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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9화 (99/175)

99화

나는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로브를 받아 들었다.

지금껏 결사코 안 된다던 로브를 이렇게 순순히 넘겨주다니.

조금 갑작스러운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로브를 받아든 내가 멍한 표정으로 있자, 루비 버밀리온이 도리어 의문이 생긴 모양이었다.

“왜……? 필요하다며.”

“그렇긴 하지만…….”

“혹시 내가 입던 거라 그런 거야……? 걱정 마, 세탁 마법은 확실히 했으니까.”

루비의 말마따나 로브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야?”

“…그냥?”

“나야 주면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이거 소중한 거라 하지 않았어?”

“…….”

대답이 없는 루비 버밀리온.

그런 그녀의 표정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곧 루비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이상 소중하지 않아서…….”

“응?”

“아, 아무튼! 난 이제 필요 없으니까 갖든 버리든 마음대로 해.”

“으, 응……. 고마워.”

어쨌든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영웅의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었으니 나야 나쁠 건 없었다.

루비 버밀리온은 이내 용건이 끝나자 문밖을 나가려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불러세웠다.

“아 참. 이따가 중앙 광장에서 다 같이 캠핑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난 됐어.”

“왜? 가서 오늘 있었던 썰도 풀고 다 같이 바비큐도 하면 좋잖아?”

“그냥… 좀 피곤해서…….”

나는 말꼬리를 흐리는 루비 버밀리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오늘 너무 고생했어. 푹 쉬어.”

“으응.”

대답과 함께 문밖으로 나가는 루비 버밀리온.

나는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그러고는 루비의 로브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영웅의 아티팩트라는 게 있었지…….”

‘버밀리온의 로브’ 덕분에 새삼 영웅의 아티팩트와 히든 이벤트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메인 이벤트를 클리어한 줄 알았고, 이 세계와 영영 작별할 줄 알았던 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판.

이곳에서 내가 모은 영웅의 아티팩트라고는 이제 겨우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하나였고, 남은 영웅의 아티팩트는 ‘버밀리온의 로브’를 제외하고도 다섯 개였다.

그만큼 메인 이벤트의 조건을 달성하기까지 아직 한참 남았다는 방증이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발동시키더라……?”

단순히 마나를 주입해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곧 나는 이전에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를 발동시켰던 방식을 떠올렸다.

“회중시계 때는 뚜껑을 여니까 발동했었지?”

그렇다면 이 로브를 발동시키는 방법은 하나뿐.

그리하여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로브를 둘러 입었다.

그러자 곧바로 나타나는 신호.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영웅의 아티팩트 ‘버밀리온의 로브’를 수집하였습니다.]

〈히든 이벤트: ‘영웅의 아티팩트’ 진행 상황〉

(버밀리온의 로브, ???,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 ???, ???, ???)

“나이스!!”

역시나 루비가 준 로브는 ‘버밀리온의 로브’가 맞았다.

혹시나 영웅의 아티팩트가 아닐까 봐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로브는 영웅의 아티팩트가 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앞으로 다섯 개.”

이제 ‘아카마’에서 칼루스 아카데미를 침공했던 블랙잭이라는 조직은 전부 처리했기에, 사실상 앞으로 등장할 녀석들은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따라서 그들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이상, 딱히 대비할 방법도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내가 좇을 목표는 바로 이 ‘영웅의 아티팩트’를 모으는 히든 이벤트였다.

영웅의 아티팩트를 모으다 보면 자연스레 파워 업이 될 것이고, 파워 업은 곧 미지의 적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젠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알았으니까.”

‘버밀리온의 로브’와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를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아티팩트의 획득 경로와 수집 방식을 알 것만 같았다.

따라서 나머지 아티팩트들의 수집에도 문제는 없었다.

“그럼, 일단 테스트해 볼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버밀리온의 로브’의 능력을 알고 싶어, 서둘러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아우레인의 기숙사의 뒤편.

다소 쌀쌀한 공기와 함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반쪽이 무너져 내린 아우레인 기숙사 건물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 보니 그 모습이 더욱 휑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무너져 내린 기숙사의 범인은 바로 나였기에, 살짝 뜨끔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흠흠……. 그럼 어디 보자…….”

나는 이내 무너져 내린 아우레인 기숙사에 대한 감상평을 거두고, ‘버밀리온의 로브’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와 함께 로브에서는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응……?”

그러나 딱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지……? 뭔가 방법이 따로 있나?”

분명 빛이 나는 걸로 봐서는 작동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게 살짝 이상하게 느껴졌다.

“흐으음…….”

분명 ‘버밀리온의 로브’는 물질계 영웅 버밀리온의 아티팩트.

따라서 물질계 마법 효과를 지니고 있어야 마땅했다.

예컨대 중력이라든지, 자기력이라든지, 전기력이라든지, 마찰력이라든지 나타날 효과는 많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내심 신체를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중력 마법을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정작 로브가 발동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을 시도해 봤다.

그러나 여전히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내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효과는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으니까.”

같은 영웅의 아티팩트인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의 능력은 ‘도깨비불의 소환’.

매기와 파르만 해도 역시 영웅의 아티팩트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버밀리온의 로브’의 능력도 상당히 기대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능력 확인은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호기심보다는 배고픔이 좀 더 앞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건가……?’

이러니 배가 고플 수밖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아카데미의 광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 *

아카데미의 광장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수많은 텐트가 보이고 있었다.

저마다 텐트 앞에 모닥불을 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캠핑장의 풍경 같기도 했다.

내가 캠핑장 입구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마침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달시 세이피어가 발견하고는 큰 목소리로 반겨 주었다.

“어이!”

달시는 양손에 바비큐 재료들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침 식당에서 배식받은 재료들을 들고 아우레인의 텐트 쪽으로 가던 길인 듯싶었다.

나는 이내 달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달시는 내 얼굴을 보고는 배시시 입꼬리를 올렸다.

“기숙사용 배식이야?”

“아니?”

“그럼?”

“우리 텐트 거.”

“…이 많은 게 다 한 텐트 분량이라고?”

한 텐트라고 해 봤자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일 텐데, 그들이 먹을 양치고는 꽤 많은 게 사실이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어?”

“물론이지. 나 혼자서도 반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

나는 달시의 먹성에 할 말을 잃었다.

그나저나 고작 텐트 하나에 배정된 음식이 이 정도라면, 아마 아카데미 측에서 작정하고 음식들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만큼 오늘 일이 벌어진 거에 대한 사죄를 단단히 하는 거겠지.

아카데미 측의 입장이야 어쨌든, 일이 잘 풀렸으니 지금의 야영은 나름대로 운치 있는 캠프파이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그녀가 양손 가득 들고 있는 바비큐 재료 쪽에 시선이 갔다.

힐끔 내려다본 나는 이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같이 들어.”

“아냐, 됐어. 혼자서도 충분해.”

말이 무섭게 양손으로 들고 있던 바비큐 재료를 한 손으로 드는 달시 세이피어. 그러고는 도도하게 아우레인 텐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내 말이 묘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긁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아우레인 텐트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나저나 나름대로 캠핑 느낌 나서 좋네.”

아무래도 블랙잭 때문에 지난 위저드 협곡의 수학여행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우리였다.

어쩌면 오늘의 이 캠프파이어가 허겁지겁 마무리된 수학여행의 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말에 달시 세이피어가 갑자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왜 웃어?”

“그런데 말이야…….”

“응? 왜?”

“우리가 캠프파이어를 하게 된 이유가…….”

“…크흠.”

그 부분 때문인 건가.

역시 오늘 던전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들 알게 된 모양이었다.

“고마워. 덕분에 즐겁게 됐네.”

“미, 미안…….”

“아냐 아냐, 농담이야!”

슬쩍 내 쪽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짓는 달시 세이피어.

나는 그녀의 농담에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어느새 잡담을 하던 우리는 아우레인의 텐트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제이드와 샬롯 아메드, 그리고 골드버그 남매들을 비롯한 동급생들이 모닥불 주위를 뺑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제이드를 보자마자 말을 건넸다.

“뭐야, 먼저 와 있었네?”

“아, 응.”

살짝 머리를 긁는 제이드.

아무래도 오늘 알게 된 진실에 대한 충격은 벌써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모닥불을 쬐며 앉아 있던 제페토 골드버그가 번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 너… 도대체 오늘 일은 어떻게 된 것이냐?!”

“뭐가?”

“블랙잭의 간부를 처리했다 들었는데?!”

“뭐… 운이 좋았지.”

나는 씩씩대는 제페토에게 한껏 미소를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내가 클로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것도 당연히 알려진 것 같았고.

그리하여 제페토 골드버그는 내가 그러한 영웅담을 독차지해서 질투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았다.

내가 이곳으로 오자마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속닥거리는 시선들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것들이 나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존경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이런 반응도 나름 나쁘지 않네.’

나는 여전히 씩씩대는 제페토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자연스레 자리가 비어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 옆에 앉았다.

그러자 캐서린이 나를 흘끔 흘겼다.

“어디서 본 로브네요?”

“아, 이거? 루비가 줬어.”

“그래요? 잘 어울리시네요.”

“그래? 빨간색이 조금 별로긴 한데.”

이내 캐서린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런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하자마자 모닥불에 바비큐 꼬치들을 굽고 있던 달시가 크게 소리쳤다.

“애들아! 먹자!”

그렇게 우리는 오늘 하루의 마무리인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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