙잭의 일차적 목표는 아마도 교수진들의 제거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협회나 마경의 지원이 없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분명 연락을 방해할 만한 수단을 내세웠을 게 틀림없었다.

‘아카마’를 플레이할 때는 막상 간과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세계로 들어오면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생각하자, 의문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무튼 이번에 새로 들어온 임시 교수, 루퍼스 그레이엄이 안티 매지션이란 얘기지?”

“네. 확실해요.”

“안티 매지션이 대놓고 아카데미 내부로 진입하다니……. 이건 좀 큰일이네. 일단은 내가 루퍼스 교수를 최대한 감시해 볼게.”

“진짜요?”

“아무래도 동문이기도 하고 같은 초임 교수니까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나는 역시 그녀에게 털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플레이어의 자세로 이 세계에 임했었다.

다만, 지금 내가 아텔라 교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타인 이상의 감정이었다.

마치 이 세계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그것을 막을 방법을 서로 의논하는 동료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네?”

아텔라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검술 수업은 해야지?”

“네에에……?”

수업의 진행이었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미 수업 시간은 꽤 흘러 있었다.

아텔라는 검술 수업 시간이 줄어든 것이 살짝 아쉬운 모양이었다.

“침공 이벤트라는 것을 막으려면 결국 강해져야 하잖아? 강함은 곧 검 끝에서 나오는 거고. 안 그래?”

“그, 그건 맞죠…….”

물론 나도 그녀와의 검술 훈련이 싫진 않았다.

다만 방금까지의 진지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자연스레 현실로 돌아온 아텔라 교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할까요?”

“좋은 태도야!”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텔라 교수와의 검술 훈련으로 또 한 번 성장하게 되었다.

* * *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는 방금까지의 검술 수업이 끝나고 교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태연한 척했으나, 사실 아텔라는 제로의 말이 수업 내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게임이라…….’

본인이 사는 세계가 사실은 게임 속 세계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연하게도 아텔라는 이 세계가 게임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텔라가 제로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로의 말은 틀림없이 사실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만, 제로가 말하는 부분이 일종의 예언이나 미래시, 데자뷔 같은 거라고 아텔라는 지레짐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멀쩡한 현실이 게임이라는 것, 그리고 본인이 게임 속 캐릭터라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침공 이벤트가 앞으로 벌어진다는 거잖아.’

이 세계가 게임이고 현실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로가 한 차례, 칼루스 아카데미 전원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침공 이벤트가 앞으로 칼루스 아카데미에 또 한 번 닥쳐온다는 것이고.

‘루퍼스… 그레이엄이라 했지?’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본인과 동갑의 초임 교수.

다만 그녀의 기억 속에 루퍼스 그레이엄이라는 인물은 없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는 어느덧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루퍼스 그레이엄 교수였다.

‘이건 기회잖아?’

루퍼스가 혼자 있는 지금, 접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찬스였다.

그리하여 루퍼스를 발견한 아텔라는 황급히 배식을 받아 왔다.

그러고는,

탁.

루퍼스가 밥을 먹고 있는 테이블 앞에 배식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방금 막 한 숟가락을 퍼서 입으로 넣으려던 루퍼스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아텔라를 올려다봤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앉아도 될까요?”

물론 이미 배식판을 올려놓은 시점에서 합석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럼에도 아텔라는 재차 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살짝 무례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루퍼스는 눈웃음을 지으며 아텔라를 정중히 맞이했다.

“그러세요, 아텔라 교수님.”

“어……? 절 아시나요?”

“그럼요, 당연하죠. 아마 2학년 비무제 때 우승했었죠? 학창 시절에 유명하셨잖아요. 당연히 모를 리가 없죠.”

“그, 그랬나요, 저는 교수님을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아, 저는 루퍼스 그레이엄이라고 합니다.”

루퍼스는 밥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악수를 건넸다.

방금 자리에 앉은 아텔라는 얼떨결에 다시 일어나서 악수를 받았다.

“아, 아텔라 가스트로디아라고 합니다.”

아텔라는 루퍼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에게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위적인 페로몬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제로가 말했듯이 뭔가 있어, 이 남자.’

아텔라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루퍼스 그레이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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