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68화 (68/175)

68화

“저는 이그니움 기숙사였어요. 아마도 그리 눈에 띄는 편은 아니라서 모르셨을 거예요.”

“그렇군요, 혹시 교양은 뭐 들으셨어요?”

“음… 저는 마법의 역사하고 던전 구조론하고 몬스터 분석학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고리타분한 이론파셨군요…….”

“그런 것 같네요.”

루퍼스는 아텔라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쓸모 있는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루퍼스가 서슴없이 내뱉는 대화 속에서는 더 이상 캐낼 만한 것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루퍼스의 화술과 눈웃음에, 아텔라 본인마저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술술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루퍼스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아텔라는, 순간 고개를 크게 저었다.

‘정신 차리자. 상대는 안티 매지션이라잖아?’

아텔라는 학창 시절 얘기는 관두고, 좀 더 본격적인 정보를 캐내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지금까지는 무슨 일을 하고 계셨어요?”

보통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크게 진로가 세 가지로 나뉜다.

협회를 지망하거나, 마경을 지망하거나, 정 안 되면 마법부에 입사하거나.

아텔라 본인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는 짧게나마 협회에서 인턴으로 일했었던 경력이 있었다.

그런데, 루퍼스 그레이엄은 의외의 답변을 했다.

“아,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었어 가지고……. 직장에 다니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쪽에 취미도 없었고요.”

“네? 따로 할 일이 있었다고요?!”

두루뭉술한 루퍼스의 대답.

거기서 아텔라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분명 뭔가 있어.’

그리하여 아텔라는 좀 더 그 허점을 치밀하게 파보기로 했다.

“그 할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졸업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생겨서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요?”

아텔라는 조금 흥미롭다는 듯 루퍼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눈웃음 짓고 있던 루퍼스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

“…알고 싶으십니까?”

돌변한 루퍼스의 태도에 아텔라는 침을 꼴깍 넘겼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그리고 이어지는 루퍼스의 말은 아텔라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종류의 화제였다.

“…7년 전 ‘그 사건’이 기억나십니까?”

“그 사건이라면…….”

루퍼스가 말하는 내용.

그것은 아텔라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었다.

7년 전, 한 학생과 그를 필두로 한 다른 일곱 명의 학생들이 아카데미의 교장실을 폭파하고 도주한 사건.

전날 밤만 해도 성실히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갑작스레 범행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당시 동급생이었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 학생 여덟 명은 끝끝내 잡히지 않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고, 이후 그들 학번은 ‘저주받은 세대’, 그리고 도주한 학생들은 ‘저주받은 학생들’이라고 불리며 아카데미 외부까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게다가 그 사건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도주 학생들 중에 다름 아닌 협회장의 아들 ‘지크 버밀리온’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있었다.

“당시 엄청 시끌벅적하지 않았습니까? 몇 달간 아카데미가 휴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랬…죠.”

“아, 아텔라 교수님은 더욱더 충격이셨겠군요. 다름 아닌 같은 기숙사 동급생들이었으니까요.”

“예…….”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들이 이미 아텔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아우레인의 동급생들이었기에 더더욱 아텔라로서는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었다.

“결국 그 이후로 그들의 행방은 묘연했잖습니까? 마경조차 그들을 추적하는 데 실패했고요. 그런데 말이죠…….”

루퍼스의 표정은 아까보다도 한층 진지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전날 밤, 잠이 안 와 도서관을 가려던 저는, 그곳에서 우연히 그 ‘저주받은 학생들’ 모임의 밀담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

“그들은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모여 있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지크 버밀리온이었습니다. 그는 모여 있는 ‘저주받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었죠. ‘다들 마음 단단히 먹어, 결행은 무조건 내일이다.’라고.”

“예에에?!”

루퍼스가 말하는 내용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내용이었다.

처음 보는 루퍼스에게서 7년 전 그날의 진실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이미 아텔라의 머릿속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사실 항간에는 버밀리온의 장남이 잘못된 친구를 사귄 결과라는 말도 있었고, 그가 납치 혹은 협박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그 ‘저주받은 학생들’을 이끈 것이 지크 버밀리온이었다니.

‘지크 버밀리온…….’

녀석과는 나름 얕지 않은 관계였기에 더더욱 이 일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아텔라의 머릿속은 아까 전 이 세계가 게임 속 세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 그럼 그날 밤 일을 마경에 보고하셨나요?”

“예. 당연히 마경의 조사관에게 그날 밤 도서관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얘기했습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지크 버밀리온이 주모자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협회장의 입김이 닿지 않았나 지레짐작합니다만.”

루퍼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 이후로 매일 밤 그날의 도서관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물론 사망자는 없었고 피해도 그다지 크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그들의 범행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무슨 내용인지까지는 그 당시에 알 수 없었던 거 아닌가요……?”

“당연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죠. 그러나 당시에 저는 뭐에 씐 것 같았습니다. 범행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가벼운 죄책감이 계속 저를 무겁게 짓누르더라고요. 또한 협회장의 아들이란 자가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고, 왜 도망쳐야 했는지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그리하여 저는 졸업 이후에 녀석들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죠.”

“…결과는요?”

“어떻게 됐을 거 같습니까?”

되묻는 루퍼스 그레이엄.

이내 아까의 진지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싱긋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결국 찾으셨나요?”

“못 찾았습니다.”

“못 찾았다고요?”

“네. 마경조차 못 잡은 녀석들을 이제 막 학생 신분을 벗어난 개인이 찾았을 리가 만무했죠. 뭐, 그렇게 5년간 허송세월한 겁니다.”

그들의 대화는 식사 시간에 가볍게 할 주제라고는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아텔라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얼굴로 루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루퍼스는 아텔라에게 씨익 미소를 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슬슬 점심시간이 끝나서요.”

“아, 예…….”

“다음에 또 얘기 나눠요, 아텔라 교수님.”

루퍼스는 가볍게 손 인사를 하더니 이내 식당 출입구로 나갔다.

아텔라는 멀어지는 루퍼스 그레이엄을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 저주받은 녀석들의 자취를 5년 동안 쫓았었다고……?’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그저 루퍼스는 쓸데없는 집착으로 5년이란 세월을 허비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전혀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아텔라는 녀석이 ‘블랙잭’이라는 것을 제로에게 들었으니까.

‘그… ‘저주받은 녀석’들이 블랙잭과 연관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정말이고 조금 전 루퍼스가 한 말도 진실이라면, 결국 블랙잭과 ‘저주받은 세대’의 연관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욱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7년 전의 사건.

다가올 블랙잭의 침공.

그리고 한때 그녀의 친구였던 지크 버밀리온까지.

아텔라는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 * *

이튿날 아침, 루퍼스는 아우레인의 학생들을 아카데미의 숲으로 불러 모았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계속 하루의 시작을 스페이드와 함께해야 하는 거야?’

어제 교육 집합 때 히로빈 교장이 그랬었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루퍼스의 강의로 1교시가 대체 될 것이라고.

위자드 협곡 사건으로 대인전 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녀석이 블랙잭의 간부 스페이드라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조금 고통이었다.

아카데미의 숲에 도착하자 학생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아직 강의가 시작되지 않아 루퍼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학생들은 저마다 숙덕이며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다름 아닌 제페토와 그 따까리들의 대화 소리였다.

‘응? 뭐야. 쟤네 다시 결합한 거야?’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를 받은 이후, 한동안 녀석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또다시 붙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살짝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번 주에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말이다!”

“진짜?!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그게 말이 돼?!”

“역시 제페토네. 아카데미 재학생이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한 것은 거의 최초 아닐까?”

그 내용을 들은 나는 소리 내어 웃을 뻔한 걸 간신히 참아냈다.

‘뭐? 지가 군주급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클리어는 같이했으니까.

다만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제페토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통 자존감이 낮을수록 허풍이 가득하고 자존심이 높다고들 말한다.

내가 봤을 때 제페토 골드버그는 딱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지난 일주일간 속으로 참 내적 갈등이 많았을 것이다.

그동안 무시했던 평민이 자신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 주다니.

제페토 입장에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겠지.

그리고 그 결과로, 결국엔 또다시 자신의 따까리들에게 들러붙어 자존감을 회복받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나는 에이체스 녀석들과 어울린다는 것으로 딱히 제페토를 뭐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다 들리게 허풍을 떨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우스꽝스럽기까지 했기에 딱히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 따까리 녀석들을 언제 한번 손봐 줘야 하는데…….’

위자드 협곡에서의 일을 아직 잊을 수 없었다.

만약 기회만 온다면 녀석들을 제대로 혼쭐 내 줘야겠다고 항상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캐서린이 나에게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참으로 쪽팔리는 오라버니예요.”

캐서린은 뒤에 제페토 골드버그와 그 따까리들의 대화가 다 들린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나야 그렇다 쳐도 캐서린의 입장에서는 같은 핏줄인데, 저런 오빠의 모습이 매우 혐오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나는 저런 하찮은 오빠를 둔 캐서린이 조금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캐서린의 머리 위에 못 보던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샛노란 금발 머리에 그 검은 리본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본 예쁜데?”

“…그, 그런가요. 고마워요…….”

고개를 휙 돌리는 캐서린 골드버그.

나는 칭찬에 무뚝뚝한 모습으로 반응하는 캐서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자, 안녕 여러분? 다들 잘 잤어?”

이내 시끌벅적한 학생들을 진정시키며, 루퍼스 그레이엄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학생들은 어제처럼 환호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 눈살을 찌푸렸다.

“자, 오늘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다들 알겠지? 오늘은 훈련용 던전을 이용해서 실습할 거야. 오늘의 테마는 바로 ‘죽을 때까지 싸운다.’ 저번 주에 겪었겠지만, 사회로 나가면 목숨을 걸고 전투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 그렇기에 오늘 훈련용 던전은 강제 귀환의 대미지 수치를 조금 높게 설정했어.”

그 말인즉슨, 그만큼 더 많은 피해를 입어야 강제 귀환된다는 얘기였다.

루퍼스의 말을 들은 나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물론 루퍼스의 강의를 받아야 된다는 게 기분 나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체스, 벅스. 너넨 뒤졌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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