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77화 (77/175)

77화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한 이른 저녁.

나는 아우레인 기숙사를 향해 달렸다.

그 목적지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흑의 마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검은 안개가 그곳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저건 또 뭐냐고, 도대체.’

마기의 크기는 캐서린이 광폭화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안 되게 거대했다.

그 말인즉슨, 캐서린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마인이 기숙사 내부에 잠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루퍼스 그레이엄 짓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터무니없는 사태의 원인은 루퍼스밖에 없었다.

물론, 캐서린 때와 같이 외부에서 마기가 담긴 무언가를 우연히 반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당장 루퍼스가 블랙잭의 일원이라는 것을 아는 지금 굳이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달리는 와중, 회중시계에 손을 가져다 대어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웅.

허리춤으로 빨려 들어가는 투명한 마나.

- 끼룩!

- 파르.

이내 달리는 내 옆에는 매기와 파르가 소환되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녀석들을 미리 소환해 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블랙잭의 웬만한 간부와 붙어도 승산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만약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여차할 때 도주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섰다.

그렇게 나는 거대한 마기를 마주하기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덧 나는 아우레인 기숙사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행히 한창 축제가 진행 중이라 기숙사 안에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거대한 마기가 2층의 내 방 쪽에서 일렁거리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상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킨 채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2층을 올라가기 직전, 매기를 내 방 쪽으로 정찰 보냈다.

잠시 후,

- 끼룩!

먼저 복도를 살피고 내 방 입구로 간 매기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아무 이상 없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감지 마법을 계속해서 발동하고 있는 내 시야에는, 분명 커다란 검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분명 괜찮을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내 조심스럽게 그 커다란 기운의 근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뭐야, 진짜 아무것도 없잖아……?”

내 방문 앞에는 단순히 검은 일렁임만 보일 뿐, 딱히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검은 마기의 안개 내부로 들어가도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이상함을 느낀 나는, 마기의 중심에서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방문 앞에 살짝 튀어나온 나무판자를 밟게 되었다.

삐그덕.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짝 들리는 나무판자.

나는 곧바로 판자 안쪽에 공간이 있음을 눈치챘다.

‘뭔가 있나……?’

나는 조심스레 그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나무판자를 들었다.

예상대로 나무판자는 별다른 힘을 쓰지 않았음에도 쉽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판자 아래 어두운 공간에 놓여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공……?’

주먹보다 조금 큰 검은 구체였다.

나는 즉시 그걸 들어 올렸고, 그러자 주변의 마기도 같이 움직이는 듯했다.

분명 마기의 근원은 이 구체임이 틀림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 정체와 용도를 파악할 수 없으나, 이걸 여기다 둔 자는 분명 안티 매지션일 것이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왜 나를 노린 거지……?’

이 검은 구체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것을 내 방문 앞에 숨겨 놨다는 것은 명백히 나를 노린 것이리라.

그런데, 도저히 블랙잭이 나를 노릴 만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딱히 루퍼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티 낸 것도 아니었고, 위저드 협곡에서 클로버와 대치했을 때도 내가 흘린 정보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분명 블랙잭은 칼루스 아카데미의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바로 ‘나’라면?

‘아카마’에서 침공을 해 왔던 이유도 바로 ‘제로’ 때문이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나로서는 오히려 좋은 소식이었다.

녀석들이 노리는 그 ‘누군가’를 지키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를 지키는 편이 훨씬 쉬울 테니까.

‘아무튼 일단 이걸 제거해야겠네.’

내 손에 쥐어진 검은 구체에서는 아직도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문득 매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 방법이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이거 물고 있을 수 있나?”

- 끼룩!

그러자 즉각 대답하는 매기.

나는 녀석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구체를 매기의 솜사탕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매기의 입 안으로 들어간 검은 구체는 더 이상 마기를 뿜어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응?”

눈앞의 거대한 마기가 걷히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금과 똑같은 마기가 일렁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긴… 본관의 교직원실 쪽이잖아……?”

나는 황급히 교직원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직원실에도 내 방문 앞과 똑같은 수법으로 숨겨 놓은 검은 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또다시 검은 구체를 매기의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더 이상 없는 건가.”

꼼꼼히 주변을 살펴봤으나, 더 이상 마기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살짝 안심이 된 나는 그제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나와 교수진들을 노렸다는 건가……?”

이 구체의 용도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도는 명확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아카마’에서 교직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 검은 구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장 우선적인 것은 이 구체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분한테 가 봐야겠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나는 칼루스 아카데미 지하 연구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방독면을 머리에 쓰고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랑켄 슈타이너 교수가 있었고, 그 옆에는 이올렛 테오니르도 있었다.

나를 발견한 이올렛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응? 여긴 무슨 일이야? 한창 축제 중일 텐데.”

오히려 축제 중인데 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이올렛 쪽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저…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그리고 나는 매기의 입 안에 보관해 놨던 검은 구체 두 개를 꺼냈다.

- 그건 뭐지?

랑켄 슈타이너의 방독면에서 흘러나오는 치지직거리는 기계음.

그는 내가 내민 물건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나는 이내 랑켄에게 구체를 넘겼고, 랑켄은 알 수 없다는 듯 구체를 요리조리 돌려 봤다.

“그 구체에서 마기가 느껴져서요…….”

- 여기서 마기가 느껴진다고……?

랑켄은 이 구체에 마기가 담겨 있다는 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마기를 감지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품은 모양이었다.

- 어떻게 마기를 감지할 수 있었지?

“감지 마법을 써서요.”

- 뭐?!

랑켄은 구체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나는 갑작스레 바뀐 랑켄의 분위기에 뭔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 고작 감지 마법 따위로 마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가만있어 봐라. 검증을 해야겠다.

그러고는 랑켄은 구체를 들고 곧바로 연구실 한쪽 구석의 실험 테이블로 가져갔다.

나는 그의 반응에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이올렛을 쳐다보았다.

“저… 감지 마법으로 마기를 발견한 게 이상한 건가요?”

“보통은 그렇지. 감지 마법은 그저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는 마법일 뿐, 대상이 가지고 있는 마나의 종류를 구분하는 마법은 아니니까.”

“네?!”

마나의 종류를 구분하는 마법이 아니라니.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감지 마법을 사용해 왔던 나였기에, 그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뭐, 특정 대상이나 마인 같은 경우야 마나가 발산하는 진동과 파장을 보고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거고. 불규칙한 형태로 존재하는 마기 같은 건 일반 마나와 구분하기 어려우니까.”

“…제 감지 마법은 대상의 마나 색이 보이는데요……?”

“…마나 색이 보인다고?”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올렛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졌다.

그만큼 마나 색을 감지한다는 게 엄청난 이레귤러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건 저 인간에게 따로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말한다면 아마 저 인간에게 실험용 쥐 취급을 받을걸? 아무튼, 놀랍네. 고작 감지 마법으로 타인의 계열 마나를 파악할 수 있고, 마기 또한 감지할 수 있다니.”

이올렛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그녀로서는 최고의 감탄 표현인 듯싶다.

나는 그녀의 말에 조금 얼떨떨해졌다.

‘마기는 그렇다 쳐도 감지 마법으로 상대의 마나 계열을 구분하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애초에 마법사끼리의 전투가 빈번한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세계에서, 감지 마법 하나로 상대방의 계열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감지 마법을 ‘아카마’ 게임에서 사용해 본 적도 없었고, 이곳에서 처음 사용할 때부터 당연히 마나 색이 구분되었기에 그다지 생각하지 않던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매직 미사일도 일반 마법사랑 다르잖아……?’

지금껏 수없이 들어온 말.

- 아니 고작 매직 미사일로 어떻게 그럴 수가…….

-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 그 정도의 매직 미사일은 권좌들도 쉽게 따라 하지 못하겠는데?

그러나 나는 그러한 말들을 그냥 칭찬으로 흘려넘겼었다.

나는 지금껏 그저 마나가 많아서, 또 마법 주문서로 강화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분명, 내 매직 미사일과 감지 마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기초 마법이 이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더라면, 다른 마법사들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무속성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건가……?’

나는 그러한 사실을 여기에 온 지 비로소 두 달 만에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내 무속성 마법들은 이벤트의 주문서로 더욱 강화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내가 이 세계로 오면서 받게 된 특전인 것 같았다.

아니면, 원작의 ‘제로’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특성일 수도 있겠고.

어쨌든 적어도 내가 무속성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10분 뒤.

이윽고 구체에 대한 간단한 조사를 마친 랑켄 슈타이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다그쳤다.

- 어, 어떻게 마기를 파악할 수 있던 거냐?

그것은 의구심, 의혹이라기보다는 과학자로서의 호기심, 새로운 걸 발견했다는 흥분에 가까웠다.

다만, 나는 이올렛의 조언을 떠올리고는 은근슬쩍 넘어가기로 했다.

“그, 그냥 느낌…이요?”

- 느낌이라고? 그런 비과학적인 소리가 어디 있…….

그러나 랑켄 슈타이너가 더 추궁하기도 전에, 이올렛이 황급히 화제를 돌려주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너, 저 마도구를 어디서 발견한 건데?”

“아우레인 기숙사와 교직원실이요. 제가 봤을 때는 칼루스 아카데미를 노린 ‘블랙잭’의 짓인 거 같아요.”

“교직원실에 설치돼 있었다고……?”

이 도구의 용도와 정체는 몰라도 그 목적은 확실했다.

애초에 교직원실에 넣을 정도면 매우 위험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내 말에 랑켄은 조금 흥미가 생기는 것으로 보였다.

- 이 아카데미를 노리는 녀석들이라……. 일단 알겠다. 이것의 용도는 곧 파악해서 알려 주지.

칼루스 아카데미를 위협하는 녀석들.

그나마 녀석들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미연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