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 *
그렇게 나와 달시는 모두와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아카데미의 정문 밖으로 나섰다.
달시는 정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익!
그러자 잠시 후.
무언가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상공으로부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였다.
“엥? 이걸 타고 간다는 거야?”
“응.”
“좀 더 평범한 이동 방법은 없는 건가.”
애초에 버스도 있고, 모니터도 있고, 휴대폰도 있는 세계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굉장히 판타지다운 것이 등장한 것이다.
‘뭐, 페가수스를 타고 날아가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긴 하다만.’
그럼에도 보다 안락한 이동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세오린 산 근처에선 마법을 사용 못 하거든.”
“마법을 사용 못 한다고?”
“응, 그래서 마력으로 움직이는 탈것으로는 세오린 산에 도착할 수 없어.”
페가수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다만, 나는 그 ‘마법을 사용 못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세오린 산에서 마법을 사용 못 하는 이유가 뭔데?”
“그건 모르는데?”
“모른다고? 그럼 왜 세이피어 가문의 영지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지역에 있는 건데?”
“그것도 모르겠네.”
“…….”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세이피어 가문이 마법사 가문은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강화계 마법사들이란 원래 이런 건가…….’
이 세계에서는 마나를 사용하는 자라면 모조리 마법사라고 분류해 놨다.
그리하여 애초에 체술이 주가 되는 강화계도 계열 마법의 일종이 된 것이다.
일반적인 판타지나 무협 세계관에서는 소드 마스터나 강호의 무림인이라고 여겨질 법한 강화계 마법사들.
그들에게서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화계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이질적이라고 한들, 그들을 일반화시키기에는 유독 달시 세이피어라는 녀석의 존재감이 특별했다.
“자, 이제 타자.”
“으응.”
그리하여 우리는 페가수스의 등 위에 탑승했다.
페가수스는 일반 말보다는 몸집이 조금 컸기에, 나름 두 명이 앉는다고 해도 자리는 넉넉했다.
다만, 막상 탑승하고 나자 잡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달시의 허리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내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달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냥 잡으면 되는데?”
“아냐, 그냥 나는 이대로가 편해.”
“나중에 후회할 텐데?”
“…아무튼 출발해!”
나는 기어코 팔짱을 끼고는 허리를 잡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하던 달시가 이내 페가수스의 고삐를 두어 번 쳐 댔다.
“이럇!”
그러자 갑자기 날개를 펄럭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 페가수스.
히이이이이잉!!
그러더니 점차 그 날갯짓과 함께 페가수스의 몸이 부유하고 있었다.
페가수스 위에 탑승하여 하늘을 나는 것은 어찌 보면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나는 그런 신선한 감상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팔짱을 끼고 자존심을 부리고 있던 나는, 페가수스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허벅지에 힘을 단단히 주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허벅지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한번 시작한 자존심 때문에 팔짱을 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페가수스의 상승 궤도가 수직이 아닌 완만한 곡선이라는 점이었다.
히이이이잉!
이윽고 페가수스는 상공으로 높이 도달했다.
그러고는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우와아…….”
이내 허벅지에 긴장이 풀린 나는 자연스레 감탄이 나왔다.
비행하는 페가수스 위에서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때, 괜찮지?”
“흔들림이 아예 안 느껴지는데?”
“지금은 대기가 안정적이니까. 아마 세오린 산 근처까지는 괜찮을걸?”
페가수스는 참으로 탐이 나는 영물이었다.
분명, 벌써 칼루스 아카데미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고 있음에도, 시승감이 마치 고급 승용차를 탄 듯 편안했다.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긴 나는 이내 아까 캐서린이 준 휴대용 마나 송신기를 꺼내 보았다.
사실 말이 휴대용 마나 송신기지, 디자인적으로도 거의 일반 휴대폰과 비슷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스마트 폰이라기보다는 정말 통화 기능만 있는 휴대폰이라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는 인터넷이 없네?’
휴대폰도, 게임기도 있을 정도인데 인터넷은 없다니.
물론, 마법 때문에 과학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퇴보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디자인은 나름 예쁘네.’
마치 최신형 휴대폰 같은 슬림한 디자인.
게다가 휴대폰의 케이스 뒷면에는 ‘ZERO’라고 각인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디자인을 직접 주문 제작한 모양이었다.
‘캐서린도 은근히 섬세한 면이 있네.’
문득 가격이 궁금해진 나는 달시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휴대용 마나 송신기 가격이 어떻게 돼?”
“가격? 글쎄?”
달시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세상 물정 모르는 근육 바보였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뭐, 그럴 수 있지.’
나는 이내 가격에 관한 관심을 끄고는 휴대폰에 저장된 주소록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떡하니 캐서린 골드버그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에서 아는 번호라고는 실베르 차장님 번호밖에 없었네.’
그리하여 나는 실베르 차장님의 번호를 등록하였고, 곧 내 휴대폰에는 두 개의 번호가 등록되었다.
그 뒤로도 몇 번 휴대폰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나는 이내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는 무엇이려나?’
분명 달시가 항상 차고 다니던 목걸이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전에 식당에서 착용했을 때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달시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 목걸이가 대대로 물려받는 목걸이랬지?”
“응.”
“그 밖에 또 대대로 물려받는 건 뭐 없어?”
“음… 글쎄?”
생각해 보니 이 녀석, 엄연히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였다.
가문에서 물려받을 게 있다고 한다면, 진작에 물려받았어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 목걸이는 아닐 텐데…….’
분명 저번에 목걸이를 착용하고 마나를 주입했어도 별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일시적으로 착용한 것이라지만, 애초에 영웅의 아티팩트라면 마나를 주입했을 때 뭔가 반응이 일어나야 정상이었다.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나는 문득 ‘아카마’에서의 정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이피어 가문의 상시 강화 마법은 대대로 물려받는 거였지?’
세이피어 가문은 강화계의 가문.
상시 강화 마법을 대물림한다는 것에서 어쩌면 아티팩트의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강화계 마법은 대개 신체 강화 마법이 대부분이었기에,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 효과도 상시 강화의 능력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나는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는지부터 먼저 확인했다.
“혹시, 상시 강화 마법 있잖아.”
“응.”
“그거 대물림받는 거야?”
“응.”
전혀 의심 없이 가문의 비전을 알려 주는 달시 세이피어.
나는 그녀가 이러한 성격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가 여타 다른 가문의 아티팩트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쉬운 듯싶다.
“그럼 어떻게 대물림하는 건데? 뭔가 따로 아이템이나 아티팩트 같은 걸 물려 주거나 그런 거야?”
“키스.”
“응……?”
나는 순간 내 귀가 잘못됐나 싶었다.
그만큼 달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 생뚱맞았다.
“뭐라 그랬어……?”
“응? 키스라고 했는데? 세이피어 가문의 상시 강화 마법은 키스로 전달하는 거야.”
키스?
뽀뽀도 아니고 키스으?
나는 순간 그녀의 말에 얼이 탔다.
전달 방식이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키스’라니…….
‘설마 진짜 키스가 아티팩트일 리는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영웅의 아티팩트인데 이름이 ‘세이피어의 키스’ 같을 리가 없었다.
아니,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다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고 있었다.
‘아티팩트라는 게 꼭 실물이라는 법은 없긴 한데…….’
지금까지의 아티팩트들은 로브와 회중시계.
둘 다 실물(實物)에 속했다.
다만, 영웅의 아티팩트라는 것이 어떠한 추상이나 개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키스는 좀 아니잖아.’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말았다.
만약, 세이피어의 아티팩트가 정말 키스로 전달하는 아티팩트라면.
그리하여 입맞춤을 하는 순간, 아티팩트의 전달을 받기 위해 마나를 주입하는 거라면…….
“안 돼!!”
나는 스스로 뺨을 때리며 큰 소리를 쳤다.
그러자 페가수스를 지휘하느라 앞을 보고 있는 세이피어가 뺨따귀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무슨 일이야?”
“아니……. 미안.”
나는 입으로도 마음속으로도 달시에게 사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애초에 저 키스로 전달한다는 것도 그저 부모 자식 사이의 가벼운 입맞춤을 말하는 걸 텐데, 그 단어의 울림 때문에 이상한 상상까지 치달을 뻔했다.
‘아무튼 세이피어 가문의 영지에 도착하게 되면 분명 세이피어의 아티팩트를 찾을 수 있겠지.’
물론 별다른 소득이 없게 된다면 결국 가능성은 고려해 봐야겠지만, 나는 절대로 거기까진 갈 생각이 없었다.
그걸 시도한다는 것은 선을 넘어도 엄청 넘는 걸 테니까.
‘응?’
머릿속에서 자아 성찰을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페가수스의 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미동도 없이 편안했던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겠어? 허리 잡는 게 좋을 텐데.”
“갑자기 왜 이런 거야?”
“난기류를 만났어. 아마 좀 많이 흔들릴 거야.”
심하게 흔들리는 거에 비해 달시의 어투는 비교적 평안했다.
애초에 경고하는 달시 본인도 고삐를 따로 잡고 있진 않았다.
다만, 나는 달시가 그다지 걱정하지 않던 이유가, 본인은 허벅지 힘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달시가 아무렇지 않게 허벅지 힘만으로 덜컹거림을 버티고 있었기에, 오기가 생긴 나머지 나도 달시의 허리를 잡지 않고 끝까지 허벅지 힘만으로 버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휘청―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페가수스가 날개를 퍼덕이더니 90도로 회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버티지 못한 내 몸은 자연스레 추락하게 되었다.
“제로!!”
떨어지는 나를 확인한 달시는 황급히 페가수스의 고삐를 잡고는 나를 구출하려 했다.
그러나 내 몸이 추락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아무래도 달시가 오기 전에 내 몸이 지면에 부딪히는 게 먼저일 듯싶었다.
다만, 나는 그다지 당황하진 않았다.
애초에 추락하는 상황은 이제 익숙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침착하게 회중시계에 손을 얹고는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런데,
“응?”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눈을 끔뻑끔뻑했다.
그 이유는 내 몸이 어느 순간 페가수스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었다.