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8화 (98/175)

98화

* * *

“아직… 아직 침공 이벤트가 끝나지 않았다는 건가?!”

나는 제이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메인 이벤트 〈멸망의 구원자〉의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창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침공 이벤트가 완전히 종료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감지 마법으로 확인한 결과, 녀석들은 전부 실베르 라인하르트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직 메인 이벤트의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녀석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블랙잭은 하트, 클로버,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녀석들이 전부잖아……?”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제이드가 알고 내가 아는 블랙잭의 멤버는 그들이 전부였다.

그 이상의 인물은 ‘아카마’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예컨대, ‘아카마’로 따지자면 그들이 전부 체포된 이상, 블랙잭은 소멸해야 정상인 것이다.

“역시… 이벤트가 종료되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가 더 있다는 소리겠지?”

“그런 것 같네. 내가 알고 겪은 것도 여기까지일 뿐이니까.”

무언가 남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오늘 일어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오늘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리라.

그러나 혹시 또 모르는 일이기에, 나는 감지 마법을 시전하여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았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웅.

눈으로 들어오는 칼루스 아카데미 내부의 마나 정보.

역시나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런데,

‘응……?’

순간 루비 버밀리온 쪽에 마나 스파크가 튀었다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의 마나 자체에는 별 이상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루비가 중력 마법을 시전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감지 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살피는 내 모습을 보며 제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결국 새로운 적은 있다는 거네. 그것도 칼루스 아카데미를 노리는 적이.”

“응, 아무래도 이게 끝은 아닌가 봐.”

“아무튼 고마워. 나로서는 뭔가 긴 저주에서 풀려난 느낌이야. 이제부터는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렇지?”

긍정적으로 미소를 짓는 제이드.

내가 말한 내용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지금의 제이드는 내가 알던 제이드 그대로였다.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수없이 계속되는 동료들의 죽음과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보통 멘탈로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그라서 견뎌 낼 수 있던 거겠지.

나는 넌지시 그에게 물어봤다.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하다니?”

“기나긴 저주에서 풀려났잖아. 그럼 아카데미가 질릴 만도 할 텐데.”

수백 번, 수천 번 동안 아카데미 생활을 하고 있으면 이젠 이곳이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나마 회귀의 장소가 군대가 아닌 아카데미라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려나.

그러나 녀석은 내 말에 씨익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직 그 ‘침공 이벤트’가 끝나지 않았다면서? 그렇다면 당연히 널 도와 이곳을 지켜야지. 칼루스 아카데미가 멸망하는 꼴은 볼 수 없잖아?”

“정말?”

“응. 이곳이 너에겐 게임 세계일지 몰라도, 나에겐 현실이니까. 게다가 수만 번 봤던 사람들이야, 당연히 나한텐 더없이도 소중해.”

“고마워…….”

이로써 제이드는 이 ‘아카마’의 세계에서 내 비밀을 공유한 두 번째 사람이 되었다.

사실 그와 이렇게 제대로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이 재수 없게 잘생긴 녀석에게 괜스레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녀석의 얼굴을 보면 재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래의 세계에서 플레이했던 캐릭터였기에, 뭔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반쪽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리하여 그와 교류한 시간은 길진 않았지만,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녀석의 성격 자체도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이 녀석의 설정 자체가 착해 빠지고, 빌어먹게 잘생기고, 과하게 친절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말을 흐리자 고개를 갸웃하는 제이드.

“넌 ‘아카마’의 모든 플레이를 전부 경험했다는 거잖아……?”

“응. 맞아.”

“그럼, 당연히 침공 이벤트 말고도 평범한 이벤트도 전부 겪었다는 거네?”

“그…렇지?”

“그런데 ‘아카마’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내가 또다시 말을 흐리자 제이드는 이내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 모습에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셋 중 누가 제일 좋았어?”

“누…가 제일 좋냐니……?”

“애초에 셋 다 연애해 봤을 거 아니야. 그래서 너의 최애는 누군데?”

제이드의 얼굴은 아예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항상 마이페이스의 녀석이 이렇게까지 당황한 것은 ‘아카마’에서도, 이곳에서도 없었던 일이기에, 나는 녀석을 계속 놀리고 싶어졌다.

“루비 버밀리온? 에메릴 그린월드? 그것도 아니라면 역시 샬롯 아메드인가?!”

“아, 아니야!!”

제이드는 본인은 그 일과는 관련 없다는 듯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런 녀석의 붉어진 표정을 보며 키득댈 뿐이었다.

‘하긴 얘는 그저 게임의 주인공이었을 뿐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계속되는 회귀 속에서 세 명의 미인들과 알콩달콩한 연애라니.

참으로 팔자 좋은 회귀자 녀석이다.

역시 저 녀석은 군대에서 회귀했어야 마땅하다.

‘그나마 ‘아카마’가 성인 게임이 아니라는 게 다행인가…….’

정말이지 원작이 스킨십조차 없는 건전한 게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제이드를 한창 놀리고 있을 무렵,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어느새 돌아온 루비 버밀리온.

그런데 물을 가지고 오겠다던 그녀의 손은 비어 있었다.

“응? 물은?”

“미, 미안. 깜빡했어.”

어딘가 초점이 없어 보이는 루비의 얼굴.

그러면서 그녀는 그저 입고 있는 붉은 로브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아냐, 괜찮아.”

나는 그런 그녀에게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루비와 제이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결국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또다시 칼루스 아카데미는 누군가의 침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문제없었다.

몇 번이고 녀석들이 침략해 온대도, 전부 막아 낼 것이니까.

* * *

결국 던전에 갇혀 있던 교수들과 학생들이 풀려난 것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였다.

얼핏 소문을 들어본 결과, 그쪽도 나름 계속해서 몰려오는 군주급 마물들을 상대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후, 칼루스 아카데미의 인원들은 마경에 의해 사후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조사를 끝마친 나를,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불러 세웠다.

“어이!”

나는 그런 그에게 손을 흔들며 씨익 미소를 보였다.

“조사는 끝났어요?”

“응. 오늘 하루, 정말 고생했어.”

“그래서 왜 늦으셨는데요?”

“북쪽 해상에 재해급 마물이 출몰했었거든. 아무래도 블랙잭 녀석들이 그 타이밍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듯해. 그래도 나름 눈치채고 빨리 온 거다?”

실베르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다만, 나는 실베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재해급 마물이 출몰했었다고?’

재해급 마물은 말 그대로 이 세계의 커다란 재해와 다를 바 없었다.

나타나면 재산 피해, 환경 피해는 물론이고 커다란 인명 피해를 부르는 재해.

그런 재해급 마물의 등장에 이러한 침공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타이밍이 교묘했다.

‘녀석들이 마물의 등장 시기를 알기라도 하는 건가……?’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억측이었다.

이내 나는 그러한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냈다.

“간부 네 명은 전부 잡은 거 맞죠?”

“응. 덕분에 쉽게 잡은 듯해.”

“그나저나 녀석들의 목적이 뭐였어요?”

“녀석들의 목적……?”

내 질문에 실베르는 조금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이내 사실대로 말했다.

“그건 히로빈 그린월드 님이 함구를 요청하셔서. 미안하지만 말해 주기에는 조금 곤란해.”

“교장님이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히로빈 그린월드가 애초에 블랙잭의 침공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실베르에게 캐내야 할 정도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나와 그의 관계로는 집요하게 물어본다면 알려 주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굳이 비밀을 요청받은 것을 일반인에게 유출하는 것은 마경의 차장으로서 곤란한 일일 테니까.

‘뭐, 나중에 히로빈 교장님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거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알겠어요. 뭐,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그래, 미안하다. 아무튼 정말 오늘 일은 마경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고마워.”

실베르는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는 나에게 인사를 보냈다.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됐어요. 뭘요. 고작 아카데미 학생의 말을 진심으로 믿어 준 차장님에게 감사할 뿐이죠.”

“혹시라도 마경의 도움이라거나,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무조건 도울 테니까.”

“예. 고마워요.”

실베르와의 관계는 다가올 또 다른 침공 이벤트에 있어서 큰 힘이 될 것이다.

강화계의 권좌이자 마경의 2인자를 인맥으로 두다니.

나름 이곳 생활을 허투루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윽고 실베르는 짧게 손을 흔들더니 마경의 인원들과 합류하러 갔다.

나도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럼, 조금만 쉴까?”

그리하여 나는 아우레인의 기숙사에 복귀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반이 갈라진 아우레인 기숙사에서 내 방 쪽은 무사했다.

사실 아우레인 기숙사 말고도 다른 기숙사 건물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히로빈 교장은 잘 곳을 잃은 학생들에게 오늘 하루, 아카데미의 중앙 광장에 모여 캠핑을 하도록 지시했다.

아무래도 사건이 벌어진 만큼 당장 아카데미를 폐쇄하고 휴식기를 거치는 게 좋겠지만, 이미 밤이 늦은 만큼 또 뭔 일이 생길지 몰라 학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취지인 듯싶었다.

애초에 아카데미 내부에서 사건이 벌어진 건데 정말 안전한 건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방이 날아간 학생들은 대부분 현재 아카데미의 중앙에 캠프를 치고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나도 동급생들이 난데없이 잘 곳을 잃고 캠핑하게 된 것에 책임을 느껴, 방은 멀쩡했지만 그들과 함께 텐트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전에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에 들른 것이다.

나는 내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우와아아…….”

그 푹신한 감촉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늘 온종일 굴러다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똑― 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응? 누구야? 들어와.”

그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루비 버밀리온이었다.

그녀는 어쩐지 입고 다니던 빨간 로브를 벗고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 줄 게 있어서.”

“줄 거라면…….”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로브에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러한 예감은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받아.”

루비는 손에 들고 있던 ‘버밀리온의 로브’를 나에게 무심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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